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봐서 아는데]학교로부터 겁박을 받긴 했는데 별 거 없었어

[내가 해봐서 아는데]학교로부터 겁박을 받긴 했는데 별 거 없었어


일어나면 이메일 확인하고, 그 날도 그랬다.


방학만 되면 밤낮이 바뀐다. 태생적으로 올빼미인지 아침에 반드시 일어나야할 일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밤을 지새운다. 모두가 잠든 새벽, 세상은 멈춰있기 때문에 어떠한 걱정과 근심을 잠시 내려놓는다.


평소 같으면 새벽에 잠들어서 오후 1시나 돼야 슬금슬금 일어나겠지만, 그 날은 오전 11시쯤 깼다. 정신은 몽롱했고 눈도 반쯤 잠겨 있었다. 다시 눈 감으면 바로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쨌든 몸을 일으켜 습관적으로 이메일을 확인했다. 메일로 소식지나 알림 메일을 보기 때문이다. 읽지 않은 메일은 5건이나 있었는데, 열에 아홉은 정보공개청구 결정메일이다. 내게 다량의 메일을 보낼 곳은 그 곳 뿐이다.


학교로부터 온 미심쩍은 메일, 누구냐 넌?



학교에서 보낸 긴 제목의 메일이 눈에 띄었다. 어지러운 숫자로 시작해 ‘결정내용 송부’로 마무리된 제목을 보고 미심쩍었다. 그리고 눈길이 간 ‘보낸 이 정보기획팀 송효순 과장’을 보고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메일을 보낼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는 국민대학교를 대상으로 공개청구하면 모를 수 없는 인물이다. 모든 청구가 그의 이름을 거쳐 가기 마련이다. 접수기관 담당자인 그가 속한 정보기획팀은 청구서 내용을 보고 해당하는 부서로 청구서를 이관한다. 그래서 정보기획팀이 공개청구대상이 아니면 직접 연락받을 일이 없다. 그 팀에 정보공개청구를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그 이상한 제목의 메일이 내 편지함에 들어와 있는 것인가.


문제의 메일


메일의 내용은 '공개 내용은 붙임 파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가 전부였다. 적잖이 졸았던 차에 간단하고 형식적인 내용을 보고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첨부된 파일을 열어봤다. 파일에는 학교의 입장이 들어 있었다. 한 문단이지만 세 문장으로 나눌 수 있었다. 짧고 명료한 그 글은 마음만 먹으면 한 호흡에 읽을 수 있었다. 글에는 자신의 입장 외에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학교의 태도가 보였다. 글은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로 마침표를 찍었다. 어찌됐든, 그렇다. 학교로부터 일종의 겁박을 받은 것이다.


내가 뭘 잘 못 했다고......


잠이 확 깬다는 말은 자주했지만 그때만큼 그 말이 와 닿은 순간이 없었다. 정보공개청구를 받은 학교는 여러 가지로 무척 귀찮을 것이다. 조금은 동의한다. 물론 학교가 이를 매우 성가셔하는 거야 어렴풋이, 간접적으로라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메일이 그동안의 짐작을 증명이라도 해주는 것 같아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학교는 필자에게 학교를 대상으로 한 일련의 정보공개청구를 ‘권리의 남용으로 규정’하고 앞으로 ‘필자의 어떠한 정보공개청구든지 비공개 결정처리’ 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어 학교의 명성이나 위상에 해가 되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하였다. 그들은 권리남용의 근거로 약 6개월 간 37건의 정보공개청구를 했다는 사실과 필자의 청구에 정보의 취득, 활용할 의사가 없고 단순 담당공무원(교직원)을 괴롭히려는 목적이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이게 그 문제의 붙임 파일


당황하니 헛웃음만 나왔다. 그동안 학교도 정보공개청구에 관해 필자와 같이 공부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법을 처음 알았다고 말한 교직원도 있었고 학교로 들어오는 청구 건 수가 1년에 40건을 넘지 않아 이를 처리하는 교직원의 경험도 많지 않았다. 정보공개에서 전문적이지 않은 모습을 많이 보여줬던 터라 이 메일도 그냥 겁을 주려고 보낸 겠거니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확실히 겁을 먹긴 했다. 학교의 무기한 비공개 결정처리가 정말로 무서웠다. 그럼 앞으로 정보공개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곧바로 전문기관인 정보공개센터에 문의해봤다. 전문가는 다행히 타당성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 입장, 이전에도 있었는데......


전문가는 비슷한 사례가 근래에 있다며 인천남구청 사례를 소개했다. 인천남구청은 한 청구인에 대해 4년간 매년 수 백 건의 정보공개청구를 하였기 때문에 권리를 남용했다고 자체 판단하여 2년 간 해당 청구인의 청구를 비공개 결정처리 하겠다고 통보했다. 인천남구청의 결정을 당한 청구인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진행했고 법원은 인천남구청의 결정에 법적근거가 없고 오히려 공공기관의 권리남용을 규제하려는 취지에 부합하지 않아 비공개 결정을 취소하라고 지시했다.(2015구합51228) 이 사례에 비추어볼 때 필자의 공개청구 37건에 대한 학교의 무기한 비공개 결정처리는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다가 한 번 투정부린 셈이다. 그런데 투정부린 사람을 최홍만으로 생각해봐라. 그의 투정어린 터치에 뼈가 부러질지도 모른다.


“설마 정말로 그러겠어?”라고 반신반의했지만 학교의 입장은 지금도 그대로였다. 학교의 비공개처리가 부당하다고 판단해 불복절차를 진행 중이다. 불복절차에서도 여전히 학교는 필자가 정보공개청구를 남용하고 있다며 비공개 처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정보공개청구권 행사를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제 투정을 넘어 짜증내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계속 할 건데, 웬만하면 잘 지내봐요.


ⓒ MBC예능 '무한도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말은 '그냥 앞으로도 그 정도만 해 달라.'는 권유로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생각할 뿐이다.


