[9月] "1학기 오투 학점은 A0" ‘오픈투게더’ 박효훈 부총학생회장 인터뷰

국민저널 기사/FOCUS 2013.09.04 08:30

‘트래픽 잼’ 축제 등 인정할만한 사업 많았지만

총학생회가 즐거움만 좆은 건 아닌가 반성

등록금 2.6% 인하에 그쳐 “잘못이 크다”


2013학년도 제45대 총학생회 ‘오픈투게더(이하 ‘오투’)’가 들어선지 어느덧 한 학기가 지났다. 지난 12월 50.8%의 지지율로 당선된 오투 총학생회는 등록금 10% 인하, 학점이월제, 경전철 역명 유치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바 있다. 한 학기동안 오투는 어떤 생각을 갖고 총학생회를 꾸려나갔을까. 그리고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을까. <국민저널>은 박효훈 부총학생회장을 만나 지난 학기를 되짚어보고 남은 임기 동안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1학기 오투 사업의 학점을 매겨달라는 질문에 박 부회장은 “A0”라고 대답했다. 부족한 학생회비로 학생들이 인정할만한 사업들을 했다는 자평이다. 지난 1학기 오투 총학생회는 복지관 열람실 전자자동시스템 구축, 경상관 테라스 설치, 4‧19 뜀박질 행사, 축제 등에서 공약을 이행한 바 있다. “전체적으로 큰 잡음 없이 한 학기 사업을 해냈다”고 그는 말했다.


박 부회장이 특히 자부심을 느끼는 사업은 1학기 축제 ‘TRAFFIC JAM'이었다. “축제는 무조건 커야 했다. 외부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될수록 학교 경쟁력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데, 축제만큼 외부 사람들 시선을 끌 수 있을만한 게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아쉬운 점은 무엇일까. 박 부회장은 총학생회가 오로지 즐거움만 좇은 건 아닌지에 대한 반성을 먼저 들었다. “축제나 컬러런 행사 등 즐거움 쪽으로 무게가 기운 것 같다. 여건이 안돼서 취업 관련 부분의 공약 이행이 부족했다”는 그는, 특히 등록금을 10% 인하하겠다고 공언했던 오투의 공약에 대해 “잘못이 크다”고 말했다.


선본 당시 오투는 <국민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등록금 10% 삭감은 가능하며 ▲교직원 인건비 삭감 ▲기자재 구입 예산 절감 ▲학교법인의 법정부담금 확충 ▲예결산 차액 확보 등으로 약 100억원 규모의 등록금 인하가 가능하다고 제시한 바 있다.(본지 2012년 11월 26일 보도) 하지만 박 부회장은 “학교 본부에서 1학기 때 이미 1년치 예산을 짠다. 앞으로 등록금 추가 인하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2.6%가 최선이고 등록금심의위원회는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우리가 물론 10% 인하안을 갖고 나왔지만 당장 예년에 10%를 깎으면 학교에서도 일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2.6% 정도면 학교에서 인하할만큼 인하했다는 느낌이다. 더 이상 요구하지 않을 거다” 등록금 추가 인하에 난색을 표한 박 부회장은, 장학금 비율을 조정해 학생들이 혜택을 받는 방향을 모색해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등록금심의위원회와 연계하기로 했던 북악발전회에 관련해 박 부회장은 “9월 중순 내에 열릴 예정이고, 북악발전회에서 운동장 조명 설치 등 요구안을 많이 들어주고 있다”고 밝혔다.


2학기는 취업 분야에 중점… 학생들 참여 촉구

학점이월제 이르면 내년 1학기 중 시행

국민대 앱 9월 초 출시


오투 총학생회의 남은 2학기 중점 사업은 무엇일까. 박 부회장은 “아직 구체적인 사업계획은 나오지 않았다”면서도, 1학기 때 미흡했던 취업 분야 쪽으로 눈을 돌릴 계획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PT경진대회 및 경력개발센터와 연계한 취업캠프를 고려중이지만 참여율이 저조해서 사업을 추진하기가 무섭다”며, 조심스레 “학생들이 학교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수한 인재를 뽑으러 학교에 방문하는 기업 리크루팅에서 우리 학교만큼 학생 수가 적은 학교도 없다.”


그는 남아있는 공약인 국민대 어플리케이션과 학점이월제 모두 “긍정적으로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국민대 어플리케이션의 경우 “9월 첫째 주와 둘째 주 사이에 출시될 예정이며, 교내의 많은 정보를 알 수 있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으며, 학점이월제의 경우 “문제점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단계이다. 이르면 내년 1학기 때 시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11월에 열리는 다음 총학 선거까지 남은 시간은 두 달 남짓. 1학기 때보다 주어진 시간이 짧다. 사업을 추진할 기간이 짧다는 지적에 박 부회장은 “많은 사업을 벌이는 대신 (중점사업을) 완벽하게 치고 빠지겠다”며 각오를 밝혔다. 1학기의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일 없이 약속한 사업들을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 남은 2학기 오투의 행보를 지켜보자.


