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月] “세월호는 정치적 문제”…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하는 토크콘서트 열려

국민저널 기사 2016.10.11 02:18

10월 5일 6시 복지관 세미나실 B101호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하는 공감 토크콘서트(이하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이번 토크콘서트는 세월호참사 900일을 생각하며,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기 위한 공감 총학생회의 인문학 콘서트로 기획됐다.




토크콘서트에서는 ‘예은 아빠’인 유경근 씨와 ‘경빈 엄마’인 전인숙 씨, 그리고 ‘시연 엄마’인 윤경희 씨가 참석했다.

 

이 콘서트에서 유경근 씨는 참사 당시 인양을 거부할 수 밖에 없던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우선 “참사 당시에는 인양을 거부했으면서 지금은 인양하라고 하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세월호참사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4월 16일부터 4월 20일까지 5일 동안은 무엇을 상상하든 더 최악인 상황.”이라며 “4월 17일부터 온갖 보도가 쏟아지던 와중에 유가족들이 인양 여부를 판단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요소는 에어포켓이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세월호참사 직후 언론에서는 에어포켓이 존재할 거라는 기대를 높였다.

 

그는 “그 당시 대부분의 방송에서 전문가들이 에어포켓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며 “심지어 해경도 에어포켓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래서 당시엔 인양을 거부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만일 그 자리에서 있는 사실 그대로 책임감 있게 에어포켓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으면 또 다른 판단을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후 그는 세월호참사는 시스템의 문제이기에 정치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질의 응답 시간에 “자식 잃은 사람이 무엇이 두려울까? 책임자에게 달려가 따질 수 있겠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참사가 일어난 원인이 시스템에 있다고 지적하며 “이를 고칠 수 있는 것은 정치이기에, 세월호참사는 정치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꾸준히 관심 가져주고 더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여러분들도 함께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유가족들은 토크콘서트에서 이전에는 사회문제에 무관심했던 것을 탓하며 관심을 당부하기도 했다. 윤경희 씨는 “예전에 시청 앞에서 농성하는 것에 대해 딸이 물어보길래 국가가 요구하는 것을 안 해줘서 떼쓰는 것이라고 말했었다.”며 “그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라며 “계속해서 싸우고 있으니 관심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지난 7월부터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 보장 등을 요구하며 단식을 진행하다 토크콘서트가 열린 5일, 단식 농성을 중단했다.


이번 토크콘서트는 2014년, 2015년에 이어 세 번째로 진행된 세월호 유가족 초청 행사였다. 


2014년 진행된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에서 강의실 대여로 문제가 있었던 반면, 이번에는 총학생회 주관으로 별 탈 없이 진행되었다. 


취재/글 박준우 기자 qkrwbsd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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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月]세월호 특조위에서의 아주 특별했던 아르바이트

국민저널 기사 2016.10.10 02:22

국민저널의 로고는 흑백이다. 물론 처음부터 흑백은 아니었다. 본지는 세월호 참사 당시 추모의 의미로 로고를 컬러에서 흑백으로 바꿨다. 참사가 어느 정도 수습된 뒤 원래대로 되돌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참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혹이 있고 선체인양도 시작 단계이다. 참사 당시만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올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세월호 특조위 첫 진상규명보고서

국민대 동문이 직접 조사해


진통 끝에 탄생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는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1~3일 개최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3차 청문회(이하 제3차 청문회)에서 특조위는 핵심 증인이 불참했음에도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참고 기사 “‘세월호 식당칸 공기주입 성공’은 청와대 위한 거짓보고”)


그런데 특조위에서 화물 전수조사를 담당했던 인물이 본교 이가람(정외 09) 동문임을 알게 돼, 본지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한때 총학생회 집행부로 활동했으며 그 후 사회활동에 몸담기도 했고 현재는 휴학해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출처 :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3차 청문회 자료집 99p

이가람 동문은 세월호에 설치된 CCTV와 당시 기록을 토대로 세월호에 실린 화물을 전수 조사했다. 그는 영상으론 몇 테라, 문서로는 몇 천 쪽에 달하는 분량을 조사하느라 해 지는지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CCTV의 화질이 열악해 조사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럼에도 화면을 통해 세월호 승객들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영화의 공포스러운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어렵게 화물 전수조사를 끝냈어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조사 자료를 토대로 당시 화물 관계자에게 증언을 구해야 했지만 대부분의 관계자가 묵비권을 행사해 난항을 겪었다고 그는 말했다.