정보공개법이란 약칭을 가지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은 그 목적을 제1조에 명시하고 있다. 학교도 정보공개법상 공공기관에 해당하므로 학교 구성원의 입장에 맞게 글자 몇 개만 바꾸면 '이 법은 학교가 보유·관리하는 정보에 대한 학내 구성원의 공개 청구 및 학교의 공개 의무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학내 구성원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학교 운영에 대한 학내 구성원의 참여와 학교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가 정보공개법의 목적이다.


그래서 현재의 국민대학교가 정보공개법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보가 공개되면 행정(이라 쓰고 일방적 수료제도 도입, 총장선임, 대학 구조조정을 떠올린다.)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청구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 결국 청구내용이 부정확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등 비협조적인 태도를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한 번은 정보를 보기만 하고 가져가지는 말라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정보를 어디다 쓸지 모르고 정보를 왜곡할까 두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불복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하니 기분이 몹시 나쁘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지의 '[8月] 이사회가 수상하다.', '[9月]장학금 분석···교내장학금의 현 주소', '[11月]교외OT,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기사 등이 정보공개청구를 기반으로 작성된 점에서 보듯이 마냥 희망이 없지는 않다.


그런 의미에서, 부디 학교도 정보공개에 적극적으로 하라는 바람이 있다.


글 주호준 기자 joo4456@naver.com

편집 이명동 기자 lmd8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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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봐서 아는데] 국민대장정, 걸으리 살으리 마무으리!

[내가 해봐서 아는데] 국민대장정, 걸으리 살으리 마무으리!


해안가에서 장난으로 차를 태워달라는 학생들에게 어떤 할머니가 하신 대답이 기억에 남는다.

“아이고 학생들 차 태워 줄 테니, 그 젊음 나한테 좀 주소.”



ⓒ 리필 페이스북



내가 국민대장정을 신청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17박 18일을 7박 8일로 잘못 본 탓에 이 정도면 ‘충분히 걸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일주일만 버티면 되니까. 둘째, 430km를 완주하면 두둑한 현금을 주겠다는 부모님의 회유. 셋째,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한.다. 많은 것들을 결정해야 할 시기에 정해진 것도 없고 준비도 되지 않은 내 미래가 걱정스러웠다. 평소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내게 대장정은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멍청했다. 인간의 발이 걷는 기능 외에 뛰거나 달리는 기능이 있을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국민대장정을 가기 전 북악 스카이웨이 예비 행군에서 나는 오르막길과 높은 고도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내 힘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앞뒤 대원들이 나를 질질 끌고 가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사실 대장정 내내 이랬다.) 예비 행군 때부터 나는 ‘관심 대원’에 등극됐다. 걸어야 하는데 왜 걷지를 못하고, 일렬로 맞춰야 하는데 왜 줄을 맞추지 못하는지. 2팀 팀장과 기획단원은 계속 내 이름을 불렀다. 열성팬이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 이름을 계속 외치는 수준이었다. 


너무 힘들어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예비 행군 때 숨이 쉬어지지 않아 집에 갔다던 한 대원 이야기가 생각났다. 하지만 숨이 거칠 뿐 멀쩡했다.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었다. 


제주도 공항에서 보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했다. 모든 것이 잘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으나 그 기분도 정확히 10분까지였다. 공항 근처라 신호등이 많고, 또 우리가 늦게 출발했기에 계속 달리고 또 달렸다. 차라리 예비 행군 때 기절을 했어야 했다. 집에 가기 위한 명분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집에 가려고 이야기를 할 때마다 팀장이 기분 나빠 보여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거나 친구들의 만류 때문이었다. 내 친구 Y는 차만 보면 뛰어들고 싶다고 했다. 지옥의 연속이었다. 







눈을 뜨는 것이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덜 마른 머리와 퉁퉁 부운 얼굴로 침낭을 접고 텐트를 걷으면서 드는 생각은 '오늘만 살아남자'였다. 언제 집에 갈지 몰랐으니 내일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열심히 걷자’, ‘오늘도 파이팅’ 따위의 긍정적이고 귀여운 응원은 사치였다. 매일의 생존여부가 불투명했다. 아침이 되면 집에 가겠다고 이야기 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일정표에서 오늘의 거리를 확인하고 30km를 넘으면 “죽겠구나", 20km대면 “기절하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개인 정비를 마치고 기획단이 준비운동을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흡사 임종 직전의 소리들이었다. 그 뒤 대장의 선창과 대원들의 후창으로 "청춘의 열정으로 한계에 도전하라! 1팀 가자, 2팀 가자, 3팀 가자, 4팀 가자, 국민대학교 국민대장정!"을 외치면 그것이 지옥 문앞이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보폭이 좁은 여자 대원들은 남자 대원이 한 걸음 걸을 때 두 걸음으로 쫓아가고, 큰 걸음으로 걸을 때는 달려야 했다. 남자 낙오자가 한 명이라도 나오면 자신도 낙오하겠다던 남자 대원들이 한 트럭이었다. 2팀이 선두일 경우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나머지 팀들은 전력질주를 하기 때문에 S가 외치는 "정신 차려라!"는 말을 들으며 정신을 붙잡아야 했다. 



ⓒ 네이버 웹툰 '놓지마 정신줄' 


걷는데 가장 힘들었던 건 통증이었다. 발바닥은 마찰 때문에 불이 났고 다리는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오르막길이나 횡단보도나 교차로가 나오면 앞에서부터 비명이 들려왔다. 그러면 롤러코스터에 오를 때와 같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전력질주를 해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욕이 절로 나왔고 제주도의 모든 교차로와 신호등을 폭파해버리고 싶었다. '관심대원'이었기 때문에 내가 뛰기 시작하면 자동적으로 두 사람이 붙었다. 가뜩이나 뛰는 것도 느리면서 다 뛰고 나면 휘청대며 대열을 이탈했다. 


