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 2013년 12월] 이교위가 사필귀정(以校爲家 事必歸正)

[Editorial] 이교위가 사필귀정(以校爲家 事必歸正)



안녕들 하십니까. <국민저널> 편집국장 이승한입니다. 이 직함으로 독자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사령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편집국장으로서의 제 임기는 오늘 24시 부로 종료됩니다. 저의 뒤를 이어 <국민저널>의 선장이 될 이는 유지영 교열부장으로, 이미 지난 몇 개월간 공석이었던 취재부장을 겸임하며 매체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온 바 있습니다. 유지영 신임 편집국장이 이끄는 2014년의 <국민저널>에도 많은 성원을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2013년의 <국민저널>, 어떻게 보셨습니까. 올해 저희는 우연이 만든 서가로 한 달에 한 권 성곡도서관 보유 장서를 소개하고, ‘매치 오브 더 위크로 북악리그 선수들의 활약을 소개하며, ‘최통장의 정릉 라이프’, ‘내가 해봐서 아는데등의 기사로 여러분들과 공감할 수 있는 기사를 선보이려 노력했습니다. 때론 적은 인원으로 반드시 공론의 장에 부쳐져야 할 이슈들에 집중하느라 궂은 소식들만 많이 전했다는 아쉬움도 작지 않습니다만, 그것 또한 군소언론의 숙명이라 생각하며 씁쓸한 심정으로 아쉬움을 묻었습니다.

 

저희의 목표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습니다. 그 누구도 정보를 독점한 채 쉬쉬하며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고, 그 누구도 정보로부터 소외되지 않으며, 그 누구도 발언권을 묵살당한 채 그냥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 저마다의 의견을 가진 학내 구성원들이 학교의 대소사에 대해 모두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고, 성숙한 토론을 통해서 민주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소통의 장을 여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매끄럽지 않은 순간도 있었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했던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각자의 이해관계를 가진 이들이 충돌하는 순간마다 취재현장을 뛰며 그 광경을 기록해야 하는 기자들의 고뇌는 깊어져만 갔고, 그들이 취재해 온 기사로 최종 판단을 내려야 하는 편집국장의 자리는 늘 가시방석이었습니다. 고백건대 이 자리를 맡은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만, 과연 목표했던 것을 얼마나 이루고 자리에서 내려오는지는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2014년의 국민대학교 학생사회는 올해보다 더 큰 도전에 직면할 것입니다. 성곡도서관의 증축과 디자인 도서관의 이동으로 인한 유휴공간을 어떻게 학생자치공간으로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 유료 셔틀버스 증편에서 노선은 어떻게 결정할 것이며 학생복지와 안정적인 운영예산 사이에서 적절한 가격은 어떻게 정해야 하는가의 문제, 점점 늘어만 가는 정원 수에 비해 여전히 부족한 기숙사 문제,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취업과 효율성만을 강조하며 대학을 취업사관학교로 만들려는 시대의 흐름에 맞서 순수학문의 영역을 어떻게 지키느냐의 문제가 숨 쉴 틈 없이 국민대학교 학생사회에 몰아칠 것입니다.

 

<국민저널> 2014년에도 그 모든 현장에 있는 힘껏 달려가, 최전선에서 소식을 전할 것입니다. 국민대학교 학우 여러분께 감히 부탁드립니다. <국민저널>이 전하는 소식으로 치열하게 토론해주십시오. 나의 주장을 소리 내 말하되, 상대의 말에도 귀 기울여 주십시오. 각자의 주장이 공정하고 치열하게 격돌해 그 과정에서 변증법적인 해법을 찾는 과정의 일부가 되어주십시오. 소식을 전하는 것은 저희의 몫이지만, 학생사회를 변화시키고 그를 통해 자정능력과 감시의 능력을 키우며, 결과적으로 학교의 건강함을 지켜내는 것은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국민저널>에 들어와 처음으로 적었던 에디토리얼에서, 저는 저희의 무모한 도전이 훗날 위대한 바보들로 기록되기를 바라며 길을 나선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 무렵 저의 친구는 지금 그렇게 너의 시간과 노력을 희생해봐야, 역사는 너를 기록하기는커녕 기억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충고했습니다. 저마다 제 살기 바쁜 세상에서, 군소 대학매체의 기자들이 써내려가는 기사들이 자기만족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글쎄요. 그 친구가 맞았는지 제가 맞았는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희망할 따름입니다. 저희의 몸부림이 조금이나마 학생사회 내부에서 서로 소통해야 한다는 의지를 키웠기를, 그 겨자씨만 한 변화가 훗날 더 큰 의미 있는 변화로 성장할 수 있기를 말입니다.

 

아쉬움을 남긴채 편집국장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지금, 다시 창학의 아버지 해공 신익희 선생을 생각합니다. 선생께서는 평소 일은 결국에는 올바른 데로 돌아가는 것이다. 최후의 승리는 정의에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새 희망을 전망하며 힘을 쌓으라는 해공 선생의 말씀은 우리의 교훈 '이교위가 사필귀정(以校爲家 事必歸正)'이 되었습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어두운 밤이 지나면 해가 떠오르듯, 일은 결국에는 올바른 데로 돌아갑니다. 편집국장이 아니라 그 어떤 자리에서라도<국민저널>과 함께 올바른 데를 향해 걸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국민저널> 2대 편집국장 이승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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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3년 11월] 당신이 아니라면 그 어느 누가

[Editorial] 당신이 아니라면 그 어느 누가

 

 

 

우리학교에 등록한 국민대학교 학생들은 1만 6천여 명입니다. 전원이 투표에 참여하면 제법 어마어마한 숫자가 나오지요. 그러나 지난 몇 년 간 총학생회 선거 투표율은 기껏해야 50% 대를 오가는 정도에 그쳐 왔습니다. 많이 낮은 수치는 아닌 것 같다고요? 예, 총선이나 지방선거 수준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낮은 수치까지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 봅시다. 지난 몇 년 간 투표율은 크게 솟구치지도, 크게 떨어지지도 않은 채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유권자들에게 미래의 비전을 펼쳐 보여 선택을 받아야 하는 치열한 싸움인 총학생회 선거는, 지난 몇 년 간 ‘누구든 3000여 표만 먼저 먹으면 이기는 싸움’이 되어 버렸습니다. 최소 3개 이상의 선본이 격돌해 치르는 선거전에서는, 3000여 표 정도만 먼저 확보하면 승리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상황이 이러니 선거는 지리멸렬해 집니다. 기껏 치열한 선거전을 치르고 당선이 되어도 ‘조직 선거’를 의심 받아 출발부터 정통성을 폄하 당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선거에서 지고 나고도 자신의 부족함을 돌이켜 보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없어서 졌다’는 패인을 마법의 주문처럼 중얼거리는 이들도 생기곤 합니다. 선거철마다 학교를 위한 어떤 비전을 선보일 것인가를 토론하는 게 아니라, 각 단과대 머릿수가 몇인지부터 셈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집니다.


그간의 선거가 조직 선거였느냐 아니냐를 놓고 흉흉한 가설이나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학교의 정원 수는 꾸준히 증가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런 지리멸렬한 이야기가 나오고, 미래에 대한 비전이 아니라 단과대 머릿수를 먼저 이야기하고, 기껏 뽑아놓은 총학이 제대로 출발하기도 전에 뒤에서 수근 대는 이 일을 얼마나 더 계속 해야 하느냐는 말입니다. 1만 6천여 명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국민대학교라는 공동체는, 그러기에는 너무도 소중합니다.


함께 꿈꿔봅시다. 이번 선거에 임하는 유권자들이 모두 진지하게 국민대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각 선본의 공약과 방향을 진지하게 검토해보고, 곁에 있는 학우들과 함께 누가 과연 적임자인지 치열하게 토론하고, 투표가 진행이 되는 19일, 20일 양일 만큼은 아무리 바쁘더라도 시간을 쪼개어 투표소 앞에 줄을 서서 자신의 소중한 권리를 행사하는 꿈을. 그러기 위해서는 투표율을 높여야 합니다. 예측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들과, 스스로 전략가라 자처하는 이들의 3000표 싸움을 보기 좋게 부숴야 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누가 이기든, 우리는 그보다는 더 많은 표를 얻은 총학생회를 가질 자격이 있습니다.


투표가 시작되는 화요일부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날은 춥고 날은 더 어두워지겠지만, 그렇다고 복도에서 줄을 서서 한 표를 행사하는 기회를 포기하지 말아주십시오. 한 표라고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아니면 그 어느 누가, 북악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단 말입니까.