자료를 활용해야 의미 있어,

세월호 특조위, 해산됐지만 끝은 아니야

 

그는 화물 전수조사에서만 멈출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했다. 이 조사 자료는 당시 침몰 상황을 재현하는 기초 자료일 뿐이며, 의미를 갖기 위해선 침몰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특조위의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이라 의뢰가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인터뷰 당시(8월 초) 덧붙였다.

 

다행히 그의 우려는 빗나가 3차 청문회에서 활용됐다. 3차 청문회 자료집에 따르면, 참고인으로 나선 이상갑 한국해양대학교 교수는 이 조사 자료를 토대로 시뮬레이션을 실시했으며, 결과를 토대로 장완익 의원은 과적에 따른 복원성 약화가 세월호의 침몰 원인으로 재확인 됐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결국 특조위는 9월을 끝으로 강제 해산됐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일이 201511일이고 특조위는 최대 16개월의 활동기간을 보장받기 때문에 6월로 조사를 끝내야 한다는 게 해양수산부의 논리였다. 다만 930일까지는 종합보고서 작성 기간으로 연장됐다.

 

그런데 정부 산하 기관인 법제처는 과거에 법 시행일이 아닌 운영을 시작 날을 개시 시점으로 봐야한다는 해석을 내놨다.(참고 기사 : 월호 특조위 활동 기간, 법제처에 물어봐라만약 법제처 해석에 따지면 세월호 특조위는 21072월까지다. 예산 배정은 8월 초에야 이뤄졌기 때문이다그럼에도 특조위는 강제 해산됐고, 세월호 특조위는 기간 연장을 위한 단식에 들어갔지만 지난 5일, 71일에 걸친 단식농성을 중단한 상태다.(참고 기사 : 세월호 특조위 단식 농성장 철거…“그래도 진상규명은 끝나지 않아”).


그리고 활동기간 논란에 대해 세월호 특조위는 소송을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공감언론 뉴시스에 따르면, 세월호 관계자는 위원회의 활동기간이 시행일부터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강조했고, 다른 관계자는 앞으로 이런 위원회가 또 만들어졌을 때 세월호 특조위처럼 실질적으로 조사활동은 못하게 해놓고 활동기간 1년을 내세워 강제종료되는 일이 없도록 소송을 진행키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관련 기사 : 세월호 특조위 활동기간 논란, 법정에서 가린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로고



*아래는 이가람(정외, 09)와 진행한 인터뷰 내용이다.

 

Q: 어떻게 들어가게 됐나?

 

제가 1학년 때 총학생회 복지국에서 일했다. 그때부터 총학생회 회장과의 인연이 지속됐고 이 선배는 특조위 조사관으로 들어갔다.(김동환, 경영03) 그리고 특조위의 일손이 부족해 활동을 제의를 받았다.

 

Q: 언제 활동을 시작했나?

 

3월 말에 2차 청문회 준비에서 잠깐 도와줬다가, 5월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 다시 갔다. 이때 화물 전수조사를 해야 된다고 했다.

 

특조위는 세월호 사고에 관해 조사 의뢰를 받는다. 스스로 조사하지 못 하기에 자율적인 조사를 하지 못한다. 제정 당시도 논란이 꽤 많았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한 사안이었다. 그래서 의뢰가 들어오면 세월호 사건과 관련 있는지 조사 후 심사와 의결을 하는 절차 때문에 실제로는 5월부터 본격적으로, 화물조사는 사건 의뢰를 의결한 날로부터 바로 시행했다.

 

Q: 주로 어떤 일을 했나?

 

제의가 들어왔을 때 간단할 줄 알았다. CCTV보고 캡쳐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워낙 자료가 방대하고 너무 많았다. 화물을 실어 달라는 선적의뢰서만 수백 개이니 검경 조사 과정 중 나온 신문 조서 및 증거만 해도 약 9천 쪽이 넘는다. 그러나 화물 조사 건은 저 포함 두 명이 조사했다.

 

CCTV는 인천항 및 세월호 선내 영상이 대상이었다. 15일 아침 6시부터 저녁 21시까지 모두 조사했다.