결국 걷다가 정신을 붙잡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렸다. 차에 타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느껴지건만, 그 뒤로는 죄책감이 따라온다. “차 타자”는 말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차에 탔고, 밖에서는 구호가 들리고, 대원들은 땡볕에서 걷고 있고, 우리 팀 팀장은 가방을 하나 더 짊어지고 걸어간다. 호명해 나눠줄 만큼 약 먹는 사람이 많았고, 병원에 가야할 사람이 한 줄이었다. 죄책감과 미안함 때문에 더 많이 울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하다. 행군 하는 동안에는 집에 가겠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숙영지(숙박 장소)에 도착하면 그런 마음이 눈녹듯 사라진다. 소소한 즐거움과 팀원들의 위로 덕분이었다. 해안도로에서 바다를 보며 따라 걷고(사실 대부분의 행군 동안 경치 감상은 사치였다. 나중에 사진을 보고 경치를 알 정도였으니까), 휴식처임을 알리는 텐트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던 순간들 덕분에 버텼다. 매일 찬물로 샤워하다가 한 번 따뜻한 물로 여유있게 씻고 나오는 날, 하늘에 별들이 아주 예뻐서인지 빨리 누울 수밖에 없던 날들, 한라산에서 폭풍우를 만나 텐트가 날아갈까 떨었던 날, 콜라나 사이다 한 모금에 목숨을 걸며 의리 게임을 하는 것도 모두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기획단이 외치는 “출발 오 분 전!”은 끔찍했지만, 팀원 S가 외치는 “2팀, 오늘 행군도 마무으리!”는 또 그렇게 좋았다. 본인이 걷는 것도 힘들 텐데, 맨 뒤에서 팀원들 힘내라고 H가 목이 터지라 외치는 응원구호도 좋았다.대장정 팀원들에게 구름이 잔뜩 낀 날이 좋은 날이었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은 나쁜 날이었다. 나쁜 날씨가 이어지던 날, 울면서 걷는 나에게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버티자”고 위로해주는 말 덕분에 집에 갈 수 없었다. 와서 ‘괜찮냐’고 ‘걸을 수 있느냐’고 챙겨주던 팀장과 우리 팀 기획단원 덕분에, 걸을 수 있었다. 



ⓒ 리필 페이스북 



대장정 마지막 날 우리 팀은 모두 약쟁이가 돼있었다. 약 기운으로 걷고 뛰고 달리는 상황이 이어졌다. 하지만 진통제를 너무 많이 먹어 약이 더는 듣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아예 뛰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따로 낙오팀을 만들어 뒤에서 걸었다. 나는 마지막 4일차부터 제주공항으로 향하는 마지막 날까지도 낙오팀에 있었다. 대열에 합류해 뛰지 못하고 걸어서 향하는 게 억울했지만,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제주 공항에 도착하자 실감이 났다. 완주했구나. 모자를 날리고 대원증을 던지고 가방을 내팽개쳤다. 우리 모두 하나같이 울었다. 


물론, 대장정은 끝났지만 그 여파는 현재진행형이다. J는 깁스를 풀고 최근 압박붕대를 갈았고, 체육대학도 아닌 Y는 운동선수가 자주 걸린다는 스트레스성 골절에 걸려 1주일간 입원을 해야 할 상황에 처해있다. 나 또한 근육에 이상이 생겨 약을 먹고 몇 주간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다. 우리에게는 최소 4주째 대장정이 추가로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 팀원 Y가 병실 인증샷을 보내왔다. 



우리와는 다르게 대장정이 사랑으로 찾아온 사람들도 있다. 이상형 월드컵에서 L은 D를 1순위로 뽑았다고 한다. 대장정이 끝난 뒤에도 서로를 챙겨주다가 친해진 그들은 “나도 너 좋아하고 너도 나 좋아하니 사귀자”는 L의 박력 있는 말로 그 인연을 지속했다. 물론 나에게 그 인연은 찾아오지 않았다. 다만 나만은 아니라는 것에 안도를 느낄 뿐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당연히 나와 같은 범주일 것이다. 성공 확률이 그리 높지 않으니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소중한 기회인 대장정에 이런 불순한 의도로 참여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해안가에서 장난으로 차를 태워달라는 학생들에게 한 할머니가 하신 대답이 기억에 남는다. “아이고 학생들 차 태워줄 테니, 그 젊음 나한테 좀 주소.” 할머니의 말씀처럼, 이번 10회 구호처럼, 대장정은 젊음으로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다. 그 ‘특권’을 누리고 싶은 사람은 다음 대장정에 망설이지 말고 도전해보자. 



                                                   김혜미 기자 hyeme199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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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봐서 아는데] 난 지금 시험을 치는 게 아니야, 직감에 손을 맡기는 거지

[내가 해봐서 아는데] 난 지금 시험을 치는 게 아니야, 직감에 손을 맡기는 거지


본격 기자 체험 칼럼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 두 번째, 정인훈 기자의 중간고사 일지


‘가을.’ 조용히 소리 내어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이 가슴을 울리는 계절이다. 머리 위에서 작열하던 태양은 부쩍 높아진 하늘만큼 물러나고, 코끝에 선선한 공기가 맺힌다. 적당한 바람과 구름, 햇살이 몸을 부대끼며 그려내는 저녁 석양은 그 어느 풍경보다 아름답다. 그리고 때마침 찾아온 중간고사.


이런 망할, 중간고사라니.


우리는 도대체, 왜, 하필, 계절의 아름다움이 극에 달한 순간에 중간고사를 봐야 한단 말인가. 중간고사가 끝나고 나면 가을은 저만치 도망가고 금세 겨울이 될 것을 아는데.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랬다. 어차피 가을을 제대로 즐기기는 그른 마당에, 본 기자 각 잡고 ‘중간고사’에 대한 살아있는 기록을 남긴다. 5월의 꽃 ‘예비군 훈련’ 편에 이어 근 반년 만에 돌아온 전격 기자 체험 코너, ‘내가 해봐서 아는데’ 중간고사 편이다.


금요일(1):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학생증이 망가진 학생은 처음일 텐데


아침 9시. 여느 아침과 다를 게 없지만, 어쩐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진다. 이것이 시험의 압박인가. 양치하며 오늘 해야 할 공부를 생각해 본다. ‘오늘은 월요일에 볼 과목 두 개를 끝내리라.’ 목표는 번잡하게 짜면 안 된다. 단순하고 명료하게.