 

 

이승한 편집국장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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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대 총학생회선거] 내년 총학생회에 바라는 2014년 국민대학교를 변화시킬 화두 다섯 가지

국민저널 기사 2013.11.13 15:41

[제46대 총학생회선거] 내년 총학생회에 바라는 2014년 국민대학교를 변화시킬 화두 다섯 가지




총학생회 선거 출마자들은 매년 각종 공약과 장밋빛 비전을 들고 나와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한다. 당장의 복지 공약이나 세부 정책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은 선거철마다 뜨겁지만, 안타깝게도 정작 학내 정치를 펼쳐나가는 방향성에 있어 진지한 논의가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국민저널>은 2014학년도 국민대학교 학생사회가 나아가야 할 나름의 아젠다를 제시한다. 누군가는 이에 동의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다음의 몇 가지 화두들이 활발하고 건강한 논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이 기사는 목표한 바를 이룬 것일 테다. 다음은 <국민저널>이 선정한 다섯 가지 아젠다들이다. 



 

하나. 파편화된 학생들을 한데 모아

건강한 공론의 장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건강한 학생사회는 튼튼한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학생들이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토론하는 커뮤니티가 존재할 때, 학교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과 정책 참여, 감시가 가능하다. 국민대에도 대표 인터넷 커뮤니티 ‘국민인닷컴’이나 페이스북 총학생회 계정, 페이스북 ‘여러분들의 게시판’ 등의 창구가 존재하지만, 커뮤니티의 존재를 알고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이들이 전체 학생 수에 비해 적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는다.


비단 인터넷이 아니더라도, 각종 정치적인 의견을 담은 대자보를 붙이기도 어렵다. 까다로운 허가 절차를 받아 대자보를 붙인 다음 일 또한 만만치 않다. 특정 정치 세력의 대자보를 찢는 백색 테러를 가하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정 의견에 반대하는 이들이 그 반대 의사를 다시 대자보로 붙여 자연스레 질문과 답변을 거치며 해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을 막아버리는 손쉽고 폭력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자연스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자 하는 이들은 위축된다.


건강한 공론의 장이 부재하다 보니, 총학생회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도 어려움이 생긴다. 취재 과정 중 확인한 바로는, 올 초 총학생회가 등록금심의위원회(이하 ‘등심위’)를 준비하며 학생들이 원하는 등록금 인하 수준을 물어보는 과정이나, 실제로 인하를 추진해 볼 수 있는 현실적 여건을 설득시키는 과정 등에서 적잖은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밝혀졌다. ‘방학 중이라 학생들의 의견을 묻고 이를 결집하기 어려웠다’는 속 사정이 있었다. 학기에 구애받지 않는 튼튼한 학생 커뮤니티가 존재했다면 사정은 달랐을 것이다. ‘지 모 교수 금품 수수 사건’이 터진 것 또한 방학 중이었고,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으로 성명서를 낼 때는 그 시기가 1학기 기말고사와 방학 기간과 겹쳐 의견을 결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어떤 행동을 취할 때에는 민의를 충분히 반영해야 하는데, 건강한 공론의 장이 부재하니 이것이 어려운 것이다. 


비록 ‘오픈투게더’ 총학생회의 경우 국정원 선거개입 성명 등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고 하나, 학생들의 민의를 파악하고 토론할 커뮤니티가 없으면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의사를 결정하게 될 구조적 위험이 작지 않다. 민의를 파악하기 위해 시간을 보내다가 너무 늦게 행동에 나서거나, 늦장을 부리지 않기 위해 자의적이거나 독단적인 결정을 내릴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학생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할 수 있는 건강한 공론의 장을 만들고, 그 안에서 국민대학교라는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는 것은 국민대학교 학생 사회 앞에 놓인 시급한 과제다.



둘. 정치적으로 다른 노선을 걷는 학생단체들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올 초, 등심위를 준비하던 ‘오픈투게더’ 총학생회는 등심위 TFT(태스크포스 팀)를 만들어 일반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이 과정에서 ‘오픈투게더’ 총학생회는 제45대 총학선거 당시 가장 치열하게 맞붙었던 경쟁상대인 이아혜 ‘99%의 반격’ 선거본부 정후보가 속한 단체인 ‘부실대학 선정 철회와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국민대 대책위’(이하 ‘부실대 대책위’) 측에 간접적으로 동참 의사를 타진했다. 그러나 공식적인 루트로 제안이 들어간 것이 아니고, 각자 생각하는 해법의 방향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부실대 대책위 측이 이 제안을 거절하면서, 아쉽게도 오월동주는 이뤄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입학식에서 부실대 대책위가 펼친 기습 시위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았을 때, 총학생회가 이를 수습하기보단 강하게 비판하면서 두 단체가 힘을 합칠 기회는 영영 물 건너가 버렸다.


사태를 꾸준히 지켜봐 온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두 단체가 각자의 입장이나 자존심을 조금만 더 양보했다면, 함께 손을 잡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말한다. 정치적으로 입장이 다른 두 단체가 학생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손을 잡았다는 정치적 상징성은 학교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는 카드였다. 하지만 서로에게 사과와 노선 변경만을 요구하다가 그 기회를 놓친 것은 물론, 학교 측에 학생사회가 이만한 이슈에서조차 뜻을 모으지 못하고 흩어진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악수(惡手)에 그쳤다.


정치적 노선이 다른 이들 사이의 건강한 정치적 긴장관계는 적극적으로 권장되는 일이다. 총학생회 선거는 서로 다른 노선을 지닌 이들이 저마다의 노선을 들고 경쟁해서 선택을 받는 행위이고, 그렇게 선택받아 정통성을 인정받은 총학생회는 자신들의 노선을 지켜낼 권리가 있다. 그러나 학생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학교와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 순간이나, 학교에 크고 작은 일이 터져 학생사회 전체의 역량을 끌어올려야 할 때면 이견에도 불구하고 다른 학생단체들과 손을 잡아야 할 명분이 생긴다. 국민대학교 학생들은 위기 앞에서는 하나로 뭉친다는 시그널을 외부에 알릴 수도 있으며, 정치적으로 유연하게 열려 있는 집단이라는 상징성도 획득할 수 있다.




셋. 투명한 행정을 구현하는

총학생회여야 한다.


우리학교 총학생회는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 회의록을 ‘국민인닷컴’ 총학생회 페이지에 올리고 있지만, 그 공개시점이 회의 시점으로부터 다소 늦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픈투게더’ 총학생회가 중운위 회의록을 마지막으로 업데이트한 것은 지난 8월 27일. 그 날 올라온 제 15차 중운위의 개최 일시는 5월 13일이었다. 지난 2012학년도 하반기에 개정된 국민대학교 학생회칙 5장 31조 1항에 따르면, ‘정기 중앙운영위원회는 주 1회’ 개최된다. 2학기 중에도 중운위가 꾸준히 회의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안건이 논의되었는지, 회의록이 공개되지 않는 한 일반 학생이 알 방법이 없다.


일반 학생들이 총학생회를 감시하고 소통할 기회가 적을수록, 학내 학생사회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각종 언론으로부터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대한민국 국회조차, 거의 매일 홈페이지를 통해 본회의는 물론 각종 산하위원회의 회의록까지 상세하게 업데이트해 국민의 대표자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의사결정에 이르렀는지를 공개하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물론 이러한 단점들을 개선하고 투명한 행정을 구현하기 위해 최근 ‘오픈투게더’ 총학생회는 총학생회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배포 중이다. ‘오픈투게더’ 총학생회는 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총학생회가 집행한 금액 내역을 공개하겠다고 말한 바 있으며, 이렇게 투명한 행정을 구축해 나가고자 하는 노력은 응당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이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해서 중운위나 중앙집행위 회의 내용 등을 최대한 빠르고 투명하게 공개해 의사결정과정을 공개하는 동시에, 일반 학생들의 건의나 의견을 수렴하는 창구로도 활용한다면 행정의 투명도는 더더욱 높아질 것이다.




넷. 다양한 학내 언로를 보장할 수 있는

총학생회여야 한다.