 

보면 전문적인 사람 같은 느낌이 든다. 화물이 보이면 캡쳐를 해놓고 특이사항은 수기로 적어놓고, 실제 화물을 옮긴 사람들이 작성한 선적리스트와 대조한다.

 

Q: CCTV를 원하는 시간만 선택적으로 볼 수 없었나?

 

화물차가 여러 번 들락날락 거리면서 짐을 빼고 싣고 하면서 여러 번 들락날락 거린다. 그러다보니 원하는 시간에 화물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또 세월호 CCTV는 화질이 열악해 화물이 있는지 여부만 알 수 있다. 화물선적이 끝나면 참사를 당한 승객들이 줄지어 탑승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세월호 CCTV를 본 사람들은 멘탈이 장난 아니다. 공포영화를 다 보고 엔딩크레딧까지 끝나 감상에 젖고 있는데 갑자기 무서운 장면이 튀어나온 것 같은 충격이 있다.

 

Q: 특조위에 관한 의혹 중 성과가 없다. 공권력을 남발한다.”는 주장이 있다.

  

특조위는 기소권과 조사권 중 조사권만 가지고 있으며, 조사결과를 토대로 고발조치까지 가능하고 조사에 불응할 시 특별법에 의거 형사고발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특조위가 이를 집행할 강제력이 없어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Q: 묵비권을 행사하면 어떤 식으로 대응하나?

 

특히 세월호에 화물 선적을 의뢰한 당사자들은 세월호 사고의 피의자임과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조사할 수 밖에 없었다.

 

Q: 특조위 분위기는 어땠나?

 

특히 전/현직 법조인들이 많았다. 조사를 하더라도 전문적으로 하려는 마인드가 기본적으로 강했다. 언론이 일정 부분 의혹을 제기했어도 그 부분만 검증해 편하게 가지 않고, 일단 있는 자료는 모두 검토했다.

 

특조위가 6월 안에 뭐라도 성사되야한다는 분위기, 한치 앞이 알 수 없는 분위기가 있었다. 내가 하고 있는 조사가 계속 진행될 수 있는지, 불안하기도 했다.

 

화물 조사 건은 세월호 사고에 대한 기초자료다. 사고 시뮬레이션을 하려면 짐이 어느 곳에 얼마나 실렸는지 알아야 한다. 이 기초자료 내놓고 특조위가 끝나버리니 성과가 없어보인다.

 

Q:조사가 끝난 후는 지금은 특조위를 나온건가?

 

나왔다기 보단 쫒겨났다. 더 이상 지급할 수 있는 임금이 없다고 들었다. 보고서 작성에서 실명이나 회사 이름을 지우는 작업을 마무리로 하고 특조위를 나왔다.

  

인터뷰이 이가람(정외,09)

취재/글 주호준 유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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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月]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실 하나다” ···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 열려

국민저널 기사 2014.10.03 11:42

[10月]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실 하나다” ···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 열려

 

 

 

 

어제 2일 오후 7시 복지관 202호에서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가 열렸다. 이번 간담회는 청해진해운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불거진 오해를 해소하고 사건 해결을 위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기획되었다. 최근 유가족들이 특례입학, 거액의 보상금 요구 했다는 등의 루머, 일베의 광화문 폭식 투쟁, 박근혜 대통령의 특별법 제정 거부 등으로 인해 세월호 사건 해결의 본질이 흐려졌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 유가족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실 한가지이다.” 라고 말하며 “자식을 잃은 부모로서 진실을 알려달라는 그거 한 가지 외치면서 지금까지 몇 개월을 왔다. 언제까지 할 거냐, 지겹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자기 일 아니라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하도 많아서 그냥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을 정도다. 큰 욕을 먹어도 포기할 수가 없다. 멈출 수가 없다.” 고 이야기 했다.

 

작은 아들을 잃은 故 이영만 학생의 어머니는 “우리 아들 같은 경우는 굉장히 온순하고 정말로 아직 좀 애 같은 아이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랑 같이 잠을 잤다. 고2인데.”라고 말하며 아들을 떠나보냈을 때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 애가 태어날 때도 건강하지 못해서 친정엄마가 아이가 건강하지 못하니까 그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서 살아 올 거라는 생각을 못하신 것 같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아이를 보지 않았다. 아이가 일주일 만에 수술을 하고 그래서 병원에서 두 달을 넘게 힘들게 해서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아이를 키우면서 공을 많이 들이고 아이를 힘들게 키웠다. 이 식도가 기도에 붙어서 그거를 잘라서 위를 연결하는 수술을 했는데 식도를 잘랐기 때문에 음식물을 넘기지 못해서 응급실도 새벽에도 여러 번 데리고 쫓아갔었고 그러면서 힘들게 키웠다. 그래서 (바다 밖에서) 그 아이를 만났는데 일주일 만에 우리 아들을 만나서 보냈다.”고 세월호 참사 당시의 이야기를 꺼냈다.