이어폰을 끼고 집을 나서 전철을 탄다. 시험기간이라 그런지, 뭔가 손에 들고 보는 학생들이 많다. 스마트폰으로 웹툰과 SNS를 번갈아 보는 자신이 무안해진다. 책을 꺼내야 하나. 가방을 비스듬히 메다 말고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 “어차피 오늘 온종일 공부할 건데, 학교 가는 40분 정도는 좀 자유롭게 있어도 좋지 않을까?” 그래. 머리도 좀 쉬어줘야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법이다. 가방을 바로 메고 웹툰에 집중하고 있노라니 어느덧 학교 앞이다. 왜 이렇게 빨리 온 거지? 내가 몇 번 버스로 갈아타고 왔더라? 유달리 번개같이 흘렀지만 참 달콤한 40분이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오늘의 마지막 자유, 40분.


“오늘 밤 11시가 되기 전에는 이 문을 나서지 않으리.”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정문을 지나 오르막을 오른다. 수업보다 일찍 도착했으니, 남은 시간은 성곡도서관에서 시험을 대비해야지. 회전문을 지나 학생증을 입구 카드 리더기에 찍는다. 삑. 소리가 나야 하는데, 안 난다. 두 번, 세 번 시도해도 매한가지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공부하겠다고 도서관에 들어가려는 날 학생증이 망가진 것이다. 회전문을 돌리며 들어갈 때는 가슴 속에 포부가 가득했는데, 상황이 이러고 보니 나오는 길은 막막하기 짝이 없다. 어디로 가야 하나. 동네 도서관에라도 가야 하나? 뚜렷한 정답은 없고, 기자의 발길은 도리 없이 강의실로 향한다.


시험기간이라 그런지, 평소엔 기차 화통이라도 삶아 먹은 듯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던 이들이 정숙을 유지하고 있다. 엠씨스퀘어가 따로 없다. 그 위압감에 짓눌려 기자 또한 공부할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한다. 과연 인간의 집중력이 최고로 발휘되는 시간, 시험 기간 수업 시작 30분 전답다. 교재를 한 권 끝장내도 정말 아무런 느낌이 없을 것 같다.


중간고사가 없는 수업, 평소처럼 수업이 시작된다. 집중력을 너무 끌어 올렸던 걸까. 평소엔 귓전을 스치고 지나가던 수업 내용이 한 자 한 자 뇌리에 각인된다. 교수님의 팔의 각도, 분필의 궤적, 말씀의 템포와 쉼표의 위치까지 기억에 남는다. 누가 그랬나. 시험기간에는 벽만 쳐다봐도 재미가 꿀이라고. 시험기간엔 시험과 무관한 모든 것이 재미있다. 그렇게 즐겁게 수업을 마치고 나니, 다시 시험공부의 압박이 어깨를 짓누른다.


금요일(2):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날 묶어뒀던 교재를 벗어 던진다


학생증 때문에 못 들어간다 생각하니, 성곡도서관이 두고 온 고향처럼 그립다. 공부할 장소를 찾는 것이 급선무다. 디자인 도서관, 법학관 도서관, 북악관 열람실 등 많은 장소가 떠올랐지만, 제보에 따르면 이미 만원이 된 지 오래란다. 기자는 고민 끝에 소속 학과 자료실로 가기로 한다. 거기라면 각종 학술 서적도 있고, 답답한 도서관과는 달리 열린 공간이라 쾌적할 테다. 과연 들어서니 기자와 비슷한 목적으로 자료실을 찾은 몇몇이 정숙을 유지 중이다. 기자는 틀리지 않았다. 여기서 기필코 월요일에 볼 두 과목을 마무리하리라.



△ 학과 자료실에서 "나는 틀리지 않았다" (서울=국민저널/정인훈 기자)


30분쯤 흐르자, 무음으로 전환해 둔 스마트폰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별거 없겠지. 공부나 하자. 무슨 긴급한 연락이 왔을지 어떻게 알아? 30분에 한 번 체크는 해야 하지 않을까? 기자의 손이 자석처럼 스마트폰을 향한다. 인간은 30분 동안 얼마나 많은 말을 할 수 있는지. 그 짧은 찰나에 엄청난 양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평소라면 대충 읽고 치웠겠지만, 시험기간을 맞이한 기자의 집중력은 극에 달해 있었다. 단체 채팅방을 비롯한 모든 이야기에 성실하게 대답을 해주다 보니 벌써 30분이 흘렀다. 이러면 안 된다. 기자는 강철로 된 무지개와 같은 강한 의지로 스마트폰을 다시 뒤집어 놓고 책을 펼친다. 오늘 안으로 반드시 두 과목을 끝내야 하…아…


화들짝. 잠시 졸았다. 기자의 고개가 졸음에 겨워 넘어가는 게 안쓰러웠는지, 친구가 커피나 한 잔 마시고 오자고 제안한다. 그래, 시험기간에 이렇게 졸음을 쫓으며 친구와 나눠 마시는 커피가 또 백미다. 바쁜 와중에 잠시 짬 내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이 순간…이 왜 2시간씩이나 걸린 거지? 이상한 일이다. 그냥 커피 한 잔과 담소가 왜 2시간이나 잡아먹은 걸까. 시간은 벌써 7시. 남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다시 책에 집중한다.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온다고 한 놈은 대체 누군가. 아무리 마셔도 혈당만 치솟고 졸음은 가시질 않는다. 공부를 하는 건지 잠을 이기려는 건지 구별은 안 되지만, 어쨌든 책을 보며 세 시간을 버텼다. 그렇게 열 시가 되자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한 시간만 더 하면 ‘11시가 되기 전엔 정문을 나가지 않으리’란 목표를 채울 수 있는데. 원래 목표가 ‘월요일에 시험 볼 두 과목을 끝내는 것’이었단 건 잊은 지 오래. ‘11시에 나가면 12시에나 집에 갈 텐데,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던 기자는 무의미한 갈등에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귀가를 결단한다. 체력은 국력이다.



