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토르의 돈암라이프] 난 외롭지 않아, 내 곁엔 늘 음식이 함께 있거든 - 뚜레곱창

국민저널 기사 2013.12.02 10:30

왜 사람들은 여대생 대부분이 포크로 파스타면을 돌돌 말아 한 입에 쏙 넣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할까요? 물론 여대 주변을 둘러보면 양 적고 느끼한 음식을 파는 곳이 도처에 널려있긴 합니다만, 우리는 경험상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미취학 아동시절부터 50대 아저씨 입맛을 자랑했던 '여대생 서토르'가 [서토르의 돈암라이프]를 통해 조금은 색다른 음식으로 여러분을 찾아가겠습니다. 양 적고 느끼한 요리가 아니라 푸짐하고 얼큰한 요리들입니다. 더불어 이 글로 인해 남학우들이 여대에 품고 있는 환상들이 '콰쾅ㅇ쾅콰오'하는 소리를 내며 깨지길 바랍니다.


난 외롭지 않아, 내 곁엔 늘 음식이 함께 있거든 - 뚜레곱창 


친구가 실연의 아픔을 겪었다. 과제에 치여 한동안 연락을 못했더니, 그새 사람을 만나고 헤어졌단다. 뭐라도 사줄 테니 학교 앞으로 오라고 불렀다. 친구 좋은 게 뭔가. 이럴 때 소주라도 한 잔 사줘야지. 그리고 소주엔 역시 막창이다.



쫄깃쫄깃한 막창

소주에 곱창이 아니라 막창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은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곱창보다는 막창이 좋다. 쫄깃쫄깃해 씹는 맛이 나기 때문이다. 물론 덜 익히거나 지나치게 익히면, 고무를 씹는 건지 음식을 씹는 건지 분간이 안 갈 때가 있다. 냄새를 못 잡으면 어떻고? 물론 오늘 갈 가게는 두 조건을 다 충족시키니 걱정은 접어둬도 된다.


 


▲뚜레곱창. 가게이름을 처음 봤을 때 김꽃두레가 생각났다.




▲오뎅탕 아니고 어묵탕. 김혜자 할머니의 맛이 느껴진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양념막창 2인분을 주문했다. 밑반찬으로 어묵탕이 나왔다. 날이 추웠던 터라 몸을 녹이려고 얼른 뜨거운 국물을 먹었다. 다시다 맛만 난다. 국물은 포기하고 어묵만 골라먹자 친구가 물거품으로 끝난 자신의 연애사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자기보다 몇 살 많은 사람이다. 어느 학교에 다닌다. 몇 학년이다. 이런 인적사항부터 시작해서 둘이 어디에서 만났고 뭘 하다 친해졌는지,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경청했다. 그런데 어쩐지 들으면 들을수록 익숙한 냄새가 났다. 킁킁, 여기 호구 냄새 안나요? 




▲보라, 저 윤기를. 말이 필요 없다.


…가 아니라 양념막창이 오는 냄새였다. 드디어 나왔다. 바로 먹어도 된다고 해서 입에 집어넣었다. 숯불로 초벌구이를 했는지 숯불향이 약하게 났다. 양념에서 새콤달콤한 맛이 느껴진다. 초장이 들어간 모양이다. 쫄깃한 게,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다.


일용할 양식을 몇 점 음미하고 친구에게 잔소리를 했다. 도대체 넌 정신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널 아껴주는 사람을 만나도 모자랄 판에 왜 그런 사람을 만나냐?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어떡해? 나중엔 분에 못 이겨 “동네 사람들, 여기 와서 호구 좀 구경해보세요!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네. 여기 23년 산 호구가 있습니다!” 라고 외치기까지 했다.



연애? 포기하면 편해

한바탕 욕을 하고 나니 막창이 지글지글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타면 안 되니 불을 낮추고 젓가락을 바삐 움직였다. 막창을 질겅질겅 씹으며 간간히 그 놈과 친구를 싸잡아 씹고, 친구의 변명도 듣고, 변명 따윈 집어치우라고 다시 친구를 욕했다. 친구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며 이젠 더 이상 연애에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괜찮은 사람이 있을까? 아니, 괜찮은 사람과 만날 수 있긴 한 걸까?”