 

또한 유가족들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故 이영만 학생의 어머니는 간담회 내내 지속적으로 자신이 사회에 무관심 했던 것을 탓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지금 이 사회를 바꾸는데 이 세월호 사건이 시발점이 될 것 같다. 바꾸지 않으면 이 사회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힘들고 지치더라도 우리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우리를 도와주는 많은 분들이 계시다. 우리도 꿋꿋하게 버티면서 정말로 큰 사명을 가지고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도록 정말로 싸우려고 생각하고 있으니 우리들의 마음을 이해해 주시고 동감해 달라”고 말했다,

 

또 다른 유가족은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평소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거짓 정보가 나오면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해주시고. 가족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다는, 이런건 (알지 않으셔도) 괜찮다. 거짓정보에 흔들리지 마시고 진실을 찾으려고 노력해달라.”고 전했다.

 

故 안주현 학생의 어머니 또한 “부탁하고 싶은 건 나서서 이야기 하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조금만 느끼고 전달해 주셨으면 좋겠다. 행동을 해달라고 말씀 드리는게 아니고 가까운 친구들에게, 우리가 이 세상에 돌아가는 것에 무관심 했던 것처럼 해주지 마시고 이 마음을 좀 알아주고 주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눠 달라” 는 이야기로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했다.


간담회 내내 학생들은 유가족이 하는 말에 눈시울을 붉혔다. 故 이영만 학생의 어머니가 아들과의 첫 인연을 이야기 할 때 그리고 시민들이 자신들에게 와서 응원을 해주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흐느낌의 소리는 더욱 커졌다. 학생 A씨는 간담회가 끝날 무렵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며 손을 들었다. “유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알았다. 끝까지 힘내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한편, 이번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는 장소를 구하지 못해 취소될 뻔 했다. 처음 세월호 기획단은 동아리 연합회에 가서 복지관 229호 회의실을 빌렸지만 장소가 좁아 북악관에 있는 강의실로 옮기려고 했으나 거부당했다. 사회학과인 한 기획단원은 “과 사무실에 가서 장소 대여를 이야기 했지만 ‘외부인사가 오는 정치적인 행사는 진행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후 정치외교학과의 한 단원이 강의실을 빌리려고 했으나 과 사무실에서 ‘학생처에서 안 된다는 답변이 왔다’며 대여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결국 기획단은 콘서바토리 강의실인 복지관 202호를 빌리는 것으로 학생처와 협의를 했다. 강의실에서 수업이나 행사가 진행되는 등의 타당한 이유로 강의실 대여를 거부 한 것이 아닌 정치적인 행사라는 이유만으로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은 학교가 앞으로도 학생자치활동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김혜미 기자 hyeme199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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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4년 5월]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편집국장의 말]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4월호 지면이 발행되고 한 달 동안 실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국민저널>, 혹은 저 스스로도 이 거대한 사건사고 앞에서 어떤 말을 덧붙인들 충분치 않게 느껴졌습니다. 말은 더할수록 얄팍해져만 갔습니다. 말문을 닫고 침잠하고 있을 무렵, 인터뷰 요청을 받았습니다. 


<국민저널>은 관련자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게 본업인 매체지만, 종종 타인으로부터 매체에 대한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국민저널> 소개, 매체가 걸어왔던 길, 매체의 지향점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묵직한 질문을 받다보면, 저절로 어떤 다짐을 하게 됩니다. 두려움과 무력 혹은 분노가 이는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진도나 안산으로 향하지 못하는 매체인 <국민저널>은 어떤 사실과 생각을 독자들에게 전달해야 할까요. 


