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4月] 공간 얻은 캠퍼스, 공간 잃은 학생들

국민저널 기사/FOCUS 2014.04.24 13:24

[Focus 4月] 공간 얻은 캠퍼스, 공간 잃은 학생들


종합복지관, 성곡도서관, 신공학관·생활관, 

바뀐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학생 휴게실도, 증축된 열람실 좌석도, 캠퍼스에서 도보로 갈 수 있는 기숙사도 없었다. 학생들이 모두 떠난 지난 겨울방학 국민대학교의 공사 소리는 분명 떠들썩했건만, 건물 내 빈 공간이 채워지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다시 재배치를 거쳐 공간을 확보한 건물 내에 정작 학생들을 위한 휴게실과 같은 공간은 쉽사리 찾을 수 없었다. 개강 후 한 달이 지난 지금, 방학 중 진행했던 공사의 대부분은 마무리됐고, 중단됐던 신축 공사도 재개됐다.


우선 종합복지관에는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기존에 통로로 쓰였던 복지관 필로티가 실내공간으로 전환돼 방으로 만들어졌다. 두 달 넘게 닫혀 있었던 성곡도서관 역시 전면적 공간 재배치와 실내 리모델링이 이루어졌다. 


단순히 공간이 변했을 뿐인데, 방학 전과 비교했을 때 학생들의 동선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복지관 필로티가 실내 공간으로 바뀌면서 복도가 협소해져 학생들은 운동장을 통해서 강의실로 향했고, 실내 리모델링을 마친 성곡도서관은 말끔해진 내부 환경 탓인지 몰라도 개강 초부터 학생들로 빽빽하다. 이 외에도 많은 공간이 만들어지고 이동했고 지금도 변화 중이다. 캠퍼스가 변하면서, 국민대의 고질적인 공간 문제 역시 해결됐을까? 



(1) 종합복지관: 일방적 통보로 들어선 평생교육원, 

복지관 내 시설 전면 재배치 수순 







학교 본부는 성곡도서관으로 이전한 디자인도서관 자리에 일방적으로 평생교육원 강의실을 배치했다. 이에 'Yes, We can' 동아리연합회 (이하 동연)는 지난 2월 전체동아리대표자회의를 통해 ‘종합복지관 영문명은 Student Union(학생회관)입니다’라는 제목 아래 ‘복지관 공간 문제 성명서’ 안건을 가결했다.


‘학생들과 어떠한 논의도 없이 공간 배치가 이루어진 게 가장 큰 문제다. 우리는 공사 공고를 통해 그 공간이 평생교육원 전용으로 쓰인다는 것을 알았다’고 학교에 항의했다. 학교가 애초에 디자인도서관 자리에 평생교육원 강의실을 만들며 공사에 들어가면서도 공간이 어떻게 쓰일지를 동아리연합회와 상의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어 ‘디자인도서관이 이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좁게 생활 중인 동아리들이 공간을 넓게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뻤다’며 심경을 토로했다. 저간의 사정을 몰랐던 건 총학생회도 마찬가지였다. 최창영 총학생회장도 2013년 총학생회 선거 운동 당시 <국민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디자인 도서관을 옮겨 자치공간을 확보할 생각도 했다. 그 공간을 방이 없는 동아리에게 줄 수 있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학생자치기구들은 종합복지관 2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디자인도서관이 이전되면 학생자치공간으로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계속 해서 피력한 바 있다. 하지만 학교 본부는 묵묵부답이었다. 특히 김명균 관리처장은 학생들의 수차례에 걸친 협의 요구에도 “소통은 가능하지만 협의는 어렵다”는 입장을 내보인 상태다. 현재 종합복지관 204호 디자인도서관이 있었던 자리에는 평생교육원 강의실과 무용홀이 들어섰다.


필로티를 모두 막고 새로운 공간을 확보한 종합복지관 4층에도 학생자치공간은 없었다. 이 자리에는 평생교육원, 교수학습개발센터, 장애 학생지원센터가 들어섰다. 원래 복지관 3층에 위치했던 장애학생지원 센터가 4층으로 올라왔고 그 자리는 평생교육원 강의실로 대체됐다. 원래 생활관에 있던 교수학습개발센터도 복지관 4층으로 옮겨왔다. 


한편, 올 6월부터 복지관에 또 다른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유동 인구가 많은 복지관 1층에 복지시설을 전면 재배치하기 위해 8월 말까지 진행된다. 현재 1층에 있는 한식당과 교직원 식당을 확장하고 지하에 있던 생활협동조합 매장이 1층으로 올라온다. 동시에 1층에 위치했던 동아리방들은 지하 1층, 3층으로 분산돼 이동한다. 


최희윤 동연 회장은 “동아리가 이동하면서 보는 피해는 학교 측에 보상해달라 요구했다.”고 밝혔고, 동연 성명서 발표 이후 학교 태도 변화를 묻는 질문에 “(학교와) 나름대로 협의 과정이 생겼다. 개선의 여지가 생긴 셈이다.”라고 답했다. 


(2) 성곡도서관: 도서관 리모델링 부작용 드러나 

열람실 좌석 수 줄고·소음 문제 말썽






성곡도서관은 공간 재배치와 리모델링을 두 달 가량 진행해 지난 2월 24일 개관했다. 디자인도서관은 성곡도서관 열람동 4층으로 이전했고, 지하 자료동에 있던 (시험기간) 24시간 열람실이 보존서고로 바뀌었다. 열람동 지하에 있던 도서관 매점은 성곡라운지와 24시간 열람실 겸용 공간으로 전환됐다. 리모델링으로 인해 깔끔해진 내부디자인은 학우들의 호평을 얻었다. 