글․인터뷰/ 김선영 기자 syoung9924@gmail.com

인터뷰․편집/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편집/ 이승한 에디터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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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종료: 2013년 9월 30일 24시)


[4月]자유의 색을 입혀 억압의 굴레를 벗어던져라

국민저널 기사 2013.04.16 10:11

※ 13. 4. 30 09:51:53 최종 수정

[4月]자유의 색을 입혀 억압의 굴레를 벗어던져라

4․19 혁명 기념 뜀박질 성황리 열려

‘컬러런 마라톤’…이색 진행으로

참가자 지난해보다 200명 증가

 

 

▲(좌) 11일 열린 4․19 뜀박질 컬러런(Color Run) 마라톤 코스. (우) 11일 오전 서울 성북구 길음역 부근 ‘제1 체크포인트’ 관리 요원이 손바닥에 푸른 물감을 발라 4․19 뜀박질 참가자들이 소지한 흰 티셔츠에 손도장을 찍고 있다. (서울=국민저널/김선영 기자)

 

 

붐비는 학생들 틈바구니로 햇살이 파고들었다.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었지만, 4․19 혁명 기념 뜀박질에 참가한 학생들은 들떠있었다. 11일 아침, 1천여 명의 학생들이 신이 난 표정으로 대운동장에 모였다.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가 귓전을 울리는 가운데, 이들은 총학생회가 나눠주는 흰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우리학교에서 국립4․19민주묘지까지는 약 10km, 가깝지만은 않은 거리를 뛰겠다고 자원한 학생들은 일찌감치 선두에 서서 준비를 마쳤다.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리고, 학생들이 일제히 학교 정문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경찰이 학생들 옆을 따라붙으며 교통을 통제하고 구급차까지 뒤따라오는 광경이 제법 실제 마라톤 경기를 연상케 했다.

 

선두 주자들이 길음역 인근 첫 번째 체크포인트에 도착하자, 진행 요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학생들이 입고 있던 티셔츠에 물감을 칠했다. 어떤 이는 손바닥에 물감을 묻혀 옷에 손도장을 남겼다. 한쪽에선 어린아이처럼 친구의 얼굴에 물감을 묻히려는 이들과 이를 피해 도망치는 학생들의 유쾌한 풍경도 보였다.

 

정문을 나설 때와 달리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끼고,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악천후가 참가자들을 괴롭혔지만, 피곤해 보이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이는 예년과 다른 형태로 진행된 4․19 뜀박질의 구성과 무관하지 않다.

 

총학생회 ‘오픈투게더’는 기존의 4․19 뜀박질 행사를 가리켜 “대다수 학생들이 그저 목적지까지 갔다가 참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방식”이라고 평하며, 4․19 혁명의 의미를 생각해볼 기회가 적을뿐더러 지루함이 강해 학생들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간 북부지역대학생연합(북부대련)과 공동으로 행사를 개최하다 올해 들어 단독으로 행사를 개최한 것도 이 같은 배경이 작용했다. 고심 끝에 총학생회는 컬러런(Color Run) 마라톤을 도입했다.

 

외국에서 인기를 끄는 이색 마라톤 중 하나인 컬러런은, 지정된 체크포인트마다 옷에 각기 다른 색의 물감을 입히면서 달리는 방식의 마라톤이다. 경쟁의 요소를 중시하는 보통의 마라톤과 달리, 컬러런은 경쟁보다 ‘재미’를 추구한다는 점이 그 특징이다. 실제로 올해 4․19 뜀박질 참가 인원은 지난해보다 200여 명 이상 늘었다.

 

재미를 추구하는 동시에 4․19 혁명의 의미도 잊지 않고자 하는 시도는 물감의 색깔에서 엿볼 수 있었다. 이날 진행 요원들은 각 체크포인트마다 빨강, 파랑, 검정, 흰색 물감을 들고 참가자들을 맞았다. 총학생회 기획국장 김동현(컴퓨터·10)씨는 “4․19 혁명을 기념하고자 태극기를 그리려고 이러한 색깔을 정하게 됐다”며 “그러나 참가 인원이 생각보다 폭증했고, 체크포인트 부스마다 혼잡한 상황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원하는 무늬와 모양을 그리도록 조처를 했다”고 설명했다.