세월호 참사가 난 이후 <국민저널>은 세월호 사건에서의 한국 언론을 다룬 짧은 논평을 냈고, 의롭게 생을 살다 간 故 남윤철 동문의 분향소 안내 공지문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밖에 세월호와 관련된 별다른 속보나 기사 없이, 우리가 그간 취재해왔던 기사들을 온라인에 송고하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거대한 사건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며칠 뒤 학교는 때 아닌 홍역에 시달렸고, 갑자기 북악관 외벽 자재 일부가 땅으로 떨어져 산산조각나 사람이 다치는 등 크고 작은 일들이 잇달아 일어났습니다. 연달아 일어난 사건은 곧 기사가 되어 <국민저널> 페이스북 계정으로 보내졌고 독자들에게 전달됐습니다. 


<국민저널> 5월호는, 일련의 사건을 과연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마주해야 하는지 그 고민을 담았습니다. 교내 안전과 세월호, 그리고 대학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말입니다. 


세월호 이후 누군가는 대대적인 국가 개조를 이야기한다지만, 당장 나를 둘러싼 사회가 그 개조나 변화의 출발점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껏 그래왔듯이, <국민저널>은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누군가는 마땅히 해야 할 말을 치열하고 정확하게 전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기록하겠습니다. 두 번 다시는 같은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유지영 편집국장 alreadyblu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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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전학대회] 왼손이 기부하는 걸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국민저널 기사 2014.05.12 13:58

[임시 전학대회] 왼손이 기부하는 걸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대동제 취소, 세월호 희생자 위한 모금 진행해

총학생회, 별다른 의견 수렴 거치지 않아

학생 성금도 ‘알려지는 것 바라지 않는다’며 쉬쉬 

지난 전학대회서 결정된 ‘예비군 버스 폐지’도 번복해 


지난 4월 29일, 임시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가 열렸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목숨을 잃은 故 남윤철 동문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된 이번 전학대회는 약 한 시간 반에 걸쳐 진행됐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대동제 등 제반행사의 취소 통보와, 학생회비를 성금으로 전환하고 모금 행사를 하자는 논의들이 오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총학생회가 행했던 독단적인 의사 결정이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총학생회는 임시 전학대회를 열어 대의원의 의견을 묻기 이전에 이미 축제를 취소했다고 통보했다. 전학대회에는 ‘대동제 취소로 인한 잔여금과 학생회비 일부를 합친 천만 원을 이번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안산 단원고 성금으로 보내자’는 안건을 올렸다. 최창영 총학생회장은 대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일단 결론적으로 저희가 하기로 했던 성년의 날 행사라든지 1학기 대동제를 2학기로 연기하게 됐음을 알리는 바입니다. 원래 대동제 축제 비용이 1703만원으로 책정돼있는데, 축제 비용 일부에 학생회비 일부를 보태 총 천 만원을 단원고에 성금으로 보내고자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학교 동문께서 순직을 하셨기 때문에 생각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며 결정하게 된 경위를 밝혔다. 

 

양승만 사회과학대 학생회장은 “학생회비를 통한 기부 사례가 다른 대학에도 있는”지를 물었고 김형준 부총학생회장은 이에 “만약 전학대회에서 통과되면 처음으로 시행하는 거다. 다른 대학의 눈치를 보고 행사를 진행하지 않는다. 저희는 故남윤철 동문의 뜻을 빌려, 동문이 살아계셨다면 이렇게 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안건을 올린 과정은 총학생회 독단적으로 진행됐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 부총학생회장은 이에 일반 학생들의 의견을 묻고 싶지만 외부 언론이나 유가족에 눈치가 보여 공개적인 여론 조사나 모금 행사를 할 수 없다며 “이것은 일종의 통보다. 대다수의 학우 여러분께서 동의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라며 성금 모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또한 김 부총학생회장은 제반 사항이 중운위를 통해 정해졌냐는 본지 김혜미 기자의 질의에 “중운위도 이 자리에서 처음 이야기를 접했을 것. 몇몇 중운위는 따로 들었을텐데, 이것은 총학생회 리필에서 자체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말해 사안 대부분이 중운위를 거치지 않고 상정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제반 사항 자체를 지나치게 쉬쉬하며 진행하는 듯한 인상이었다. 일반 학우들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기는커녕, 학생회비 중 일부가 성금으로 전환되는 것조차 ‘입소문’으로 알리겠다는 것이었다. 법과대학 하지수 부회장은 “(성금 일부가) 총학생회비이다 보니 일반 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어볼 생각이 있나”고 질의했고 김 부총학생회장은 “설문이나 의견을 받기 조심스럽다.”며 “공지 없이 진행한다면, 각 단운위에서 해당 내용을 알게 모르게 입소문으로 전달해주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 만약 공지를 한다면 오프라인으로 게시하고 2주 뒤에 뗄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모금을 어떤 단체에 어떤 방식으로 기부하는지 조차 중운위를 통해 결정하는 방식을 채택한다고 말했다. 


