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만든 서가]약할 권리 - 야스다 고이치 <거리로 나온 넷우익>

[우연이 만든 서가]약할 권리 - 야스다  고이치 <거리로 나온 넷우익>

 

 

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일베’

재일한인 생계지원이 과도하다는 ‘재특회’

 

87 6·29 선언 이후, 한국에서 민주주의라는 가치는 누구도 의문으로 삼을 수 없는 가치가 되었다. 87년 이후 태어나 민주화의 수혜만을 입고 자란 세대라면 더더욱 그랬다. 매년 순국한 지사들을 기리는 방식으로 민주주의는 반드시 존중되어야 했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느냐는 식의 말을 공공연히 하는 것은 금기였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는 이 금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일베 사용자들은 민주화운동을 조롱하고, 호남 출신 사람들을 홍어라 비하한다. 5월이 다가오자 이들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고, 이것이 언론에 노출되며 비로소 유의미한 비판의 대상으로 부각됐다.

 

물론 그전까지 일베를 조명해보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민주주의뿐 아니라 여성, 노인, 어린이 등의 사회적 약자들을 얕잡아 부르는 집단 내 은어를 만들어 공격했다. 왜 그랬냐는 물음에 그들은 재미로 그랬다는 다소 일관된 답변으로 대답한다. 단어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져서 이미 그 단어가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인지하기 어려워진 뒤였다.

 

그들은 사회가 정한 도덕률을 깨고 금기에 맞서는 행위를 일종의유희로 소비하며 그 감정을 공유했다. ‘이래도 되는 걸까라는 금기를 넘는 불안은 무리 내 은어와 농담의 반복 재생산을 통해 극복됐다. 금기를 넘는 것의 의미는 휘발되고, 집단적 유희로서의 공격만이 남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베는 자신을 스스로 벌레나 병신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비웃고 떠드는 공간일 뿐이라는 인식이 더 강했다. 5월 광주라는 한국 근현대사의 역린을 건드린 후에야, 일베는 공공연한 사회의 적이 되었고 고소와 고발이 난무하는 조리돌림의 장이 되고 말았다.

 

 

소동이 끝나자 야스쿠니의 가로수에서 흘러나오는 매미 소리만이 주위에 가득했다.

 

 “, 덥다.”

 

 “수고하셨어요.”

 

그토록 폭주하던 참가자들은 그렇게 서로를 치하하며 삼삼오오 흩어졌다. 각각의 표정에서는 극좌 세력을 놓친 아쉬움이나 자신들의 행동을 통제한 국가권력에 대한 분노는 추호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상기된 얼굴에는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이 떠올라 있었다.

 

 

일본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가 올해 5월에 펴낸 책 <거리로 나온 넷우익>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을 쫓은 몇 년간을 기록한 탐사 르포이다. 극우주의 단체 재특회는 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 코리안(자이니치 혹은 재일동포)들이 과도한 특권을 받고 있다며 이를 규탄하고 그들을 그특권으로부터 배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저자인 야스다 고이치는 그들의 주장이 전부 허구에 가깝다고 말한다. 재특회는 재일 코리안들이 과도한 생활 보호 지원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재일 코리안 대부분은 어렵게 생활하고 있어 생활 보호 지원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부닥쳐있다. 설사 그들의 주장에 맞는 부분이 있더라도 대개 과장된 것에 불과하다.

 

명확한 적이 보이지 않는 사회
사회적 덕목에 숨 막히는 개인

 

물론 그 사실이 재특회에게 그리 중요하진 않을 것이다. 그들이 원했던 건 억누를 길 없는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적당한 대상이었다. 어느 소수자든 그들의 대상이 될 수 있었고 그것이 재일 코리안이라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 모든 것들을 그저 덜떨어진 사람들의 유희인양 여기고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던 것은, 사람들이 일베나 재특회를그저 정신적 결함이 있는 소수 집단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따로 부락을 만들어 거주하는 사회 외적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사회가 요구하는 의무와 덕목에 지나치게 억눌려있을 가능성이 크다.

 

경제적 능력, 모두가 존경하는 사람이 되는 것, 화목한 가정을 일구는 것 등의 사회가 요구하는 덕목을 충족하지 못했을 가능성. ‘내가 진짜 원하는 게 이거다’. 별수 없는 욕망이지만 그렇다고 이를 말해서는 안 됐다. 사회가 요구하는 덕목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은무능과 동의어이고,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자신을 고백한다는 것은 사회적 자살행위와 다름없다.

 

싸울 대상이 명확한 싸움은 쉽다. 과거의 적은 눈에 보이고 명쾌했으며 다 같이 힘을 내서 물리친다는 가상의 카타르시스를 충족시켜 주었다. ‘힘 모아 일하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 거야. 독재자를 몰아내면 사회적 모순을 극복할 수 있을 거야. 금 모으기 운동으로 국고를 채워 나라가 진 빚을 갚으면 무리한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국외 자본을 이길 수 있을 거야.’

 

그러나 다각화된 사회는 과거와 달리 그들에게 확실하고 명확한 적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더구나 개인의 경제적 무능과 자기실현의 좌절은 거대한 적을 찾아 싸움으로 초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제 그들은 홀로 적을 찾아내어 자신의 존립 근거를 확보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제대로 된 욕망의 근거와 마주할 용기가 없거나 근거를 발견하지 못한 이들은 이내 자신이 마주한 실제 욕망을 왜곡시키고 헌신할 대상을 발견한다. 일본에서는 그것이재특회였던 것이다. 그들은 재일 코리안이라는 적을 만들어냈다.

 

나의 욕망에 괴로워하지 않는 대신

‘약자’를 공격해 괴로운 오늘을 잊다

 

그런 점에서 재특회의 시위는 기존까지의 반동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들에게 재일 코리안 시위는 유희나 배설일 뿐, 자신의 이익과 직접 맞닿아 있는 게 아니기에 욕망의 최종목적지가 될 수 없다. 비단 공격의 대상이 재일 코리안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재특회에 관심을 보인 다수 사람들은 오히려 이 시위가 재특회 회원 개인의 욕망과는 관련 없다는 사실 때문에 주목한다. 충족될 수 없는 자신의 욕망 앞에서 괴로워할 필요 없이, 속 편하게 타인을 공격하는 것으로 나의 오늘을 잊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실제로는 그 때문에 재특회는 명확한 방향을 잃어버린다.

 

일베가 진짜 원하는 건 기존 세대의 금기를 깨부숴버리는 일이다. 그 금기가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폭력과 증오가 원을 그리며 끝없이 돌고 있다. 당면한 욕망을 직시하고, 그것을 자기 힘으로 도저히 이뤄낼 수 없다고, 자신은 보잘것없다고 말하는 대신 그들은 키보드를 두드린다. 우리는 속 편하게 지는 법, 혹은 약한 자신을 인정하는 법을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다.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아낼 권리. 차라리 욕망에 솔직하라는 말들. 어느 쪽도 결코 쉽지 않다.

 

 


거리로 나온 넷우익

ネットと愛国 :
在特会の「闇」を追いかけて

야스다 고이치 安田浩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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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마니타스(2013)
청구기호 미정(정리중)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정리/이승한 에디터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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