같은 성북구 내에 있는 고려대학교는 다양한 학내 언론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부속기관으로 소속된 <고려대신문>, 학내 방송사 < KUBS >, 영자신문사 < The Granite Tower >를 제외하고도, 학생들로부터 교지대를 지원받아 발행하는 자치언론이 8개가량 존재하는 것이다. 교지 <고대문화>를 제외하고도, 여성주의 교지 <석순>, 자치언론협의회 소속 정경대 학생신문 <더 호안스>, 손으로 그린 한 장짜리 신문 <거의 격월간 몰라도 되는데>, 성소수자 언론단체 <퀴어가이드 편집위원회>, 영상을 다루는 < KUTV >, 생활 소식을 다루는 <쥐뿔>, 최근 발행을 중단한 조형학부 미술비평지 < Plastic Book >, 스포츠 전문지 < Sports KU > 등 다양한 자치언론이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이렇게 활성화된 언론 환경의 비결은 무엇일까? 총학생회비 11,000원 중 3,000원이 교지대로 돌아가고, 그 비용 중 <고대문화>와 <석순>이 가져가는 85%를 제외한 나머지 15%를 자치언론협의회 기금으로 적립한다. 그 비용을 교지를 제외한 다양한 학내 자치언론들이 나누어 가져가 운영비용에 보태는 형식으로, 다양한 언론의 창설과 운영을 독려하고 있다.


다양한 언론의 존재는 건강한 경쟁과 다양한 관점의 정보 제공에 도움이 된다. 실제로 <국민저널>의 창간 이후, <북악방송> 당시 배민영 실무국장은 <국민대신문> 기고문을 통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대학언론이 학내 대중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사례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음에도 변명을 한다면 대학언론인으로서 일말의 양심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가운데 학우들이 ‘국민저널’이라는 별도의 신문을 발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사비까지 털어가며 지금 이 순간에도 취재의 현장을 누비고 있을 것이다. 교내 신문방송사는 반성해야 할 일이다.”


만약 우리 학교에 더 많은 자치언론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며 다양한 보도를 통해 건강한 언론생태계를 구축하고, 상호 경쟁을 통해 보도의 질을 높인다면 학교 부속기관 언론사 3사와 <국민저널> 또한 지금보다 더 뛰어난 보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학교에도 한 때 교지가 있었다. 1948년 창간된 전통과 역사의 교지 <북악>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2003년 가을호 이후 수습위원 모집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그 발행이 뜸해졌다가, 지금은 그 명맥마저도 완전히 끊기다시피 한 상태다. 2006년 9월 교지편집위원회가 자비로 <북악> 60호를 발행하고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에 예산 지원을 요청했을 당시, 전학대회가 이를 부결시킨 이유는 다음과 같다. “교지의 필요성은 인정하나, 학생회비의 10%에 달하는 예산안이 너무 많다.” 11,000원 중 3,000원을 교지 등 자치언론에 지원하는 고려대학교와 비교해보면 초라한 언론환경이 아닐 수 없다.




다섯. 시대정신에 응답하는

자신감을 지닌 학생회여야 한다.


한국 근 현대사에서 청년과 대학생은 언제나 사회 모순 해결과 발전의 전위였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청년과 대학생은 굴욕적 대일 협상 반대나 유신 철폐, 독재 타도와 노동 해방 등 당대 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궜던 사회적 모순들에 대해 가장 앞장서 발언하고 행동하던 적극적인 주체였다.


물론 세월은 변했고 거대담론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 대학생의 삶은 당장 눈앞에 놓인 등록금 마련과 무한 스펙 경쟁, 사회진출의 어려움이라는 삼중고에 부딪혀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높아져야 하는 이슈들이 있다. 대학생 당사자들이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반값 등록금 관련 운동, 소위 몇몇 명문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대학생이 손해를 입는 지나친 학벌 중심 사회 철폐를 위한 움직임이나, 미래에 노동시장에 진입하게 될 노동예비군으로서의 최저임금 상승 등, 직간접적으로 대학생들 자신이 그 이해당사자인 이슈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학생사회는 이러한 이슈들에 대해 소리 높여 발언하는 것을 꺼린다. ‘운동권/비운동권’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혀, 사회적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운동권’이라는 낙인이 찍힐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치적인 목소리는 여당 지지자와 야당 지지자, 정부에 대한 태도 등 실제 대학생의 삶과는 유리된 TV 속 정치 뉴스에 국한된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회의 변화와 발전의 최전방에 있던 주체가, 가장 소극적이고 주눅이 든 객체로 전락한 결과는 처참하다.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소득분위별 실질적 반값등록금’을 구현하겠다고 약속하고 4조원의 국가 예산 편성을 약속했으나, 당선 후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4년 예산안을 보면 관련 예산은 3조 2천억원에 그친다. 기존에 확보한 예산 2조 8천억 원에서 4천억 원 인상에 그친 것이다. 이해당사자인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작으니, 자연스레 정책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린 셈이다.


과거처럼 대학생이 사회 변혁의 전위가 되기를 기대하는 사람도, 강요하는 사람도 이젠 거의 없다. 당장 눈앞에 놓인 삶의 피폐함을 극복하는데도 바쁜 대학생들이 사회 모든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자기 자신이 직간접적인 이해당사자로 얽힌 시대적 이슈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만이 대학생이 ‘집에서 등록금 받아다 쓰는 뉘 집 자식’이 아닌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길이다.



글/ 이승한 편집국장 tintin@iamtintin.net 

교열/ 유지영 교열부장 alreadyblu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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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 신입기자 공모 합격자 기사] ③ 밀양, 그리고 오래된 질문들

국민저널 기사 2013.10.24 13:32



“그런데 도대체 밀양이 뭐가 문제인 거죠?”


4억짜리 땅을 6천만 원만 받고 넘기라는 정부의 ‘보상 계획’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밀양에 건설 예정인 송전탑이 왜 더 위험한지, 참여정부 시절부터 시작된 이 논란이 정파적 이해관계 때문이라는 의심은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같은 설명이 반복된다. 경남 밀양에 세워질 765kV(76만 5천 볼트) 송전탑을 둘러싼 한국전력과 지역 주민 간의 분쟁은 8년이나 지속됐지만, 무엇이 문제냐는 질문 앞에서 논의는 언제나 제자리로 다시 돌아온다. ‘지역 이기주의’, ‘외부 세력의 선동’, ‘국론 분열’과 같은 자극적인 단어들 속에 본질은 희미해지고, 말 잔치에 질린 사람들은 밀양 송전탑 문제 자체로부터 관심을 끊는다.

 

송전 전압은 높을수록 위험해진다. 수도권에 들어선 송전탑들의 전압은 154kV(15만 4천 볼트). 밀양에 들어설 765kV 송전탑은 그보다 18배 더 많은 전기를 수송한다. 송전 전압이 높으면 위험성도 함께 올라간다. 345kV 송전탑이 지나는 충남 청양군조차 몇 년 새 암환자 수가 급증했다. 정부는 울산 신고리 원전에서 수도권까지 전기를 보내려면 손실률을 줄여야 하기에 부득이하게 초고압 선로를 택했다고 했지만, 영남 지역에만 전력을 공급하기로 계획을 바꾼 이후에도 송전탑의 전압은 그대로다. 지역 주민들이 제안한 기존 선로 보완, 선로 지중화, 초전도 케이블 사용 등의 대안은 매번 기각됐다.



 

이 송전탑들은 돌아가는 법도 없다. 높이 150미터, 45층 빌딩 높이의 송전탑은 주민들이 일궈왔던 논밭 한가운데에, 평생을 살아왔던 집 근처에 들어선다. 울산에서 부산 해운대, 기장, 양산, 밀양을 거쳐 경남 창녕까지 이어지는 동안, 다른 지역과는 달리 유독 밀양만은 산으로 우회하는 일 없이 지역 주민들의 생활터전 근처에 송전탑이 들어선다. “논밭과 민가를 많이 지나가도록 애초에 설계를 그런 식으로 선으로 (한전이) 일방적으로 그어놨다. 주민들의 의사를 수렴한 적조차 전혀 없고, 주민들이 나중에 알고 이걸 민가 쪽으로 내려오는 대신 산 쪽으로 변경해 달라고 했지만, 일체 한 기도 못 옮긴다는 게 한전의 입장이었다.” 밀양이 지역구인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의 말이다. (2013년 5월 20일, <CBS> 라디오 인터뷰)

 

부산, 경남 지역의 전기 소비 대비 발전량은 200%가량. 정말 영남 지역만을 위한 것이라면 초고압 송전탑이 들어설 이유도, 인구 초 밀집지역인 부산·울산 지역에만 원전을 12기씩 건설하며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위험부담을 몰아줄 이유도 없다. 결국, 이 많은 전기는 전국 전기 생산량의 50%를 소비하면서 자급률은 3.3%에 그치는 서울로 향한다. 서울이 소비할 전기를 생산하고 수송하기 위해 지방 거주민들에게 고통을 분담시키는 것이라는 가정 없이, 이 부조리를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러니 밀양의 문제는 오늘날 서울을 살고있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보시는 사진들은 <국민저널> 권용석 기자가 지난 10월 4일~5일에 걸쳐 진행된 탈핵희망버스 현장에서 취재해 온 밀양의 모습들이다. 우리는 이 사진들에 몇 가지 오래된 질문들을 함께 담아 독자 여러분께 띄어 보낸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것은 정의로운가. 민주정을 채택한 국가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때, 이해 당사자의 의사를 묻고 반영해야 하는 최소한의 선은 어디까지인가. 사람과 효율 중에 더 우선시되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부디 이 사진들이 그 오래된 질문들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기회가 되길 바란다.


