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실수, 두 번은 우연, 세 번은 필연. 네 번은… 계폭?

국민저널 기사 2014.04.24 06:31

한 번은 실수, 두 번은 우연, 세 번은 필연. 네 번은… 계폭?

- 밤 사이에 있었던 법학관 페이스북 계정 논란 총정리.txt








*계폭: '계정 폭파'의 준말. 여기서 '계정'은 법학관 페이스북 계정을 가리킨다.  


한 번은 실수, 두 번은 우연이지만 같은 일이 세 번 반복된다면 그건 필연이다.


'법학관'이란 이름으로 페이스북 계정을 운영하고 있는 유저는 올해 2월부터 3월까지, 해당 계정에 전라도 신안군에서 벌어진 염전 섬노예 사건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올리며 이를 '전라도 섬노예 사건'이라 호칭했다. 적잖은 학생들이 지역감정을 불러일으킨다며 불쾌감을 표하자, 해당 유저는 사과글을 올렸다. '나도 지역감정은 싫으나, 해당 지역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결탁한 사건으로 보여서 개인의 문제로 볼 수 없다 판단해 '전라도 섬노예 사건'이라 지칭했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전라도의 면적은 남북도를 합쳐 대략 2만 평방킬로미터. 신안군의 면적은 655 평방킬로미터다. 해당 유저는 신안군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전라도 섬노예 사건'이라 호명함으로서 전라도 전체의 문제로 둔갑시켰다. 처음 일어난 일, 여기까지는 처음 있는 일이니 실수려니 하고 넘어갔다.







2014년 4월 1일 만우절, 법학관 계정은 만우절 거짓말이라며 '동성과 결혼'이라는 개인정보를 올렸다. 국립국어원이 '사랑'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에서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로 도로 후퇴시킨 것으로 한창 논란이 빚어지고 있던 때였다. 그 '거짓말'에는 누군가에겐 동성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결혼을 꿈꾸는 것은 너무도 큰 용기와 결단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것에 대한 고려는 하나도 엿보이지 않았지만, 두 번째 일어난 일, 여기까지도 우연이겠거니 하고 지나갔다. 뭐,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감수성이 조금 무딜 수도 있겠지. 국립국어원조차 꼬리를 내리고 후퇴한 마당에.








2014년 4월 15일, 해당 계정은 한 학생이 찍은 동영상을 공유했다. 국제관 화장실에서 버젓이 담배를 태우는 남학생들을 찍은 동영상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금연구역인 화장실 안에서 담배를 태우는 이들에 대한 분노와 자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때에, 법학관 계정은 동영상을 공유하며 ‘한국학생? 외국인학생?’이라는 코멘트를 붙인다.  물론 해당 동영상엔 중국어로 추정대는 대화가 함께 녹음되어 있다. 그러나 그 대화가 화장실 옆 칸에서 들려온 소리인지, 아니면 담배를 태우는 이들의 대화인지 동영상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그 대화가 담배를 태우던 이들의 대화였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법학관 계정은 단 한 줄의 글로 문제를 ‘매너 없는 흡연자 vs. 그렇지 않은 모든 이들’의 구도에서 ‘외국인 학생 vs. 한국인 학생’의 구도로 둔갑시켰다. 세 번째. 지속적으로 표출된 편협함은 한 가지 결론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계정을 운영하는 사람은, 분명 어떠한 편견에 사로잡힌 이라고.









필연은 분명한 결과로 이어진다. 전국이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트라우마를 앓고 있던 24일 새벽, 해당 계정은 실종자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의미로 네티즌들이 SNS 등에 올리던 '노란 리본' 프로필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게시했다. 여기까진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해당 계정은, 하필이면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를 올리며 이렇게 묻는다. “기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건 전 국민이 바라는 점일 겁니다 아래의 노랑리본이 왜 불쾌함을 주는 건지..?”