△ 북악관 앞이다. 저 멀리서 본부관 불빛이 보인다. 귀가하기로 결정했다. 체력은 국력이다. (서울=국민저널/정인훈 기자)


토요일: 어쩜 이렇게 하늘은 더 파란건지

오늘따라 왜 바람은 더 완벽한지


눈을 뜨니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지만 나와는 무관한 일. 스스로를 다스리며 목욕재계하고 보니, 막상 공부할 곳이 애매하다. 독서실은 너무 비싸고, 동네 도서관은 이미 중고생과 고시생으로 가득 하다는 친구의 메시지에 한숨부터 나온다. 고민 끝에 기자는 동네에서 사업하는 친구 사무실을 떠올린다. 집에서 5분 거리, 주말이니 비어있을 테다. 혼자 쓰는 사무실은 독서실이나 학교 도서관보다 좋을 것이 틀림없다. 친구에게 물으니 흔쾌히 허락한다. 기자는 삼선 슬리퍼와 편한 반바지, 목 늘어난 티셔츠 차림으로 친구 사무실로 향한다.


사무실에 들어서 종이컵에 커피를 타며, 오늘의 목표를 상기한다. ‘오늘은 기필코 월요일에 보는 첫 번째 시험을 완전히 정복한다.’ 열심히 한 시간쯤 책을 읽었을까. 텅 빈 사무실을 채우는 토요일 오전 11시의 가을 햇살이 기자의 가슴을 덥힌다. 토요일이라 그런 건지 가을이라 그런 건지. 뒤숭숭한 마음에 창밖을 보니 주말 가을 하늘은 화가 날 만큼 청명하다. 놀러 나가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오르는 그 순간, 1학기 성적이 뇌리를 스치며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는다. 다시 조용히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친다.


몇 시간여의 정적을 깬 건 꼬르륵 소리였다. 스멀스멀 피어나는 허기, 기자는 사무실 건물 1층 편의점으로 향한다. 뭐 먹을까 하는 고민은 시험을 앞둔 대학생에겐 사치다. 사온 것은 김밥과 컵라면. 시험기간엔 이렇게 먹어주는 것이 공부에 대한 예의라 배웠다. 음식을 음미할 시간 따윈 없다. 꼬르륵 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배 속에 뭔가 넣어 주는 것일 뿐. 배가 고파야 머리가 맑아진다고 하지 않던가.



△ 시험기간 동안 기자의 고정 저녁식사 이렇게 먹어주는 것이 시험에 대한 예의라 배웠다 (서울=국민저널/정인훈 기자)


저녁 7시, 슬슬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휴일의 정점, 휴일의 꽃, 휴일의 골든타임 토요일 저녁 7시. 약속을 잡으려는 친구들의 메시지가 스마트폰을 울리기 시작한다. 정녕 안 나올 거냐고 거푸 묻는 친구들의 기세가 흡사 와룡을 스카우트하려는 유비만큼 끈덕지다. 거절을 못 하는 선량한 성정의 기자는 견디다 못해 스마트폰을 뒤집어 놓는다. 좋다. 나는 유혹을 이겼다. 진동 따윈 울리지 않는다. 무음이니까. 욕은 먹어도 상처는 남지 않는다. 친구니까. 하지만 망한 시험 성적은 평생 상처로 남을 것이다. 성적이니까.


오후 9시, 집중력에도 한계가 온다. 공부엔 끝이 없다지만 이만하면 얼추 끝난 거 아닌가 하는 건방이 마음을 수놓는다. 아까 덮어 놓았던 스마트폰을 슬쩍 되돌려본다. 부재중 통화 9통, 메신저 메시지 300개. 부재중 통화야 올 사람들에게만 온 것일 테고, 메시지는 필시 친구를 모른 척한 기자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으로 점철되어 있을 테니 읽지 않고 도로 덮어둔다.


스마트폰을 덮고 텅 빈 사무실을 둘러보다가, 불현듯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나는 왜 친구들에게 욕을 먹어가며 이러고 있는가. 내 힘들었던 군 생활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헤어진 구 여친은 지금쯤 어느 하늘 아래 그 누구와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집중력은 연기처럼 흩어진다. 오늘은 그래도 많이 했다고 자신을 위안하며 짐을 챙겨 사무실을 나선다.


일요일: 이제는 책상이 난지 내가 책상인지도 몰라

책을 펴기도 전에 덮는 이런 상황은 뭔가


시험기간의 마지막 주말인 일요일이다. 오늘은 장소를 바꿔 성곡도서관을 가기로 한다. 마침 친구가 학생증을 빌려준단다. 시험기간 주말만큼은 차를 빌려 써도 좋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차키를 들고 집을 나선다. 대중교통과 환승으로 말미암을 피로 없이 깨끗한 정신으로 시험 준비를 마무리할 생각에 가슴이 부푼다. 드라이브를 시작한 지 10분, 아버지께 전화가 온다. 군대 간 동생이 휴가 나와 가족 외식이 잡혔으니 집으로 복귀하라는 전언이다. 사랑하는 동생이 휴가를 나왔다는데 어쩔 것인가. 학업에 대한 열정은 외식 메뉴에 대한 설렘으로 바뀐다.


열심히 먹고 나니 포만감과 왠지 모를 피곤함, 그리고 학교에서 공부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은 다 망했다는 불안이 밀려온다. 결국, 또 친구 사무실로 향한다. 내일이면 이 모든 게 끝이니 오늘만 힘내면 된다. 이렇게 한 시간 한 시간 채우면 되겠지. 그렇게 한 시간 한 시간을 채우다 정신을 차려보면 자다 일어난 자신을 발견한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걸까. 내가 잠을 잔 것인지 잠이 나를 잔 것인지 알 수 없다.