평소라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솔직히 말하면 뺨을 맞을 것 같아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적절한 말을 고르고 골랐다.


“포기하면 편해.”


내려놓으면 번뇌할 일도 없다. 애욕을 버리지 못해 혼자임을 한탄하고, 사랑을 갈구하며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니, 온갖 걱정근심을 끌어안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누굴 만나도 만족하지 못할 게 뻔하다. 왜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는 걸까?


그러나 역효과가 났다. 오히려 연애의 정당성을 설파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서양 선교사들의 개신교 전파를 듣는 원주민의 심정으로 사랑하는 느낌, 사랑받는 느낌, 행복함, 쾌락 따위를 들었다. 온 몸으로 지루함을 표현하자 친구가 내게 일침을 날렸다.


“야, 봐봐. 너는 성욕 대신 식욕이 엄청나잖아. 너는 욕망을 버린 게 아니라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고 있는 거야.”


우리는 사람 많은 데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쌍욕 배틀을 벌였다.




▲볶음밥. 제 때 나오지 않았다면 가게 안에서 서로 멱살잡이를 했을 것이다.



티격태격하면서 볶음밥까지 먹을 건 다 먹었다. 계산을 하는데 먼저 나가 있는 애 뒷모습을 보니 영 기운이 없다. 등을 툭 치면서 다음번엔 좀 괜찮은 사람을 만나라는 말만 했다. 위로가 됐을지는 잘 모르겠다.


서토르 weselson@gmail.com


<저작권자(c)자치언론네트워크.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서토르의 돈암라이프] 태조감자국 - 아버지뻘인 감자탕집

  옛말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다. <국민저널>은 성북구에 위치한 이웃, 성신여자대학교 자치언론 <성신 퍼블리카>와 함께 백지장을 맞들어 보기로 했다. 서로의 콘텐츠를 나누고, 급한 소식들은 공유하며 함께 자치언론의 역량을 쌓아보기로. 그렇게 뜻을 모은 두 매체는 "자치언론네트워크"라는 연대체를 만들었다. 그 첫 번째 결과로 <국민저널>의 기사 [최통장의 정릉라이프]가 <성신 퍼블리카> 지면에 실렸고, <성신 퍼블리카>는 [서토르의 돈암라이프]를 보내왔다. 성북구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닮은 듯 다른 두 칼럼, 첫 협력의 결과물을 부디 즐겨주시길. 



왜 사람들은 여대생 대부분이 포크로 파스타면을 돌돌 말아 한 입에 쏙 넣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할까요? 물론 여대 주변을 둘러보면 양 적고 느끼한 음식을 파는 곳이 도처에 널려있긴 합니다만, 우리는 경험상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미취학 아동시절부터 50대 아저씨 입맛을 자랑했던 '여대생 서토르'가 [서토르의 돈암라이프]를 통해 조금은 색다른 음식으로 여러분을 찾아가겠습니다. 양 적고 느끼한 요리가 아니라 푸짐하고 얼큰한 요리들입니다. 더불어 이 글로 인해 남학우들이 여대에 품고 있는 환상들이 '콰쾅ㅇ쾅콰오'하는 소리를 내며 깨지길 바랍니다. 



 아버지뻘인 감자탕집 - < 태조감자국 >  



날이 부쩍 추워졌다. 친구 두 명과 같이 시험공부를 하다 도서관을 나오며 팔을 쓸어내렸다. 어디 추위뿐인가. 요새 공부하느라 잠을 불규칙하게 잤더니 속도 쓰리다. 정문으로 내려오자 어떤 남자가 ‘남친존’(남자 사람이 성신여대에 다니는 여자 친구를 기다리는 장소: 각주)에서 어정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시험기간인데도 데이트를 할 여유가 있는 모양이다. 친구들과 눈이 마주친 건 순간이었다. 눈빛에서 추위와 속 쓰림과 외로움, 그리고 서로에 대한 연민이 느껴진다. 그 사실을 깨닫자 이대로 집에 갈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받은 우리의 몸과 영혼을 치유하는 일이 시급하다. 

 "야, 감자탕 먹으러 갈래?"