국민대학교 네티즌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해당 유저는 결국 사과문을 게재했다. 자신이 일베를 다니긴 하지만 자신은 고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하며, 고인드립(고인을 비하하는 농담)을 싫어하고, 진심으로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건을 애도하는 마음에서 노란 리본 사진을 올렸는데 그로 인해 사람들이 불쾌해 할 거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일베 유저라고 모두가 패륜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비극을 조롱하는 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실제로 해당 이미지를 만든 일베 유저 또한 '일베 내에서도 추모의 뜻을 담아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도 있으니 그들이 커뮤니티 안에서 쓰라고 만든 이미지인데, 일베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고인드립이라 취급 당하는 게 불쾌하다'는 요지의 불만을 이야기 한 바 있다. '법학관' 계정만 해도 그렇다. 해당 계정은 작년 12월 말 코레일 민영화 저지 투쟁을 지지하는 요지의 글을 올린 적도 있다. 혹자는 '중간에 계정을 운영하는 이가 바뀐 것 아니냐'는 추정도 하고, 누군가는 '세계관이 일관되지 못한 사람 같다'는 말도 하지만, 해당 계정의 유저가 직접 밝히지 않는 이상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알 방법은 없다.


하지만, 서두에 쓴 것처럼 한 번은 실수, 두 번은 우연이지만 같은 일이 세 번 반복된다면 그건 필연이다. '전라도 섬노예 사건' 발언 논란, '동성과 결혼'을 재미있는 농담의 범주로 올린 만우절, 외국인 학생에 대한 어떤 편견을 강화시켰던 흡연 동영상, 그리고 인터넷을 수놓은 수많은 노란 리본의 이미지 중 하필 일베에서 날아온 리본을 올린 지난 새벽까지. 분명한 방향성을 가진 어떤 편협함이 그렇게 세 번을 넘어 네 번 반복되었다.


이런 발언을 평범한 개인이 SNS 상에서 일삼았다면, 그저 '세계관이 편협한 사람이구나' 정도의 반응을 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의를 다루는 학문인 법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법학관'의 이름을 빌려온 계정에서 이런 글이 올라온다면, 그건 분명 어떤 징후다. 자신이 어깨에 짊어진 이름이 어떤 무게를 지니는지 알지 못하고, 사적 개인의 편협한 세계관을 공적인 건물의 이름을 빌려 온 계정에서 표출하며, '그것이 뭐가 문제느냐'고 되려 반문하는 이를 보는 당혹감. 우리는 그 앞에서 자신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나 자신의 행동이 지닐 파급력을 가늠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우리 사이에도 도처에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섬뜩함을 느낀다.








수많은 항의를 받은 해당 계정은 24일 새벽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는 입장을 남기고 계정을 삭제했다. 이제 그가 정말 국민대학교 학생이었는지, 졸업생인지, 교직원인지, 혹은 그냥 국민대학교 법학관 건물의 이름을 훔쳐간 타인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물의는 남았는데, 책임을 물을 계정은 꼬리를 자르고 사라진다. 이게 과연 법학관 계정 하나만의 일일까. 사라진 계정의 빈 뒤통수를 바라보며 허망해하는 입맛이 쓰다. 공적 건물의 이름을 빌어 개인의 편협한 세계관을 과시하던 이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흔적도 남기지 않고 숨어 들어갔다.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인터넷 틈바구니 안으로.



이승한 논설위원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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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만든 서가]약할 권리 - 야스다 고이치 <거리로 나온 넷우익>

[우연이 만든 서가]약할 권리 - 야스다  고이치 <거리로 나온 넷우익>

 

 

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일베’

재일한인 생계지원이 과도하다는 ‘재특회’

 

87 6·29 선언 이후, 한국에서 민주주의라는 가치는 누구도 의문으로 삼을 수 없는 가치가 되었다. 87년 이후 태어나 민주화의 수혜만을 입고 자란 세대라면 더더욱 그랬다. 매년 순국한 지사들을 기리는 방식으로 민주주의는 반드시 존중되어야 했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느냐는 식의 말을 공공연히 하는 것은 금기였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는 이 금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일베 사용자들은 민주화운동을 조롱하고, 호남 출신 사람들을 홍어라 비하한다. 5월이 다가오자 이들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고, 이것이 언론에 노출되며 비로소 유의미한 비판의 대상으로 부각됐다.