한편, 현재 운영 중인 지하 24시간 열람실 역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기존에 휴게실로 이용됐던 자리에 자동문을 설치하고 19시 전까지는 성곡라운지, 19시 이후에는 열람 공간으로 사용된다고 공고돼 있지만 잘 지켜지고 있지 않는 실정이다. 81석을 열람 좌석으로 간주하기에는 무리라는 거다. 


최근 옴부즈 오피스에는 “들어와서 음식 먹고 떠들면 기존(휴게실)이랑 뭐가 다른가. 리모델링 이후 매점 자리가 열람실로 바뀐 것을 학생들이 보고 인지할만한 안내문이 있어야 한다”는 요지의 항의글이 올라왔다. 


이에 성곡도서관 열람팀은 “기존 24시간 열람실의 이용률이 저조해 기존 지하매점을 24시간 열람공간으로 사용하게 됐다. 19시 이후에는 면학분위기 조성을 위한 홍보문구를 부착하겠다.”고 답했지만 매점이랑 연결돼 음식물 섭취가 가능한 공간에서 면학분위기 조성이 가능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한편, 리모델링 이후 눈에 띄게 줄어든 2층 열람실 좌석 수 부족에 대해서 열람팀은 “기존 열람석이 빽빽하게 비치돼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게 나타나 건강에 유해하고 쾌적하지 않다는 민원이 많이 발생됐다. 열람석간 간격을 넉넉히 해 계획된 공간”이라고 답했다. 



(3) 신공학관·생활관: 쌍용 법정관리로 공사 중단돼 

쌍용 건설 수의 계약 문제 떠올라









신 공학관·도서관 공사는 지난 2012년 7월 시작됐다. 2014년 7월이 완공일로 지하 2층~지상 5층, 지하 1층~지상 5층 건물 2개가 신축된다. 한편, 2013년 5월부터 공사가 진행된 정릉기숙사는 학군단이 사용 하는 건물 부근에 위치해있다. 2014년 11월이 완공일이다.


하지만 신축 공사들의 완공이 예정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1월 초부터 3월 21일까지 2달이 넘도록 공사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쌍용 건설은 경영 상황이 어려워져 작년 6월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경영난이 지속돼 12월 초 전국의 쌍용건설 사업장이 공사 중단 위기를 맞았다. 결국 쌍용 건설은 12월 30일 법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이 여파로 신 공학관·도서관, 정릉기숙사 신축 공사가 중단된 것이다. 공사 대금을 받지 못한 공사 현장 하청 업체들은 유치권을 행사한다는 현수막을 내걸며 2달이 넘도록 공사 현장을 그대로 방치했다. 


쌍용건설 회생절차가 개시되고 하청 업체들과 협의가 이뤄지며 공사는 재개됐지만, 쌍용 건설 수의 계약 문제가 떠올랐다. 학교 본부와 쌍용 건설 측은 이번 신축 공사에 대해 경쟁 입찰을 통해 이뤄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교 건물 공사는 늘 쌍용 건설이 수주했기에 공개 입찰이 있었지만, 이는 요식행위에 불과하고 사실상 수의계약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한편, 쌍용 건설 관계자는 “이번 신 공학관·도서관 공사와 정릉기숙사 공사는 경쟁입찰이었다.”고 밝혔지만, 예정 완공일에 완공이 이뤄질 수 있냐는 질문에는 “시설팀이랑 논의 중이다. 답변 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답변을 회피했다. 한편, 완공일에 대해 시설팀은 “홈페이지를 참고해달라. 그 이상은 대답해 줄 수 없다.”라고 말했으나 홈페이지 어디에서도 완공일에 대한 정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글·취재 | 김선영 기자 syoung9924@gmail.com

편집 |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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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 신입기자 공모 합격자 기사] ② 장애인에 대한 배려, 얼마나 돼있을까?

국민저널 기사 2013.10.22 09:30

[2013-2 신입기자 공모 합격자 기사] 

독자 여러분께 <국민저널>의 미래를 소개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 얼마나 돼있을까?  


<국민저널>이 신입기자를 뽑을 때면 몇 가지 빼먹지 않고 묻는 질문들이 있다. 일단 적잖은 사람들이 헷갈려하는 부분, "우리가 <국민대신문>의 자매지가 아니라 별개의 주체가 발행하는 별개의 매체인 건 알고 계시죠?" 부터, "일이 쉽지는 않을 거예요. 언론 장학금이 나오긴커녕 뛰어다니면서 알게 모르게 쓰는 돈이 만만찮을 거고, 고생은 있는대로 해도 여전히 우릴 안 좋게 보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요. 그래도 괜찮겠어요?" 까지. 일하겠다고 찾아온 사람에게 겁부터 주는 게 무슨 악취미인가 싶겠지만, 그만큼 <국민저널>에서 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고생스러움을 기꺼이 감당하겠다고 <국민저널>을 찾아 와 준 기자들이 유달리 끈끈한 유대감으로 뭉치게 되는 건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2013-2차 공모에서부터 <국민저널>은 응시자들에게 '기사를 한 편 써서 제출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응시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무엇인지, 강점과 약점은 각각 무엇이고 그래서 어떻게 육성해줘야 할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지원자들이 합격을 위해 몇 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써낸 기사들은 심사에 임한 <국민저널> 기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안겼다. 이에 우리는 기초적인 교열만을 거친 이들의 기사를 독자 여러분께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앞으로의 <국민저널>을 이끌어 갈 새 얼굴들을 소개하게 되어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하다. 


국민대학교 안팎을 향해 힘차게 뻗어 나가는 세 기자들의 행보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린다. 