글/ 이승한 편집국장 tintin@iamtintin.net

사진, 취재/ 권용석 기자 e12345kr@gmail.com

 

(권용석 기자의 [2013-2 신입기자 공모 합격자 기사]는 본 기사로 갈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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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봐서 아는데] 난 지금 시험을 치는 게 아니야, 직감에 손을 맡기는 거지

[내가 해봐서 아는데] 난 지금 시험을 치는 게 아니야, 직감에 손을 맡기는 거지


본격 기자 체험 칼럼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 두 번째, 정인훈 기자의 중간고사 일지


‘가을.’ 조용히 소리 내어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이 가슴을 울리는 계절이다. 머리 위에서 작열하던 태양은 부쩍 높아진 하늘만큼 물러나고, 코끝에 선선한 공기가 맺힌다. 적당한 바람과 구름, 햇살이 몸을 부대끼며 그려내는 저녁 석양은 그 어느 풍경보다 아름답다. 그리고 때마침 찾아온 중간고사.


이런 망할, 중간고사라니.


우리는 도대체, 왜, 하필, 계절의 아름다움이 극에 달한 순간에 중간고사를 봐야 한단 말인가. 중간고사가 끝나고 나면 가을은 저만치 도망가고 금세 겨울이 될 것을 아는데.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랬다. 어차피 가을을 제대로 즐기기는 그른 마당에, 본 기자 각 잡고 ‘중간고사’에 대한 살아있는 기록을 남긴다. 5월의 꽃 ‘예비군 훈련’ 편에 이어 근 반년 만에 돌아온 전격 기자 체험 코너, ‘내가 해봐서 아는데’ 중간고사 편이다.


금요일(1):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학생증이 망가진 학생은 처음일 텐데


아침 9시. 여느 아침과 다를 게 없지만, 어쩐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진다. 이것이 시험의 압박인가. 양치하며 오늘 해야 할 공부를 생각해 본다. ‘오늘은 월요일에 볼 과목 두 개를 끝내리라.’ 목표는 번잡하게 짜면 안 된다. 단순하고 명료하게.


이어폰을 끼고 집을 나서 전철을 탄다. 시험기간이라 그런지, 뭔가 손에 들고 보는 학생들이 많다. 스마트폰으로 웹툰과 SNS를 번갈아 보는 자신이 무안해진다. 책을 꺼내야 하나. 가방을 비스듬히 메다 말고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 “어차피 오늘 온종일 공부할 건데, 학교 가는 40분 정도는 좀 자유롭게 있어도 좋지 않을까?” 그래. 머리도 좀 쉬어줘야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법이다. 가방을 바로 메고 웹툰에 집중하고 있노라니 어느덧 학교 앞이다. 왜 이렇게 빨리 온 거지? 내가 몇 번 버스로 갈아타고 왔더라? 유달리 번개같이 흘렀지만 참 달콤한 40분이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오늘의 마지막 자유, 40분.


“오늘 밤 11시가 되기 전에는 이 문을 나서지 않으리.”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정문을 지나 오르막을 오른다. 수업보다 일찍 도착했으니, 남은 시간은 성곡도서관에서 시험을 대비해야지. 회전문을 지나 학생증을 입구 카드 리더기에 찍는다. 삑. 소리가 나야 하는데, 안 난다. 두 번, 세 번 시도해도 매한가지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공부하겠다고 도서관에 들어가려는 날 학생증이 망가진 것이다. 회전문을 돌리며 들어갈 때는 가슴 속에 포부가 가득했는데, 상황이 이러고 보니 나오는 길은 막막하기 짝이 없다. 어디로 가야 하나. 동네 도서관에라도 가야 하나? 뚜렷한 정답은 없고, 기자의 발길은 도리 없이 강의실로 향한다.


시험기간이라 그런지, 평소엔 기차 화통이라도 삶아 먹은 듯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던 이들이 정숙을 유지하고 있다. 엠씨스퀘어가 따로 없다. 그 위압감에 짓눌려 기자 또한 공부할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한다. 과연 인간의 집중력이 최고로 발휘되는 시간, 시험 기간 수업 시작 30분 전답다. 교재를 한 권 끝장내도 정말 아무런 느낌이 없을 것 같다.


중간고사가 없는 수업, 평소처럼 수업이 시작된다. 집중력을 너무 끌어 올렸던 걸까. 평소엔 귓전을 스치고 지나가던 수업 내용이 한 자 한 자 뇌리에 각인된다. 교수님의 팔의 각도, 분필의 궤적, 말씀의 템포와 쉼표의 위치까지 기억에 남는다. 누가 그랬나. 시험기간에는 벽만 쳐다봐도 재미가 꿀이라고. 시험기간엔 시험과 무관한 모든 것이 재미있다. 그렇게 즐겁게 수업을 마치고 나니, 다시 시험공부의 압박이 어깨를 짓누른다.


금요일(2):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날 묶어뒀던 교재를 벗어 던진다


학생증 때문에 못 들어간다 생각하니, 성곡도서관이 두고 온 고향처럼 그립다. 공부할 장소를 찾는 것이 급선무다. 디자인 도서관, 법학관 도서관, 북악관 열람실 등 많은 장소가 떠올랐지만, 제보에 따르면 이미 만원이 된 지 오래란다. 기자는 고민 끝에 소속 학과 자료실로 가기로 한다. 거기라면 각종 학술 서적도 있고, 답답한 도서관과는 달리 열린 공간이라 쾌적할 테다. 과연 들어서니 기자와 비슷한 목적으로 자료실을 찾은 몇몇이 정숙을 유지 중이다. 기자는 틀리지 않았다. 여기서 기필코 월요일에 볼 두 과목을 마무리하리라.



△ 학과 자료실에서 "나는 틀리지 않았다" (서울=국민저널/정인훈 기자)


30분쯤 흐르자, 무음으로 전환해 둔 스마트폰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별거 없겠지. 공부나 하자. 무슨 긴급한 연락이 왔을지 어떻게 알아? 30분에 한 번 체크는 해야 하지 않을까? 기자의 손이 자석처럼 스마트폰을 향한다. 인간은 30분 동안 얼마나 많은 말을 할 수 있는지. 그 짧은 찰나에 엄청난 양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평소라면 대충 읽고 치웠겠지만, 시험기간을 맞이한 기자의 집중력은 극에 달해 있었다. 단체 채팅방을 비롯한 모든 이야기에 성실하게 대답을 해주다 보니 벌써 30분이 흘렀다. 이러면 안 된다. 기자는 강철로 된 무지개와 같은 강한 의지로 스마트폰을 다시 뒤집어 놓고 책을 펼친다. 오늘 안으로 반드시 두 과목을 끝내야 하…아…


화들짝. 잠시 졸았다. 기자의 고개가 졸음에 겨워 넘어가는 게 안쓰러웠는지, 친구가 커피나 한 잔 마시고 오자고 제안한다. 그래, 시험기간에 이렇게 졸음을 쫓으며 친구와 나눠 마시는 커피가 또 백미다. 바쁜 와중에 잠시 짬 내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이 순간…이 왜 2시간씩이나 걸린 거지? 이상한 일이다. 그냥 커피 한 잔과 담소가 왜 2시간이나 잡아먹은 걸까. 시간은 벌써 7시. 남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다시 책에 집중한다.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온다고 한 놈은 대체 누군가. 아무리 마셔도 혈당만 치솟고 졸음은 가시질 않는다. 공부를 하는 건지 잠을 이기려는 건지 구별은 안 되지만, 어쨌든 책을 보며 세 시간을 버텼다. 그렇게 열 시가 되자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한 시간만 더 하면 ‘11시가 되기 전엔 정문을 나가지 않으리’란 목표를 채울 수 있는데. 원래 목표가 ‘월요일에 시험 볼 두 과목을 끝내는 것’이었단 건 잊은 지 오래. ‘11시에 나가면 12시에나 집에 갈 텐데,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던 기자는 무의미한 갈등에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귀가를 결단한다. 체력은 국력이다.