 

점심 무렵이 되자 마라톤 행렬은 미아, 수유를 지나 목적지인 국립4․19민주묘지 혁명기념탑 앞에 도착했다. 삼삼오오 모인 학생들은 총학생회가 준비한 도시락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일단의 무리는 자신들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뒤늦게 깨닫고 적잖게 놀라는 눈치였다. 박혜선(수학·13)씨는 “처음에는 단순히 재미로 참가하게 됐는데, 뛰다 보니 ‘극한을 이겨내야 한다’는 대학 생활의 목표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기념관 보고 퀴즈 풀며

4․19 역사적 의미 되새겨

이청수 열사 묘소 참배하기도

“피의 화요일 그날, 경무대 앞에…”

 

 

▲11일 오후 서울 강북구 국립4․19민주묘지 현충탑 앞에서 총학생회와 단과대 학생회 관계자 등 20여 명이 학생 대표 자격으로 민주 영령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서울=국민저널/구본철 기자)

 

종착지인 국립4․19민주묘지에는 다른 행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4․19 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자는 의미로 총학생회가 간단한 퀴즈를 준비한 것이다. 학생들은 묘지 한편에 위치한 기념관을 둘러본 뒤, 4․19 혁명에 관련된 퀴즈를 풀며 시간을 보냈다. 총학생회가 마련한 사은품을 받고 즐거워하는 학생들의 모습도 보이는 한편, 단과대학별로 모여 앉아 4․19 혁명에 대한 단과대학 학생회 임원진들의 설명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물론 꼭 경건한 분위기로만 행사가 유지된 것은 아니었다. 달리기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몇몇 학생들은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고, 도시락 식사 후 뒷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자리를 뜬 흔적들도 옥에 티로 남았다. 김동현 총학생회 기획국장은 “처음으로 하는 단독개최임에도 적극적인 참여를 해준 학생들에게 고맙다면서도 국립4․19민주묘지에 와서 엄숙한 분위기에 맞는 행동을 하지 못한 것이나, 점심 후 뒷정리에 관해서는 아쉬운 점이 남는다고 말했다. 민주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4․19민주묘지에 합당한 예를 갖추지 않는 학생들의 모습은, 과연 우리가 4․19 혁명의 의미를 제대로 기억하고 기념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했다.

 

 

▲1960년 4월 19일 서울 종로구 효자동 전차 종점 근방(경무대 입구)에서 시위대와 무장 경찰이 대치하고 있는 장면. 원 안에 있는 이는 1960년 당시 우리학교 법정대 1학년으로 경무대 입구에서 시위를 벌이다 경찰의 총탄에 희생된 이청수 열사다. (출처: <동아일보> DB, 국립4․19민주묘지)

 

 

어느덧 해는 중천에서 서편으로 비켜섰다. 자유와 정의를 얻고자 싸우다 산화한 민주 영령들에게 작별을 고할 시간이 왔다. 1천 학생들이 현충탑 앞에 모였다. “일동 묵념.”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여 망자의 넋을 기렸다. 국립4․19민주묘지를 퇴장하는 학생들 사이로, 그냥 돌아서기 못내 아쉬웠을 이들의 발걸음이 묘지 안으로 향했다. 사회과학대 소속 학생들이 공식행사 종료 후 법정대(사회과학대와 법과대의 전신) 출신 이청수 열사의 묘를 찾은 것이다.

 

1960년 4월 19일, 10만 서울 시민이 거리로 나와 ‘부정 선거 무효’를 외쳤다. 특히나 혈기 넘치는 200여 명의 대학생들이 경무대(지금의 청와대)로 진격했다. 그러나 경찰은 무차별적인 사격을 자행했고, 사상자가 속출했다. 뒷날 ‘피의 화요일’이라 부른 이날 경무대 앞 아비규환의 현장에 당시 법정대 1학년 이청수 열사가 쓰러져 있었다.

 

어디 그날 쓰러져간 이가 이청수 열사뿐이랴. 최루탄에 머리를 관통당한 김주열 열사, 들불처럼 일어난 마산 시민들, 선거 유세조차 못 가게 일요일 등교를 지시하는 당국에 맞선 대구의 고등학생들. 이청수 열사 묘를 참배하는 학생들은 누군가의 아들이, 누군가의 친구가, 누군가의 동생이 죽음의 각오로 일어섰던 것은 ‘자유의 힘’이었음을 조용히 되새기고 있었다.

 

‘4․19 53주년’ 봄은 오지 않았다

청춘은 춥기만 하다…그래서 달린다

 

그리고 53년이 지났다. 열사는 차가운 땅속에 잠들어 있다. 봄은 아직 오지 않아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행사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 북한산 진달래 능선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숨을 한껏 내쉬니, 이제야 ‘행사를 무사히 끝마쳤다’는 느낌이 선명하다. 자유란 이런 것인가.

 

하나 청춘의 삶은 갑갑하다. 등록금 부담에 목이 메고, 사회는 여전히 학생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고 통제하려 든다. 50여 년 전 총칼 앞에서 자유를 외쳤던 청춘들은 한껏 찬양하면서도, 오늘날 자유를 외치는 젊음들에겐 ‘아직 어려서 잘 모른다’며 침묵을 강요하는 세상. 어른들은 “우리도 어렸을 때 너희처럼 힘들게 살았다”며 애써 세태를 합리화한다.

 

지난 세대가 총탄을 맞으며 쟁취하려 했던 것, 자유란 이런 것인가. 상념이 스칠 무렵, 칼바람이 매섭게 휘몰아친다. 다시 달렸다. 갑갑함을 주는 모든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서.

 

취재․글/ 구본철 김선영 수습기자 syoung9924@gmail.com

글․정리/ 박동우 기자 pdwpd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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