 

물론 그전까지 일베를 조명해보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민주주의뿐 아니라 여성, 노인, 어린이 등의 사회적 약자들을 얕잡아 부르는 집단 내 은어를 만들어 공격했다. 왜 그랬냐는 물음에 그들은 재미로 그랬다는 다소 일관된 답변으로 대답한다. 단어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져서 이미 그 단어가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인지하기 어려워진 뒤였다.

 

그들은 사회가 정한 도덕률을 깨고 금기에 맞서는 행위를 일종의유희로 소비하며 그 감정을 공유했다. ‘이래도 되는 걸까라는 금기를 넘는 불안은 무리 내 은어와 농담의 반복 재생산을 통해 극복됐다. 금기를 넘는 것의 의미는 휘발되고, 집단적 유희로서의 공격만이 남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베는 자신을 스스로 벌레나 병신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비웃고 떠드는 공간일 뿐이라는 인식이 더 강했다. 5월 광주라는 한국 근현대사의 역린을 건드린 후에야, 일베는 공공연한 사회의 적이 되었고 고소와 고발이 난무하는 조리돌림의 장이 되고 말았다.

 

 

소동이 끝나자 야스쿠니의 가로수에서 흘러나오는 매미 소리만이 주위에 가득했다.

 

 “, 덥다.”

 

 “수고하셨어요.”

 

그토록 폭주하던 참가자들은 그렇게 서로를 치하하며 삼삼오오 흩어졌다. 각각의 표정에서는 극좌 세력을 놓친 아쉬움이나 자신들의 행동을 통제한 국가권력에 대한 분노는 추호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상기된 얼굴에는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이 떠올라 있었다.

 

 

일본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가 올해 5월에 펴낸 책 <거리로 나온 넷우익>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을 쫓은 몇 년간을 기록한 탐사 르포이다. 극우주의 단체 재특회는 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 코리안(자이니치 혹은 재일동포)들이 과도한 특권을 받고 있다며 이를 규탄하고 그들을 그특권으로부터 배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저자인 야스다 고이치는 그들의 주장이 전부 허구에 가깝다고 말한다. 재특회는 재일 코리안들이 과도한 생활 보호 지원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재일 코리안 대부분은 어렵게 생활하고 있어 생활 보호 지원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부닥쳐있다. 설사 그들의 주장에 맞는 부분이 있더라도 대개 과장된 것에 불과하다.

 

명확한 적이 보이지 않는 사회
사회적 덕목에 숨 막히는 개인

 

물론 그 사실이 재특회에게 그리 중요하진 않을 것이다. 그들이 원했던 건 억누를 길 없는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적당한 대상이었다. 어느 소수자든 그들의 대상이 될 수 있었고 그것이 재일 코리안이라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 모든 것들을 그저 덜떨어진 사람들의 유희인양 여기고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던 것은, 사람들이 일베나 재특회를그저 정신적 결함이 있는 소수 집단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따로 부락을 만들어 거주하는 사회 외적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사회가 요구하는 의무와 덕목에 지나치게 억눌려있을 가능성이 크다.

 

경제적 능력, 모두가 존경하는 사람이 되는 것, 화목한 가정을 일구는 것 등의 사회가 요구하는 덕목을 충족하지 못했을 가능성. ‘내가 진짜 원하는 게 이거다’. 별수 없는 욕망이지만 그렇다고 이를 말해서는 안 됐다. 사회가 요구하는 덕목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은무능과 동의어이고,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자신을 고백한다는 것은 사회적 자살행위와 다름없다.

 

싸울 대상이 명확한 싸움은 쉽다. 과거의 적은 눈에 보이고 명쾌했으며 다 같이 힘을 내서 물리친다는 가상의 카타르시스를 충족시켜 주었다. ‘힘 모아 일하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 거야. 독재자를 몰아내면 사회적 모순을 극복할 수 있을 거야. 금 모으기 운동으로 국고를 채워 나라가 진 빚을 갚으면 무리한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국외 자본을 이길 수 있을 거야.’

