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만든 서가] 시간을 견디는 일, 순간을 살아가는 일 - 신경숙 장편소설 《깊은 슬픔》



자유의지 혹은 선택의 소극적 방어기제라는 차원에서, 나는 운명을 믿는다. 어떤 선택지를 필연적으로 집어 들어야할 때, 그것을 운명이라 부른다. 실패해도 혹은 성공해도 운명이라는 이름만으로 그것은 내가 어찌해볼 수 없는, 의지 밖의 일이 되고 만다. 실패한 데에 따른 변명이나 자기 방어로 쓰이는 경우도 많지만, 이는 그럼에도 최소한의 담담함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의지로 선택한 결정 역시 이 믿음에서 예외일 수 없다.

 

많은 경우, 이 자기합리화는 도저히 손을 써볼 수 없는 사람과의 만남에서 자주 쓰인다. '그건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라고. 운명을 창조하거나 개척하는 혹자들은 한심스럽게 느낄지도 모르지만 어디 타인의 마음이 내 마음 같은가. 이 체념은 그래서 꽤 유용하다. 그리고 이 체념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작동하는 단어라면 '같이 산다'는 말이 있겠다.


나는 "같이 산다"는 말을 좋아한다. 어떤 법적 계약이나 약속으로 이뤄진 공동체, 예컨대 부부나 부모, 혹은 룸메이트가 아닌 타인이라도 자주 "같이 살고 있다"고 말하거나 부르고 싶다. '삶은 순간의 연속'이라는 낡은 명제를 돌이켜봐도 결국, 순간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같이 산다'는 말정도는 붙일 수 있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신경숙 작가의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장편 소설 《깊은 슬픔》 속에는 이렇게 만들어진 운명이 자신의 생 전체를 흔들게 내버려두는 타인이 나온다. 소설은 '이슬어지'라는 작은 고향 마을을 떠나 함께 도시로 나온 세 남녀의 사랑을 다룬다. 소설 속에 나오는 여자 '은서'는 이 운명을, 사랑을 '불가항력'이라 말한다.

 

세 남녀는 너무 오랜 시간을 함께 지냈고, 서로가 서로의 '고향'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감히 자신을 떠날 수 없을 거라, 헤어질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모질게 굴어도 '너는 나의 고향'이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 때문에, 나를 떠날 수 없을 것'이라 그렇게 말을 한다.


그들은 버려지지 않을 안락함 속에서 자신들이 속한 사랑의 적당함과 안전한 기분을 즐긴다. 절대로 자신을 떠나가지 않을 대상에게 쏟는 적당한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보며 돌이킬 수 없을 때까지 상처 입힌다. 이들은, 어쩌면 운명이라는 불가항력적인 관계에 완벽하게 매몰된다.


한 가지 것에 마음 붙이고 그 속으로 깊게 들어가 살고 싶었지.

그것에 의해 보호를 받고 싶었지.

내 마음이 가는 저이와 내가 한 사람이라고 느끼며 살고 싶었어.

늘 그러지 못해서 무서웠다.

그 무서움을 디디며 그래도 날들을 보낼 수 있었던 건

그럴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어서였지.

하지만 이제 알겠어.

그건 내가 인생에 너무 욕심을 낸 거였어.”


은서는 깊숙했던 운명을 조금씩 뱉어내고, 이를 욕심이라고 선언한다. 이들은, 결국 서로를 떠나보냈을까? 아니면 운명의 불가항력을 미리 엿보고 '어쩔 수 없다'며 이를 포기했을까소설의 결말은 명료하지만, 작가는 그 판단을 독자들에게 맡긴다. 결말이 어떻게 되든 이네들을 운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욕심이겠지만 많은 이들이 떠나거나 조금씩 비껴나는 인연에, 조급함이 가득차는 계절에, 운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에 조금 더 관대했으면. 우리는 조급함으로 끝없는 만남의 바다를 떠다니거나,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고 만다. 이것이 어쩌면 끝이라, 운명의 종말이라 생각하면서. '언제 밥 먹자'든지, '앞으로는 친구로 지내자' 같은 어떻게든 여지를 남기지만, 결국은 유효하지 못한 끝인사가 아닌, 우리는 운명이라는 든든함과 기억을 지고 계속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거다.

 

신경숙 작가는 소설 《깊은 슬픔》 서문 끝에 "힘겨운 날, 세상에 당신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사랑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던 이들에게 바친다"고 덧붙인다. 모든 관계가 뜻대로 되지 않았더라도, 한 시절 속에서 너 역시 기억할만한 순간을 함께 살았던 운명이었노라,  생각하면 그제야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저 삶을 견디는 미련한 처세술일 뿐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운명은, 어쩌면 이토록 작은 곳에 있다.







깊은 슬픔
(1994)

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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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1994)

 811.32 신146ㄱ v.1

 811.32 신146ㄱ v.2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편집이승한 에디터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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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대학교 학생자치언론 <국민저널> 웹진 <:> 동시 연재되던 [우연이 만든 서가] <국민저널> 연재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그 동안 [우연이 만든 서가]를 아껴주신 <국민저널>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의 [우연이 만든 서가]<:> daasi.net 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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