한편, 성금 이용 경위는 2학기 전학대회 자료집을 통해 공개할 것을 약속했다. 대의원 총 61명 중 ‘학생회비 천만원을 ‘국민대 학생 일동’으로 단원고 학생들에게 장학금 내지 치료 목적으로 보내는 것이 좋겠다.’에 46명이 찬성해 통과됐으며, ‘이후 진행되는 모금 행사를 총학 측에서 진행하는 것이 좋다’는 안건에 60명 중 52명이 찬성해 통과됐다. 



지난 3월 결의된 ‘예비군 버스 폐지’ 안건을 폐지해

번복하는 과정에서 어떤 민주적 진행 절차도 없어 


3월 전학대회에서 통과돼 폐지됐던 “예비군 버스 폐지”는 없던 일이 됐다. 예비군 버스는 16일까지 하루 3대씩 운영하기로 결정됐다. 이번 전학대회에서 김형준 부총학생회장은 “지난 3월 전학대회 당시 과반수이상의 대의원이 (예비군 버스 폐지에) 동의를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저희는 버스 사업을 진행한다.”며 번복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간 학생들로부터 온오프라인을 통해 항의가 많이 들어왔다고 전하며 “대표자로서 생각하는 부분과 일반 학우들이 생각하는 부분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총학생회는 학생들을 대표하기 때문에 이 사업을 진행한다”고 결정했고 이후에도 ‘예비군 버스’에 대한 대의원의 찬반 거수는 따로 없었으며 이외의 민주적인 진행 절차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총학생회는 실질적으로 대표자들 사이에서 가장 크게 찬반이 오갈 수 있는 안건인 ‘5월 대동제 취소’나 ‘학생회비 성금 전환’과 같은 안건을 사실상 독단적으로 처리했다. 지난 3월 전학대회에서 이미 통과된 “예비군 버스 폐지” 안건도 마찬가지였다. 일반 학생들의 의견을 물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총학생회는 ‘현 시국’을 이야기하며 조용하게 일을 진행하겠다고 알린 반면, 세부적인 사항은 이후 중운위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알렸다. 





이날 임시 전학대회에서는 세월호 성금, 예비군 버스 말고도 다른 논의사항이 오갔습니다. 그래서 준비한 전학대회 퀴즈!  


Q1. 논산으로 가던 농촌봉사활동을 이번 년도는 왜 제천으로 갈까? 

① 최창영 총학생회장은 전학대회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제천으로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② 작년에는 본교 동문이었던 논산 시장으로부터 버스 대절을 지원받았는데, 올해는 지원받지 못해서 

③ 논산은 단과대별로 마을이 떨어져 있어 총학 단위로 체육대회를 열 수 없어서


Q2. 복지관 3층에 있는 여학생 휴게실은 어떻게 하면 남학생 휴게실로 바뀔 수 있을까?






정답: Q1. 오답 없음 

      Q2. 김 부총학생회장은 “학생회칙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경고 1회시 일정 기간 폐쇄, 경고가 4번 누적되면 

남학생 휴게실로 바뀐다.”고 전학대회에서 전했다. 



취재 | 김혜미 하성미 신동진 기자 hyeme1992@naver.com

글 | 하성미 기자 kro1211@nate.com 

편집 |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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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사설] 국민저널이 22일자로 기사를 다시 싣습니다.