파스타보다 감자탕이 좋은데요


가끔 학교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어떤 선입견을 마주하곤 한다. “여대니까 미팅이나 소개팅 많이 하죠?”, 혹은 "여대 사람들은 파스타 많이 먹죠?"라는 질문들이 그렇다.   


 단언컨대 미팅과 소개팅은 부익부 빈익빈이 적용되는 영역이며, 모든 여대생이 파스타를 좋아해서 일주일에 두세 번씩 먹는 것도 아니다. 밤샘 후에 먹는 해장국이 일품인 것은 성별을 가리지 않거늘 왜 그런 선입견을 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여러분이 여대에 가진 환상을 와장창 깨기 위해 감자탕으로 메뉴를 정했습니다. 




▲환상을 파괴하기 위해 선택한 태조감자국. 1958년부터 3대째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오늘 갈 곳은 돈암제일시장에 있는 ‘태조감자국’이다. 여기 말고도 얼마 전 가게를 옮기기 전까지 나란히 붙어 있던 ‘황해옥 감자탕’ 집도 유명하다. 두 가게 모두 TV에 몇 번 나왔을 정도로 잘 알려진 곳이라 저녁이면 사람들이 바글바글 들어찬다. ‘태조감자국’엔 6시 전에 도착했지만 벌써 가게 안에 손님들이 반 정도 찼다. 7시가 넘으면 기다려서 들어가야 하니, 바로 들어가고 싶다면 그 전에 가길 권한다. 



참이슬 후레ㅅ…가 아니라 사이다 주세요


보통 다른 가게에서는 ‘소-중-대-특대’로 양을 조절한다. 태조는 여느 곳과는 달리 ‘좋다-최고다-무진장-혹시나’로 양을 정한다.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3명이 먹기엔 ‘무진장’이 적당하다고 한다.  


 음식을 주문하자 아주머니가 “술은 뭐로 줄까?”라고 물었다. 하마터면 참이슬 후레쉬를 달라고 할 뻔했다. 매번 공부를 안 해서 학점이 엉망이긴 하지만 시험기간에 술을 마시지 않을 정도의 양심은 남아있다. 아쉽지만 소주 대신 사이다를 시켰다. 




▲‘무진장’은 大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런지 크고 아름답다.



감자탕이 나오기 전엔 밑반찬이 나온다. 구성은 단순하다. 깍두기와 고추, 양파, 쌈장이 전부다. 깍두기를 몇 개 집어먹으며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다 보니 감자탕이 나왔다. 곧 국물이 끓기 시작했다. 성질이 급한 우리는 수제비와 당면이 채 익기도 전에 깻잎을 젓가락으로 건졌다. 건져 먹었다. 고기에 적당히 간이 밸 즈음, 각자 접시에 고기를 덜었다. 깻잎에 발라낸 살코기를 싸서 입에 넣고, 쫀득쫀득한 수제비와 깍두기를 한 입 베어 물면……. 아, 아까 소주 시킬 걸 그랬나.  




▲살이 가득 차 있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고기를 먹어 치우니 저절로 ‘힐링’되는 기분이다. 하지만 고작 고기 몇 조각 먹었다고 끝난 게 아니다. 모름지기 ‘-탕’으로 끝나는 음식은 마지막에 밥을 볶아먹어야 하는 법. 그래야 어디 가서 감자탕을 제대로 먹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밥을 볶아먹지 않는 것은 감자탕을 모욕하는 행위다. 



대부분 음식점이 그러하듯 이곳도 특별한 재료를 이용해 밥을 볶진 않는다. 조금 남은 감자탕 국물에 밥과 잘게 썬 김치, 김, 참기름이 전부다. 잠시 약한 불에 두자 밥이 눌어붙기 시작한다. 눌어붙은 밥은 또 숟가락으로 싹싹 긁어먹어야 제 맛이다. 


밥을 다 먹고 텁텁한 입을 사이다로 헹구며 머릿속을 셈을 해봤다. 한 사람당 약 8,000원을 내면 된다. 중요한 것은 감자탕 大자 크기와 사이다 두 병을 먹는 사치를 부렸는데도 이 가격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좀 전까지 느꼈던 열패감은 사라지고, 셋 모두 괜히 기분이 좋아 배를 두들기며 가게를 나섰다. 



서토르 weselson@gmail.com 


<저작권자(c)자치언론네트워크.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