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 2014년 4월] 자치언론네트워크

[편집국장의 말] 자치언론네트워크


<국민저널> 페이스북 계정과 친구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올해 <국민저널> 만우절 장난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아무나 할 수는 없는 ‘연애중’을 이벤트에 추가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매체도 연애하는 몹쓸 놈(?)의 세상’이라는 성토의 대상에 성신여자대학교 자치언론 <성신 퍼블리카>도 함께였다. 


<국민저널>과 <성신 퍼블리카>를 관심 있게 지켜봤다면, 이들이 ‘자치언론네트워크’라는 이름 아래 여러 기사를 냈고, 지금도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성신 퍼블리카>와 <국민저널>이 처음 만난 건 작년 늦여름이었다. 뒤늦게 고백하자면, 그날의 만남이 이어질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서로 매체를 운영하기도 빠듯한 처지에 만남을 ‘친목 도모’ 이상 지속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고, 재정으로든 인력으로든 ‘없는’ 사람들끼리 만나 뭘 더 해보겠다고, 싶었다.



당시 상상했던 도식은 다음과 같다: 없음+없음=없음*2



하지만 만났으니, ‘뭐라도’ 조금씩 해야 한다는 생각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 ‘뭐라도’는 느리게 진행됐다. 시작은 1) 성북구 2) 대학 자치언론 이라는 두 매체의 접점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자치언론네트워크’라는 연대체를 결성해 성북구의 이모저모를 소개하는 기사와 각 대학 자치 언론을 찾아가 각 매체의 시각에서 기사를 작성했다. 그렇게 훌쩍 반년이 흘렀다. 


변화의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한 기성 언론에 ‘자언넷’ 소개가 실린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비디오저널리스트협회’라는 곳에서 자치 언론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이윽고 두 달 사이에 ‘자언넷’의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올해 2월, 한국외국어대학교 외대언론 협동조합 <외대알리>가 자치언론네트워크에 합류했고, 이번 달부터 성균관대학교 자치언론 <고급 찌라시>가 함께하게 됐다. 반년 동안, 두 매체끼리 기사를 작성하던 것에 비하면 그 규모가 빠르게 커진 셈이다. 


이제야 성적표를 슬쩍 엄마 화장대 위에 올려놓고 도망치는 아이처럼, 그간 자치언론네트워크라는 연대체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보았다. 앞으로 자언넷은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환경 속에서 그간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일을 꾸미게 될 것이다. 


한편,‘자언넷’ 안에 속한 네 단체는 완벽히 같은 언론 매체를 지향하지는 않는다. 각자 다른 이상적인 자치언론과 저널리즘을 꿈꾼다 하지만 우리가 택한 느슨한 연대의 방식을 증명해가는 와중에도 ‘자치언론’ 연대의 시도는 달팽이처럼 느리고 조용히 그렇지만 쉼 없이 나아가길 바란다. 자언넷은 다시 한 번 전환점을 돌았다. 



유지영 편집국장 alreadyblu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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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취재구역NISP] 협동조합으로 독립언론을 꿈꾸는 외대언론협동조합

국민저널 기사 2013.11.26 10:00

[공동취재구역NISP] 협동조합으로 독립언론을 꿈꾸는 외대언론협동조합



옛말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다. <국민저널>은 성북구에 위치한 이웃, 성신여자대학교 자치언론 <성신 퍼블리카>와 함께 백지장을 맞들어 보기로 했다. 서로의 콘텐츠를 나누고, 급한 소식들은 공유하며 함께 자치언론의 역량을 쌓아보기로. 그렇게 뜻을 모은 두 매체는 ‘자치언론네트워크’라는 연대체를 만들었다.


첫 번째 연대가 성북구의 이모저모를 소개하는 <정릉라이프>와 <돈암라이프>였다면, 두 번째 연대체의 결과로 [공동취재구역NISP]라는 자치언론 인터뷰 연재를 준비했다. 여기서 NISP는 Network of Independent University Press의 약어이다. [공동취재구역NISP]는 홍수처럼 쏟아지고 썰물처럼 사라지는 대학 자치언론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보고 진단하고자 마련됐다. “자치언론네트워크” 안에 속한 기자 두 명이 동시에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타대 자치언론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구성과 시각을 담은 인터뷰 기사를 두 편 선보인다. [공동취재구역NISP]은 두 번째 인터뷰이로 한국외국어대학교 외대언론협동조합 이사장 강유나 씨와 외대 독립언론 <외대알리> 편집장 임채윤 씨를 만났다.


11월 16일, 휴대전화로 ‘땡’하는 소리와 함께 메일 한 통이 왔다. 내용인즉,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외대알리>라는 독립언론이 생기니 축사를 써달라는 내용이었다. 호기심이 생겼다. 축사를 보내며 당장 인터뷰 날짜를 잡았다.