 

그러나 다각화된 사회는 과거와 달리 그들에게 확실하고 명확한 적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더구나 개인의 경제적 무능과 자기실현의 좌절은 거대한 적을 찾아 싸움으로 초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제 그들은 홀로 적을 찾아내어 자신의 존립 근거를 확보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제대로 된 욕망의 근거와 마주할 용기가 없거나 근거를 발견하지 못한 이들은 이내 자신이 마주한 실제 욕망을 왜곡시키고 헌신할 대상을 발견한다. 일본에서는 그것이재특회였던 것이다. 그들은 재일 코리안이라는 적을 만들어냈다.

 

나의 욕망에 괴로워하지 않는 대신

‘약자’를 공격해 괴로운 오늘을 잊다

 

그런 점에서 재특회의 시위는 기존까지의 반동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들에게 재일 코리안 시위는 유희나 배설일 뿐, 자신의 이익과 직접 맞닿아 있는 게 아니기에 욕망의 최종목적지가 될 수 없다. 비단 공격의 대상이 재일 코리안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재특회에 관심을 보인 다수 사람들은 오히려 이 시위가 재특회 회원 개인의 욕망과는 관련 없다는 사실 때문에 주목한다. 충족될 수 없는 자신의 욕망 앞에서 괴로워할 필요 없이, 속 편하게 타인을 공격하는 것으로 나의 오늘을 잊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실제로는 그 때문에 재특회는 명확한 방향을 잃어버린다.

 

일베가 진짜 원하는 건 기존 세대의 금기를 깨부숴버리는 일이다. 그 금기가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폭력과 증오가 원을 그리며 끝없이 돌고 있다. 당면한 욕망을 직시하고, 그것을 자기 힘으로 도저히 이뤄낼 수 없다고, 자신은 보잘것없다고 말하는 대신 그들은 키보드를 두드린다. 우리는 속 편하게 지는 법, 혹은 약한 자신을 인정하는 법을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다.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아낼 권리. 차라리 욕망에 솔직하라는 말들. 어느 쪽도 결코 쉽지 않다.

 

 


거리로 나온 넷우익

ネットと愛国 :
在特会の「闇」を追いかけて

야스다 고이치 安田浩一

 

(클릭하시면 상세 도서정보로 연결됩니다.) 


후마니타스(2013)
청구기호 미정(정리중)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정리/이승한 에디터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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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月]나는 ‘가카’와 악수하지 않았다

국민저널 기사 2013.03.26 13:30

[3月]나는 ‘가카’와 악수하지 않았다

국민인닷컴 필명 ‘산들바람’ 최희윤 인터뷰 (I)

 

 

자연인 이명박이 아니라,
대통령 이명박의 악수를 거부한 것

개인적인 견해 차이에 대해선 사과할 생각 없어

 

 

아마 작년은 국민대학교가 개교 이래 가장 많이 언론에 노출된 한 해였을 것이다.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선정부터 5천 원 ARS 기부금 사건, 대선후보의 방문까지. 누군가는 지난해부터 우리학교에 삼재가 꼈다며 우스갯소리도 하곤 했다. 이 농담이 진짜였을까? 새 대통령을 뽑는 지난해 12월 19일 대선에서 삼재에 방점을 찍는 일이 발생했다. 일명 ‘가카 악수 거부 사건’으로 불리는 대형 떡밥에 걸려든 것이다. 덕분에 우리학교는 2012년의 마지막도 언론과 함께해야 했다. 용기인지 패기인지 알 수 없지만,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라는 대통령의 악수를 거부한 한 학생의 호기로운 이야기는 대선 당일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락내리락했다. 심지어 대통령이 바뀐 지금도 학내 커뮤니티인 국민인닷컴에서는 이 사건이 심심찮게 회자되고 있다.

 

 

사건이 있고 3개월간 잠수를 탔던 가카 악수 거부 사건의 주인공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동아리방으로 찾아와서 대적하자”는 글을 올리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초유의 사건으로 남을 가카 악수 거부 사건은 이대로 묻히기에는 너무 큰 떡밥이었다. 그 진실과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지금이 기회였다. <국민저널>은 몇 차례의 설득 끝에 지난 13일 이 사건의 주인공 ‘산들바람’ 최희윤(경영·08)씨를 학교 모처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가카 악수 거부 사건 말고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었다.

