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봐서 아는데]학교로부터 겁박을 받긴 했는데 별 거 없었어

[내가 해봐서 아는데]학교로부터 겁박을 받긴 했는데 별 거 없었어


일어나면 이메일 확인하고, 그 날도 그랬다.


방학만 되면 밤낮이 바뀐다. 태생적으로 올빼미인지 아침에 반드시 일어나야할 일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밤을 지새운다. 모두가 잠든 새벽, 세상은 멈춰있기 때문에 어떠한 걱정과 근심을 잠시 내려놓는다.


평소 같으면 새벽에 잠들어서 오후 1시나 돼야 슬금슬금 일어나겠지만, 그 날은 오전 11시쯤 깼다. 정신은 몽롱했고 눈도 반쯤 잠겨 있었다. 다시 눈 감으면 바로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쨌든 몸을 일으켜 습관적으로 이메일을 확인했다. 메일로 소식지나 알림 메일을 보기 때문이다. 읽지 않은 메일은 5건이나 있었는데, 열에 아홉은 정보공개청구 결정메일이다. 내게 다량의 메일을 보낼 곳은 그 곳 뿐이다.


학교로부터 온 미심쩍은 메일, 누구냐 넌?



학교에서 보낸 긴 제목의 메일이 눈에 띄었다. 어지러운 숫자로 시작해 ‘결정내용 송부’로 마무리된 제목을 보고 미심쩍었다. 그리고 눈길이 간 ‘보낸 이 정보기획팀 송효순 과장’을 보고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메일을 보낼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는 국민대학교를 대상으로 공개청구하면 모를 수 없는 인물이다. 모든 청구가 그의 이름을 거쳐 가기 마련이다. 접수기관 담당자인 그가 속한 정보기획팀은 청구서 내용을 보고 해당하는 부서로 청구서를 이관한다. 그래서 정보기획팀이 공개청구대상이 아니면 직접 연락받을 일이 없다. 그 팀에 정보공개청구를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그 이상한 제목의 메일이 내 편지함에 들어와 있는 것인가.


문제의 메일


메일의 내용은 '공개 내용은 붙임 파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가 전부였다. 적잖이 졸았던 차에 간단하고 형식적인 내용을 보고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첨부된 파일을 열어봤다. 파일에는 학교의 입장이 들어 있었다. 한 문단이지만 세 문장으로 나눌 수 있었다. 짧고 명료한 그 글은 마음만 먹으면 한 호흡에 읽을 수 있었다. 글에는 자신의 입장 외에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학교의 태도가 보였다. 글은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로 마침표를 찍었다. 어찌됐든, 그렇다. 학교로부터 일종의 겁박을 받은 것이다.


내가 뭘 잘 못 했다고......


잠이 확 깬다는 말은 자주했지만 그때만큼 그 말이 와 닿은 순간이 없었다. 정보공개청구를 받은 학교는 여러 가지로 무척 귀찮을 것이다. 조금은 동의한다. 물론 학교가 이를 매우 성가셔하는 거야 어렴풋이, 간접적으로라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메일이 그동안의 짐작을 증명이라도 해주는 것 같아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학교는 필자에게 학교를 대상으로 한 일련의 정보공개청구를 ‘권리의 남용으로 규정’하고 앞으로 ‘필자의 어떠한 정보공개청구든지 비공개 결정처리’ 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어 학교의 명성이나 위상에 해가 되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하였다. 그들은 권리남용의 근거로 약 6개월 간 37건의 정보공개청구를 했다는 사실과 필자의 청구에 정보의 취득, 활용할 의사가 없고 단순 담당공무원(교직원)을 괴롭히려는 목적이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이게 그 문제의 붙임 파일


당황하니 헛웃음만 나왔다. 그동안 학교도 정보공개청구에 관해 필자와 같이 공부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법을 처음 알았다고 말한 교직원도 있었고 학교로 들어오는 청구 건 수가 1년에 40건을 넘지 않아 이를 처리하는 교직원의 경험도 많지 않았다. 정보공개에서 전문적이지 않은 모습을 많이 보여줬던 터라 이 메일도 그냥 겁을 주려고 보낸 겠거니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확실히 겁을 먹긴 했다. 학교의 무기한 비공개 결정처리가 정말로 무서웠다. 그럼 앞으로 정보공개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곧바로 전문기관인 정보공개센터에 문의해봤다. 전문가는 다행히 타당성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 입장, 이전에도 있었는데......


전문가는 비슷한 사례가 근래에 있다며 인천남구청 사례를 소개했다. 인천남구청은 한 청구인에 대해 4년간 매년 수 백 건의 정보공개청구를 하였기 때문에 권리를 남용했다고 자체 판단하여 2년 간 해당 청구인의 청구를 비공개 결정처리 하겠다고 통보했다. 인천남구청의 결정을 당한 청구인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진행했고 법원은 인천남구청의 결정에 법적근거가 없고 오히려 공공기관의 권리남용을 규제하려는 취지에 부합하지 않아 비공개 결정을 취소하라고 지시했다.(2015구합51228) 이 사례에 비추어볼 때 필자의 공개청구 37건에 대한 학교의 무기한 비공개 결정처리는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다가 한 번 투정부린 셈이다. 그런데 투정부린 사람을 최홍만으로 생각해봐라. 그의 투정어린 터치에 뼈가 부러질지도 모른다.


“설마 정말로 그러겠어?”라고 반신반의했지만 학교의 입장은 지금도 그대로였다. 학교의 비공개처리가 부당하다고 판단해 불복절차를 진행 중이다. 불복절차에서도 여전히 학교는 필자가 정보공개청구를 남용하고 있다며 비공개 처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정보공개청구권 행사를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제 투정을 넘어 짜증내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계속 할 건데, 웬만하면 잘 지내봐요.


ⓒ MBC예능 '무한도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말은 '그냥 앞으로도 그 정도만 해 달라.'는 권유로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생각할 뿐이다.


정보공개법이란 약칭을 가지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은 그 목적을 제1조에 명시하고 있다. 학교도 정보공개법상 공공기관에 해당하므로 학교 구성원의 입장에 맞게 글자 몇 개만 바꾸면 '이 법은 학교가 보유·관리하는 정보에 대한 학내 구성원의 공개 청구 및 학교의 공개 의무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학내 구성원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학교 운영에 대한 학내 구성원의 참여와 학교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가 정보공개법의 목적이다.


그래서 현재의 국민대학교가 정보공개법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보가 공개되면 행정(이라 쓰고 일방적 수료제도 도입, 총장선임, 대학 구조조정을 떠올린다.)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청구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 결국 청구내용이 부정확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등 비협조적인 태도를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한 번은 정보를 보기만 하고 가져가지는 말라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정보를 어디다 쓸지 모르고 정보를 왜곡할까 두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불복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하니 기분이 몹시 나쁘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지의 '[8月] 이사회가 수상하다.', '[9月]장학금 분석···교내장학금의 현 주소', '[11月]교외OT,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기사 등이 정보공개청구를 기반으로 작성된 점에서 보듯이 마냥 희망이 없지는 않다.


그런 의미에서, 부디 학교도 정보공개에 적극적으로 하라는 바람이 있다.


글 주호준 기자 joo4456@naver.com

편집 이명동 기자 lmd8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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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즐겨찾기] 잘 먹고 싶은 혼자, 방에서 한 발자국 나와 함께 하는 식탁 ... Eat 2(To) Connect

[성북구 즐겨찾기] 잘 먹고 싶은 혼자, 방에서 한 발자국 나와 함께 하는 식탁 ... Eat 2(To) Connect 

 

최종수정 : 15.05.18 오후 12시 21분

 

증가하는 1인가구
하지만 ‘잘’ 챙겨먹지 못하는 사람들


흔히 사회로 첫 발을 내딛는 나이라 부르는 20살, 집에서 학교를 다니는 이들은 조금 이야기가 다르지만, 먼 곳에 있는 대학에 붙은 이들은 진짜로 홀로서기의 첫 발을 뗀다. 기숙사나 자취방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이유들로 방을 구하지 못한 이들은 왕복 2~3시간의 통학을 감내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오래지 않아 지쳐 결국 방을 구하게 된다. 둥지를 떠나 제 둥지를 트는 ‘혼자 살기’의 역사가 시작되는 셈이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1인가구는 26.5%, 2030년에는 32.7%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1인 가구를 타겟 삼은 가구, 집, 생활용품, 음식 등이 시장에 나온지 오래고, 이를 다룬 TV 프로그램도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이 중 1인 가구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음식’이지만, 무엇을 어떻게 먹을지에 대해서는 늘 관대해진다. 머리는 건강을 생각해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몸은 배고픔을 대충 ‘때우는’ 식사에 그친다. 즉석밥에 집에서 챙겨온 반찬을 먹는다면 그나마 잘 챙겨먹는 편이고, 후식으로 과일이라도 먹는다치면 호사인 것이다.


원룸촌에 있는 작은 공간 꿈튀기는 공작소
그 공간을 채워줄 eat 2(to) connect


ⓒ네이버 지도/'꿈 튀기는 공작소' 제공


고대보건대 정류장에서 골목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쭉 올라가면 국민대, 서경대생들이 자취하는 원룸촌이 있다. 이곳에 1인 가구를 위한 공간이 있다. 골목에서 보면 작은 카페로 보이는 이곳은 사실 보통 카페가 아니라 '꿈 튀기는 공작소(이하 꿈튀공)‘이다.


헌집을 임대, 창조 공간으로 재구성해 예술가, 활동가들에게 제공해 주는 ‘두꺼비집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꿈튀공은 정릉골의 빈집을 고쳐 재구성한 가게다. 꿈튀공은 두 번째 임차인과 보낸 시즌2를 마무리하고 시즌3을 준비 중인데, 시즌3의 문을 열어줄 새로운 집지기는 ‘eat 2(TO) connect(이하 잇투)'다.


처음 ‘잇투커넥트’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는 ‘먹음으로써 연결한다'고 이해했다. 어떤 먹을 것으로 누구를 연결하는 걸까.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성북구 7년차 주민인 잇투 소속의 김가희씨는 “잇투는 문턱 낮은 먹거리를 통해 사람과 사람, 음식과 사람, 사람과 공간 등을 연결해 준다는 뜻을 담고 있다”며 “음식과 요리가 매개체다”라고 했다.


5월 중순, 꿈 튀기는 공작소에서
새로운 도약을 할 잇투커넥트의 메뉴


김가희씨는 ‘함께 만들고 먹는 것’의 전문가다. 그는 작년 고용노동부가 주관한 ’청년사회적 기업과 육성사업‘에 선정돼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잼, 차 등 먹을 것을 마켓에서 팔기도 하고, 서울역 뒤 동자동 쪽방촌에서 4-5개월간 ’함께 만드는 밥상’, 그러니까 같이 반찬도 만들고 요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대학가 카페에서는 대학생들과 같이 요리하고 밥 먹는 활동을 했다. 그러던 도중 꿈튀공 측의 제의를 받고 정릉으로 오게 됐다고 한다.