△ 본지와 <성신 퍼블리카>가 외대언론협동조합 <외대알리> 창간을 축하하며 보낸 축사. <외대알리> 13면에 실려있다. 


마침 인터뷰 날이 <외대알리>의 발행일이었다. <외대알리> 창간호는 지난 22일 있었던 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선거를 겨냥하고 만들어졌다. 출마한 총장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한 한편, 인기 게임 GTA 콘셉트에 맞춰 지속가능성-교수중심도-학생중심도-현안 해결의지-실현가능성-직원중심도라는 6가지 능력치를 놓고 총장 '캐릭터'를 선택하는 구성으로 꾸려졌다. 강유나 외대언론협동조합 이사장과 임채윤 외대알리 편집장은, “사실 어제까지 마감 작업을 했다. 마감을 4일 동안 해서 제정신이 아니다.” 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말과 달리 기운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선거특집호 발행 후 권고사직과 더 심해진 검열


다짜고짜 왜 독립언론을 만들었는지 물었다. 강유나 이사장은 작년까지만 해도 외대학보 편집장이었다. 혹시 <외대알리>를 창간한 이유가 작년 사건과 관련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작년 12월, 강 이사장과 외대학보 기자들은 사비로 총학생회 선거특집호를 발행해야 했다. 학교가 특정 선본의 공약을 분석하는 것은 선거 개입이라며 학보 발행을 막았기 때문이다.


“선거특집호를 냈다는 이유로 학보사에 대한 모든 재정지원이 끊겼다. 주간교수는 한 달 동안 연락이 안 됐다. 1월 3일에 나타나서 처음 한다는 말이 ‘학보사의 정상화를 위해 강유나 편집장이 있으면 안 된다. 새 편집장을 뽑을 논의를 하기 바란다.’라는 말이었다. 강압적으로 나가라고 하진 않았지만 내가 있으면 다른 기자들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편집장의 권고사직 소식을 접한 기자들은 세 가지 대처방안을 생각했다. 첫 번째는 편집장과 기자들이 다 같이 사퇴하고 독립언론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나가지 말고 버티자는 방법이었고, 세 번째는 독립언론을 만들되 그 시기를 6개월 후로 늦추자는 것이었다. 기자들은 세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6개월 동안 여러 전략을 짜고, 월급이나 장학금을 모아 독립 언론 발행자금을 확보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임채윤 외대알리 편집장은 당시 학보에 남아있던 기자였다. 임 편집장은 “그 6개월 동안 학교가 너무 심하게 탄압했다. 신문을 보면 표제, 부제, 심지어 사진까지 바뀌어 있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신문 발행을 해주지 않았다.” 라며, 그 안에서 기자들이 점차 지쳤음을 설명했다.


그 사이 강유나 편집장은 전국대학언론협동조합의 이사로 취임했다. 학보 안에서 할 수 있는 일과 바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강 이사장이 고군분투하는 동안, 독립언론의 길은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총학생회에서 먼저 외대학보의 독립을 제안한 것.


이는 강 이사장이 영어대 학생회장이 된 것과 무관치 않았다. 그는 4월 단과대 학생회 선거에서 당선됐고, 학생회 회의에서 누차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학생회장단은 강 이사장의 의견에 공감했다. 강 이사장은 외대학보에 학생회의 제안을 전했다.


그러나 외대학보 기자들은 학생회의 홍보지가 될 수 없다며 거절했다. 그 기자들은 불과 몇 개월 전 독립언론을 꿈꿨던 동료였다. 임 편집장이 학보사를 그만둔 것도 이 무렵이었다.


“협동조합은 기관지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채택한 방식”


왜 하필 협동조합이었을까? 강 이사장은 협동조합이 학교나 학생회의 간섭을 피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협동조합은 학교에서 벗어나서 서울시에 적을 두고 있다. 법인이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려면 변호사를 통해 해야 하므로 학교가 탄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외대언론협동조합은 일반회원이나 후원회원뿐 아니라 단체조합원에 관한 규정을 마련했다. 학생회가 조합원이 될 수 있게 한 것이다. 만일 가입하게 된다면 학생회는 자치회비 일부를 조합비로 낸다. 이렇게 모인 조합비로 <외대알리> 1,000부를 찍었다.


보다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외대언론협동조합을 학생회칙에 명문화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방법을 알아보는 중이란다. 강 이사장은 “정기총회나 전학대회를 열어 학칙 추가나 개정이 가능한 지 논의를 했다. 협동조합 창립총회와 외대알리 마감 때문에 조금 바빠서 미뤄진 상태다.”라고 답했다.