‘장애인 배려석’ 표시, 은유적으로 바꾸고 장애인을 위한 시설 마련돼야


졸업생 최조훈 (건축학과 05)씨는 볼 일이 있어 성곡도서관 열람실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그가 놀란 이유는 파란 바탕 위에 흰색 글씨로 쓰여 있는 ‘장애인 배려석’이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그는 “저렇게 눈에 띄는 스티커로 ‘이 자리에 앉는 사람은 장애인’이라는 것을 드러내니 저 같아도 절대 앉고 싶지 않네요. 특히 휠체어 탄 장애인 같은 경우, 비장애인과 똑같은 책걸상을 주면 휠체어 크기 때문에 사용하는데 지장이 많을 거 같아요.”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성곡도서관에서 23년을 근무했다는 A씨는 “이제까지 휠체어 타고 다니는 학생들은 거의 못 봤어요. 오더라도 혼자 오지 않고 항상 누군가와 같이 왔던 걸로 기억합니다.”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장애인을 위한 책 배달 서비스 같은 것도 이루어지느냐는 질문에는 “책 배달 서비스는 교수 등에게만 이루어지지 학생에게는 이루어지지 않아요. 제가 알기에는 친구나 다른 사람이 책을 빌려주러 오는 걸로 알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법학도서관은 어떨까? 법학관 지하 1층에 위치한 법학도서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도서 검색대, 책상과 의자마다 노란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장애인을 위한 ‘배려석’이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다른 비장애인 자리와 구조적인 차이는 없다. 휠체어를 위한 공간 배려나 탈거치대 등이 없는 무늬만 장애인 배려석이다. 게다가 법학도서관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계단으로 내려가야 하지만, 계단 외에 엘리베이터 시설이나 리프트 시설은 따로 없다. 엘리베이터 시설이 마련되어 있는 성곡도서관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화장실 또한 마찬가지이다. 1층 로비에 장애인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는 성곡도서관과 달리 법학도서관 주위에는 장애인용 화장실이 없다.


종합복지관 내 2층 디자인도서관의 경우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디자인도서관의 경우 성곡도서관과 법학도서관에 그나마 존재하는 장애인을 위한 배려석 표시조차 없다. 당연히 그들을 위해 마련된 시설도 없다. 또한, 장애인용 엘리베이터가 있기는 하지만 층별로 다르게 운행되거나 아예 도착하지 않는 층도 있어 이용에 불편함을 겪을 수밖에 없다. 2층 디자인도서관으로 곧장 들어오기 위해서는 지하주차장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장애인용 화장실의 경우 복지관 4층에 마련되어 있지만 2층에서 다시 올라가는 것은 번거롭다. 또한 4층 장애인용 화장실은 사용한 지 오래됐는지 관리 상태가 엉망이었다. 쓰레기가 쌓여있고 변기에는 찌든 때가 묻어 있었으며 바닥과 벽면에는 흙발자국이 있었다.


앞서 지적했듯, 장애인석을 표시한 문구도 문제가 많다. 건축가를 꿈꾸기 때문에 삶의 방식에 관심이 많다는 최조훈씨 또한 이를 지적 한다. “이런 직접적이고 강렬한 스티커보다는 장애인 자리임을 알려주면서도,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봤을 때 부담스럽지 않고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픽토그램(특정 대상이나 행위를 그림이나 아이콘처럼 나타내 누구나 알 수 있게 만든 기호)으로 나타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제3조에 따르면 시설주는 장애인이 학교 등의 시설을 이용함에 있어 가능한 최단거리로 이동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학내 도서관의 경우 성곡도서관을 제외하고는 편의시설이 전부 갖춰져 있다고 하더라도 도서관에서 멀리 떨어진 경우가 대다수이다. 또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들의 휠체어에 맞출 수 있는 시설이나 구조물이 설치된 곳도 없다.


장애인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를 보면, 그 사회 수준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장애인 배려석, 겉으로 보기엔 장애인을 배려한 ‘좋은 좌석’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을 위한 실질적인 시설이나 장치의 설치도 없이 생색내기용 스티커만 붙여놓은 것은 ‘나쁜 좌석’이다. 그 스티커와 문구 자체가 적나라해 장애인들이 위축 되고 그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국민대에 있는 장애인 학우들을 위한 ‘실질적인’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취재·글/ 김혜미 hyeme1992@naver.com

편집/ 국민저널 편집국 kmujourna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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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만든 서가] Happily ever after 이후의 삶 - 장강명 《표백》




한국에는 '열심히 하면 언젠가 잘 될 거야'라는 이름의 종교가 있다이 종교는 다수의 신자들을 거느리고 있으며그들은 저마다 자신이 어떤 고난의 길을 거쳐 해당 종교의 신과 영접했는지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다이 종교는 '도무지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성취감' '주어진 시련에 당당히 맞서 자신의 꿈을 이룬 용기'를 복음으로 제시한다해당 종교의 경전은 출간되자마자 전국 서점에 깔리고 세대 구분 없이 소비된다.

 

포교 방식은 다양하고 논리적이다신도들은 입시취업아파트라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세공한 욕망에 기댄다. ‘큰 꿈을 가져라’ 혹은 ‘자신이 진짜로 바라는 것이 뭔지 알고 그것만을 향해 가라는 말씀과 ‘조금만 눈을 낮춰 중소기업에도 취직하라’, ‘20대는 열정으로도 먹고 살 수 있으니 괜찮다는 말씀을 모두 품은 하나의 종교, 나는 이보다 무서운 종교를 본 일이 없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신앙심이 깊은 사람이 있으면 그 맞은 편엔 회의주의자 또한 존재하기 마련이다이 회의주의자들은 종교에 의문을 제기하다가 대개 무신론 혹은 비관주의로 빠지거나자신을 지배해줄 다른 종교를 찾아 나선다장강명 작가의 소설 《표백》은 20대인 주인공들이 빠지고만 다른 종교를 이야기한다그들이 빠진 종교는 '내가 발버둥쳐봐야 세상은 바뀌지 않아'이다.