 

 

<국민저널>은 가카 악수 거부 사건에 관한 최희윤 씨의 입장을 1부로, 등록금심의위원회(이하 등심위) 태스크포스팀(TFT)과 부실대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양쪽에 몸을 담은 예외적 인물로서 바라본 등록금 협상 관련 이슈를 2부로 정리해 이틀 연속 게재한다. 오늘은 그러니까 말하자면, 본 게임에 들어가기 전의 가벼운 몸풀기가 되겠다.

 

 

Q.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악수를 거부한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알고 싶다. 왜, 어쩌다 그런 건가.

 

 

- “선거 당일 오전 7시쯤 투표 참관인 자격으로 청운동 투표소에 가게 됐다. 그곳 관계자가 곧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투표하러 오고, 투표를 마친 후 참관인들과 악수를 할 것이라 알려줬다. 투표소에 갈 때까지는 악수를 거부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막상 이 전 대통령이 온다고 하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가카에게 말을 한마디 할까’, ‘어떤 행동을 할까’ 고민하다 악수를 한다기에 악수를 거부하기로 마음먹었다. 한두 시간 후 이 전 대통령이 왔고, 악수를 청하기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

 

 

Q. 그랬더니 이 전 대통령은 뭐라던가.

 

 

- “이 전 대통령이 몇 마디 말을 했는데 기억나는 것은 ‘젊은 친구가 긍정적으로 살아야지’와 ‘부모님 잘 모시라’는 이야기였다.”

 

 

▲산들바람, 이 트위트 이후… 지난해 12월 19일 대선 당일 오전 필명 ‘산들바람’으로 알려진 최희윤(경영·08)씨가 트위터에 올린 글. 그는 자신이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건넨 악수를 거부한 사실을 밝혔다. /서울=국민저널

 

Q. 현 거주지가 정릉인 걸로 알고 있다. 정릉 사는 사람이 청운동엔 왜 갔나?

 

 

- “이 전 대통령 얼굴을 한번 볼 수 있을까 해서. 선거일 전에 개인도 투표 참관을 할 수 있다는 것과 대통령은 청운동에서 투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청운동 투표소에 무소속 김순자 후보(당시 기호 7번)의 투표 참관인으로 참관을 신청했다.”

 

 

※편집자 주: 투표 참관은 자신의 주소와 관계없이 자신이 원하는 투표소를 신청하면 할 수 있다.

 

 

Q. 이 전 대통령의 악수를 거부한 사실을 트위터에 올렸다. 특별한 의도가 있었나?

 

 

- “처음에는 트위트를 올릴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오고 간 앞뒤로 30분 동안은 주변 통신이 전부 끊기더라. 그동안 이 전 대통령이 나에게 한 말을 되뇌어 보니, 훈계조의 언사가 불쾌하더라. 트위터는 평소에도 많이 하니까 올려도 특별한 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고. 처음 올린 트위트에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답변하다 보니, 어느새 사건이 일파만파 커져 있더라.”

 

 

Q. 별일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니, 이런 파장을 예상을 못한 건가?

 

 

- “파문이 일 것은 예상했지만, 어떤 행동을 적극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악수를 ‘안 한’ 거니까 덜 할 줄 알았다.”

 

 

Q.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로 이 사건이 세간에 많이 알려졌다. 어떻게 인터뷰가 이뤄졌으며, 다른 매체와도 인터뷰가 있었는가?

 

 

-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는 사람이 내 트위트가 리트위트된 것을 보고, 인터뷰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이 왔다. 당일 점심쯤 그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얼마 안 지나 <오마이뉴스> 편집국에서도 연락이 왔다. <경향신문>, <시사인>과도 인터뷰가 있었고. 사실 악수 거부 사건이 있었던 후 모르는 전화번호는 거의 받지 않아 다른 인터뷰 요청 연락이 왔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Q. 모르는 번호를 거의 안 받은 이유가 있지 않나? 신상은 어쩌다 털린 건가?