외대언론협동조합의 주요 이사진과 감사는 학생회장들이다. 학생회는 다른 어떤 집단보다 학교 내부 정보가 많이 들어온다. 강 이사장은 “정보 공유 측면에서 학생회와 언론의 시너지 효과는 대단하다.”라며, 오히려 학보에서 일할 때보다 정보 수집이 수월하다고 말했다.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이사진이나 조합원이 학생회 관계자들이니 학생회를 비판하는 데 지장은 없을까? 강 이사장은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협동조합을 만들었을 때 학생회장들은 이사장 자리를 서로 마다할 정도였단다.


강 이사장은 “사전에 언론관을 공유해야 한다. 학생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고, 학생회가 잘못하면 언제든지 비판받을 수 있다는 점이 확실하게 잡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해선 안 된다.”라고 못 박았다.


강 이사장의 확신처럼 학생회와 언론 사이의 건강한 긴장 관계가 계속 유지될 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성공한다면 20년째 사경을 헤매는 대학언론을 살릴 묘책임은 분명해 보인다. 새로운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글․ 인터뷰 / 서혜미 <성신 퍼블리카> 기자 weselson@gmail.com

공동기획. 인터뷰/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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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취재구역NISP] ‘꿈틀하기도 전에 죽은 지렁이’를 되살리자, 외대언론협동조합 <외대알리>

국민저널 기사 2013.11.26 10:00

[공동취재구역NISP] ‘꿈틀하기도 전에 죽은 지렁이’를 되살리자, 외대언론협동조합 <외대알리> 


옛말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다. <국민저널>은 성북구에 위치한 이웃, 성신여자대학교 자치언론 <성신 퍼블리카>와 함께 백지장을 맞들어 보기로 했다. 서로의 콘텐츠를 나누고, 급한 소식들은 공유하며 함께 자치언론의 역량을 쌓아보기로. 그렇게 뜻을 모은 두 매체는 ‘자치언론네트워크’라는 연대체를 만들었다.


첫 번째 연대가 성북구의 이모저모를 소개하는 <정릉라이프>와 <돈암라이프>였다면, 두 번째 연대체의 결과로 [공동취재구역NISP]라는 자치언론 인터뷰 연재를 준비했다. 여기서 NISP는 Network of Independent University Press의 약어이다. [공동취재구역NISP]는 홍수처럼 쏟아지고 썰물처럼 사라지는 대학 자치언론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보고 진단하고자 마련됐다. “자치언론네트워크” 안에 속한 기자 두 명이 동시에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타대 자치언론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구성과 시각을 담은 인터뷰 기사를 두 편 선보인다. [공동취재구역NISP]은 두 번째 인터뷰이로 한국외국어대학교 외대언론협동조합 이사장 강유나 씨와 외대 독립언론 <외대알리> 편집장 임채윤 씨를 만났다.


“저, <외대학보>에서 잘렸어요.” 


꼭 1년만이었다. 작년 겨울, 교수신문 주관 전국대학언론기자학교에서 ‘학내 언론 편집권 침해와 독립 언론의 사례’로 같이 발표를 진행했던 한국외국어대학교 학보사 <외대학보> 강유나 편집장과 임채윤 기자를, 외대 독립언론 <외대알리> 강유나 외대언론협동조합 이사장과 임채윤 편집장으로 다시 만나게 된 건. 


지난 1월, 지나가듯 던진 “잘 지내냐”는 말에 <외대학보> 강유나 편집장은 담담히 “학보사에서 해임 당했다”고 대답했다. 외대 선거특집호 호외를 앞세운 보복성 해임이었다. 작년 <외대학보>는 선거특집호를 냈다는 이유로 학교 본부로부터 모든 재정적 지원을 중단 당했고, 주간교수는 강유나 편집장에게 “네가 나가지 않으면, 애들(기자들)이 힘들 거다”고 말하며 강 편집장을 내몰았다.


당시, 강유나 편집장은 “독립 언론을 준비할 거”라 말했다. 이미 반년 전, 그렇게 학내 방송국을 나와 자치언론에 몸담고 있던 기자는, 그의 앞길에 그저 행운을 빌어주는 것 말고는 적당한 말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 “준비”까지 1년이 걸렸다. 같이 독립언론을 만들자 다짐했던 몇몇 <외대학보> 기자들은 다른 길을 택했고, 지난 20일 <외대알리>가 창간됐다. <외대학보>에서 <외대알리>로, 편집장에서 이사장으로, 소속도 직책도 모두 바뀐 1년 동안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우리가 아니면 학보를 만들 사람이 없으니까”


강유나 편집장이 <외대학보>에서 해임된 후, 학보사 기자들은 독립 언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정이 그리 녹록치는 않았다. 6개월 후 제대로 된 언론을 만들자고 결심했건만, 학보 검열은 더욱 심해졌고 기자들은 지쳐버렸다. “책임감으로 버텼어요. 당시 <외대학보> 기자가 3명이었는데, 신문 만들기도 급급해서 독립 언론 생각은 없었던 거죠.”라고 임채윤 편집장은 전한다. 