쓴 입맛을 다시고, 물처럼 아메리카노를 들이키며 막판 스퍼트를 붙인다. 마지막 날이니 더 물러날 도리가 없는 탓인지 아니면 터가 좋아서인지, 유독 친구 사무실에서 공부가 잘된다는 느낌이 든다. 이곳은 이제 내 개인 독서실이 될 것이다. 친구가 사무실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사업이 나날이 번창하길 기원하며, 어떻게든 월요일 시험 두 번째 과목까지 끝마친다. 금요일에 끝냈어야 할 일을 주말 내내 끌었지만, 괜찮다. 시험이 원래 다 이렇다.


시험 당일: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A인 줄 알았는데


대망의 중간고사 날 아침이다. 전철에서부터 그간 정리해둔 노트를 보면서 학교에 간다. 내가 결코 준비가 부족해서 이러는 게 아니다. 완벽한 마무리를 위한 것이다. 평소와는 달리 학교 가는 걸음마다 비장함이 뚝뚝 떨어진다.


누군가 ‘이 대학 시험기간은 언제인가’ 묻거든 눈을 들어 등굣길 학생들의 상태를 보게 하라. 평소 잔뜩 신경 쓴 신발로 패션을 추구하던 남학생들은, 시험기간엔 ‘편한 게 장땡’을 외치며 슬리퍼로 환승한다. 깔창 족들도 이때만큼은 깔창에서 내려온다. 여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메이크업 베이스-파운데이션-컨실러-콤펙트-아이셰도우-아이라이너-마스카라-립밤-미스트 순서의 정성 들인 메이크업은 없다. 오로지 CC(씨씨)크림과 야구모자만이 그들을 구원한다. 슬리퍼와 모자로 가득 찬 강의실의 풍경이 폭풍전야의 긴장감을 알려준다. 기자 또한 엄숙한 마음으로 입실한다.


교수님께서 들어오신 후 정시에 시험을 본다.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험을 포기한 이들이 하나둘씩 일어선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답지를 적고 나가는 그들의 얼굴엔 해탈한 자의 미소가 어려 있다. 기자는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답지를 제출하고 강의실을 나선다. 분명 막힘없이 쓴 것 같은데,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잘 봤다’는 확신 따윈 들지 않는다.


아무튼 홀가분하다. 어쩐지 A학점이 멀어지는 것 같긴 하지만, 끝난 건 끝난 거니까. 주말 간의 고생도 눈 녹듯 사라진 듯하다. 딱 5분 동안만. 그동안 미뤄온 산더미 같은 과제들의 존재를 자각하기 직전, 그 5분의 평화. 시험장에서 떠난 기자는 다시 노트북을 들고 과제를 할 장소를 찾아 나선다. 학생증이 망가졌으니 성곡도서관은 못 갈 것이고, 또 학과 자료실을 가야 하나. 다시 서성이는 기자의 귓전에 오래된 노래가 울려 퍼진다.


조금씩 삭아만 간다

푸르기 만한 대학생활일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간다

매일 과제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공부하며 늙고 있구나



글, 취재/ 정인훈 기자 jungihoon@hanmail.net

편집/ 이승한 에디터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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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봐서 아는데]최 병장, 8시간 동안의 호국 일기

[내가 해봐서 아는데]최 병장, 8시간 동안의 호국 일기

본격 기자 체험 자랑 칼럼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 첫 번째, 최용우 기자의 예비군 훈련 체험기

 

 

▲선배님들, 버스에 탑승하시지 말입니다 지난 2일 서울 모처에서 우리학교 학생 예비군들이 훈련장에 입소하기 위해 시내버스에 올라타고 있다. (서울=국민저널/최용우 기자)

 

5월만큼 북악에서 아름다운 달이 또 있으랴. 시험은 끝났고, 대기 중엔 봄 향기가 가득하며, 축제를 앞둔 설렘이 피부로 느껴진다. 온 캠퍼스는 초록으로 물들고, 옷장 앞에서 옷을 고를 때부터 마음가짐이 달라진 게 느껴진다. 하지만 역시 5월의 북악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행사라면, 누가 뭐라 해도 예비군 훈련이다.

 

학생예비군 훈련은 4월부터 하는데 왜 5월의 가장 큰 행사냐 묻지 마시라. 4월의 예비군과 5월의 예비군은 다르다. 4월은 아직 꽃샘추위가 옷 안으로 파고들고 극한의 일교차가 오감을 지배하는 계절. 같은 군복을 입어도 야상을 걸쳐야 하는 4월과 야상 없이도 집을 나설 수 있는 5월은 다르다. 야상을 걸치느냐 마느냐에 누적 피로도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아는 이들이라면 기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이다. 예비군은 5월이 제 맛, 5월엔 예비군인 것이다.

 

이 군복엔 슬픈 마력이 있고

이 버스엔 사람 말고 군인만 있어

 

남북관계가 경색일로를 걷고 있는 이 시기, 기자는 8시간짜리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옷장에서 오랜만에 군복을 꺼내 입고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병장 최 병장으로 거듭났다. 평소와 같은 시간의 잠을 잤음에도, 군복을 입자마자 알 수 없는 졸음이 쏟아진다. 만사가 귀찮아진다. 가까스로 집을 나와 지하철에 올라탔다. 결국 최 병장은 마치 「아이언 맨」의 슈트처럼 마력을 지닌 군복에 굴복한 채, 당고개역을 향하는 내내 지하철에서 잠을 자 버렸다.

 

도착했는지 군화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눈을 떠보니, 군복을 입은 시커먼 예비군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훈련 전에 지쳐버린 육신을 간신히 이끌고 훈련 교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싣는다. 만차가 된 버스 안을 둘러보니 승객 모두가 군복을 입고 있다. 놀라운 광경이다. 휴가·외박을 나오는 군인으로 가득 차 있는 버스에 탄 어느 할머니가 남긴 명언, “이 버스에는 사람은 없고, 군인만 있네”가 뇌리를 스친다.