ⓒeat 2 connect 제공


김가희씨는 잇투의 계획 포인트로 건강한 먹거리와 간식류를 꼽았다. 그는 “혼자 살면 일상의 균형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며 “건강한 삶의 방식과 요리하는 문화를 확산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인걸까. 잇투에서는 ‘신선함’이 돋보인다. 잇투는 생과일 쥬스, 과일키트, 그리고 핸드드립으로 내린 원두커피를 판매한다. 생과일 쥬스는 제철과일을 사용하고, 과일키트는 1.5인분 기준으로 진공포장을 한다. 덕분에 냉장고에 넣으면 4~5일 가량 싱싱함을 유지할 수 있다. 아쉽게도 기존에 팔던 볶음밥키트는 5월 중순부터 판매를 중단하지만, 꿈튀공에 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볶음밥키트를 다시 판매할 예정이라 한다.


추가될 메뉴와 계획도 있다. 다가올 여름에는 달콤한 팥을 직접 끓여 만든 과일빙수와 파스타도 테이크아웃 형태로 판매할 예정이다. 지역 어르신과 지역 자취생들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어르신들만의 비법이 담긴 반찬 노하우 전수하기, 같이 만들어 먹기 등 ‘같이 할 수 있는’ 활동도 구상하는 중이다.


학생들의 다양한 제안, 피드백 참고할 계획
좋은 생각이 있다면 이곳의 문을 두드려 보자


오픈 예정인 잇투에서는 대학생들의 다양한 제안을 기다리고 있다. 예를 들어 자취방에 김치가 남아도는데 처치곤란이다 싶은 학생들은 이곳의 문을 두드리면 된다. 이곳에서 ‘같이’ 해결할 수 있다. 혼자라면 감당치 못해 버려야 했던 것들을 가지고 와서 함께 밥 먹고 이야기 나눌 매개로 삼을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을 것이 있을까. 또 괜찮은 메뉴가 떠오른다면 이곳에 말하면 된다. 혹시라도 자신이 말해준 메뉴가 6월에 신메뉴로 나올 수 있으니 말이다.


동자동 쪽방촌, 정릉의 원룸촌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곳


김가희씨는 동자동 쪽방촌에 대해 이야기 했다. “동자동 쪽방촌은 집안에 부엌이 없다. 그렇기에 식사를 하기엔 경제적, 환경적으로 힘든 조건이다. 먹거리가 가장 열악한 동네다. 대신 공동부엌(서울시, 기업, 대학교가 함께 만든, 부엌과 도서관이 합쳐져 있는 형태)이 있다. 그 곳에는 마을분들이 같이 밥을 해먹는 문화, 누군가가 돌아가시면 장례를 치루는 문화가 있다. 이런 것들을 경험하고 배우기 위해서 들어갔었다”고 말했다.


동자동 쪽방촌과 정릉의 원룸촌은 1인가구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가희씨가 느꼈던 동자동 쪽방촌과 정릉의 원룸촌과의 차이점은 뭘까. 그는 “거주하는 구성원들이 달라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고 했다. “동자동 쪽방촌의 구성원은 대개 노인 1인 저소득 가구, 몸이 아파서 일을 못하시는 분들로 이루어져 있다. 정릉, 꿈튀기는 공작소 가게 근처는 초, 중, 고, 대학생들 그중 대학생 자취생들이 주를 이룬다”고 했다.


동자동 쪽방촌과 정릉 원룸촌 사이 또 다른 차이점은 공동부엌이다. 공동부엌은 요리란 것이 단순히 음식을 조리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과정 안에 대화와 사람을 포함하는 일이란 사실을 일깨워 준다. 혼자 밥을 해먹는 일은 외롭다. 자취를 해본 이라면 알겠지만, 조용한 방에서 혼자 밥을 먹다보면 들리는 소리라곤 그릇과 수저가 부딪히며 내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 입 속에서 음식을 씹는 소리 뿐이다. 숟가락 위에 밥과 반찬, 외로움까지도 쪼개 얹어 목구멍으로 꿀꺽 넘겼다. 어떨 땐 이 소리들이 듣기 싫어서 크게 티비를 틀어놓고 밥을 먹기도 했지만 혼자 식사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꿈 튀기는 공작소에서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있는 모습

ⓒeat 2 connect 제공


혼자 밥을 먹다 자취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참지김치찌개를 끓여먹었던 순간은 행복하고 든든했다. 만드는 음식의 양, 수저 갯수, 반찬의 가짓수도 늘어나 수고스러웠지만, 함께 만들고 함께 먹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건강해진다는 기분이 들었다.


밖에서 언뜻 보면 작은 카페로만 보이는 꿈 튀기는 공작소. 하지만 잇투가 지닌 ‘음식과 사람을 연결한다’는 가치는 작은 꿈튀공 가게를 가득 채울 만큼 크다. 동자동 쪽방촌의 공동부엌처럼, 친구들과 함께 찌개를 끓여먹었던 자취방처럼 말이다. 잇투는 꿈튀공에서 5월, 실험적인 모습으로 새단장 중이다. 이러한 실험들이 실현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음식에는 대화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공동 부엌처럼, ‘eat 2(To) connect'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맛나게 연결해 줄 채비를 마치고 있다.


글 취재ㅣ손인혜 기자 ssohn0912@naver.com

편집 l 김혜미 기자 hyeme199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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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즐겨찾기] You Don't know me! … 희망을 파는 돈(Don)카페

[성북구 즐겨찾기] You Don't know me! … 희망을 파는 돈(Don)카페

 

최종 수정 : 15.04.08 오후 12시 7분

 

돈(Don) 카페!
한국인과 일본인이 함께 운영하는 이 가게
분명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알고 먹자!


추적추적 비가 내렸던 날, 정석대로라면 막걸리에 파전이지만 학교에서 해야 하는 실험과제가 있어서 양심이 이끄는 곳으로 갔다.


콰이러 옆 집에 뭐 생겼대, 가볼래?


국민대 후문 언덕을 지나 콰이러 옆에 새로 생긴 돈카페. 이곳은 페이스북 ‘국민대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올라온 타코야끼 사진으로 유명해진 뒤 입소문을 타면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는 밥집이다.

 

친구와 터덜터덜 걸어 도착한 뒤 구석자리에 가방을 놓았다. 메뉴판엔 이미 먹어본 메뉴들과 처음 반기는 메뉴들이 있었다. 주문을 하고 몇 분 뒤 내가 시킨 오야코동과 친구가 시킨 노리벤동이 나왔다.



오야코동은 튀기지 않은 닭고기와 몽글몽글한 계란이 어우러져 풍미를 더했다. 양파와 생강이 느끼함을 잡아준다. 노리벤동은 밥 위에 얹힌김, 닭튀김, 돈카츠, 계란말이를 소스에 찍어 먹으면 양껏 즐길 수 있다. 살짝 느끼할 것 같으면 직원분에게 김치를 달라고 부탁하면 된다.

위에 가게는 뭐고 밑에
붙어있는 집은 또 뭘까


그러다가 궁금증이 들었다. 내가 앉아있는, 비닐하우스 같기도 가게같이 생기기도 한 정체 모를 이 곳. 도대체 뭘까? 인터뷰 약속을 잡고 8시에 다시 왔을 때 이 곳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K2인터네셔널 코리아라고 불리는 이 가게는 1989년 일본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이 곳의 직원인 코보리 모토무씨는 “돈카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소외된 청년들을 지원하고 이들의 자립을 목적으로 '다 같이 의논하고 즐기자'는 컨셉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사업은 작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닫혀있는 청년들에게 큰 세상을 열어주기 위해 시작됐다”고 말했다.


원래 이 곳은 대학가인 합정, 홍대에 가게를 둬 장사가 잘됐다고 한다. 하지만 정릉시장의 전통적인 느낌과 지역사회의 활기에 매료돼 정릉으로 옮겼다. 그는 “지역사회의 활기는 소외된 청년들, 니트족, 캥거루 족에게 주위 이웃들이 줄 수 있는 희망의 연결고리다. 이 관심들이 모여 병든 사회를 치유할 수 있다” 고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친구와 나는 여기서 (병들지는 않았지만) 고픈 배를 음식으로 치유했으니까.


덮밥과 타코야끼 그리고 정릉시장과의 만남


밥을 먹다 말고 밥 위에 얹어져있는 고추튀김이 눈에 보였다. 고추가 매울지 안 매울지, 먹을지 말지 고민했었다. 코보리 모투무씨는 “고추튀김은 한국인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의미로 넣었다”고 했다. 예의 있는 나와 친구는 고추를 먹었다.


고추를 넘어서 이 가게의 음식재료는 어디서 가져오는 걸까? 또 요리법은 어떤 걸까? 궁금해졌다. 그는 “음식의 기본 재료는 마을 활성화를 위해 정릉시장에서 구해온다”고 했다. 대신 이곳에서 구할 수 없는 마요네즈, 간장과 같은 소스 재료는 일본에서 수입해 온다. 보통 외국에서 들여오는 음식은 그 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되어 들어오기 마련인데 이곳은 기본 맛과 요리법이 본연의 것과 같다고 했다.


국대전에서 화제가 됐던 매주 주말 정릉시장에서 파는 타코야끼에 대한 궁금증도 풀렸다. 그는 “오코노미야끼의 역사는 25년, 타코야끼는 10년 정도 됐다. 일본 내에서도 인기가 좋다”고 했다. 오랜 경력과 좋은 재료에 대한 고집 그리고 과거엔 다소 어두웠던 청년들이 정성과 애정을 담아 만든 삼합의 기운이 타코야끼에 녹아 있었다.



 

학생들과의 작은 교류를 통한 소통
앞으로 특별메뉴도 추가!


이곳에는 소소한 이벤트가 있다. 직원과 팔씨름을 해서 이기면 먹은 음식값에서 500원을 빼주는 귀여운 이벤트다. 나 역시 일주일 전 친구들과 도전했지만 처참히 지고 말았다.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난 느낌이었다. 코보리 모토무씨는 “작은 교류를 통해서 국민대 학생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을 보여주는 이벤트”라고 했다. 여태까지 직원을 이긴 학생이 있냐고 물어보니 딱 2명이 있었다고 한다.

 

인터뷰는 어느새 마지막 질문은 남겨두고 있었다. 음식을 먹는 학생들은 보면 어떤 생각이 드냐는 질문에 “학생이라 그런지 즐거워 보인다. 더 친해지고 싶다”라고 했다. 그가 웃긴 가면을 쓰고 배달하는 이유도 "학생들에게 더 많이 보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앞으로 배달가방도 예쁘게 꾸밀 예정이라고 한다.