 

"이 사회에서 내가 가진 조건들로 그걸 이뤄낼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지나뿐 아니라 우리 세대 모든 젊은이가 그래그렇게 계속 삶을 유지하는 게 자살하는 것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란 걸 알아그렇다고 삶을 선택해야 해? (중략새로운 담론을 제기할 수조차 없는 환경은 우리 세대의 가치관에도 영향을 미친다이른바 표백 세대의 등장이다."

 

'표백 세대'. 무엇도 다 삼키는 거대하고 새하얀 세상에 돌을 던져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에 마주한 세대소설 《표백》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청년들을 '88만원 세대'가 아닌 '표백 세대'라고 정의한다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도 이전 세대가 이룩한 것보다 더 나은 삶을 이룩할 수 없다.

 

현재 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20대는아니 고도의 압축 성장을 이룬 대부분의 사회에 살고 있는 청년들은 극소수의 선택된 사람이 아닌 이상 자신의 부모 세대가 누린 수준의 삶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못할 공산이 크다이는 예언이 아닌 통계다양질의 졸업자는 넘쳐나는 반면 그들을 수용할 일자리가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고대 설화 속 영웅의 탄생에도 법칙이 있듯비천한 곳에서 탄생해 경제성장이라는 조력자를 만난 우리 시대의 영웅들은 태평성대를 이루고 현재 한국사회의 단물을 향유하고 있다이들은 영웅이 된 자신의 DNA를 물려받은 아들딸들은 자신보다 좀 더 위대한 길을 걸을 거라 생각한다자신보다 훨씬 좋은 환경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영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Happily ever after' 이후에 영웅의 삶보다 못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이 사회에서 내가 가진 조건들로

그걸 이뤄낼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지.

나뿐 아니라 우리 세대 모든 젊은이가 그래.

그렇게 계속 삶을 유지하는 게

자살하는 것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란 걸 알아.

그렇다고 삶을 선택해야 해? 



소설 《표백》 속의 청년들은 우리 세대가 이루지 못할 '영웅적 삶'에 집단 자살이란 폭력적인 방식으로 균열을 내고자 한다집단자살공모의 중심에는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여자 '세연'과 자살을 예고하는 인터넷 사이트 '와이 두 유 리브 닷컴(whydoyoulive.com)'이 있다자살을 행하려는 사람들은 ‘와이 두 유 리브 닷컴에 유서를 작성한 뒤예고한 날짜에 ‘의식을 치른다그리고 너무도 평범해 영웅을 꿈꿀 생각조차 없어 보이는 주인공은 번번이 과거 자신과 집단자살공모를 계획했던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한다승자가 될 수 없다면아무리 돌을 던져도 모두 삼켜버리는 표백의 세상을 고발하는 하나의 거대한 상징적인 사건 그 자체가 되면 된다.

 

허나 우습게도 그렇게 집단자살만을 향해 달려온 소설 속 주인공은 결국 죽음을 포기한다. 《표백》은 스스로 시작한 '집단자살공모로라도 표백의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픈 젊은이들'이란 이야기에 대해 명징한 해결책을 주는 대신 생경한 결말을 독자에게 안겨주고 마침표를 찍는다. 어쩌면 누군가는 책장을 덮으며 다소 허탈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너도 시대가 요구하는 영웅이 되라'고 등을 떠미는 세상의 부추김이나, 장엄하고 극단적인 결말을 맺길 원하는 죽음의 충동 그 어느 쪽에도 휘둘리지 않은 채, 살아갈 이유를 찾기로 한 주인공의 선택을 존중할 수는 있을 것이다. 세상은 승리하든 패배해서 죽음을 택하든, 굽히지 않고 자신의 길을 선택한 이들을 영웅으로 기록한다. 'Happily ever after'로 끝나는 것이 아닌, 그 이후의 길고 지리한 삶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기로 한 주인공은, 어쨌든 자신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조금은 더 성장했다.





표백
(2011)

장강명

*2011년 한겨레문학상 당선작

 

(클릭하시면 상세 도서정보로 연결됩니다.) 


한겨레출판(2011)

811.36 장11ㅍ

 

 

/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편집/ 이승한 에디터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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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만든 서가] 살고 싶으면 친절한 게 좋단다 - 장마르크 로셰트 外 <설국열차>


스포일러 경고: 영화 <설국열차>와 원작 그래픽 노블 <설국열차>의 내용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결코 멈추지 않는 열차가 영원한 겨울의 광활한 백색 세상을 지구 이편에서 저편 끝까지 가로지른다. 바로 1001량의 설국열차다. 문명의 마지막 보루!

 

오직 죽음만을 기다리는 열차 안에서 과연 정의롭고 친절한 사람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여기서 살아남는다는 건 육체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그렇다는 걸 의미한다. 이 글은 앞선 질문으로 시작해 그럴 수 없다는 결론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는 식물인간이나 뇌사 상태에 빠진 사람이 죽음과 삶 사이에 남아있다고 간주한다. 육체는 지상에 붙어 있지만 정신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선, 그들은 이미 삶의 경계 밖에 있다.

