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 2015년 3월] 기사로 말하겠습니다.

[Editorial] 기사로 말하겠습니다.

 

“혜미씨, 편집국장 할 생각 없어요?” 이 말을 들은 건 지난 늦여름쯤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습니다. 그 자리를 감당하기엔 능력이 부족하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기자가 되겠다고 <국민저널>에 지원했을 때만 해도 전 아직 언론학 개론서는 펴보지도 못해 기초부터 배워야 했던 사람이니, 가당치 않은 자리라 생각했던 겁니다.


상식적으로 어느 조직이든 ‘수장’의 자리에 올라간다는 것은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능력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고, 조직의 이름으로 행해진 모든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기에 이 자리는 실수나 부족, 잘 몰랐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습니다. 내부에서 수많은 회의를 거친다고 해도 최종결정권자의 단 한 번의 그릇된 판단은 구성원들에게 큰 피해를 끼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결정으로 인한 결과는 불행히도 대부분 바꿀 수 없습니다.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는 옛 말처럼, 한 조직의 수장이 된다는 것은 끊임없이 무게를 견디고 버티는 일인 것입니다.


통상 임기보다 짧은 기간 동안만 편집국장을 맡겠다고 자리에 오른 지 3개월, 국민대학교엔 많은 일들이 숨 쉴 틈 없이 터져 나왔습니다. 작년 12월 익명의 기고를 통해 <국민저널> 인터넷 판에 실렸던 단톡방 사건부터, 경상대 이전 반대 투쟁과 등록금 동결까지.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스스로를 자책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모든 보도에 최선을 다 했습니다만 충분했는지는 의문입니다. 다만 단톡방 사건도, 경상대 이전도, 등록금 협상도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톡방 내에서 언어 성희롱을 주도했던 최고참 선배는 그 방의 ‘수장’이었고, 경상대 이전을 구성원의 동의 없이 결정하려 했던 이도 학교의 ‘수장’이었으며, 등록금 협상에서 학교 측의 논리를 되풀이했던 것 역시 학생들의 ‘대표’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제 머리를 짓누르는 편집국장 직의 무게에 신음하며, 저는 그들이 자신들의 머리 위에 올린 왕관의 무게를 생각했는지 생각합니다. 제가 쓴 왕관이 상징하는 바는 <국민저널>이 지켜야 할, 그리고 지키고자 하는 ‘성역 없는 보도,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매체’라는 원칙을 어떤 일이 있어도 타협하지 말라는 점이겠지요. <국민저널>이 원칙을 잘 지키고 있는지는 저희 스스로와 독자 여러분들만이 알 수 있을 겁니다. 기사로 말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질책 부탁 드립니다.



김혜미 편집국장 hyeme199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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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톡방 언어성폭력 사건] 1.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언론

국민저널 기사 2015.02.26 05:37

[단톡방 언어성폭력 사건] 1.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언론

 

사건은 익명의 기고글에서 시작됐다. 작년 12<국민저널>선배들의 아찔한 음담패설이라는 제목의 기고가 실렸다. 모 학과 소모임 단체카톡방에서 같은 학과 여학생을 상대로 입에 담기 어려운 정도의 음담패설이 있었다고 고발하는 글이었다. 그 표현이 폭력적일뿐만 아니라 노골적이고 적나라해 학내에서 큰 논란이 됐다. 음담패설을 주도한 학생들은 큰 비판을 받았고 단체카톡방 내부에서도 기고문 이후 관련 발언이 줄어들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인터넷 매체 여성신문으로부터 같은 사건으로 제보가 들어왔다며 연락이 온 건 지난 12일이었다. 당시 주동자들은 오히려 고발자를 비난했고 새로운 단체카톡방을 개설해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달라진 건 없었다.

 

해당 학과는 여성신문의 보도가 난 바로 다음날인 13일 오후 6시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어 사건에 대응했다. 학보사는 해당 학과에서 비상대책위원회가 열린다고 보도했고 여기서 어느 학과인지 그리고 학과 내 어떤 소모임인지가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이제 사건은 국민대 국사학과 소모임 퍼니국사의 일이 되었다. 학생처장은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석해 학교가 대외적으로 아무 것도 안했다고 알려지는 게 화가 난다. 대외 이미지가 달린 심각한 상황이기에 철저히 조사해서 엄벌에 처하겠다고 말한다.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퍼니국사의 폐쇄가 결정됐다.