△ 북악관 앞이다. 저 멀리서 본부관 불빛이 보인다. 귀가하기로 결정했다. 체력은 국력이다. (서울=국민저널/정인훈 기자)


토요일: 어쩜 이렇게 하늘은 더 파란건지

오늘따라 왜 바람은 더 완벽한지


눈을 뜨니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지만 나와는 무관한 일. 스스로를 다스리며 목욕재계하고 보니, 막상 공부할 곳이 애매하다. 독서실은 너무 비싸고, 동네 도서관은 이미 중고생과 고시생으로 가득 하다는 친구의 메시지에 한숨부터 나온다. 고민 끝에 기자는 동네에서 사업하는 친구 사무실을 떠올린다. 집에서 5분 거리, 주말이니 비어있을 테다. 혼자 쓰는 사무실은 독서실이나 학교 도서관보다 좋을 것이 틀림없다. 친구에게 물으니 흔쾌히 허락한다. 기자는 삼선 슬리퍼와 편한 반바지, 목 늘어난 티셔츠 차림으로 친구 사무실로 향한다.


사무실에 들어서 종이컵에 커피를 타며, 오늘의 목표를 상기한다. ‘오늘은 기필코 월요일에 보는 첫 번째 시험을 완전히 정복한다.’ 열심히 한 시간쯤 책을 읽었을까. 텅 빈 사무실을 채우는 토요일 오전 11시의 가을 햇살이 기자의 가슴을 덥힌다. 토요일이라 그런 건지 가을이라 그런 건지. 뒤숭숭한 마음에 창밖을 보니 주말 가을 하늘은 화가 날 만큼 청명하다. 놀러 나가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오르는 그 순간, 1학기 성적이 뇌리를 스치며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는다. 다시 조용히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친다.


몇 시간여의 정적을 깬 건 꼬르륵 소리였다. 스멀스멀 피어나는 허기, 기자는 사무실 건물 1층 편의점으로 향한다. 뭐 먹을까 하는 고민은 시험을 앞둔 대학생에겐 사치다. 사온 것은 김밥과 컵라면. 시험기간엔 이렇게 먹어주는 것이 공부에 대한 예의라 배웠다. 음식을 음미할 시간 따윈 없다. 꼬르륵 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배 속에 뭔가 넣어 주는 것일 뿐. 배가 고파야 머리가 맑아진다고 하지 않던가.



△ 시험기간 동안 기자의 고정 저녁식사 이렇게 먹어주는 것이 시험에 대한 예의라 배웠다 (서울=국민저널/정인훈 기자)


저녁 7시, 슬슬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휴일의 정점, 휴일의 꽃, 휴일의 골든타임 토요일 저녁 7시. 약속을 잡으려는 친구들의 메시지가 스마트폰을 울리기 시작한다. 정녕 안 나올 거냐고 거푸 묻는 친구들의 기세가 흡사 와룡을 스카우트하려는 유비만큼 끈덕지다. 거절을 못 하는 선량한 성정의 기자는 견디다 못해 스마트폰을 뒤집어 놓는다. 좋다. 나는 유혹을 이겼다. 진동 따윈 울리지 않는다. 무음이니까. 욕은 먹어도 상처는 남지 않는다. 친구니까. 하지만 망한 시험 성적은 평생 상처로 남을 것이다. 성적이니까.


오후 9시, 집중력에도 한계가 온다. 공부엔 끝이 없다지만 이만하면 얼추 끝난 거 아닌가 하는 건방이 마음을 수놓는다. 아까 덮어 놓았던 스마트폰을 슬쩍 되돌려본다. 부재중 통화 9통, 메신저 메시지 300개. 부재중 통화야 올 사람들에게만 온 것일 테고, 메시지는 필시 친구를 모른 척한 기자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으로 점철되어 있을 테니 읽지 않고 도로 덮어둔다.


스마트폰을 덮고 텅 빈 사무실을 둘러보다가, 불현듯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나는 왜 친구들에게 욕을 먹어가며 이러고 있는가. 내 힘들었던 군 생활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헤어진 구 여친은 지금쯤 어느 하늘 아래 그 누구와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집중력은 연기처럼 흩어진다. 오늘은 그래도 많이 했다고 자신을 위안하며 짐을 챙겨 사무실을 나선다.


일요일: 이제는 책상이 난지 내가 책상인지도 몰라

책을 펴기도 전에 덮는 이런 상황은 뭔가


시험기간의 마지막 주말인 일요일이다. 오늘은 장소를 바꿔 성곡도서관을 가기로 한다. 마침 친구가 학생증을 빌려준단다. 시험기간 주말만큼은 차를 빌려 써도 좋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차키를 들고 집을 나선다. 대중교통과 환승으로 말미암을 피로 없이 깨끗한 정신으로 시험 준비를 마무리할 생각에 가슴이 부푼다. 드라이브를 시작한 지 10분, 아버지께 전화가 온다. 군대 간 동생이 휴가 나와 가족 외식이 잡혔으니 집으로 복귀하라는 전언이다. 사랑하는 동생이 휴가를 나왔다는데 어쩔 것인가. 학업에 대한 열정은 외식 메뉴에 대한 설렘으로 바뀐다.


열심히 먹고 나니 포만감과 왠지 모를 피곤함, 그리고 학교에서 공부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은 다 망했다는 불안이 밀려온다. 결국, 또 친구 사무실로 향한다. 내일이면 이 모든 게 끝이니 오늘만 힘내면 된다. 이렇게 한 시간 한 시간 채우면 되겠지. 그렇게 한 시간 한 시간을 채우다 정신을 차려보면 자다 일어난 자신을 발견한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걸까. 내가 잠을 잔 것인지 잠이 나를 잔 것인지 알 수 없다.


쓴 입맛을 다시고, 물처럼 아메리카노를 들이키며 막판 스퍼트를 붙인다. 마지막 날이니 더 물러날 도리가 없는 탓인지 아니면 터가 좋아서인지, 유독 친구 사무실에서 공부가 잘된다는 느낌이 든다. 이곳은 이제 내 개인 독서실이 될 것이다. 친구가 사무실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사업이 나날이 번창하길 기원하며, 어떻게든 월요일 시험 두 번째 과목까지 끝마친다. 금요일에 끝냈어야 할 일을 주말 내내 끌었지만, 괜찮다. 시험이 원래 다 이렇다.


시험 당일: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A인 줄 알았는데


대망의 중간고사 날 아침이다. 전철에서부터 그간 정리해둔 노트를 보면서 학교에 간다. 내가 결코 준비가 부족해서 이러는 게 아니다. 완벽한 마무리를 위한 것이다. 평소와는 달리 학교 가는 걸음마다 비장함이 뚝뚝 떨어진다.


누군가 ‘이 대학 시험기간은 언제인가’ 묻거든 눈을 들어 등굣길 학생들의 상태를 보게 하라. 평소 잔뜩 신경 쓴 신발로 패션을 추구하던 남학생들은, 시험기간엔 ‘편한 게 장땡’을 외치며 슬리퍼로 환승한다. 깔창 족들도 이때만큼은 깔창에서 내려온다. 여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메이크업 베이스-파운데이션-컨실러-콤펙트-아이셰도우-아이라이너-마스카라-립밤-미스트 순서의 정성 들인 메이크업은 없다. 오로지 CC(씨씨)크림과 야구모자만이 그들을 구원한다. 슬리퍼와 모자로 가득 찬 강의실의 풍경이 폭풍전야의 긴장감을 알려준다. 기자 또한 엄숙한 마음으로 입실한다.


교수님께서 들어오신 후 정시에 시험을 본다.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험을 포기한 이들이 하나둘씩 일어선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답지를 적고 나가는 그들의 얼굴엔 해탈한 자의 미소가 어려 있다. 기자는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답지를 제출하고 강의실을 나선다. 분명 막힘없이 쓴 것 같은데,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잘 봤다’는 확신 따윈 들지 않는다.


아무튼 홀가분하다. 어쩐지 A학점이 멀어지는 것 같긴 하지만, 끝난 건 끝난 거니까. 주말 간의 고생도 눈 녹듯 사라진 듯하다. 딱 5분 동안만. 그동안 미뤄온 산더미 같은 과제들의 존재를 자각하기 직전, 그 5분의 평화. 시험장에서 떠난 기자는 다시 노트북을 들고 과제를 할 장소를 찾아 나선다. 학생증이 망가졌으니 성곡도서관은 못 갈 것이고, 또 학과 자료실을 가야 하나. 다시 서성이는 기자의 귓전에 오래된 노래가 울려 퍼진다.


조금씩 삭아만 간다

푸르기 만한 대학생활일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간다

매일 과제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공부하며 늙고 있구나



글, 취재/ 정인훈 기자 jungihoon@hanmail.net

편집/ 이승한 에디터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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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3년 10월] "얘는 왜 뛰어다니는 거임?"