 

지금은 당연한 듯 누리고 있는 자유가 일순간에 사라지게 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아비규환이 찾아온다. 영화 <설국열차>의 말미, 커티스는 열차 가장 앞 엔진칸의 문턱까지 향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행했고 목격했던 아비규환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뿐이다. 커티스가 지나왔다던 아비규환의 흔적은 커티스의 회고로밖에는 확인할 길이 없다. 관객들은 오로지 커티스의 말을 듣고 그 폭동을 상상할 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완벽하게 모든 걸 털어놓을 만큼 정리된 커티스의 기억은 현재가 아닌, 반성할만한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혼자 사유하고 정리하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회는 적어도 굴러가는 열차 꼬리칸 내에서는 사치다. 원작 그래픽 노블 <설국열차>의 도입부, 꼬리칸 안에서 일흔 살 생일을 맞이한 노인은 잠시만 혼자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사람들은 노인의 부탁을 들어줬고, 혼자 남게 된 노인은 그제야 열차 천장에 목을 매단다. 살아있다는 게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시공간 속에서는 남겨질 역사도 기대할 삶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지금의 인류 같은 인격이 유지될 수 있다는 건 너무 큰 기대일지 모른다.

 

그래픽 노블 <설국열차>는 이 지점을 중심에 두고 서술한다. 인격을 갖출 환경이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은 각자 열차 속에서 생활하기 가장 적합한 인류를 만들어 나간다. 섹스에 탐닉하고 종교만으로 살아가거나, 자기 앞에 놓인 생을 처리하느라 분주하다. 원작 <설국열차> 1부의 주인공 프롤로프는 꼬리칸에서 맨 앞칸까지 1001량의 열차를 거치게 된다. 고난을 겪으며 끝에서 끝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그는 영화의 주인공 커티스의 전신으로 추정되지만, 프롤로프는 커티스처럼 정의롭지도 친절하지도 않다.

 

프롤로프를 구해 주려던 앞칸 여자 아들린은, 곤경에 처한 자신을 구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프롤로프의 행동 앞에서 분노에 찬 눈물을 흘린다. 그녀가 있던 앞칸에서처럼 위기에 처한 여자를 구해줄 일말의 남성적 책임감이라는 게 존재하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프롤로프는 앞칸까지 향하며 인간보단 동물에 더 가깝게 행동한다. 꼬리칸을 보지 못하고 자란 아들린은 프롤로프를 이해할 수 없다. 생존을 위한 치열함으로 가득 찼던 꼬리칸에서는, 어쩌면 지금의 인류가 지닌 친절 같은 건 무의미해진 게 아닐까.

 

앞칸에 도착한 프롤로프는 기계실을 지키는 노인을 발견한다. 가벼운 농담과 압도적인 권위를 보이던 영화 속 윌포드는 원작에 없다. 대신 열차 뒷칸과 의사소통이 단절돼 홀로 남아 기계에게 말을 걸기에 이른 노인만이 있을 뿐이다. 노인은 자신의 사후에도 열차가 달릴 수 있게 프롤로프에게 기계를 맡긴다. 다시 꼬리칸으로 돌아갈 이유도, 별다른 선택도 없었던 프롤로프는 이를 받아들인다.

 

아트 슈피겔만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경험한 자신의 아버지를 토대로 그린 그래픽 노블 <>에서, 아버지는 아트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살고 싶으면 친절한 게 좋단다!” 지옥에서 살아남은 아버지는 분명 대단한 존재지만, 아트는 아버지가 가스실에서 죽어나간 다른 유대인보다는 운이 좋았다고 기록한다. 마치 생존을 점지하는 여러 상황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친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사람들의 친절이나 정의는 이 시대를 살아남기 위한 진화의 산물이다. 고도의 문명과 규율로 지탱되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친절과 정의는 생존을 담보하는 도구가 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것이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사회에서, 친절과 정의는 그 힘을 잃는다. 영화 <설국열차>의 커티스는 열차의 꼬리칸에서 생존하기에 지나치게 친절하고 정의롭다.

 

 

 





설국열차
Le Transperneige
(1984-2000)

장마르크 로셰트 
Jean-Marc Rochette
쟈끄 로브 Jacques Lob
벵자맹 르그랑 Benjamin LeG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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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문화연구(2009)
808.90944 로54ㅅ 


 

 

/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편집/ 이승한 에디터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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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月]학교본부, 법대에서 ‘밥대’를 꿈꾸나?

국민저널 기사/FOCUS 2013.05.24 12:16

[5]학교본부, 법대에서 밥대를 꿈꾸나?

 

법과대 학생회 골든타임

법학관 식당 확장 계획 폭로

이에 반대 의견 잇달아

 

 

절대 용인하지 않겠습니다. 지난 22, ‘골든타임은 페이스북에 학교본부의 법고연 이전 및 식당 청향의 확장 추진 사실을 알렸다. <출처=법과대학 학생회 골든타임페이스북 계정>

 

지난 22일 오후 우리학교 법과대 학생회 골든타임페이스북 계정에 학장님과의 면담 결과 보고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법과대 학생회는 이 글에서 학교 본부가 법학관 서쪽 5층에 있는 법대고시연구실(이하 법고연)과 열람실을 생활관 등 다른 건물로 이전한 뒤 같은 건물 동쪽 5층에 있는 고급식당 청향을 확장하려 한다고 밝혔다. 또한, 현재 법학관 서쪽 지하 1층에 있는 법학도서관을 성곡도서관 증축 공사가 마무리되면 그곳으로 옮기고 기존의 법학관 학생식당인 한울식당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알렸다.

 

이에 법과대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대 학우들이 댓글을 달며 학교 본부의 계획에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학생 A씨는 입에 들어가는 게 머리 넣는 것보다 좋다고 하는 윗사람들의 심보가 궁금하다며 본부의 일방적 행태를 비판했고, 이 밖에도 법대가 밥대되겠다” “동양 최대 식당이 되겠다등 냉소 섞인 반응이 확인됐다.