4월에 들어선 지금, 하와이풍 메뉴가 4월에만 판매된다며 꼭 먹어보라고 추천해주셨다. 5월에도 5월의 메뉴가 나오는데 그 달에만 판매된다고 한다. 기본 메뉴는 사계절 내내 동일하다. 그리고 여름, 겨울 계절별로 특별 메뉴를 추가할 예정이라고 귀띔해주셨다.


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한 끼 식사를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며 메뉴를 고른다. 나 역시 그랬고 그래서 고른 이 돈카츠에 사실 큰 의미를 두진 않았다. 하지만 인터뷰 후 돈카츠 한 그릇에 담긴 의미는 달라졌다. 누군가에게 밥 한 끼는 단순히 먹는 것에서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청년들에게는 자신의 자립, 더 나아가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청년들에게 건네는 희망의 숟갈이다. 그래서 한 그릇에 담긴 의미를 알고 먹는 밥은 왠지 더 맛있었다. 밥 한 끼에 많은 이야기를 담는 이 집, 오늘 점심 때 한 번 가보는 것은 어떨까?


취재 글ㅣ손인혜 수습기자 ssohn0912@naver.com

편집ㅣ김혜미 기자 hyeme199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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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age] 중국어로 노래하는 트라볼타, 싱그러운 젊음의 몸짓

[The Stage] 중국어로 노래하는 트라볼타, 싱그러운 젊음의 몸짓

 

중어중문학과 제 29회 원어 뮤지컬 <그리스Grease>

 

 

 

 

포마드 기름으로 빳빳이 올린 머리, 청바지와 가죽 자켓으로 무장한 그들. 뮤지컬 <그리스Grease>는 어쩌면 전형적이게도, 미국의 50년대 하이틴 문화의 향수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살짝 뻔하고 유치하기까지 한 사랑싸움까지도 사랑스럽다. 하지만 이 모든 대사가 중국어로 진행된다면? 일단 머릿속에 가늠하기 힘든 아득함이 찾아올 것이다. 중국어를 하는 존 트라볼타라니! 중어중문학과 학생들의 시작점은 바로 그곳에서부터였다.

 

꺼지지 않을 것만 같은 네온사인. 그것이 <그리스> 무대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어스름한 무대 사이로 한 줄기의 빛이 쏟아진다. 그리고 그 곳엔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한 남자가 서 있다. 그 남자가 바로 주인공 대니다. 그의 첫 등장은 극 전체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다. 흡사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케 하는 몸짓, 한 방울의 허세와 함께 벨트 버클을 잡은 시그니쳐 포즈는 은근한 섹시미를 드러낸다.

 

한국어로 옮겨 놓으면 지중해 연안의 국가 그리스와 동음이의어가 되지만, 이 작품의 제목인 그리스Grease는 50년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한 머릿기름을 말한다.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도 흥미롭다. 작곡과 대본을 맡은 짐 제이콥스와 워렌 케시 스스로가 10대 시절 머릿기름을 바르고 다니고 엘비스 프레슬리를 동경한 Greaser였기 때문이었다. 고교 시절의 자전적인 경험을 담아 쓴 <그리스>는 당대의 문제적인 작품이었다. 청소년들의 일탈, 로큰롤, 10대들의 임신, 패싸움이라는 소재는 70년대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제이콥스와 케시는 그렇게 브로드웨이에 새로운 도전과 실험의 바람을 몰고 왔다.

 

“중국어를 모르는 사람도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다”

 

70년대에 제이콥스와 케시가 있었다면, 지금 눈앞에는 중어중문학과 학생들의 새로운 도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 누구나 쉽지 않을 것이라 했고, 이미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획을 맡은 권예슬(중문, 11)씨는 담담한 모습이었다. “1학년 때 배우를 했던 학생들이 스태프로 포진되어 있어서, 그 때의 경험을 살려 극을 올리고 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실제로 ‘강독’이라는 일종의 각색을 맡은 8명의 학생들과 기획·연출은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되는 3월 이전부터 대본을 수정해왔다. 기존 공연 대본을 중국어로 직역한 다음, 문맥에 맞게 의역을 하고, 담당 교수에게 확인을 받는 과정을 모두 끝내고 나면 그때서야 캐스팅이 시작된다.

 

매년 중국 문학을 바탕으로 한 연극을 올려오다가, 올해 처음으로 뮤지컬을 시도하는 만큼 어려움도 많았을 터. 왜 뮤지컬을 선택했냐는 물음에 연출을 맡은 지해성(중문,11)씨는 “중국어를 모르는 사람이어도, ‘재미’를 느끼고 함께 교감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리스>는 50년대 청소년들의 삶과 사랑을 담은 작품이다. 첫사랑을 두근거림을 가지고 있는 샌디와 대니, 그리고 이들의 친구인 티버드파와 핑크레이디파는 함께 대중문화를 즐기고, 고민과 추억들을 공유하며 한 단계 성장한다. 주조연 사이의 미묘한 심경 변화와 반복되는 오해, 그리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도리어 그 솔직한 감정들이 오히려 풋풋하게 다가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여기에 신나는 로큰롤 음악과 복고 문화는 덤. 무대 디자인과 의상은 시대의 공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시종일관 벨트에 손을 얹고 있는 티버드파의 군무와 핑크레이디파의 다채로운 옷들은 관객의 시야를 사로잡았고 댄스경연대회 장면을 가득 채운 다채로운 복고 음악들과 춤의 향연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끼 많고 재능 있는 후배들
노련한 경험의 선배들이 이뤄낸 협업

 

1972년 초연 이후로 1980년에 막을 내리기까지 3,388회나 공연이 되었고, 전 세계 20개 이상의 나라에서 공연이 된 만큼 폭넓게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지만, 이 공연은 더욱 특별하다. 한국에서 중국어로 공연되는 미국 뮤지컬이라는 점 때문이다. 국가를 넘나드는 화려한 수식어구 만큼이나 고려해야할 부분이 많았을 터.

 

하지만 중어중문학과의 <그리스> 공연은 깔끔한 개사와 한국 정서에 맞는 적절한 각색으로 우려를 잠재웠다. 성조를 가진 중국어 특유의 운율을 통해 섬세한 감정표현들이 느껴지는 동시에,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가창력이 더해져 몰입도 높은 공연을 선보였다. 자막이 별도로 제공되었지만, 그들의 노래와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상황과 감정이 전달됐다. 조연과 주연의 구분이 필요 없을 정도로 어느 하나 소홀이 여겨지는 캐릭터가 없었고, 알맞은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도 천연덕스러웠다.

 

 

 

 

결과적으로 끼 많고 재능 있는 배우진 후배들과,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노련하게 이끌어나가는 연출 스태프진의 조화가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선후배간 교류와 학과 단합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의의를 바탕으로 좋은 공연으로 관객 앞에 설 수 있다면 더 없는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리고 중어중문학과 학생들은 실제로 그것을 해냈다.

 

공연을 준비한 이들에게 <그리스>는 무슨 의미였을까? 샌디 역의 김성지(중문,11)씨는 ‘청춘’을, 대니 역의 박민호(중문,11)는 ‘인연’이란 단어를 꼽았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 같아요. 8개월 간 다사다난한 시간들이었는데,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글, 사진 노현선 기자 sean11@kookm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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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봐서 아는데] 국민대장정, 걸으리 살으리 마무으리!

[내가 해봐서 아는데] 국민대장정, 걸으리 살으리 마무으리!


해안가에서 장난으로 차를 태워달라는 학생들에게 어떤 할머니가 하신 대답이 기억에 남는다.

“아이고 학생들 차 태워 줄 테니, 그 젊음 나한테 좀 주소.”



ⓒ 리필 페이스북



내가 국민대장정을 신청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17박 18일을 7박 8일로 잘못 본 탓에 이 정도면 ‘충분히 걸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일주일만 버티면 되니까. 둘째, 430km를 완주하면 두둑한 현금을 주겠다는 부모님의 회유. 셋째,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한.다. 많은 것들을 결정해야 할 시기에 정해진 것도 없고 준비도 되지 않은 내 미래가 걱정스러웠다. 평소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내게 대장정은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멍청했다. 인간의 발이 걷는 기능 외에 뛰거나 달리는 기능이 있을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국민대장정을 가기 전 북악 스카이웨이 예비 행군에서 나는 오르막길과 높은 고도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내 힘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앞뒤 대원들이 나를 질질 끌고 가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사실 대장정 내내 이랬다.) 예비 행군 때부터 나는 ‘관심 대원’에 등극됐다. 걸어야 하는데 왜 걷지를 못하고, 일렬로 맞춰야 하는데 왜 줄을 맞추지 못하는지. 2팀 팀장과 기획단원은 계속 내 이름을 불렀다. 열성팬이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 이름을 계속 외치는 수준이었다. 


너무 힘들어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예비 행군 때 숨이 쉬어지지 않아 집에 갔다던 한 대원 이야기가 생각났다. 하지만 숨이 거칠 뿐 멀쩡했다.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었다. 


제주도 공항에서 보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했다. 모든 것이 잘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으나 그 기분도 정확히 10분까지였다. 공항 근처라 신호등이 많고, 또 우리가 늦게 출발했기에 계속 달리고 또 달렸다. 차라리 예비 행군 때 기절을 했어야 했다. 집에 가기 위한 명분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집에 가려고 이야기를 할 때마다 팀장이 기분 나빠 보여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거나 친구들의 만류 때문이었다. 내 친구 Y는 차만 보면 뛰어들고 싶다고 했다. 지옥의 연속이었다. 







눈을 뜨는 것이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덜 마른 머리와 퉁퉁 부운 얼굴로 침낭을 접고 텐트를 걷으면서 드는 생각은 '오늘만 살아남자'였다. 언제 집에 갈지 몰랐으니 내일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열심히 걷자’, ‘오늘도 파이팅’ 따위의 긍정적이고 귀여운 응원은 사치였다. 매일의 생존여부가 불투명했다. 아침이 되면 집에 가겠다고 이야기 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일정표에서 오늘의 거리를 확인하고 30km를 넘으면 “죽겠구나", 20km대면 “기절하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개인 정비를 마치고 기획단이 준비운동을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흡사 임종 직전의 소리들이었다. 그 뒤 대장의 선창과 대원들의 후창으로 "청춘의 열정으로 한계에 도전하라! 1팀 가자, 2팀 가자, 3팀 가자, 4팀 가자, 국민대학교 국민대장정!"을 외치면 그것이 지옥 문앞이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보폭이 좁은 여자 대원들은 남자 대원이 한 걸음 걸을 때 두 걸음으로 쫓아가고, 큰 걸음으로 걸을 때는 달려야 했다. 남자 낙오자가 한 명이라도 나오면 자신도 낙오하겠다던 남자 대원들이 한 트럭이었다. 2팀이 선두일 경우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나머지 팀들은 전력질주를 하기 때문에 S가 외치는 "정신 차려라!"는 말을 들으며 정신을 붙잡아야 했다. 