[Editorial] "얘는 왜 뛰어다니는 거임?" (2013년 10월호)


 

 

우리학교 대표 인터넷 커뮤니티인 ‘국민인닷컴’에서 글을 읽다가 저도 모르게 피식 하고 말았습니다. 북악리그 경기를 보던 누군가가 쓴 글에서 <국민저널> 이야기를 봤기 때문입니다. “심판 뛰는 것 보다 국민저널에서 북악리그 취재 한다고 나온 애가 더 많이 뛰는 것 같던데... 얘는 왜 뛰어 다니는 거임?” 마치 길을 걷다가 예상하지 못한 골목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마주 친 것 처럼,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여 한참을 웃었습니다.

 

 

▲ 얘는 왜 뛰어다니는 거임?? 지난 7일 '국민인닷컴'에 올라온 사랑방 공개일기 캡쳐. (출처 = 국민인닷컴 사랑방)

 

 

그리고는 저도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우리 기자는 도대체 왜 뛰어 다니는지. 물어봤더니 기자의 답이 제법 재미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보기만 해선 누가 어시스트를 하고 누가 어떤 슛으로 골을 넣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TV 중계가 있는 프로리그나 A매치도 아니니, 관중석에서 보는 것만으론 생생한 글을 쓰는 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죠.

 

조해성 기자를 ‘Match Of The Week’ 취재현장에 보내기 시작한 건 올해 4월부터 였습니다. <국민저널>에 들어와 처음 맡게 된 현장, 기사 체가 손에 붙지 않아 고생도 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젠 ‘심판보다 더 많이 뛰고’, 선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북악리그를 열과 성을 다 해 진심으로 사랑 하는 기자가 되었습니다. 축구에 대한 사랑과, 취재 대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몇 개월 동안 차곡차곡 쌓인 결과입니다.

 

어쩌면 저 ‘심판보다 더 많이 뛰는’ 자세는 <국민저널>의 구성원 모두가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의 다른 표현일지 모른다고 감히 말 해봅니다. 우리가 누구보다 더 많이 발로 뛰고, 목이 터져라 질문을 던지고, 밤을 지새며 노트북 앞에서 기사와 씨름하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닙니다. 취재 대상을 더 깊게 이해 하고, 그래서 더 심층적인 기사를 쓰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간신히 창간 1년을 넘긴 매체입니다. 아마 앞으로 뛰어야 할 취재 현장이 지금까지 뛰었던 현장보다 더 넓으리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신발끈을 고쳐 묶겠습니다. 언제나 그렇게 ‘더 많이’ 뛰는 <국민저널>이 되기 위해서.

 

추신 1. 함께 뛰고 싶다는 이들이 2학기에도 <국민저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권용석, 김혜미, 정인훈 수습기자의 기사도 <국민저널> 홈페이지에서 공개됩니다. 용기 있는 도전에 나선 이 세 명의 신입기자들에게,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 드립니다.

 

추신 2. 학보 <국민대신문>이 최근 900호를 발행했습니다. 김지원 편집장 이하 모든 소속 기자 여러분께 박수를 보냅니다. 뜻하신 것처럼 앞으로 더 날카롭고 비판적인 매체로 거듭나시기를 기원하며, <국민저널> 또한 늘 위협적이고 쉴 줄을 모르는 경쟁자로 옆에서 함께 달릴 것을 약속 드립니다.

 

 

이승한 편집국장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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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3년 9월] 다시, 출발점에 돌아 와 서서

[편집국장의 말] 다시, 출발점에 돌아 와 서서

 

2013년 9월호 에디토리얼(Editorial)

 

 

 

밖에서 일을 하다가 만난 사람들은 종종 묻습니다. 할 일이 없는 사람도 아닌데, 왜 후배들이 하는 일까지 돕는다고 제 시간을 허비하냐고 말입니다. 그냥 웃으면서 "팔자가 사나운 모양이네요."라고 답하곤 하지만, 사실 이유가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딱 작년 이맘때였습니다. 국민대학교가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에 선정된 것은, 2004년에 학교에 입학한 이래, 그렇게 분노한 학생들이 많이 본 건 그것이 처음이었습니다. 대책을 요구하던 학생들이 본부관을 점거했고, 그 틈바구니 속을 카메라와 수첩을 꼭 쥔 학생들이 바쁘게 해집고 다녔습니다.

 

저 친구들 뭐지? 궁금해 하던 제게 누군가 귀띔해 주더군요. 학교가 껄끄러워 하는 주제의 기사들을 쓰다가 해직 혹은 권고 사직 당한 기자들이 나와서 만든 학생자치언론기자들이라고요. 순간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한참 새내기였을 때 조금 더 앞장서서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더라면, 지금의 후배들은 한결 다른 환경의 국민대학교에 다닐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시작한 <국민저널>이 벌써 창간 1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결코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우리에게는 일도 많고 탈도 많았던 험난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동안 국민대는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을 탈출했고, 쑥스럽지만 <국민저널>은 대학교 학생자치언론계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창간과 운영의 노하우를 물어보는 다른 학교 학생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그만큼 대학언론의 자유가 메마른 시기인가 하는 위기감도 돌고, 우리를 보고 길을 나서는 이들도 있단 생각에 책임감도 더 강해집니다.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탈출이 1년 간 <국민저널>이 걸어온 작은 원의 끝이라면, 타 학교 자치신문 창간에 대한 저희의 기대와 지지는 앞으로 우리가 그려갈 큰 원의 시작일 겁니다. 언제나처럼, 바보 같이 우직하게 걷겠습니다. 1년을 지나 다시 출발점에서 인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추신: 지난 1년간 헌신적인 자세로 <국민저널>의 토대를 닦은 박동우 취재부장이, 갑작스런 건강문제로 인해 9월 1일부로 사직했습니다. 보내는 마음 아쉽지만, 그의 노력과 헌신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인사로 그를 보냅니다. 아울러 앞서 개인사정으로 사직한 구본철, 박영민 기자에게도 앞으로 가는 길 행운을 빕니다.

 

 

 

이승한 편집국장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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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3년 5월] 문제는 민주주의다

[편집국장의 말]문제는 민주주의다

2013년 5월호 에디토리얼(Editorial)

 

 

 

 

“그런데, 학교가 경쟁력을 갖추는 건 좋은 일 아닌가요?” 학교가 이사회를 열어 학과 구조 개편안을 통과시킨 것을 속보로 낸 후, <국민저널>의 독자 중 한 분이 사석에서 제게 조심스레 주신 질문입니다. 아마 다 못하신 말씀을 계속하셨다면 이런 말을 해주셨겠죠. “그런데 <국민저널>은 이걸 왜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저희 편집국 내부에서도 이 문제를 두고 다소 의견이 갈렸습니다. 강세를 보이고 있는 학과의 전문성을 더해 학교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반대할 일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고요. 취업 잘되는 학과나 돈이 되는 학문을 위해 다른 기초 학문의 모집 정원을 줄이는 것이 과연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옳은 선택이었나 하는 의견도 있었지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우리는 아직 이런 변화에 대해서 제대로 된 논의를 충분히 가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열 명 남짓한 <국민저널> 조직 안에서도 이렇게 의견이 갈리고 다양한 입장의 견해들이 나오는데, 하물며 1만 5천여 학우들은 얼마나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을까요.

 

문제는 민주주의로 돌아옵니다. 대학생은 일방적인 훈육의 대상이나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대학 사회를 구성하는 한 주체입니다. 학교가 어떠한 전망을 향해 전진하고자 한다면, 그 전망은 지금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 또한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과정이 생략된 결정에 대해 근심합니다.