국민저널 기사 2014.04.22 10:54

[특별사설] 국민저널이 22일자로 기사를 다시 싣습니다.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은 정지했다. 서해 진도 앞바다에서 들려온 참혹한 소식 앞에 쉽게 일상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은 흔치 않았다. 처음엔 걱정은 되어도 어떻게든 구조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사람들은, 상식을 뛰어넘는 일들의 연속 앞에서 말을 잃었다. 선장이 제일 먼저 구조된 사람 중 한 명이었다거나, 배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선원과 승무원 중 70% 이상이 불안전한 고용 상태인 계약직이나 비정규직이었다거나, 구조’본부’를 자처하는 조직이 전국 각지에 8개 이상 흩어져 있어 탑승객 수나 실종자 수 집계조차 체계적으로 할 수 없다거나, 정부가 흥분한 실종자 가족을 진정시킨답시고 오보를 일삼는다거나 하는 경악의 연속은 날이 갈수록 사람들의 기대를 져버렸다. 가히 초현실적인 사태의 전개 앞에서, 대한민국의 일상은 조용히 정지했다.


<국민저널> 또한 마찬가지의 마음으로 예정된 기사 업데이트를 중지했다. 희생자를 추모하고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마음으로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의 로고를 모두 검은 색으로 교체하고, 국민대학교 동문인 故 남윤철 교사의 빈소가 마련되었다는 정보를 공유하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국민저널> 또한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조용히 멈춰 섰다. 불완전 고용, 안전불감증, 수익을 위해 기본을 버리는 배금주의, 전시행정, 부처 이기주의, 경마식 보도 따위의 크고 작은 모순들이 모여 빚어낸 거대한 참사 앞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건이 일어난 지난 수요일부터 오늘 화요일에 이르기까지의 일주일, 아직 대부분의 실종자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고 사망자 수만 증가하는 시점에서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아마 이런 이야기는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국민대학교 동문인 故 남윤철 교사는 선실 비상구 근처에 있었기에 탈출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학생들을 먼저 탈출시키는 쪽을 선택했다. 그가 학생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구명조끼를 챙겨주고 대피를 독려한 덕분에, 그의 주변에 있던 학생들 중 다수가 침몰하는 배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다. 고인의 모친은 “의롭게 갔으니 그것으로 됐다. 아이들을 놔두고 살아나왔어도 괴로워서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윤철이는 그런 아이였다.”라고 말했다.


목숨을 잃은 승무원 故 박지영씨는 10여 차례 “승객들을 탈출시켜야 하느냐”고 상부에 물었지만 대답이 없자,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히며 탈출을 도왔다. “언니도 빨리 나가라”는 학생들의 말에 박씨는 “원래 승무원은 승객들이 다 안전하게 빠져나간 다음 제일 마지막으로 나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단원고 학생 박호진씨는 배가 기울어지는 상황에서도 생판 남인 6살 아이를 먼저 구조선박에 태워달라고 요청했고, 승객 김홍경씨는 커튼을 뜯어내고 물 호스를 던져 기울어 침몰하는 배 안에서 스무 명을 구조해냈다. 생업을 내팽개치고 사고현장으로 뱃머리를 돌려 초동 구조에 힘을 보탠 라배도와 대마도의 어민들 또한 숨은 영웅들이다.


우리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비겁하고 참혹하며 어두운 시간을 통과하는 중이다. 그러나 가장 어두운 밤의 한 가운데에 별이 가장 빛나는 것처럼, 그런 시간의 한 가운데에서도 용기 있게 일어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낸 영웅들이 있어 우리는 두려움과 좌절 안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들이 유별나게 더 용감하거나 더 정의로운 이들이어서 영웅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며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게 되는 선택의 순간에서, 자기 스스로를 살피기보다 응당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쪽을 택하는 작지만 용기 있는 선택이 평범한 우리를 영웅으로 만든다. 그런 이들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써온 이들이다. 가난을 체념하지 않고 극복하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항거하며, 결과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장삼이사들.


<국민저널>은 실종자들의 무사귀환과 남은 이들의 고통이 가시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오늘부터 예정된 기사 업데이트를 조심스레 다시 시작하려 한다. 여전히 많은 이들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차고 매서운 서해의 물길은 모두의 걱정을 집어삼키고 있지만. 우리는 좌절과 공포로 일손을 놓는 대신, 지금 이 순간 우리 자리에서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을 충실히 해나가는 것으로 우리 몫의 삶을 살아낼 셈이다. 다시 한 번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사건과 관련해 <국민저널> 구성원 전원의 애도와 응원의 마음을 표하며, <국민저널>은 늘 그랬던 것처럼 북악의 역사를 기록하고 오늘을 써내려 가는 충실한 기록자의 역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2014년 4월 22일

<국민저널>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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