ⓒ 네이버 웹툰 '놓지마 정신줄' 


걷는데 가장 힘들었던 건 통증이었다. 발바닥은 마찰 때문에 불이 났고 다리는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오르막길이나 횡단보도나 교차로가 나오면 앞에서부터 비명이 들려왔다. 그러면 롤러코스터에 오를 때와 같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전력질주를 해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욕이 절로 나왔고 제주도의 모든 교차로와 신호등을 폭파해버리고 싶었다. '관심대원'이었기 때문에 내가 뛰기 시작하면 자동적으로 두 사람이 붙었다. 가뜩이나 뛰는 것도 느리면서 다 뛰고 나면 휘청대며 대열을 이탈했다. 


결국 걷다가 정신을 붙잡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렸다. 차에 타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느껴지건만, 그 뒤로는 죄책감이 따라온다. “차 타자”는 말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차에 탔고, 밖에서는 구호가 들리고, 대원들은 땡볕에서 걷고 있고, 우리 팀 팀장은 가방을 하나 더 짊어지고 걸어간다. 호명해 나눠줄 만큼 약 먹는 사람이 많았고, 병원에 가야할 사람이 한 줄이었다. 죄책감과 미안함 때문에 더 많이 울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하다. 행군 하는 동안에는 집에 가겠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숙영지(숙박 장소)에 도착하면 그런 마음이 눈녹듯 사라진다. 소소한 즐거움과 팀원들의 위로 덕분이었다. 해안도로에서 바다를 보며 따라 걷고(사실 대부분의 행군 동안 경치 감상은 사치였다. 나중에 사진을 보고 경치를 알 정도였으니까), 휴식처임을 알리는 텐트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던 순간들 덕분에 버텼다. 매일 찬물로 샤워하다가 한 번 따뜻한 물로 여유있게 씻고 나오는 날, 하늘에 별들이 아주 예뻐서인지 빨리 누울 수밖에 없던 날들, 한라산에서 폭풍우를 만나 텐트가 날아갈까 떨었던 날, 콜라나 사이다 한 모금에 목숨을 걸며 의리 게임을 하는 것도 모두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기획단이 외치는 “출발 오 분 전!”은 끔찍했지만, 팀원 S가 외치는 “2팀, 오늘 행군도 마무으리!”는 또 그렇게 좋았다. 본인이 걷는 것도 힘들 텐데, 맨 뒤에서 팀원들 힘내라고 H가 목이 터지라 외치는 응원구호도 좋았다.대장정 팀원들에게 구름이 잔뜩 낀 날이 좋은 날이었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은 나쁜 날이었다. 나쁜 날씨가 이어지던 날, 울면서 걷는 나에게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버티자”고 위로해주는 말 덕분에 집에 갈 수 없었다. 와서 ‘괜찮냐’고 ‘걸을 수 있느냐’고 챙겨주던 팀장과 우리 팀 기획단원 덕분에, 걸을 수 있었다. 



ⓒ 리필 페이스북 



대장정 마지막 날 우리 팀은 모두 약쟁이가 돼있었다. 약 기운으로 걷고 뛰고 달리는 상황이 이어졌다. 하지만 진통제를 너무 많이 먹어 약이 더는 듣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아예 뛰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따로 낙오팀을 만들어 뒤에서 걸었다. 나는 마지막 4일차부터 제주공항으로 향하는 마지막 날까지도 낙오팀에 있었다. 대열에 합류해 뛰지 못하고 걸어서 향하는 게 억울했지만,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제주 공항에 도착하자 실감이 났다. 완주했구나. 모자를 날리고 대원증을 던지고 가방을 내팽개쳤다. 우리 모두 하나같이 울었다. 


물론, 대장정은 끝났지만 그 여파는 현재진행형이다. J는 깁스를 풀고 최근 압박붕대를 갈았고, 체육대학도 아닌 Y는 운동선수가 자주 걸린다는 스트레스성 골절에 걸려 1주일간 입원을 해야 할 상황에 처해있다. 나 또한 근육에 이상이 생겨 약을 먹고 몇 주간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다. 우리에게는 최소 4주째 대장정이 추가로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 팀원 Y가 병실 인증샷을 보내왔다. 



우리와는 다르게 대장정이 사랑으로 찾아온 사람들도 있다. 이상형 월드컵에서 L은 D를 1순위로 뽑았다고 한다. 대장정이 끝난 뒤에도 서로를 챙겨주다가 친해진 그들은 “나도 너 좋아하고 너도 나 좋아하니 사귀자”는 L의 박력 있는 말로 그 인연을 지속했다. 물론 나에게 그 인연은 찾아오지 않았다. 다만 나만은 아니라는 것에 안도를 느낄 뿐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당연히 나와 같은 범주일 것이다. 성공 확률이 그리 높지 않으니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소중한 기회인 대장정에 이런 불순한 의도로 참여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해안가에서 장난으로 차를 태워달라는 학생들에게 한 할머니가 하신 대답이 기억에 남는다. “아이고 학생들 차 태워줄 테니, 그 젊음 나한테 좀 주소.” 할머니의 말씀처럼, 이번 10회 구호처럼, 대장정은 젊음으로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다. 그 ‘특권’을 누리고 싶은 사람은 다음 대장정에 망설이지 말고 도전해보자. 



                                                   김혜미 기자 hyeme199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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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age] 서로의 눈과 현이 음악을 이룰 때 - 필뮤즈 정기 연주회

[The Stage] 서로의 눈와 현이 음악을 이룰 때 - 필뮤즈 정기 연주회


국민저널의 2014년 새 연재 ‘The Stage(더 스테이지)’에서는 한 해 동안 종합복지관 지하1층 공연장에서 열리는 공연을 다룹니다. 클래식기타부터 뮤지컬, 연극까지 다양한 무대가 해를 거듭하며 다양한 색으로 돌아옵니다. 문화생활에 대한 갈망은 넘치건만, 정작 곁에 있는 질 좋은 무대는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요. 


때론 싸우고 웃고 울며 몇 개월에 걸쳐 만들어진 그들의 '무대'를 국민저널 기사로 만나보시겠습니다. / 편집자 주 





“자, 1마디부터 다시 시작해볼게, 다시 한 번 갈게.”


두 번째 중주의 연주를 맡은 양재효(신소재 09) 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13일 목요일 저녁, 공연을 이틀 앞두고 종합복지관 제1공연장에서는 동아리 ‘필뮤즈’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15일 토요일 오후 6시 국민대학교 클래식기타 동아리 필뮤즈가 제26회 신입생환영연주회를 연다. 지난 1974년에 결성된 필뮤즈는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필뮤즈는 신입생만 지원자를 받고 있는데 평균적으로 200여명 정도 되는 인원이 동아리 가입원서를 쓴다고 한다. 그리고 연습 때가 되면 재학생인 선배가 신입생에게 클래식 기타를 가르친다. 방학에도 어김없다. 지난겨울, 일주일에 평균 3회 이상 나와 공연을 준비했다. 이네들은 매년 정기적으로 3월에 있는 신입생환영 연주회, 9월 가을정기 연주회와 11월 연주회를 열고 있다. 40년이라는 세월은 그냥 쌓인 것이 아니다. 


이번 연주회는 중주 둘, 독주, 합주 순으로 무대가 구성돼 있으며 총 20명이 넘는 동아리원이 겨울방학이 시작할 때부터 준비해 클래식기타에 걸맞게 편곡을 끝마쳤다. 2월 중순 대성리로 ‘MC(Music Camp)'를 떠나 첫 리허설을 마친다고 한다. 클래식기타 곡으로 즐겨 편곡되는 아르헨티나 작곡가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의 대표작 ‘리베르탱고(Libertango)'부터 영화 ‘달콤한 인생’ OST로도 쓰였던 일본 뉴에이지 그룹 ‘어쿠스틱 카페(Acoustic Cafe)’의 ‘라스트 카니발(Last Carnival)’을 포함한 노래 4곡이 오로지 클래식기타 4대로 연주된다. 이진혁(법학 10) 씨는 어쿠스틱 카페 곡을 연주하며 “‘마지막 축제(Last Carnival)'인 만큼 어쿠스틱 카페의 특유의 ‘경쾌하면서도 슬픈 멜로디’를 살리려고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기타로 쉽게 접근 가능한 뉴에이지 곡뿐만이 아니다. 이번 무대에는 한승희(임산 09) 씨의 지휘를 필두로 클래식 기타 20대가 한 데 모여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을 연주한다. 드보르작의 교향곡은 그간 여러 악기로 연주돼왔지만, 이번 무대의 ‘신세계 교향곡’은 좀 특별하다. 지휘자 한승희 씨는 “오케스트라를 본떠 다양한 악기가 아닌 클래식 기타라는 단일 악기 20대만으로도 음색이 달라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건, “관객이 즐겁고 ‘음악을 들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지휘하는” 것이기에 그는 지휘봉을 잡고 연습을 계속했다. 



▲ 클래식 기타 동아리 '필뮤즈' 회장 백마가 씨가 무대 위에서 Acoustic Cafe의 Last Carnival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국민저널=유지영)


동아리 회장 백마가(신소재 13) 씨는 회장이기는 하지만 이번 제26회 신입생환영연주회 무대가 ‘필뮤즈’라는 이름으로 서는 세 번째 무대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무대’가 그에게 어떤 곳인지를 질문했다. “무대에 서기 전에는 잘 몰라요. 연습을 하고, 음악이 들리면 그냥 들리는구나, 하죠. 그런데 무대에 서면 가끔 연주하는 사람들이랑 서로의 눈빛이 마주칠 때가 있어요. 교류라고 해야 하나? 통한다고 해야 하나. 서로 합을 맞추기 위해 눈을 맞추거든요. 그 즐거움 때문에 계속 무대에 오르고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필뮤즈 제26회 신입생환영 연주회 

2014년 3월 15일 토요일 오후 6시 

국민대학교 종합복지관 지하1층 제1공연장 




유지영 alreadyblu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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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만든 서가] 시간을 견디는 일, 순간을 살아가는 일 - 신경숙 장편소설 《깊은 슬픔》



자유의지 혹은 선택의 소극적 방어기제라는 차원에서, 나는 운명을 믿는다. 어떤 선택지를 필연적으로 집어 들어야할 때, 그것을 운명이라 부른다. 실패해도 혹은 성공해도 운명이라는 이름만으로 그것은 내가 어찌해볼 수 없는, 의지 밖의 일이 되고 만다. 실패한 데에 따른 변명이나 자기 방어로 쓰이는 경우도 많지만, 이는 그럼에도 최소한의 담담함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의지로 선택한 결정 역시 이 믿음에서 예외일 수 없다.

 

많은 경우, 이 자기합리화는 도저히 손을 써볼 수 없는 사람과의 만남에서 자주 쓰인다. '그건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라고. 운명을 창조하거나 개척하는 혹자들은 한심스럽게 느낄지도 모르지만 어디 타인의 마음이 내 마음 같은가. 이 체념은 그래서 꽤 유용하다. 그리고 이 체념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작동하는 단어라면 '같이 산다'는 말이 있겠다.