 

 

확장 논란의 중심인 청향 지난 23일 오후 5시경, 하루 영업을 종료한 유리문 내부의 청향은 한산해 보인다. <서울=국민저널/구본철 수습기자>

 

법과대 교수회의서도 반대 표명

학생회 강행하면 물리적 대응도 고려

 

법과대 학생회장 강우진(공법08)씨는 법과대 학장이 분명하게 수용 불가 방침을 정했다법고연 이전과 청향 식당 확대가 현실화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법과대학 내부 시설에 대해 법과대학의 책임자인 학장이 거부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으니 일단 학교에서도 무리하게 추진하기에는 조심스러울 것으로 내다봤다. 학교 측의 법학관 식당 확장 계획이 드러나면서, 비단 학생들뿐만 아니라 법과대 교수회의에서도 반대 견해를 같이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강우진 법과대 학생회장은 학교가 계획을 강행하면 서명 운동, 성명서 발표 등과 함께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저지하겠다고 앞으로 대응 방안을 밝혔다.

 

학교의 불도저식밀어붙이기에

법과대 학생들 우려 증폭돼

 

이번 사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법과대 학생들의 우려는 누구보다도 더 크다. 법고연 실장 갈현주(공법10)씨는 단지 식당을 확장하려고 학생들의 학습 공간을 없애는 학교가 학생을 위한 학교인지 모르겠다며 학교의 처사에 불만을 표했다. 일각에서는 학생들의 관심이 낮아지는 방학기간을 이용해서 학교가 공사에 들어가지 않을까 염려하는 한편 학생과 소통 없는 일방적인 학교의 업무 추진 행태를 꼬집기도 했다.

 

 

취재/ 구본철 수습기자 sheva767@naver.com

정리/ 최용우 기자 julyte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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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만든 서가]갑(甲)질의 추억 - 나쓰메 소세키 <나의 개인주의>




“어째서 제가 근거도 없이 그걸 좇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선배도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럼 바꿀 수도 있잖아요.”

그는 안경 너머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막사회테두리에 진입한 그는어른의 목소리와 말투로 내게 말했다. 넌 너무 철이 없다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른다고. 그건원래부터 그런 거라고. 그는 말을 멈추고 웃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사회에 나가면 지금처럼 윗사람한테 눈 똑바로 뜨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거야. 알아듣니?”

나는 말로도 사람을 때릴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실로 오랜만에, 이념 싸움 없이도 모두가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일들이 연달아 터졌다. P사 임원 기내식 라면 사건, P제과업체 회장 폭행 사건, N유업 폭언으로 이어지는 3대 갑()질은갑을(甲乙) 사회논의에 종지부를 찍었다.

 

객관적인 악한을 설정해 하나로 뭉쳐 단죄하며 누리는 자기충족적 쾌감 때문인지.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헌법의 기본 정신에 따라서인지. 키보드 앞, 냉장고 속 우유 앞에서의 정의구현이 각계각층에서 실현되고 있다. ‘저희는 N유업 우유를 팔지 않습니다.’라는 신속한 입장표명이 온 동네 마트들을 뒤덮는 한편, 표준계약서의이라는 표기마저 없어진다고 한다. 이리도 아찔한 속도로 정의가 구현되는 나라에서 그동안 갑을 관계는 대체 어떻게 유지되어 온 걸까.

 

누가 봐도 분명한 악을 설정하고 돌을 던지는 건 쉽다. 그것이 자신의 정의나 선을 드러낼 수 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들어 척결 대상으로 거듭난 갑질은 매혹적인 절대악이다. 우리 중 대부분은 살면서 한번쯤은 갑의 갑질 앞에 서러웠던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니, 절대불변의 악인 갑에 대한 을의 투쟁은 만인의 동의를 구하기 수월하다.

 

그러나 갑과 을은 생각처럼 그리 명쾌하게 나뉘지 않는다. 갑과 을을 설정하고 나면 그 속에서 갑과 을은 다시 무한소수로 쪼개져 상대를 달리해 갑질할 대상을 찾아낸다. 직장에서 한바탕 당한 을이 가정에 들어서자마자 군림하는 갑이 되는 상황은 얼마나 흔한가. N유업 폭언 사건만 봐도 갑은 힘들이지 않고 을 혹은 병()에게 자신의 업무를 가중시킨다. 이 무간지옥은 을이 병을, 병이 다시 정()을 착취하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갑과 을은 늘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다.

 

따라서기내에선 진상을 피우지 말자’, ‘그 제과업체가 망했다더라’, ‘정의를 위해 마시던 우유를 버리자는 말들은 오로지 해프닝으로 소모될 뿐, 어떤 방식으로도 충족될 수 없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갑질을 향한 소모적인 싸움을 계속해야 할까.

 

“원래 의무를 수반하지 않은 권력이라는 형태가 세상에 있을 리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높은 단상 위에서 여러분을 내려다보며 1시간이나 2시간 동안 내가 말하는 것을 정숙하게 듣기를 요구할 권리를 보유한 이상 내 쪽에서도 여러분을 정숙하게 할 만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4,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학습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나의 개인주의>라는 주제의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높은 위치에 오른 사람들이 자칫 남용할 수 있는 권력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상에 올라 자기 멋대로 떠들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을 때 이를 남용하지 말고,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나의 개인주의>에서 발췌한 문장은 권력을 지닌 자인이 어때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1914년의 강연에서는 단상 위에 서 있는 소세키가 갑이고 그의 강연을 듣는 학생들이 을이다. 권력자 갑에게 부여된 모든 권력은 언제나 피권력자 을에 대한 의무를 수반한다. 무한한 의무를 진 갑이 동등한 견지에서 을의 의향을 살피는 형태의 소통은 인간을 유토피아적 평등으로 이끈다.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펼쳐지는 갑질의 무간지옥은 갑에게 의무를 지우지 않는다. 이 무간지옥은더러우면 출세하면 된다는 성공 신화를 동력으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이 짓을 모두 때려치우고 갑을 따끔하게 단죄하고픈 을의 무한한 욕망, 언젠간 자신도 갑의 위치로 올라서고 싶은 욕망으로 이룩된 신화 말이다.