 

두 정거장 뒤 예비군 교장 앞, 버스가 섰고 기사님만 홀로 남겨둔 채 예비군 모두가 하차한다. 현역 조교들과 교관(동대장*)들이 정문에서 예비군들을 반긴다. 교관이 군화, 고무링, 벨트 등 복장 점검을 한 후 2열 종대 줄을 세운다. 10여 분의 행군 끝에 연병장에서 개인 장구류를 지급받는다. 철모, 탄띠, M-16 소총 한 정. 최 병장은 휴대폰을 반납하고 8시간 동안 잠시 세상과의 연을 끊는다. 연병장 한 모퉁이에서 모든 예비군이 장구류를 지급받고 집합할 때까지 30여 분을 기다린다. 역시 대기 시간은 현역 때든, 예비군 때든 똑같이 지루하다.

 

*동대장 : 지역 최소 단위인 ‘동’에 거주하는 향토예비군을 책임지는 지휘관. 장교 또는 퇴역 군인(대위 이상) 중에 선발된다.

 

내가 못 쏜 게 아니야

내 옆에 있던 놈이 스나이퍼라서 그래

 

설렁설렁 입소식을 끝내고 첫 훈련인 사격에 나선다. 그나마 예비군 훈련 중 가장 훈련다운 사격. 올해부터 조기 퇴소제가 생겨, 훈련 과정을 평가하여 우수자는 먼저 퇴소시킨다는 교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다들 좀처럼 믿지 않는 분위기다. 사격장으로 이동한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역시 대기다. 나라를 지키려면 체력 관리는 필수, 최 병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예비군들은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잠을 청한다. 역시 예비군은 기승전잠이다.

 

드디어 최 병장의 순서가 왔다. 이미 사로에 준비가 된 총을 잡고 표적에 6발을 쐈다. 산발되어 있지만 표적지에 6발이 다 들어가 있다. ‘아직 최 병장 살아있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교관이 와 표적 검사를 하기 시작한다. 정말로 평가를 하는 거다. 교관이 최 병장의 눈을 보며 웃는다. “아시죠?” 얄짤 없는 불합격. 다음은 옆 전우, “잘 쐈네. 합격!”이라는 교관의 평가가 이어진다. 그러자 그 전우의 대답, “네, 스나이퍼입니다.” 아니, 왕년에 스나이퍼 아니었던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내가 현역 때는 말이지….

 

준장님 나를 재우시고

여성분 나를 깨우시니

 

다음 교육은 예비군 훈련의 취침시간인 정신교육 시간. 역시 내용은 언제나 일관성이 있어 좋다. 안보교육 PPT는 한 사람이 만드는지 내용도, 구성도 예전과 똑같다. 강연의 주인공은 현역 시절이었다면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던 존재인 예비역 준장. 하지만 전역한 예비군에게 준장이 대수랴. 전역과 동시에 동네 옆집 아저씨로 내 마음 속 보직 변경을 하는 게 장교요, 간부다.

 

강연이 시작된 후 강당의 가장 뒷자리에 위치한 최 병장은 불과 몇 분 만에 기적을 경험한다. 최 병장 앞자리 예비군들이 익은 벼처럼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 것이다. 흡사 모세의 지팡이 끝에서 홍해가 갈라지듯, 차례로 숙여진 고개 너머로 어느새 예비역 준장과 맨 뒷자리 예비역 병장이 눈빛 교환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날카로운 눈빛의 조교들이 깨우러 다니지만 소용없다.

 

그러나 기적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음 강연에 나타난 한 존재가, 조교들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고자 전우들의 숙여진 고개를 일으키는 기적을 행하신 것이다. 그 존재는 여자. 북한의 실태를 알리는 내용의 동영상이 강단 스크린에 뜨고, 뒤이어 8명의 새터민 여성이 토크쇼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짙은 수컷 향기가 진동하던 예비군 교장에 뜻밖의 화사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숙여져 있던 고개들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뭐야?” “여자야?” “여자 왔어?” 최 병장이 5년간 받은 예비군 안보교육 중 집중력은 최고조에 이른다. 뼛속까지 안보 정신이 충만해진다.

 

전투의 패배는 용서할 수 있어도

보급의 실패는 용서할 수 없어

 

강연 말미 교관이 꺼낸 점심 이야기에 예비군들의 집중력은 폭발한다. 자, 이번 시간이 끝나면 점심시간인데, 국민대학교는 총장님의 배려로 점심 값을 학교에서 일괄지급 했습니다. 총장님께 박수 한번 주시죠. 강당이 떠나갈 듯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온다. 이번 기적은 예비군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신 총장님께서 행하셨다. “자, 식사하러 가십시오.”라는 교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예비군들의 구보가 시작된다. 비록 군을 떠난 지 수년 됐으나, 식사에 대한 집념은 현역 못지않다. 식당으로 가던 한 전우는 넘어져 손바닥이 다 까졌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훈련 중 손실된 근육에 단백질을 제공할 고기산적과 동그랑땡, 주린 배에 포만감을 줄 양배추 샐러드, 한국인의 동반자 김치, 입맛 없는 이에게는 축복과 같은 김, 훈련으로 쌓인 피로를 한꺼번에 풀어줄 비타민이 듬뿍 담긴 과일음료, 그리고 쌀밥과 미역국. 맛이 있느냐고? 뭘 묻는가. ‘짬밥’은 일단 배를 채우고자 먹는 것이지,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배부르다”는 말이 목적 지향적 식사를 요약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배가 불렀을까? 전우들의 발길은 PX(충성클럽)로 향한다. 예비군의 베스트셀러, 아이스크림을 위해서다. 길게 늘어선 줄. 하지만 PX병의 한마디에 온 예비군이 술렁인다. “선배님들 죄송합니다. 오늘 아이스크림이 보급이 안 됐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이런 기본적인 보급조차 실패하다니,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어찌 안보를 논하고 국방을 논한단 말인가. 전투에서의 패배는 용서가 돼도, 보급의 실패는 용서할 수 없거늘.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가서 100개 사먹어야지’라는 마음을 되뇌며, 과자를 몽땅 사서 분대회식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내가 꼭 집에 일찍 가고 싶어서

‘약진 앞으로’를 외친 건 아니야

 

“선배님들,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조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느긋느긋 움직이는 예비군들을 조교들이 계속 재촉하지만 ‘배도 불렀겠다,’ 더 느긋해 보인다. 꾸역꾸역 모인 예비군들 앞에 나타난 동대장 아저씨가 오후 일정을 브리핑한다. “바로 시가지전투 훈련이 있습니다. 일명 서바이벌 게임이라고 하죠. 이 훈련이 오늘 조기 퇴소자를 선발하는 하이라이트가 될 겁니다. 선발자는 16시에 퇴소합니다. 열심히 훈련에 임해주세요.” 아직까진 “일찍 퇴소해서 뭐해.”라는 웅성거림이 대다수다.