 

 

- “물론 인터뷰에도 신상이 나왔겠지만, 트위터 프로필에 이미 ‘국민대, 경영전공’이 나와 있다. 아마 트위터 프로필로 알려진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악수 사건이 있고 사흘 동안 (모르는 전화를 받지 않아) 부재중 통화만 500통가량이 됐다. 카카오톡과 문자메시지는 뭐 헤아릴 수도 없고. 페이스북 메시지만 1천여 건이 왔다. 확실하진 않지만, 일베(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 쪽에서 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Q. 그 정도로 메시지가 와도 휴대폰이 멀쩡하던가?

 

 

- “<경향신문>과 인터뷰 도중 휴대폰에 진동이 계속 오더라. 전원을 끄려고 패턴을 풀다보면 또 진동이 오고, 패턴을 풀다보면 또 진동이 오고. 결국, 패턴도 못 풀고 배터리를 빼고 인터뷰에 임했다. 온라인상에 공개해 놓았던 여자 친구와 동생에게도 메시지와 전화가 왔다고 들었다.”

 

 

Q. 오프라인에서도 피해가 있었을 거 같다.

 

 

- “한 번은 신촌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늦어 택시를 타게 되었다. 택시 기사에게 행선지로 ‘국민대’를 말하니, 기사가 악수 거부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당사자가 나인 줄 모르고 욕을 막 하더라.”

 

 

Q. 가만히 있었나.

 

 

- “그냥 조용히 있으려 했는데 계속 욕을 하기에 못 참고 ‘기사님, 그거 저에요’라고 말했다. 국민대로 올 때까지 기사님이 아무런 이야기도 없더라. 그밖에 일베의 한 사용자가 나를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하는 바람에 4시간 반 동안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고. 그래도 격려와 응원도 많았다, 종종 선물도 받았고.”

 

 

Q. 사건 이후 당신에게 사과 요구가 빗발치는 동시에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한 사람 때문에 국민대생 전체가 피해를 봤다’ 등 비난 여론이 거세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 ‘동아리방으로 찾아와서 대적하자’는 글을 올리며 대응에 나섰는데, 사과할 용의가 없는가?

 

 

- “명예가 실추됐다는 식의 개인적인 의견에 대해서는 사과할 생각 없다. 나 자신이 국민대 대표라는 것을 표방하지도 않았고, 국민대를 대표했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내가 악수를 안 한 대상은 대통령이다. (투표소라는) 공적인 장소에서, 공직에 있는 대통령에게 악수를 안 한 것이다. 만약 대통령 이명박이 아닌 자연인 이명박을 개인적으로 알았거나, 사적인 장소에서 만났다면 당연히 악수했을 것이다.”

 

 

Q. 하지만 어떤 학우들은 그 택시기사처럼 ‘국민대’라는 이유만으로 욕을 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 “나와 같은 학교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게 신상이 털렸거나, 취업할 때, 작게는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국민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불이익 또는 불편을 입으신 분이 있다면 사과할 마음이 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최희윤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국민인닷컴의 산들바람’, ‘토크콘서트 기획’, ‘민주광장 텐트 점거’, ‘경영대 학생회장 출마’, ‘등록금심의위원회 TFT 참여’, 지금의 ‘대학생사람연대 동아리 회장 취임’ 등. 학내에서의 활동 이력들만 보면 그는 영락없는 꿘(운동권)처럼 보였다. 가카 악수 거부 사건은 화룡점정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꿘 맞으시죠?” 그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진짜 꿘이 들으며 화낼 거에요. 반(절)권이라고 해두죠.” ‘꿘’ 때문이었을까? 두 시간 넘게 이어가던 가카 악수 거부 사건의 이야기는 뜬금없이 등록금으로 흘러갔다. ‘반(절)권’이 ‘비권(비운동권)’과 ‘꿘’ 사이에 끼어 있던, 등심위 TFT와 부실대 대책위 이야기로.

 

 

※ 등심위 TFT와 부실대 대책위 간의 갈등, 등심위 협상에 대한 최희윤 씨의 견해는 내일(27일) 이어지는 인터뷰 2부에서 접하실 수 있습니다.

 

 

글/ 최용우 기자 julyten@daum.net

인터뷰/ 최용우 박동우 기자 pdwpdh@naver.com

편집·정리/ 이승한 에디터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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