 

을은 의무 없는 권력을 가진 갑을 탐하고, 의무를 방기한 권력은 그를 아무렇게나 행동할 수 있도록 이끈다. 을은 눈을 감고 병이나 정에게 자신의 권력을 행사한다. 이 질서는 너무도 편안해서 짐짓원래부터 그런 것이었다는 말들과나도 저렇게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을들의 은밀한 욕망 속에 은폐된다. 소세키는 말한다. “의무를 수반하지 않은 권력이라는 형태가 세상에 있을 리 없다고.

 

지금은 당연한 듯 분개하고 이야기되는 평등의 역사는 매우 짧다. 불평등은 인간 역사를 이룬 가장 오래 지속되던 상식 중 하나였다. 한때원래부터 그런세상의 원리였던 불평등은철없는이들이 꿈꾼 유토피아적 평등에 대한 갈망과,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이들의 오랜 세월의 투쟁 끝에 청산해야 할사회악으로 강등됐다. 세상에 원래부터 그런 건 사실 아무것도 없다.

 


 





 

나의 개인주의 私の個人主義

나쓰메 소세키 夏目漱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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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2004) 813.45 하351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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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만든 서가]요조는 굶주려본 적이 없다 -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부끄럼 많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인간의 죽음이라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우주가 여기저기서 죽어가는 데 뭇사람들은 그 우주를 곧잘 소비해내더군요. 뉴스로 지하철 안에서 커피숍에서 정말이지 잘도 떠들어댔습니다. 등록금을 내지 못해 건물에서 떨어진 대학생 혹은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벌다가 고용주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자살한 학생까지.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들을 소비하고 죽였습니다. 제가 그들의 몫을 빼앗았고 그들의 죽음을 수수방관했습니다.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많은 것을 요구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외려 아주 단순한 것입니다. 죽은 자들이 저를 보며 손가락질하고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습니다
. 생계와 관련된 일들에는 도무지 관심이라는 게 없었으니까요. 그 은수저를 등 뒤로 감추고 살고 싶었습니다. 대학에 와서 문학을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잔인한 현실조차 문학이라는 틀을 한 번 거치고 나면 으레 아름답게 여겨지기 마련입니다. 보고 읽고 쓰고 동정했습니다만 그것도 그뿐, 문학 속의 현실이 제 삶은 아니었으므로. 저는 은수저를 움켜쥘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저를 떨어트릴 순간부터 시작될 불행 ―온정을 베풀 수 있는 인간적인 삶을 져버릴 것이다. 이 나락의 연쇄―을 잠을 설치도록 두려워한 탓이겠지요. 물고 있던 은수저가 떨어지면 나도, 그리고 내 삶도 같이 떨어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루는 집회에 나갔습니다
. 높은 대학 등록금 액수에 항의하는 그런 집회였습니다만 그곳에서조차 저는 관찰자 신세였습니다. 새벽 2시 서울 종로 한복판에는 취객들, 경찰들, 그리고 기자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많이들 모여 있더군요.

멍하니 경찰의 23차 경고를 관망하고 있던 저에게 기자들 무리 중 누군가가 어느 신문 아무개라며 다가왔습니다. 대학생이시죠? 등록금은 얼마나 내고 계신가요? 대학생으로서 이런 방식의 시위를 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반값 등록금이라는 게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기자의 질문에 많은 시간을 들여 답을 해주었습니다. 기자는 수첩 빼곡히 제 대답을 적더군요. 하지만 그날의 불행은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있었습니다. 등록금은 어떤 방법으로 버시나요? 순간의 정적이 흘렀습니다. 거리 저 끝에서는 많은 수의 경찰들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전액 대주시기 때문에 저는 사실 반값 등록금이 필요 없습니다. 반값 등록금 시위의 정당성을 떠들어 댄 이후였습니다. 거기서 저는 그렇게 공포하고 말았습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기자의 얼굴에는 약간의 조소가 흘렀습니다. , 그렇군요. 그녀는 마지막 답변을 적지 않고 수첩을 덮더니, 마침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습니다.

, 그렇군요. 저에게는 드러누운 학생 무리에 낄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바닥에 엎드려 소리치고 울던 학생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이 상대해야 할 대상은 경찰이 아닌 바로 저 같은 사람들입니다!

 

 

저는 끝끝내 아주 망가지지는 못할 겁니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아주 망가져 버릴 수 없다는 두려움에 근거하니까요.

 

 

저는 끝끝내 아주 망가지지는 못할 겁니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아주 망가져 버릴 수 없다는 두려움에 근거하니까요. 인간실격의 요조는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수기가 끝날 때까지 그는 단 한 번도 배고파 본 적이 없습니다. 밥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에 근거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요조는 이 일을 미신으로 치부하고 싶어 합니다. 가족들은 마치 괴물 같다며 가족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건만 그들이 보내준 돈이 아니면 생존할 수 없는 모순에 대해, 요조는 어쩌면 의연하고 싶었던 겁니다. 요조는 가난에 대한 희미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고 진술하나 그럼에도 경멸심이 없다고 결백하게 말했습니다.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가난은 요조에게 자신을 경멸할 기회를 준 적이 없었으니까요.

아버님이 이제 안 계신다. 내 마음에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던 그 그립고도 무서운 존재가 이젠 안 계시다. 제 고뇌의 항아리가 텅 빈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제 고뇌의 항아리가 공연히 무거웠던 것은 아버지 탓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조차 들었습니다.” 수기 내내 아버지는 절대적 존재이자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며 죽고 나서도 아버지로 상징되는 자본이 요조의 머리 위를 배회합니다. ‘돈 떨어지는 날이 인연 끊어지는 날이란 말이야.