지친 기자들에게 주간교수는 ‘위임장’ 양식을 내밀었다. ‘기사를 수정받고 싶은 기자만 제출하라’던 위임장은 사실상 기자 자신의 권리를 학교 측에 넘기라는 권유였다. 기자가 위임장을 제출하면, ‘제출했으니 마음껏 검열하겠다’고 결론 내려질 테고, 위임장을 제출하지 않으면 그것대로 학보 전체에 피해를 입히게 되는 셈이었다. “학교는 결국 기자의 권리를 포기하라고 요구한 거고, <외대학보>의 독립 언론 가능성은 날아간 셈이었다. 그러니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해야 하는데, 꿈틀하기도 전에 지렁이가 죽어버렸어요.”라고 강유나 이사장은 말한다. 임채윤 편집장은 이 틈바구니 속에서 <외대학보>를 나와 <외대알리> 창간을 준비한다.


"학내 언론기관과 학생회가 지향하는 학교는 결과적으로 똑같지 않은가요?"


학생회가 조합원이 되는 구조, 외대언론협동조합 <외대알리>가 학생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외대학보>를 독립시키자는 제안은 오히려 학생회 쪽에서 먼저 들어왔다. 학보의 어려운 상황을 공유한 학생회장들은 언론 자유를 위해 뜻을 모았다. 전국 대학 언론 최초의 ‘협동조합’의 탄생이었다. “서로 도움이 필요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어요. 언론은 어떤 사안을 퍼트릴 수는 있지만, 직접 실행하는 집행력은 부족하고, 학생회는 퍼트릴 수는 없지만 집행력은 있으니까.” 


“외대 언론과 학생회가 바라는 학교가 결국 똑같지 않나요? 지향하는 바가 같으니까 말이 통한 거고, 그러다보니 언론의 필요성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거고.”  






Episode1. “<외대알리>는 무슨 뜻인가” 


"‘외대인의 알 권리’라는 뜻도 있고, 뭔가를 알리다, 는 뜻도 있고. 어느 단과대 학생회장은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를 … ‘무하마드 알리’가 7전 8기의 대명사잖아요. 창간하려 거친 무수한 노력을 빗대 무하마드 알리다, 라고. 또 누군가는 가수 ‘알리’가 너무 좋아서(일동 웃음)” 강유나 이사장의 대답에 임채윤 편집장이 거든다. “사실 저희가 <외대알리>를 만들면서 알리 노래를 계속 들었어요.” 


Episode2. “한 성격하시는 구나”


결과적으로 <외대학보>에서 <외대알리>로, 소속을 옮긴 사람은 임채윤 편집장 한 명 뿐이었다. ‘왜 나왔냐’는 질문에 임채윤 편집장은 “너무 많이 건드려대니까, 제 기사를. 짜증나서 나왔다”고 대답한다. <성신 퍼블리카> 서혜미 편집장 왈(曰), “한 성격 하시는구나(일동 웃음)” 임채윤 편집장이 밝게 웃으며 화답한다. “저 되게 온순한 사람인데…(일동 웃음)” 


임채윤 편집장이 <외대학보>를 나온 결정적인 계기는 번역 공부를 하는 시각장애인 기사를 준비하면서였다. “시각장애인이 번역을 공부한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나요? 그 아이템을 넘겼더니 … ‘이런 걸 왜 인물 면에 싣느냐. 이런 건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롯데호텔’ 사장 같은 사람 섭외해 와라’는 대답을 들었어요. 그 말을 듣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죠.”


Episode3. "지금 네 이름을 검색하면 기사 몇 개가 …”


강유나 편집장을 해임시키는 자리에서 학보사 주간교수는 안타까워하며 “지금 네 이름을 검색하면 기사가 몇 십 개씩 뜨는데, 나중에 대기업에는 입사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단다. 강유나 이사장 왈(曰) “애초에 대기업은 생각도 안했는데! 동생이 제 이름을 검색해보고 놀라서 달려왔어요. 아빠는 이미 기사 스크랩을 해놓으셨더라고요.(웃음)” 강유나 씨는 주간교수와의 대화 이후, 영어대학 학생회장에 나갈 결심을 한다. 학교 본부는 <외대학보> 강유나 편집장 해임 건을 조용히 덮길 원했고, 그렇게 덮인 이후 <외대학보>는 기자가 써서 넘긴 표제․부제․사진․리드까지 검열 당한다. 이것이 <외대알리>의 창간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글․ 인터뷰 /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공동기획. 인터뷰/ 서혜미 <성신 퍼블리카> 기자 wesels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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