 

시가지전투 훈련장에 들어선다. 시가지처럼 만들어 놓은 모형 훈련장이 눈에 뛴다. 동대장 아저씨가 “원래 공격조, 방어조로 나누어서 훈련을 해야 하는 데 안전문제로 공격조만 편성하여 훈련합니다.”라고 공지를 한다. 서바이벌 전용 총 한 정, 페인트탄 다섯 발을 지급받고 보호 장구를 착용한 후 훈련에 임한다. 그런데 이것 봐라. 먼저 훈련하는 분대들이 내지르는 ‘약진 앞으로’ 구호가 갈수록 커진다. 아, 조기 퇴소. 밀려오는 식곤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시크하게 굴던 예비역들의 귀가본능을 일깨운 것이다.

 

최 병장이 속한 분대 순서가 왔다. 최 병장은 자신도 모르게 ‘약진 앞으로’를 미친 듯이 내지른다. 그리고 엄청난 기동력으로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통제관이 전방에 있는 표적지를 향해 격발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전방에는 인민군 복장을 한 표적이 보인다. 오전에 있었던 안보교육 덕분인지 최 병장의 안보 의식은 이미 충만했다. 최 병장은 백발필중의 정신으로 눈앞에 있는 인민군 표적에 페인트탄 다섯 발을 원점 타격 하였다. 페인트 탄이 터지면서 인민군 표적을 물들게 한 주황빛에 최 병장은 왠지 모르게 끓어오르는 귀가본능, 아니, 애국심을 느낀다.

 

국방부 시계는 자비심이 없지 말입니다

예비역이라고 봐 드리지 않지 말입니다

 

시계바늘이 16시를 향해가고 있다. 시가지전투 훈련을 마친 전우들은 잠을 청하고 있다. 어디서든 잘 수 있는 예비군의 참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자, 조기 퇴소자를 발표하겠습니다. 호명되는 예비군은 바로 퇴소하겠습니다.”라는 동대장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진짜 하는 거야?” “아, 총 좀 잘 쏠 걸.” “1시간 일찍 가서 뭐하려고….”등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OO번 예비군, 퇴소.”, “OO번, OO번 예비군 퇴소.” 동대장 아저씨의 발표에 모두가 들썩인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함성. “5분대는 우수 분대로 분대 전원 퇴소합니다.” 현역 못지않은 5분대의 함성이 교장을 가득 메웠다. 조기 퇴소자들은 얼굴에 미소를 가득 안고, 남은 예비군들을 놀리며 정문 밖으로 나간다. 이게 뭐라고 발표 순간 은근히 기대가 되었던 건 뭐고, 조기 퇴소자가 부러운 이 심정은 또 뭔가. 사람마음 참 간사하다.

 

“남은 예비군들은 수류탄 투척 훈련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훈련장에 도착하니, 조교들이 준비되어 있던 모의 수류탄을 한 발씩 지급해 준다. 수류탄 파지법(손에 쥐는 방법) 설명을 듣고, 10여 미터 앞에 설치된 인민군 표적이 있는 박스 안에 수류탄을 던져 넣는다. 하지만 이미 전의를 상실한 예비군들이 투척한 수류탄이 들어갈 리 있나. 바로 앞에만 안 떨어지면 다행이다. 실제 전투 상황이었다면 분대 전원이 폭사해도 이상할 게 없는 거리에 모의 수류탄들이 툭툭 떨어진다. 조기 퇴소 탈락으로 멘붕에 빠진 최 병장 또한 취재가 어려울 정도로 전의를 잃은 지 오래. 적당한 거리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지만, 시간이 참 안 간다. 예비군도 군이라고, 국방부 시계는 참 느리게도 간다.

 

어느덧 17시, 1년 치 국방의 의무가 끝나가고 있다. “오늘 하루 수고하셨습니다. 연병장으로 이동하여 장구류 반납하고 퇴소하겠습니다.” 동대장 아저씨의 말에도 이제 힘이 없다. 아저씨도 참 수고가 많습니다. 연병장에 도착하니 8시간 동안 나라를 지킨 역전의 용사들이 가득 차 있다. 장구류를 반납하고 휴대폰을 돌려받는다. 옆에 있던 과 후배에게 “휴대폰 켰는데 메시지 하나도 안 와있으면 정말 비참할 것”이라 말하며 휴대폰을 켰다. 다행히 카톡(카카오톡 메시지)이 와있다. 뭔지 모를 뿌듯함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카톡 비밀번호를 풀고, 채팅창을 들여다봤다. “이런, 젠장 단톡방(단체카톡방) 메시지밖에 없다니….” 순간 내 자신이 비참해 진다.

 

훈련비로 지급받은 1만원을 들고 과 선·후배들과 끝나고 뭘 먹을지 대화를 나누며, 교장을 빠져나가는 데 머리위로 물방울이 떨어진다. 비다. “이런 젠장, 다 끝나니까 비라니, 다 끝나니까 비라니!” 훈련 할 때 좀 퍼부어 줬으면 모두가 비를 피해 잠을 청하며 체력보충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꼭 훈련을 피해 내리는 걸 보니 비조차도 5월의 꽃이 예비군 훈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5월의 꽃은 예비군 훈련이다. 꼭 기자가 8시간 구르다 와서 하는 말이 아니지 말입니다!

 

글·취재·훈련 참여/ 최용우 기자 julyten@daum.net

정리/ 이승한 에디터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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