나는 "같이 산다"는 말을 좋아한다. 어떤 법적 계약이나 약속으로 이뤄진 공동체, 예컨대 부부나 부모, 혹은 룸메이트가 아닌 타인이라도 자주 "같이 살고 있다"고 말하거나 부르고 싶다. '삶은 순간의 연속'이라는 낡은 명제를 돌이켜봐도 결국, 순간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같이 산다'는 말정도는 붙일 수 있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신경숙 작가의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장편 소설 《깊은 슬픔》 속에는 이렇게 만들어진 운명이 자신의 생 전체를 흔들게 내버려두는 타인이 나온다. 소설은 '이슬어지'라는 작은 고향 마을을 떠나 함께 도시로 나온 세 남녀의 사랑을 다룬다. 소설 속에 나오는 여자 '은서'는 이 운명을, 사랑을 '불가항력'이라 말한다.

 

세 남녀는 너무 오랜 시간을 함께 지냈고, 서로가 서로의 '고향'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감히 자신을 떠날 수 없을 거라, 헤어질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모질게 굴어도 '너는 나의 고향'이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 때문에, 나를 떠날 수 없을 것'이라 그렇게 말을 한다.


그들은 버려지지 않을 안락함 속에서 자신들이 속한 사랑의 적당함과 안전한 기분을 즐긴다. 절대로 자신을 떠나가지 않을 대상에게 쏟는 적당한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보며 돌이킬 수 없을 때까지 상처 입힌다. 이들은, 어쩌면 운명이라는 불가항력적인 관계에 완벽하게 매몰된다.


한 가지 것에 마음 붙이고 그 속으로 깊게 들어가 살고 싶었지.

그것에 의해 보호를 받고 싶었지.

내 마음이 가는 저이와 내가 한 사람이라고 느끼며 살고 싶었어.

늘 그러지 못해서 무서웠다.

그 무서움을 디디며 그래도 날들을 보낼 수 있었던 건

그럴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어서였지.

하지만 이제 알겠어.

그건 내가 인생에 너무 욕심을 낸 거였어.”


은서는 깊숙했던 운명을 조금씩 뱉어내고, 이를 욕심이라고 선언한다. 이들은, 결국 서로를 떠나보냈을까? 아니면 운명의 불가항력을 미리 엿보고 '어쩔 수 없다'며 이를 포기했을까소설의 결말은 명료하지만, 작가는 그 판단을 독자들에게 맡긴다. 결말이 어떻게 되든 이네들을 운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욕심이겠지만 많은 이들이 떠나거나 조금씩 비껴나는 인연에, 조급함이 가득차는 계절에, 운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에 조금 더 관대했으면. 우리는 조급함으로 끝없는 만남의 바다를 떠다니거나,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고 만다. 이것이 어쩌면 끝이라, 운명의 종말이라 생각하면서. '언제 밥 먹자'든지, '앞으로는 친구로 지내자' 같은 어떻게든 여지를 남기지만, 결국은 유효하지 못한 끝인사가 아닌, 우리는 운명이라는 든든함과 기억을 지고 계속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거다.

 

신경숙 작가는 소설 《깊은 슬픔》 서문 끝에 "힘겨운 날, 세상에 당신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사랑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던 이들에게 바친다"고 덧붙인다. 모든 관계가 뜻대로 되지 않았더라도, 한 시절 속에서 너 역시 기억할만한 순간을 함께 살았던 운명이었노라,  생각하면 그제야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저 삶을 견디는 미련한 처세술일 뿐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운명은, 어쩌면 이토록 작은 곳에 있다.







깊은 슬픔
(1994)

신경숙

 

(클릭하시면 상세 도서정보로 연결됩니다.) 


문학동네 (1994)

 811.32 신146ㄱ v.1

 811.32 신146ㄱ v.2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편집이승한 에디터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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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대학교 학생자치언론 <국민저널> 웹진 <:> 동시 연재되던 [우연이 만든 서가] <국민저널> 연재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그 동안 [우연이 만든 서가]를 아껴주신 <국민저널>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의 [우연이 만든 서가]<:> daasi.net 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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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통장의 정릉라이프] 정릉시장 토요 장날

  < 정릉시장 토요 장날  

 

 

 

 

 

 

토요일 오후, 나른하다 못해 맥이 풀린다. 온종일 침대에 누워, 움직인 신체기관이라고는 스마트폰을 향한 눈동자와 집게손가락뿐인 최통장은 문득 자신이 한심스러워진다. 딱히 할 일은 없지만, 집 밖을 나가고 싶다. 주말이면 자신을 스스로 집에 가둔 최통장은 ‘셀프 올드보이’ 생활을 접고, 동네라도 거닐고자 문밖을 나서본다. 주말 가을의 햇볕이 생각보다 따갑다. 하지만 최통장은 걱정하지 않는다. 햇볕은 물론, 동네를 나갈 때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부스스한 얼굴과 떡진 머리를 가려주는 후드티가 있기 때문이다.

 

 

  정릉시장 토요 장날에는 정릉시장 길을 통제하고 천막으로 가득채운다. 

 

 

후드 모자를 눌러쓰고 정릉시장으로 방향을 잡는다. 갑자기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고, 눈에는 인파가 들어온다. 좀처럼 정릉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광경에 최통장은 후드 모자를 눈 위까지 내려 본다. 도로에는 좌판이 깔렸고, 오가는 사람이 명동 저리 가라다. 정릉도 서울은 서울인가보다. 서울에 처음 온 촌놈처럼 주변을 두리번대는 최통장에게 한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오늘은 정릉시장 토요 장날’이라고 귀띔해준다. 지방에서 올라온 최통장에게 서울 속 장날이라니. 서울에 10년 가까이 살았지만, 아직 촌놈이 맞나 보다.

 

 

  문어숙회를 팔고 있다. 옆의 소주병이 눈에 들어온다. 

 

 

 

 

 

  핫바 하나를 물고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서울 장날이든 시골 장날이든 역시 장날에는 먹거리가 빠질 수 없다. 장날의 기본인 파전부터 시작해 평소에 보기 힘든 문어숙회도 보인다. 그런데 최통장의 눈에 띄는 먹거리는 따로 있다. 주말이면 ‘셀프 올드보이’가 되어서인지, 후드 모자를 눌러 쓴 꾀죄죄한 모습에 ‘황해’의 하정우가 떠올라서인지 최통장의 손에는 만두와 핫바가 들려있다.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최통장은 선 채로 핫바 먹방을 찍어본다. 이미 타인의 시선 따위는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역시 장터에 노래가 빠질 순 없다. 

 

 

노랫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그 앞에는 무대가 펼쳐져 있다. 한 아주머니가 무대 위에서 맛깔나게 한 곡 뽑고 계신다. 정릉판 ‘슈퍼스타K’ 아니, ‘전국노래자랑’이 맞겠다. 장날에는 뽕끼 가득한 트로트와 무대 앞에서 흥을 타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면 충분하다. 초대가수도 있다. 이름 옆에 ‘유명가수’라는 수식어를 보니 스케일이 어마어마한가 보다. 그런데 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들일까. 최통장은 의아하기도 했지만 뭐 어떠한가? 장날의 흥만 돋우면 족하다.

 

 

  젓갈을 파는 가판대, 가격은 흥정으로 결정된다.  

 

 

 

 

 

  정릉 장터에서는 온 몸에 다 좋다는 한약재도 팔고 있다. 

 

 

있을 건 있고, 없을 건 없는 장터가 맞긴 하나 보다. 반찬거리며, 심지어 약재까지 팔고 있다. 그런데 하나같이 가격이 안 보인다. 손님과 상인의 흥정으로 가격은 정해진다. 대북 심리전을 방불케 하는 전투에서는 승리한 사람이 부르는 게 값이다. 반면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옷을 팔고 있는 좌판은 종류에 상관없이 모두 5천 원이다. 얼마 전 ‘무한도전’에서 나온 정형돈이 G-Dragon에게 한 패션 지적이 떠오른다. 황학동 못지않은 저렴한 가격과 감각적인 색감, 스타일에 최통장도 패션 지적을 해본다. ‘정형돈, 보고 있나?’

 

 

  '깡통 창작소'라는 이름의 공예품을 만들어보고 소개하는 공간도 있다. 

 

 

정릉 장날 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끝에 최통장의 눈에 신기한 물건들이 들어온다. ‘깡통 창작소’라는 이름을 가진 천막에는 깡통 형태를 변형시켜 만든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화분, 액자, 수납통 등 종류도 다양하다. 대형마트에서 하는 문화센터가 정릉 장터에도 존재한다. 대형마트 때문에 골목상권이 죽어간다는데, 골목상권도 나름의 방식으로 생존하고 있었다. 정릉에 살면서 대형마트가 없는 점을 아쉬워했던 최통장은 또 스스로가 한심해진다. 자신의 한심스러운 모습에 길을 나섰던 최통장은 다른 한심함을 한가득 가지고 집으로 향한다.

 

 

※ 정릉시장 토요 장날은 매달 둘째주, 넷째주 토요일

 

 

 

글, 사진 / 최통장 julyte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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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토르의 돈암라이프] 태조감자국 - 아버지뻘인 감자탕집

  옛말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다. <국민저널>은 성북구에 위치한 이웃, 성신여자대학교 자치언론 <성신 퍼블리카>와 함께 백지장을 맞들어 보기로 했다. 서로의 콘텐츠를 나누고, 급한 소식들은 공유하며 함께 자치언론의 역량을 쌓아보기로. 그렇게 뜻을 모은 두 매체는 "자치언론네트워크"라는 연대체를 만들었다. 그 첫 번째 결과로 <국민저널>의 기사 [최통장의 정릉라이프]가 <성신 퍼블리카> 지면에 실렸고, <성신 퍼블리카>는 [서토르의 돈암라이프]를 보내왔다. 성북구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닮은 듯 다른 두 칼럼, 첫 협력의 결과물을 부디 즐겨주시길. 



왜 사람들은 여대생 대부분이 포크로 파스타면을 돌돌 말아 한 입에 쏙 넣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할까요? 물론 여대 주변을 둘러보면 양 적고 느끼한 음식을 파는 곳이 도처에 널려있긴 합니다만, 우리는 경험상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미취학 아동시절부터 50대 아저씨 입맛을 자랑했던 '여대생 서토르'가 [서토르의 돈암라이프]를 통해 조금은 색다른 음식으로 여러분을 찾아가겠습니다. 양 적고 느끼한 요리가 아니라 푸짐하고 얼큰한 요리들입니다. 더불어 이 글로 인해 남학우들이 여대에 품고 있는 환상들이 '콰쾅ㅇ쾅콰오'하는 소리를 내며 깨지길 바랍니다. 