 

<국민저널>이 연중 기획으로 학생 자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학교 내부의 변화에 대해 논의라도 해볼 기회를 가지려면, 학생 사회 스스로 자치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는지, 그럴 역량은 있는지를 먼저 점검해 봐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목표를 결정하면 밑의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따르는 소통 방식은 경영의 언어겠지요. 하지만 대학 사회의 언어는 그와는 달라야 할 겁니다. 우리의 언어는 민주주의이기를 바라며 이번 호를 만들었습니다. 읽으시며 함께 고민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승한 편집국장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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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3년 5월] 광주와, 민주주의의 적들

[편집국장의 말]광주와, 민주주의의 적들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주간 특별 에디토리얼(Editorial)

 

합창으로 시작한 노래는 결국 제창이 되었다. 자리에 앉아 노래가 끝나길 기다린 이들과 자리에서 일어나 팔뚝을 흔들며 함께 부른 사람들로 나뉘긴 했지만, 5월의 광주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제창을 피할 방도는 없었다. 구 묘역에서도 신 묘역에서도, 한낮의 금남로에서도,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5월의 광주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인사를 대신했다. 사람들은 33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아픔으로, 동지를 만난 반가움으로, 역사를 망각의 저편으로 묻으려는 이들에 대한 분노로, 지금 이 순간에도 쌍용, 재능, 기아, 한진에서 저마다의 광주를 싸워내고 있는 이들의 투쟁에 대한 연대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광주를 둘러싼 법리적, 정치적 판단은 모두 지난 세기에 끝났다. 김영삼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정부의 정체성이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있음을 천명한 게 20년 전(1993년), 국회가 특별법 제정을 통해 광주항쟁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한 게 18년 전(1995년), 헌법재판소가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합헌으로 인정한 것이 17년 전(1996년), 대법원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죄목과 형량을 확정판결한 것이 16년 전(1997년)의 일이다. 행정, 입법, 사법. 현 집권 여당의 전신 민주자유당이 여당이던 시절, 국가 권력 3부가 차례로 판단을 끝냈다. 누가 볼세라 숨죽여 이야기해야 했던 말 못할 설움에서, 오늘날의 정부가 그 사상적 뿌리를 대고 있는 기반으로 공식적 지위가 격상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 끝에는… 역사엔 “최후의 승자도, 패자도 알 수 없다”고 누군가 말했다. 1996년 8월 26일 서울형사지법 417호 법정에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12.12 군사쿠데타와 관련한 1심 선고 공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 자리에서 재판부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22년 6개월형을 내렸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이들을 끝내 시련의 굴레에서 해방했다. 1997년 12월 21일 김대중 당시 15대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대화합을 명분으로 이들을 전격 사면한 것이다. (사진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정책방송원)

 

그러나 광주를 둘러싼 기억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는 중이다. 중고등학교 교과 과정에서 근현대사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안 그래도 축약 진행되던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교육은 언급 수준에서 끝나거나 때론 생략되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한편에서는 광주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왜곡하려는 이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순박한 무지렁이 시민들의 봉기”로 광주의 복잡한 정치적 함의를 축소하고 낭만적 층위로만 소비하는 이들, 여전히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옹립하기 위한 전라도민들의 지역 이기주의로 발발한 사태”라고 주장하는 이들, “공수부대는 선제공격하지 않았다. 광주는 폭도들이 들고일어난 폭동”이라 주장하는 이들, 심지어는 “광주는 북한 공작원들이 침투해 일으킨 소요사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지칭하는 ‘임’은 김일성”이라고 주장하는 이들까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제대로 전승되고 기념되지 않은 기억은 흐릿해지거나 왜곡된다. 이번 5월 국민대학교에도 광주로 내려가자는 수많은 포스터가 훼손을 당했다. 중앙학술동아리 ‘대학생사람연대’가 붙인 광주 역사 기행단 포스터는 1차 게시한 20여 장 중 한 장만을 남기고 모두 찢겨 나갔고, ‘우리본부’가 붙인 광주 순례단 포스터엔 누군가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라는 글귀를 적어 놓았다. 광주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혐오하는 이들, 광주를 기억하자는 정치적 의사표현마저 비아냥과 조롱을 덧씌우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이들의 준동. 광주를 고립시키고자 하는 이들 사이에서, 광주의 의로운 싸움은 여전히 외롭다.

 

왜 사람들은 기를 쓰고 광주를 지우려는 것일까? 단순히 정치적 보수층의 민주화 세력에 대한 혐오만으론 설명하기 어렵다. 자신이 반대하는 정치적 의견을 논쟁의 장으로 끌고 들어와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의견 자체를 지워버리고 막아버림으로써 ‘내 눈앞에서 치워’ 버리는 것, 정부와 국회, 대법원, 유네스코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보수의 이데올로그(ideologue) 조갑제 기자조차 인정한 바 있는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고 왜곡함으로써 최소한의 토론의 여지마저 지워버리는 것, 사실을 왜곡하고 반대 의견 개진 자체를 방해함으로써 상대의 정치적 고립과 절멸을 꾀하는 것. 본 편집국장은 이런 일련의 움직임에서 파시즘의 씨앗을 본다.

 

33년 전 광주를 짓누른 것 또한 이와 멀지 않았다. 경제 성장을 구실로 일부의 희생을 정당화하면서 정작 그 과실은 공정하게 분배하지 않는 체제에 대한 분노, 정치적 의사 표현을 막는 국가권력에 대한 시민의 감시, 민주적 질서를 무력으로 유린하는 신군부에 대한 항의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지만, 권력자들은 그에 대해 해명하거나 대화에 나서는 대신 상대 의견을 압살하는 쪽을 택했다. 상대를 ‘폭도’, ‘간첩’, ‘불순분자’ 등으로 호명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담보하고,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은 보도지침과 가택연금 등으로 막아버리고, 시민의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무력으로 진압했다. 다양한 의견의 공존 속에서 대화와 토론으로 합의점을 찾는다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는 실종되었고, 힘 있는 자의 의견만이 진실이 되는 폭정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2013년, 그들이 광주를 기억하는 방법 학생 단체 ‘우리본부’가 우리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광주 순례단을 모집하는 포스터를 정문 앞 버스 정류장에 게시한 가운데, 지난 14일 포스터에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었다. (서울=국민저널/이승한 기자)

 

그들의 목적은 자명하다. 그릇된 현실에 대해 옳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 새로운 세상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가만 내버려둔다면, 다른 이들 또한 하나 둘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잡은 자들은 총칼의 위협 앞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고자 했지만, 그 엄혹한 세월에도 진실은 죽지 않고 살아 수많은 젊음의 가슴에 불을 댕겼다. 광주를 짓밟은 자들, 지금 광주를 왜곡하고 있는 자들은 이들과 맞서 제 정당성을 확보하고 상대를 설득해 제 비전을 관철해 낼 자신이 없기에 진실을 찍어 누르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민주주의가 두려운 것이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적이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적이다.

 

지난 33년간,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 현실을 바꾸고자 했던 이들의 가슴 속에서 광주는 세상을 바꿔야 하는 당위이자 해소되지 않는 아픔이었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영감이었다. <국민저널>은 추모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광주민주화운동이 진행되었던 5월 18일부터 27일까지를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주간’으로 정하고, 홈페이지 로고와 검색 창을 모두 검은색으로 바꾼 ‘추모용’ 화면으로 전환해 운영한다. 이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의 의미이자, 지금 이 순간에도 기억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광주에 대한 연대와 지지의 의미이며, 부당한 탄압에 맞서 평등과 정의를 촉구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응원의 의미이기도 하다.

 

서른세 번째 맞는 5월 18일, 광주에서.

 

이승한 편집국장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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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3년 4월] 우리는 느리게 걷자

[편집국장의 말]우리는 느리게 걷자

2013년 4월호 에디토리얼(Editorial)

 

“어떻게 ‘<연합뉴스>급’으로 속보를 내시죠? <국민저널>의 무기는 역시 속보인 것 같아요.” 최근 들어 주위에서 가장 많이해 주시는 말입니다. SNS 계정을 통해 개성공단 소식, 장・차관급 인사 임명 소식 등 각종 속보를 기성 언론과 비슷한 속도로 보도한 덕분이죠. 비결은 알려드릴 수 없지만, 농담으로나마 ‘<연합뉴스>급’이라는 말을 들으니 으쓱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무기가 ‘속보’라는 것엔 선뜻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남들보다 먼저 누구보다 빠르게” 기사를 내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인터넷으로 실시간 속보를 확인하는 게 익숙하고, 터치나 클릭 한번으로 관련 기사들을 훑어보는 게 당연해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뉴스를 천천히 곱씹어 생각해 보기도 전에 다른 뉴스가 시야를 가리는 이 속도에 익숙해진 나머지, 뉴스를 잊는 것도 덩달아 빨라진 건 아닐까요?

 

올 2월과 3월, 북악을 뜨겁게 달궜던 등록금 인하에 대한 학생들의 열망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요.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화를 요구하던 총학생회 연석회의의 당돌한 패기를 기억하는 분들은 얼마나 계신지요. 혹시 4월의 북악을 찬란하게 수놓았던 꽃들의 향연과 중간고사를 거치며 기억 저 너머로 숨어버린 건 아닌가요.

 

<국민저널>은 설령 사건을 제일 처음 보도하는 매체는 못 될지라도, 잊는 건 가장 더디 잊는 매체가 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께 드린 약속, 북악의 충실한 목격자가 되어 기록하고 기억하겠노라는 다짐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현란한 속도의 시대에 참 시대착오적이게도, 우리의 가장 큰 무기는 ‘느림’입니다.