 

14일 오후 7, 퍼니국사 명의의 사과문이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게시됐다. 이틀 뒤인 16일엔 다수의 매체가 여성신문의 보도를 받아썼고 곧 사건은 학교 전체의 문제가 된다. 같은 날 오후 8시 중앙운영위원회는 관련 입장을 발표했다. 중앙운영위원회의 입장을 통해 학교에서 징계위원회를 열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중운위는 이 문제를 제대로 극복하기 위해선 문제가 왜 발생한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고 사후 방지 대책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곧 문제가 국민대 학생 사회 내부로 다시 떨어졌다는 것을, 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지금부터 몇 차례에 걸쳐 <국민저널>에 실릴 기사는 이에 대한 답변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무엇이 발생했고 이 문제는 왜 발생했으며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광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상처만 남았다. 국민대학교는 언어 성폭력 당사자들이 다니는 K로 통한다. 많은 언론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며 통탄했고 그들은 특정 학교의 어느 소모임에서 같은 학과 여학우를 상대로 음담패설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물론 이것은 마땅히 보도 돼야할 사실이었다. 충분히 놀라웠고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혹은 이것이 단지 그들만의 일인지 묻지 않았다. 불행히도 많은 이들에게 이는 깊이 생각해볼만한 문제도 궁금할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 와중에 새로운 피해가 발생했다.

 

모자이크 처리 했지만 피해자 신원 드러나

라디오방송은 성추행 발언을 직접 말하도록 요구하기도


여성신문은 이번 사건을 보도하면서 카카오톡 대화창 캡처를 당사자 이름과 피해를 입은 학생사진 등에만 아주 간단히 모자이크 처리를 해 기사에 싣는다. 카카오톡 대화창이 이번 사건의 가장 핵심적인 증거자료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에 올리고 SNS에 기사가 퍼지기 시작할 때에는 피해자 얼굴의 모자이크 처리를 완벽히 하지 않았다. 카카오톡 캡처 화면은 피해를 당한 학생의 가까운 친구라면 사진으로 얼굴의 윤곽을 보고 누구인지를 알아맞히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 현재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피해자 사진이 아예 지워진 상태이다. ⓒ 여성신문


지금은 해당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피해자가 제대로 모자이크 되지 않은 사진은 지워졌지만 이미 다른 언론사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손쉽게 해당 사진을 찾아볼 수 있다. 명백히 추가적인 피해 상황이다. <국민저널>에서는 3개월 전 같은 사건을 다루면서 ‘증거자료’인 카카오톡 대화방 캡처본을 싣지 않았다. 카카오톡 대화는 충분히 다시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사진만으로는 유력한 증거자료가 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신원이 드러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로 피해자를 보호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황의수 국사학과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저널>과의 통화에서 “이번에 신원이 드러난 학생이 지인들에게 알려질까봐 걱정을 하더라. 피해자 입장에서 보도는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편 SBS 라디오 방송은 김정재 국민대 총학생회장에 인터뷰 요청을 넣으면서 소모임 단톡방에서 오간 말을 직접 라디오 인터뷰에 나와 말해줄 것을 요구했다. 김정재 총학생회장은 이에 해당 질문만 빼줄 것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인터뷰 전체가 성사되지 않았다. 김 총학생회장은 “피해 학생이 있는데 인터뷰가 가해가 될 것 같다는 위험이 있었다. 라디오에서 요구한 질문에 ‘어떤 식으로 피해를 가했는가.’가 있었고, 만일 피해 학생이 그걸 보게 되면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충분히 상처받는 상황이고”라며 라디오 인터뷰를 거절한 이유를 밝혔다. 이처럼 피해자를 중심에 놓고 추가적인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사건에서도 피해자는 간데없고 사건만 남아있었다.


‘강간 모의’ 사건이라며 기정사실화
<국민저널> 이용해 학내 취재 시도


카카오톡 단체대화방 대화 내용을 사진 그대로 올리는 한편 자극적인 언어를 사용해 사건을 왜곡하는 일도 있었다. ‘강간 모의’라는 말이 그것이다. 특정 언론이 ‘강간 모의’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사건은 별 의심 없이 카톡방에서 행한 ‘강간 모의 사건’이 됐다. 하지만 당시 등장한 대화를 살펴보면 이를 ‘강간 모의’라고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화에 구체적인 범죄 실행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언어적 성폭력’과 ‘강간 모의’는 다른 말이다. 범죄의 영역을 정확히 밝혀야 입은 피해를 보상하고 이에 따른 처벌 수위를 조정할 수 있다. 여기서 ‘강간 모의’라는 말이 가져다주는 것이 있다면 피해자들이 느끼게 될 공포와 모멸감뿐이다. 자극적인 언어로 사건을 규정짓고 판단하려한 전형적인 케이스인 셈이다.


한편, <국민저널>은 국민대학교 학생지원팀 관계자로부터 “<국민저널>이 정보를 줬다며 우리에게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다. 여성신문에 사건 관련 정보를 준 일이 있느냐”는 말을 들었고, <국민저널>은 사실 확인을 위해 연락을 취했다. 이들은 “했다고 하진 않았다. 별도의 사실 관계 차원에서 재확인을 했던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글 |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편집 | 김혜미 편집국장
hyeme199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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