 아버지뻘인 감자탕집 - < 태조감자국 >  



날이 부쩍 추워졌다. 친구 두 명과 같이 시험공부를 하다 도서관을 나오며 팔을 쓸어내렸다. 어디 추위뿐인가. 요새 공부하느라 잠을 불규칙하게 잤더니 속도 쓰리다. 정문으로 내려오자 어떤 남자가 ‘남친존’(남자 사람이 성신여대에 다니는 여자 친구를 기다리는 장소: 각주)에서 어정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시험기간인데도 데이트를 할 여유가 있는 모양이다. 친구들과 눈이 마주친 건 순간이었다. 눈빛에서 추위와 속 쓰림과 외로움, 그리고 서로에 대한 연민이 느껴진다. 그 사실을 깨닫자 이대로 집에 갈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받은 우리의 몸과 영혼을 치유하는 일이 시급하다. 

 "야, 감자탕 먹으러 갈래?"



파스타보다 감자탕이 좋은데요


가끔 학교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어떤 선입견을 마주하곤 한다. “여대니까 미팅이나 소개팅 많이 하죠?”, 혹은 "여대 사람들은 파스타 많이 먹죠?"라는 질문들이 그렇다.   


 단언컨대 미팅과 소개팅은 부익부 빈익빈이 적용되는 영역이며, 모든 여대생이 파스타를 좋아해서 일주일에 두세 번씩 먹는 것도 아니다. 밤샘 후에 먹는 해장국이 일품인 것은 성별을 가리지 않거늘 왜 그런 선입견을 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여러분이 여대에 가진 환상을 와장창 깨기 위해 감자탕으로 메뉴를 정했습니다. 




▲환상을 파괴하기 위해 선택한 태조감자국. 1958년부터 3대째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오늘 갈 곳은 돈암제일시장에 있는 ‘태조감자국’이다. 여기 말고도 얼마 전 가게를 옮기기 전까지 나란히 붙어 있던 ‘황해옥 감자탕’ 집도 유명하다. 두 가게 모두 TV에 몇 번 나왔을 정도로 잘 알려진 곳이라 저녁이면 사람들이 바글바글 들어찬다. ‘태조감자국’엔 6시 전에 도착했지만 벌써 가게 안에 손님들이 반 정도 찼다. 7시가 넘으면 기다려서 들어가야 하니, 바로 들어가고 싶다면 그 전에 가길 권한다. 



참이슬 후레ㅅ…가 아니라 사이다 주세요


보통 다른 가게에서는 ‘소-중-대-특대’로 양을 조절한다. 태조는 여느 곳과는 달리 ‘좋다-최고다-무진장-혹시나’로 양을 정한다.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3명이 먹기엔 ‘무진장’이 적당하다고 한다.  


 음식을 주문하자 아주머니가 “술은 뭐로 줄까?”라고 물었다. 하마터면 참이슬 후레쉬를 달라고 할 뻔했다. 매번 공부를 안 해서 학점이 엉망이긴 하지만 시험기간에 술을 마시지 않을 정도의 양심은 남아있다. 아쉽지만 소주 대신 사이다를 시켰다. 




▲‘무진장’은 大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런지 크고 아름답다.



감자탕이 나오기 전엔 밑반찬이 나온다. 구성은 단순하다. 깍두기와 고추, 양파, 쌈장이 전부다. 깍두기를 몇 개 집어먹으며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다 보니 감자탕이 나왔다. 곧 국물이 끓기 시작했다. 성질이 급한 우리는 수제비와 당면이 채 익기도 전에 깻잎을 젓가락으로 건졌다. 건져 먹었다. 고기에 적당히 간이 밸 즈음, 각자 접시에 고기를 덜었다. 깻잎에 발라낸 살코기를 싸서 입에 넣고, 쫀득쫀득한 수제비와 깍두기를 한 입 베어 물면……. 아, 아까 소주 시킬 걸 그랬나.  




▲살이 가득 차 있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고기를 먹어 치우니 저절로 ‘힐링’되는 기분이다. 하지만 고작 고기 몇 조각 먹었다고 끝난 게 아니다. 모름지기 ‘-탕’으로 끝나는 음식은 마지막에 밥을 볶아먹어야 하는 법. 그래야 어디 가서 감자탕을 제대로 먹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밥을 볶아먹지 않는 것은 감자탕을 모욕하는 행위다. 



대부분 음식점이 그러하듯 이곳도 특별한 재료를 이용해 밥을 볶진 않는다. 조금 남은 감자탕 국물에 밥과 잘게 썬 김치, 김, 참기름이 전부다. 잠시 약한 불에 두자 밥이 눌어붙기 시작한다. 눌어붙은 밥은 또 숟가락으로 싹싹 긁어먹어야 제 맛이다. 


밥을 다 먹고 텁텁한 입을 사이다로 헹구며 머릿속을 셈을 해봤다. 한 사람당 약 8,000원을 내면 된다. 중요한 것은 감자탕 大자 크기와 사이다 두 병을 먹는 사치를 부렸는데도 이 가격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좀 전까지 느꼈던 열패감은 사라지고, 셋 모두 괜히 기분이 좋아 배를 두들기며 가게를 나섰다. 



서토르 wesels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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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봐서 아는데] 난 지금 시험을 치는 게 아니야, 직감에 손을 맡기는 거지

[내가 해봐서 아는데] 난 지금 시험을 치는 게 아니야, 직감에 손을 맡기는 거지


본격 기자 체험 칼럼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 두 번째, 정인훈 기자의 중간고사 일지


‘가을.’ 조용히 소리 내어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이 가슴을 울리는 계절이다. 머리 위에서 작열하던 태양은 부쩍 높아진 하늘만큼 물러나고, 코끝에 선선한 공기가 맺힌다. 적당한 바람과 구름, 햇살이 몸을 부대끼며 그려내는 저녁 석양은 그 어느 풍경보다 아름답다. 그리고 때마침 찾아온 중간고사.


이런 망할, 중간고사라니.


우리는 도대체, 왜, 하필, 계절의 아름다움이 극에 달한 순간에 중간고사를 봐야 한단 말인가. 중간고사가 끝나고 나면 가을은 저만치 도망가고 금세 겨울이 될 것을 아는데.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랬다. 어차피 가을을 제대로 즐기기는 그른 마당에, 본 기자 각 잡고 ‘중간고사’에 대한 살아있는 기록을 남긴다. 5월의 꽃 ‘예비군 훈련’ 편에 이어 근 반년 만에 돌아온 전격 기자 체험 코너, ‘내가 해봐서 아는데’ 중간고사 편이다.


금요일(1):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학생증이 망가진 학생은 처음일 텐데


아침 9시. 여느 아침과 다를 게 없지만, 어쩐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진다. 이것이 시험의 압박인가. 양치하며 오늘 해야 할 공부를 생각해 본다. ‘오늘은 월요일에 볼 과목 두 개를 끝내리라.’ 목표는 번잡하게 짜면 안 된다. 단순하고 명료하게.


이어폰을 끼고 집을 나서 전철을 탄다. 시험기간이라 그런지, 뭔가 손에 들고 보는 학생들이 많다. 스마트폰으로 웹툰과 SNS를 번갈아 보는 자신이 무안해진다. 책을 꺼내야 하나. 가방을 비스듬히 메다 말고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 “어차피 오늘 온종일 공부할 건데, 학교 가는 40분 정도는 좀 자유롭게 있어도 좋지 않을까?” 그래. 머리도 좀 쉬어줘야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법이다. 가방을 바로 메고 웹툰에 집중하고 있노라니 어느덧 학교 앞이다. 왜 이렇게 빨리 온 거지? 내가 몇 번 버스로 갈아타고 왔더라? 유달리 번개같이 흘렀지만 참 달콤한 40분이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오늘의 마지막 자유, 40분.


“오늘 밤 11시가 되기 전에는 이 문을 나서지 않으리.”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정문을 지나 오르막을 오른다. 수업보다 일찍 도착했으니, 남은 시간은 성곡도서관에서 시험을 대비해야지. 회전문을 지나 학생증을 입구 카드 리더기에 찍는다. 삑. 소리가 나야 하는데, 안 난다. 두 번, 세 번 시도해도 매한가지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공부하겠다고 도서관에 들어가려는 날 학생증이 망가진 것이다. 회전문을 돌리며 들어갈 때는 가슴 속에 포부가 가득했는데, 상황이 이러고 보니 나오는 길은 막막하기 짝이 없다. 어디로 가야 하나. 동네 도서관에라도 가야 하나? 뚜렷한 정답은 없고, 기자의 발길은 도리 없이 강의실로 향한다.


시험기간이라 그런지, 평소엔 기차 화통이라도 삶아 먹은 듯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던 이들이 정숙을 유지하고 있다. 엠씨스퀘어가 따로 없다. 그 위압감에 짓눌려 기자 또한 공부할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한다. 과연 인간의 집중력이 최고로 발휘되는 시간, 시험 기간 수업 시작 30분 전답다. 교재를 한 권 끝장내도 정말 아무런 느낌이 없을 것 같다.


중간고사가 없는 수업, 평소처럼 수업이 시작된다. 집중력을 너무 끌어 올렸던 걸까. 평소엔 귓전을 스치고 지나가던 수업 내용이 한 자 한 자 뇌리에 각인된다. 교수님의 팔의 각도, 분필의 궤적, 말씀의 템포와 쉼표의 위치까지 기억에 남는다. 누가 그랬나. 시험기간에는 벽만 쳐다봐도 재미가 꿀이라고. 시험기간엔 시험과 무관한 모든 것이 재미있다. 그렇게 즐겁게 수업을 마치고 나니, 다시 시험공부의 압박이 어깨를 짓누른다.


금요일(2):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날 묶어뒀던 교재를 벗어 던진다


학생증 때문에 못 들어간다 생각하니, 성곡도서관이 두고 온 고향처럼 그립다. 공부할 장소를 찾는 것이 급선무다. 디자인 도서관, 법학관 도서관, 북악관 열람실 등 많은 장소가 떠올랐지만, 제보에 따르면 이미 만원이 된 지 오래란다. 기자는 고민 끝에 소속 학과 자료실로 가기로 한다. 거기라면 각종 학술 서적도 있고, 답답한 도서관과는 달리 열린 공간이라 쾌적할 테다. 과연 들어서니 기자와 비슷한 목적으로 자료실을 찾은 몇몇이 정숙을 유지 중이다. 기자는 틀리지 않았다. 여기서 기필코 월요일에 볼 두 과목을 마무리하리라.