 

추신. <국민저널>에 다섯 명의 수습기자가 들어왔습니다. 고된 길 함께 걷겠노라 손 내민 귀한 동료들, 구본철, 김선영, 박영민, 안다미, 조해성 기자에게 많은 응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언제나 느리고 끈질기게 걷는 우리가 되겠습니다.

 

이승한 편집국장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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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3년 3월] 승리의 역설

[편집국장의 말]승리의 역설
2013년 3월호 에디토리얼(Editorial)

 

조판작업을 하면서 <국민저널> 구성원들은 혀를 내둘렀습니다. 원래는 기사의 경중을 잘 배분해 쉽게 읽히는 지면을 꾸리는 게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등록금 이슈를 바라보는 학생사회 구성원들간의 각기 다른 입장을 취재하다보니, 이번에도 글만 빽빽한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송구합니다.

 

등록금 고지서 발송 동의와, 입학식 기습 시위를 두고 말들은 치열하게 충돌했습니다. 총학생회, 부실대 대책위원회, 등심위 TFT 위원의 견해를 한 자리에 모아 정리하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중 등록금 추가 인하를 원하지 않는 이 하나도 없고, 학생들의 폭넓은 연대와 의견 수렴이 필요하단 걸 모르는 이도 없는데, 이들은 왜 같은 걸 바라면서도 함께 하지 못하는 걸까.

 

기성 언론에서 자주 쓰는 말 중 ‘정치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야가 극한 대립 중일 때 주로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서로가 양보해 갈등을 멈추고 결론을 낼 것을 촉구할 때, 우린 흔히 ‘정치력을 발휘하라’고들 하지요. 살다보면 어떤 판에선 가끔 조금씩 지는 게 역설적으로 더 큰 승리를 담보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력’을 발휘해, 먼저 손을 내미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먼저 손을 내미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비타협적이고 독선적인 단체’라는 이미지를 벗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대의를 위해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 포용한 리더’란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지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세상 그 어떤 정치적 승리가 쉽게만 쟁취되었겠습니까? 


이승한 편집국장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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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月]사령

국민저널 공지 2013.03.04 09:12

사령

 

 

※기존의 편집위원 체제에서 편집국 체제로 개편됨에 따라, 종래의 ‘편집위원장’ 직위를 ‘편집국장’ 직위로 명칭을 변경․의결함.(2013년 2월 20일자)

 

 

신규 인사

 

 

▲편집국장 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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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3년 3월] 편집국장의 말-위대한 바보들

[편집국장의 말]위대한 바보들

 

편집국장 이승한

 

 

케이블 TV 뉴스 제작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미국 드라마 <뉴스룸> 1시즌 마지막의 제목은 ‘The Greater Fool’입니다. 좋은 뉴스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언론으로부터 ‘엄청난 바보’(The Greater Fool)라는 말을 듣고 낙심한 주인공에게, 동료는 ‘미국은 위대한 바보들(The Greater fools)에 의해 건국되었고 전진해 왔다’고 위로합니다. 돌파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의 벽을 자신만큼은 넘어설 수 있다 믿는 바보들 말입니다. 물론 대부분 돌파가 불가능한 벽이고, 돌진했던 이들 중 대부분은 좌절합니다. 누군가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바보들이 제 몸을 부딪혀가며 벽에 낸 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균열에 힘입어, 현실의 벽은 무너집니다. 어쩌면 역사는 그렇게 전진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작년 9월 <국민저널>이 창간되고, 그 창간 멤버들이 어디에도 기댈 곳 없이 서로에게만 의지한 채 간신히 한 호 한 호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왜 이렇게 엄청난 바보짓을 하느냐고. 아마 다른 학우들도 그 점이 궁금했나 봅니다. 지난 한 학기 내내 격려와 응원의 목소리만큼이나, 의구심에 찬 질문 또한 빗발쳤습니다. 학내 정치 구도에서 특정 정파를 밀어주기 위해 창간된 신문이 아니냐, 학교의 명예에 흠집을 내고 권위를 위협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느냐, 특정 외부 세력으로부터 재정을 지원받고 그 이해관계를 위해 복무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등등.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변호하기엔 지나치게 점잖은 창간멤버들을 대신해 해명하자면 이렇습니다. <국민저널>은 특정 정파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지 않습니다. <국민저널> 안에는 새누리당부터 민주통합당, 녹색당과 진보신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당과 정파를 지지하는 구성원들이 공존합니다. 그들은 서로의 정견에 대해 제대로 된 토론을 하기 위해선 거짓 없는 진실을 기반으로 해야 하고 누군가는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는 대원칙 하나로 함께 일합니다.

 

 

<국민저널>은 국민대학교의 명예를 소중히 여깁니다. <국민저널>은 국민대학교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운 해방 후 최초의 민족사학임을, 수많은 인재들을 길러내며 대한민국이 일궈온 기적의 역사와 함께 해 왔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지난 12월 대선을 앞두고 국민대학교의 스키 강좌가 20대 학생들의 투표를 방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대선 당일까지 진행되도록 일정이 잡혔다는 루머가 돌았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인터넷 상에서 사실관계를 해명하고 학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뛰었던 매체 또한 <국민저널>입니다. 이처럼 <국민저널>은 모든 진실과 정보가 그 어떠한 외압이나 통제, 왜곡 없이 공개되고 논의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국민저널>은 어떠한 특정 외부세력의 이해관계에도 복무하지 않습니다. <국민저널>은 처음부터 그 어느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에도 구속되지 않는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매체고, 그렇기에 조건 없는 후원이나 정당한 광고 집행이 아닌 어떠한 재정적 지원도 받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국민저널>이 두려워하는 것, 동시에 든든한 ‘빽’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오로지 독자 여러분뿐입니다.

 

 

2013년 2월 20일부로, 문수훈 초대 편집위원장의 뒤를 이어 편집국장에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창간멤버도 아니고 학내 활동이 활발한 사람도 아닌 제가 이 자리에 앉게 된 것을 무겁고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창간 멤버들이 지키고자 했고 독자 여러분들이 저희를 응원해 주셨던 이유인 ‘치우침이 없는 진실을 보도한다’는 가치를 지켜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 드립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 여러분도 그 가치를 중요히 여기고 계시다면, 감히 <국민저널>에 관심과 애정을 주실 것을 부탁 드립니다. 지금처럼 읽어주시고, 충고해주시고, 더 하실 말씀이 있다면 기고해주십시오. 나아가 <국민저널>의 일원이 되고 싶으시다거나, 후원을 해주시고 싶으시다면 더더욱 환영입니다.

 

 

저의 취임 말고도 <국민저널>에 생긴 변화는 또 있습니다. 지난 학기 격주간지로 운영되었던 <국민저널>은 이제 월간지로 운영됩니다. 물론 시의성이 필요한 중요한 소식들은 여전히 <국민저널> 홈페이지(www.kookminjournal.com)과 <국민저널>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인터넷 판 기사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그 동안의 <국민저널>이 그런 다양한 소식들을 모두 전하는 ‘신문’이었다면, 지금부터의 <국민저널>은 그 중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이슈를 정해 보다 더 깊게 파고드는 ‘저널’로 다시 시작합니다. 이런 변화는 학내에 건강한 정보유통의 창구를 넓히고 더 심화된 논의를 가능케 하기 위한 저희의 작은 노력의 일환입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국민대학교를 세운 임시정부의 요인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들을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는 그들을 비웃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뜻은 가상하나 독립은 그렇게 쉽게 오는 것이 아니라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재를 털어 머나먼 이국에 땅을 마련했고, 학교를 지었고, 수많은 청년들을 교육했으며, 군대를 양성했습니다. 절대로 무너질 것 같지 않던 견고한 일본 제국주의 압제의 벽을 향해서 말입니다. 어쩌면 그들도 위대한 바보들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국민저널>이 있습니다. 저희는 분명 바보일지 모릅니다. 그 누구도 <국민저널>을 만들라 시킨 바 없으나 굳이 창간을 했으며, 누구도 제 쌈짓돈을 헐어 운영자금을 대라 한 적 없었으나 그렇게 해 왔습니다. 저희가 ‘엄청난 바보’로 기록될지, 아니면 운 좋게도 ‘위대한 바보’로 기록될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감히 말씀 드립니다. 이 바보들과 함께 걸어 주십시오. 저희는 계속 전진하겠습니다. 국민대학교와 대한민국을 세운, 창학과 건국의 아버지들이 그랬던 것처럼.

 

 

2013학년도를 여는 새벽에.

 

 

<국민저널> 편집국장 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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