요조의 창조주이자 그와 가장 가까운 분신인 다자이 오사무가 행했던 5번의 걸친 자살 시도의 원인 역시 그의 친가와 자유로울 수 없을 겁니다. 다자이가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접하며 느낀 어찌할 수 없는 죄책감이 하나의 근원일 테지만 병약한 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자살하는 수밖에요.


 

 



 


인간실격
人間失格

다자이 오사무 太宰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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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문화사(1995) 813.35 태72

문예(2003) 813.36 태7281

을유문화사(2004) 813.35 태72

을유문화사(2009) 813.36 태72ㅅ2

민음사(2010) 808.8 세1438

시공사(2010) 813.35 태72

 

 

 

글/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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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만든 서가]멘토 권하는 사회-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당신을 이렇게 위로하려고 애쓰는 이 사람이 당신에게 가끔 위안이 되는 소박하고 조용한 말이나 하면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의 인생 역시 많은 어려움과 슬픔을 지니고 있으며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뒤처져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 사람이 그러한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여기 당신을 위한 최고의 자기계발서가 있다. 저자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인이고, 몇 세대에 걸쳐 회자되고 있을 뿐 아니라, 당신에게 진심 어린 위로와 적당한 조언을 해줄 줄도 안다. 물론 햇병아리 멘티들에게 친필로 정성스런 편지를 쓰는 것 정도는 기본이다. 어느 스타강사 왈, 저자의 지혜가 300페이지 안에 농축된 책이 자기계발서라고 하니 이 책은 더할 나위 없다. 100페이지면 완독이 가능한 이 책은 당신의 소중한 시간까지 절약해 준다. 이보다 더 근사한 자기 계발서가 또 어디 있으랴. 멘토가 이쯤 했는데도 그 지혜를 받아먹을 수 없다면, 애석하게도 그건 모두 게으른 멘티인 당신 탓이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시인 지망생이었던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가모순 혹은 장미꽃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게 받은 편지 10편을 묶어 출간되었다. 물론 사적인 편지가 이렇게 수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팔리는 건 릴케의 의도가 아니었겠지만. 카푸스는 책의 서문을 통해 문학청년들이 릴케의 조언을 귀담아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왜 아니겠는가? 릴케 역시 어려운 인생을 살아왔고, 시인으로 성공했다. 그에게는 조언할 수 있는 자격이 충분히 주어진다. 이제 그의 인생을 흡수해 100페이지의 지혜로 녹여내는 일만 남았다.

작년 한해 한국인의 정신건강 및 보건복지에 힘쓴 청춘 멘토들의 조언과 힐링은 정확히 이런 과정을 거친다. 한국인이 열망하는 객관적 성공 - 대개 매우 힘든 과정이었노라고 회자되는 - 을 거친 멘토들은, 취업을 목전에 둔 20대를 향해 자기 이야기를 들려줬다.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꿈을 가졌고, 이를 얼마나 열망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끝내 어떻게 획득할 수 있었는지. 20, 혹은 청춘으로 호명되는 잠정적인 청년 멘티들이 과연 멘토들과 같은 삶을 살고 싶어하는가는 그리 고려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열망하는 삶이야말로 바람직한 삶이기 때문이란다.

그들의 멘토링이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구조적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멘토들은 온갖 어려움을 딛고 성공했으며, 다른 이들을 도와주고자 기꺼이 손을 내미는 진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진심만으로 청춘의 현실을 막아낼 수 없었다. 진심도 일단은 잘 팔려야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진심을 이야기할 기회를 살 수 있었다. 다수의 멘티를 거느린 대부분의 멘토들은 멘티 한 명 한 명에게 감정이입하기에는 진심을 파느라 너무 바빴고, 그들이 만났던 청춘 또한 불행히도 모든 청춘을 대변할 수 없었다.

하지만 릴케의 편지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자기계발과는 조금 다르게 읽힌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릴케가 카푸스에게 보낸 편지로만 이루어져 있지만, 카푸스가 릴케에게 자신의 습작 시들을 보내지 않았다면 존재할 수 없었다. 릴케는 카푸스의 편지들을 읽으며 불특정 다수의 멘티가 아닌 카푸스라는 개인을 보았고, 그의 시에 손수 답변을 달아주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충고하고 당신을 도울 수 없습니다.’

 

위로의 방식은

대개 자기 발에 꼭 맞는 대상과의

교류를 통해 이루어진다.

 

릴케는 카푸스의 삶에 자신의 발을 담그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청년기의 자기 자신을 다루듯 카푸스의 편지에 답했던 것이다. 릴케의 독려, 혹은 카푸스를 향한 질문도 사실은 과거 릴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릴케가 열 편의 편지에서 언급한 고독은 카푸스보다 자신의 생이 더 뒤처져있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조언자의 배려다. 위로의 방식은 대개 자기 발에 꼭 맞는 대상과의 교류를 통해 이루어진다. 릴케는 자신이 먼저 걸어간 길을 카푸스가 좀 더 나은 모습으로 걸어주길 바랐다.

물론 그의 편지가 카푸스를 구할 수는 없었다. 카푸스는 릴케와의 서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자신이 원하지 않던 길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그는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글을 써야만 하는지 물어야 한다는 릴케의 조언에 성실히 답했다. 그는 통속 소설가로 이름을 알리고 평생 글을 쓰는 생을 택한다.

이 책을 집어들 당신에게 릴케는 성실히 답해줄 것이다. 어쩌면 가장 훌륭한 자기계발서일지도 모른다. 단 당신이 시인이라는 직업을 열망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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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렌즈
 (2005)

836.912 823
 

고려대학교출판부 (2006)

836.912 823

 

기파랑 (2012)

836.912 823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편집/이승한 에디터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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