△ 학과 자료실에서 "나는 틀리지 않았다" (서울=국민저널/정인훈 기자)


30분쯤 흐르자, 무음으로 전환해 둔 스마트폰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별거 없겠지. 공부나 하자. 무슨 긴급한 연락이 왔을지 어떻게 알아? 30분에 한 번 체크는 해야 하지 않을까? 기자의 손이 자석처럼 스마트폰을 향한다. 인간은 30분 동안 얼마나 많은 말을 할 수 있는지. 그 짧은 찰나에 엄청난 양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평소라면 대충 읽고 치웠겠지만, 시험기간을 맞이한 기자의 집중력은 극에 달해 있었다. 단체 채팅방을 비롯한 모든 이야기에 성실하게 대답을 해주다 보니 벌써 30분이 흘렀다. 이러면 안 된다. 기자는 강철로 된 무지개와 같은 강한 의지로 스마트폰을 다시 뒤집어 놓고 책을 펼친다. 오늘 안으로 반드시 두 과목을 끝내야 하…아…


화들짝. 잠시 졸았다. 기자의 고개가 졸음에 겨워 넘어가는 게 안쓰러웠는지, 친구가 커피나 한 잔 마시고 오자고 제안한다. 그래, 시험기간에 이렇게 졸음을 쫓으며 친구와 나눠 마시는 커피가 또 백미다. 바쁜 와중에 잠시 짬 내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이 순간…이 왜 2시간씩이나 걸린 거지? 이상한 일이다. 그냥 커피 한 잔과 담소가 왜 2시간이나 잡아먹은 걸까. 시간은 벌써 7시. 남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다시 책에 집중한다.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온다고 한 놈은 대체 누군가. 아무리 마셔도 혈당만 치솟고 졸음은 가시질 않는다. 공부를 하는 건지 잠을 이기려는 건지 구별은 안 되지만, 어쨌든 책을 보며 세 시간을 버텼다. 그렇게 열 시가 되자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한 시간만 더 하면 ‘11시가 되기 전엔 정문을 나가지 않으리’란 목표를 채울 수 있는데. 원래 목표가 ‘월요일에 시험 볼 두 과목을 끝내는 것’이었단 건 잊은 지 오래. ‘11시에 나가면 12시에나 집에 갈 텐데,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던 기자는 무의미한 갈등에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귀가를 결단한다. 체력은 국력이다.



△ 북악관 앞이다. 저 멀리서 본부관 불빛이 보인다. 귀가하기로 결정했다. 체력은 국력이다. (서울=국민저널/정인훈 기자)


토요일: 어쩜 이렇게 하늘은 더 파란건지

오늘따라 왜 바람은 더 완벽한지


눈을 뜨니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지만 나와는 무관한 일. 스스로를 다스리며 목욕재계하고 보니, 막상 공부할 곳이 애매하다. 독서실은 너무 비싸고, 동네 도서관은 이미 중고생과 고시생으로 가득 하다는 친구의 메시지에 한숨부터 나온다. 고민 끝에 기자는 동네에서 사업하는 친구 사무실을 떠올린다. 집에서 5분 거리, 주말이니 비어있을 테다. 혼자 쓰는 사무실은 독서실이나 학교 도서관보다 좋을 것이 틀림없다. 친구에게 물으니 흔쾌히 허락한다. 기자는 삼선 슬리퍼와 편한 반바지, 목 늘어난 티셔츠 차림으로 친구 사무실로 향한다.


사무실에 들어서 종이컵에 커피를 타며, 오늘의 목표를 상기한다. ‘오늘은 기필코 월요일에 보는 첫 번째 시험을 완전히 정복한다.’ 열심히 한 시간쯤 책을 읽었을까. 텅 빈 사무실을 채우는 토요일 오전 11시의 가을 햇살이 기자의 가슴을 덥힌다. 토요일이라 그런 건지 가을이라 그런 건지. 뒤숭숭한 마음에 창밖을 보니 주말 가을 하늘은 화가 날 만큼 청명하다. 놀러 나가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오르는 그 순간, 1학기 성적이 뇌리를 스치며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는다. 다시 조용히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친다.


몇 시간여의 정적을 깬 건 꼬르륵 소리였다. 스멀스멀 피어나는 허기, 기자는 사무실 건물 1층 편의점으로 향한다. 뭐 먹을까 하는 고민은 시험을 앞둔 대학생에겐 사치다. 사온 것은 김밥과 컵라면. 시험기간엔 이렇게 먹어주는 것이 공부에 대한 예의라 배웠다. 음식을 음미할 시간 따윈 없다. 꼬르륵 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배 속에 뭔가 넣어 주는 것일 뿐. 배가 고파야 머리가 맑아진다고 하지 않던가.



△ 시험기간 동안 기자의 고정 저녁식사 이렇게 먹어주는 것이 시험에 대한 예의라 배웠다 (서울=국민저널/정인훈 기자)


저녁 7시, 슬슬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휴일의 정점, 휴일의 꽃, 휴일의 골든타임 토요일 저녁 7시. 약속을 잡으려는 친구들의 메시지가 스마트폰을 울리기 시작한다. 정녕 안 나올 거냐고 거푸 묻는 친구들의 기세가 흡사 와룡을 스카우트하려는 유비만큼 끈덕지다. 거절을 못 하는 선량한 성정의 기자는 견디다 못해 스마트폰을 뒤집어 놓는다. 좋다. 나는 유혹을 이겼다. 진동 따윈 울리지 않는다. 무음이니까. 욕은 먹어도 상처는 남지 않는다. 친구니까. 하지만 망한 시험 성적은 평생 상처로 남을 것이다. 성적이니까.


오후 9시, 집중력에도 한계가 온다. 공부엔 끝이 없다지만 이만하면 얼추 끝난 거 아닌가 하는 건방이 마음을 수놓는다. 아까 덮어 놓았던 스마트폰을 슬쩍 되돌려본다. 부재중 통화 9통, 메신저 메시지 300개. 부재중 통화야 올 사람들에게만 온 것일 테고, 메시지는 필시 친구를 모른 척한 기자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으로 점철되어 있을 테니 읽지 않고 도로 덮어둔다.


스마트폰을 덮고 텅 빈 사무실을 둘러보다가, 불현듯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나는 왜 친구들에게 욕을 먹어가며 이러고 있는가. 내 힘들었던 군 생활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헤어진 구 여친은 지금쯤 어느 하늘 아래 그 누구와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집중력은 연기처럼 흩어진다. 오늘은 그래도 많이 했다고 자신을 위안하며 짐을 챙겨 사무실을 나선다.


일요일: 이제는 책상이 난지 내가 책상인지도 몰라

책을 펴기도 전에 덮는 이런 상황은 뭔가


시험기간의 마지막 주말인 일요일이다. 오늘은 장소를 바꿔 성곡도서관을 가기로 한다. 마침 친구가 학생증을 빌려준단다. 시험기간 주말만큼은 차를 빌려 써도 좋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차키를 들고 집을 나선다. 대중교통과 환승으로 말미암을 피로 없이 깨끗한 정신으로 시험 준비를 마무리할 생각에 가슴이 부푼다. 드라이브를 시작한 지 10분, 아버지께 전화가 온다. 군대 간 동생이 휴가 나와 가족 외식이 잡혔으니 집으로 복귀하라는 전언이다. 사랑하는 동생이 휴가를 나왔다는데 어쩔 것인가. 학업에 대한 열정은 외식 메뉴에 대한 설렘으로 바뀐다.


열심히 먹고 나니 포만감과 왠지 모를 피곤함, 그리고 학교에서 공부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은 다 망했다는 불안이 밀려온다. 결국, 또 친구 사무실로 향한다. 내일이면 이 모든 게 끝이니 오늘만 힘내면 된다. 이렇게 한 시간 한 시간 채우면 되겠지. 그렇게 한 시간 한 시간을 채우다 정신을 차려보면 자다 일어난 자신을 발견한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걸까. 내가 잠을 잔 것인지 잠이 나를 잔 것인지 알 수 없다.


쓴 입맛을 다시고, 물처럼 아메리카노를 들이키며 막판 스퍼트를 붙인다. 마지막 날이니 더 물러날 도리가 없는 탓인지 아니면 터가 좋아서인지, 유독 친구 사무실에서 공부가 잘된다는 느낌이 든다. 이곳은 이제 내 개인 독서실이 될 것이다. 친구가 사무실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사업이 나날이 번창하길 기원하며, 어떻게든 월요일 시험 두 번째 과목까지 끝마친다. 금요일에 끝냈어야 할 일을 주말 내내 끌었지만, 괜찮다. 시험이 원래 다 이렇다.


시험 당일: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A인 줄 알았는데


대망의 중간고사 날 아침이다. 전철에서부터 그간 정리해둔 노트를 보면서 학교에 간다. 내가 결코 준비가 부족해서 이러는 게 아니다. 완벽한 마무리를 위한 것이다. 평소와는 달리 학교 가는 걸음마다 비장함이 뚝뚝 떨어진다.


누군가 ‘이 대학 시험기간은 언제인가’ 묻거든 눈을 들어 등굣길 학생들의 상태를 보게 하라. 평소 잔뜩 신경 쓴 신발로 패션을 추구하던 남학생들은, 시험기간엔 ‘편한 게 장땡’을 외치며 슬리퍼로 환승한다. 깔창 족들도 이때만큼은 깔창에서 내려온다. 여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메이크업 베이스-파운데이션-컨실러-콤펙트-아이셰도우-아이라이너-마스카라-립밤-미스트 순서의 정성 들인 메이크업은 없다. 오로지 CC(씨씨)크림과 야구모자만이 그들을 구원한다. 슬리퍼와 모자로 가득 찬 강의실의 풍경이 폭풍전야의 긴장감을 알려준다. 기자 또한 엄숙한 마음으로 입실한다.


교수님께서 들어오신 후 정시에 시험을 본다.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험을 포기한 이들이 하나둘씩 일어선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답지를 적고 나가는 그들의 얼굴엔 해탈한 자의 미소가 어려 있다. 기자는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답지를 제출하고 강의실을 나선다. 분명 막힘없이 쓴 것 같은데,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잘 봤다’는 확신 따윈 들지 않는다.


아무튼 홀가분하다. 어쩐지 A학점이 멀어지는 것 같긴 하지만, 끝난 건 끝난 거니까. 주말 간의 고생도 눈 녹듯 사라진 듯하다. 딱 5분 동안만. 그동안 미뤄온 산더미 같은 과제들의 존재를 자각하기 직전, 그 5분의 평화. 시험장에서 떠난 기자는 다시 노트북을 들고 과제를 할 장소를 찾아 나선다. 학생증이 망가졌으니 성곡도서관은 못 갈 것이고, 또 학과 자료실을 가야 하나. 다시 서성이는 기자의 귓전에 오래된 노래가 울려 퍼진다.


조금씩 삭아만 간다

푸르기 만한 대학생활일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간다

매일 과제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공부하며 늙고 있구나



글, 취재/ 정인훈 기자 jungihoon@hanmail.net

편집/ 이승한 에디터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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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만든 서가] Happily ever after 이후의 삶 - 장강명 《표백》




한국에는 '열심히 하면 언젠가 잘 될 거야'라는 이름의 종교가 있다이 종교는 다수의 신자들을 거느리고 있으며그들은 저마다 자신이 어떤 고난의 길을 거쳐 해당 종교의 신과 영접했는지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다이 종교는 '도무지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성취감' '주어진 시련에 당당히 맞서 자신의 꿈을 이룬 용기'를 복음으로 제시한다해당 종교의 경전은 출간되자마자 전국 서점에 깔리고 세대 구분 없이 소비된다.

 

포교 방식은 다양하고 논리적이다신도들은 입시취업아파트라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세공한 욕망에 기댄다. ‘큰 꿈을 가져라’ 혹은 ‘자신이 진짜로 바라는 것이 뭔지 알고 그것만을 향해 가라는 말씀과 ‘조금만 눈을 낮춰 중소기업에도 취직하라’, ‘20대는 열정으로도 먹고 살 수 있으니 괜찮다는 말씀을 모두 품은 하나의 종교, 나는 이보다 무서운 종교를 본 일이 없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신앙심이 깊은 사람이 있으면 그 맞은 편엔 회의주의자 또한 존재하기 마련이다이 회의주의자들은 종교에 의문을 제기하다가 대개 무신론 혹은 비관주의로 빠지거나자신을 지배해줄 다른 종교를 찾아 나선다장강명 작가의 소설 《표백》은 20대인 주인공들이 빠지고만 다른 종교를 이야기한다그들이 빠진 종교는 '내가 발버둥쳐봐야 세상은 바뀌지 않아'이다.

 

"이 사회에서 내가 가진 조건들로 그걸 이뤄낼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지나뿐 아니라 우리 세대 모든 젊은이가 그래그렇게 계속 삶을 유지하는 게 자살하는 것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란 걸 알아그렇다고 삶을 선택해야 해? (중략새로운 담론을 제기할 수조차 없는 환경은 우리 세대의 가치관에도 영향을 미친다이른바 표백 세대의 등장이다."

 

'표백 세대'. 무엇도 다 삼키는 거대하고 새하얀 세상에 돌을 던져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에 마주한 세대소설 《표백》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청년들을 '88만원 세대'가 아닌 '표백 세대'라고 정의한다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도 이전 세대가 이룩한 것보다 더 나은 삶을 이룩할 수 없다.

 

현재 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20대는아니 고도의 압축 성장을 이룬 대부분의 사회에 살고 있는 청년들은 극소수의 선택된 사람이 아닌 이상 자신의 부모 세대가 누린 수준의 삶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못할 공산이 크다이는 예언이 아닌 통계다양질의 졸업자는 넘쳐나는 반면 그들을 수용할 일자리가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고대 설화 속 영웅의 탄생에도 법칙이 있듯비천한 곳에서 탄생해 경제성장이라는 조력자를 만난 우리 시대의 영웅들은 태평성대를 이루고 현재 한국사회의 단물을 향유하고 있다이들은 영웅이 된 자신의 DNA를 물려받은 아들딸들은 자신보다 좀 더 위대한 길을 걸을 거라 생각한다자신보다 훨씬 좋은 환경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영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Happily ever after' 이후에 영웅의 삶보다 못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이 사회에서 내가 가진 조건들로

그걸 이뤄낼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지.

나뿐 아니라 우리 세대 모든 젊은이가 그래.

그렇게 계속 삶을 유지하는 게

자살하는 것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란 걸 알아.

그렇다고 삶을 선택해야 해? 



소설 《표백》 속의 청년들은 우리 세대가 이루지 못할 '영웅적 삶'에 집단 자살이란 폭력적인 방식으로 균열을 내고자 한다집단자살공모의 중심에는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여자 '세연'과 자살을 예고하는 인터넷 사이트 '와이 두 유 리브 닷컴(whydoyoulive.com)'이 있다자살을 행하려는 사람들은 ‘와이 두 유 리브 닷컴에 유서를 작성한 뒤예고한 날짜에 ‘의식을 치른다그리고 너무도 평범해 영웅을 꿈꿀 생각조차 없어 보이는 주인공은 번번이 과거 자신과 집단자살공모를 계획했던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한다승자가 될 수 없다면아무리 돌을 던져도 모두 삼켜버리는 표백의 세상을 고발하는 하나의 거대한 상징적인 사건 그 자체가 되면 된다.

 

허나 우습게도 그렇게 집단자살만을 향해 달려온 소설 속 주인공은 결국 죽음을 포기한다. 《표백》은 스스로 시작한 '집단자살공모로라도 표백의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픈 젊은이들'이란 이야기에 대해 명징한 해결책을 주는 대신 생경한 결말을 독자에게 안겨주고 마침표를 찍는다. 어쩌면 누군가는 책장을 덮으며 다소 허탈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너도 시대가 요구하는 영웅이 되라'고 등을 떠미는 세상의 부추김이나, 장엄하고 극단적인 결말을 맺길 원하는 죽음의 충동 그 어느 쪽에도 휘둘리지 않은 채, 살아갈 이유를 찾기로 한 주인공의 선택을 존중할 수는 있을 것이다. 세상은 승리하든 패배해서 죽음을 택하든, 굽히지 않고 자신의 길을 선택한 이들을 영웅으로 기록한다. 'Happily ever after'로 끝나는 것이 아닌, 그 이후의 길고 지리한 삶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기로 한 주인공은, 어쨌든 자신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조금은 더 성장했다.





표백
(2011)

장강명

*2011년 한겨레문학상 당선작

 

(클릭하시면 상세 도서정보로 연결됩니다.) 


한겨레출판(2011)

811.36 장11ㅍ

 

 

/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편집/ 이승한 에디터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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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통장의 정릉라이프] 정릉천 - 산책하길 좋은 길

왜 우리는 학식과 배달음식으로만 주린 배를 채우는가? 정릉골로 약간만 발을 옮겨보자. 맛의 신세계가 펼쳐진다. 포털 검색창에 ‘정릉’을 치면, 왜 나오는 게 ‘건축학개론’ 뿐인가? 정릉골로 조금만 발품을 팔아보자. 사람 냄새나는 곳이 또 정릉이라. 자칭 타칭 정릉골 통장이라 불리는 자취 5년차 최통장이 <최통장의 정릉 라이프>라는 새로운 코너로 정릉에 숨어 있는 맛집부터 생활정보, 자취생활의 팁까지를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최통장 백

 

 

 

  산책하기 좋은 길 < 정 릉 천  

 

 

 

  

 

 

 

 

[정릉 라이프]를 접하면 알겠지만 최통장의 생물학적 성 정체성은 XY 염색체를 지닌 남성, 사회학적으로도 “그런데 예뻐?”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여성을 좋아하는 대한민국의 흔한 남성이다. 더군다나 최통장은 요즘 대세인 혼자 사는 남자이다. 최통장은 문화방송(MBC)에서 방영 중인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는 그네들을 볼 때마다 격한 공감을 하곤 한다. 데프콘의 먹방에 야식을 챙겨 먹고, 노홍철의 깔끔함을 따라 하려 노력하고, 김용건을 동경하고 있다.

 

 

 

  정릉에서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정릉천밖에. 

 

 

혼자 산 지 5년이 넘다 보니, 최통장에게 대한민국에서 남자 혼자 하려면 눈치 보이는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은지 오래다. 쇼핑은 혼자가 편하고, 1년에 한 번쯤은 혼자 떠나는 여행이 당연하고,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영화를 본다’는 씨스타의 노래에 혼자 술을 기울인다. 하지만 나 혼자의 백미로, 호젓하게 거니는 동네 산책을 꼽고 싶다. 정릉에 흘러들어오기 전 모 여대 부근에서 자취했던 최통장은 대담하게 슈퍼에 가는 복장을 하고도 여성이 그득한 모 여대 옆 하천을 산책했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정릉 주변에서 산책할 만한 곳을 찾았다. 국민대학교 쪽이 산도 있고 공기도 좋고, 한데 이 오르막은 엄홍길 대장만이 정복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럼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정릉천밖에.

 

 

 

  정릉천은 다리 밑으로 흘러 복개천으로 한강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정릉천은 정릉시장으로 향하다보면 금방 찾을 수 있다. 시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기 때문에 눈만 뜨고 있다면 물길의 모습은 쉬이 찾을 수 있다. ‘북한산에서 발원하여 정릉을 지나, 월곡천과 만난 후 청계천, 중랑천 순으로 흘러들어 마지막에는 한강까지 이어진다’고 위키백과에 나오는 데, 정릉천을 자주 다니는 최통장도 처음 안 사실이다. 알면 좋지만 몰라도 그만이다.

 

 

 

  옛 정취 물씬 풍기는 정릉천 주변 골목이 정겹다. 

 

 

날씨도 선선하니 잉여로움을 즐기기에 정릉천이 제격이다. 게다가 정릉천 주변에는 골목골목 맛 나는 음식점에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골목이 어우러지니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삼조다. 음식점들도 소개하고 싶지만 이번에는 순서가 아니다. 다음에 다루기 위해서라도 아껴둬야 한다. 아니, 글을 더 쓰려면 힘들다.

 

 

 

  짧고 좁은 물길은 천이라기보다 동네개울에 가깝다. 

 

 

 

 

  오리도 짝이 있거늘... 오리 커플 한 쌍이 정릉천을 노닐고 있다. 

 

 

이름은 정릉천이지만, 정릉개울이 더 어울릴 정도다. 도보로 산책할 수 있는 구간은 걸으면 고작 10분가량이다. 하지만 슬슬 나이를 먹어가는 최통장에게 10분이면 충분하다. 뒷짐을 지고 정릉천에 마실 나온 최통장 앞에 청둥오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서울 시내에 청둥오리라니 … 놀랄 따름이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오리 커플 한 쌍이 정릉천을 노닐고 있다. 오리 커플에 ‘펄펄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놀건마는’으로 시작하는 황조가가 떠오르는 이 감상은 또 무어냐. 최통장이 감상에 젖어들 때쯤 갑자기 시끌벅적한 동네 꼬마들 소리가 들린다. 오리를 잡겠다고 난리다. “이런 커플 브레이커 … 아니, 생태계 파괴자 녀석들, 걔들 멸종 보호종이다.”

 

 

 

  정릉천의 오리들이 물 속에 머리를 박고 멱을 감고 있다. 

 

 

 

 

  정릉천도 다른 산책길과 다름없이 아주머니들이 대부분이다. 

 

꼬마 녀석들이 최통장의 감상을 깨버렸다. 다시 걷다 보니, 역시나 정릉천 산책길도 아주머니들이 많다.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남성보다 여성이 높다던데, 전국의 산과 산책로를 점령한 아주머니들의 건강은 이상 없어 보인다. 꼬마들과 아주머니, 혼자남 최통장의 눈은 그저 정릉천을 향해 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저녁이 되면 종종 산책길을 운동하는 젊은 여성들도 발견할 수 있다. 정릉에 사는 미혼 남성들이여, 최통장이 정릉천을 추천하니, 한번 가보시라. 짝을 찾을지 누가 알랴? 그때, 최통장 옆을 오리가 아닌 사람 커플이 지나간다. 최통장은 아까 오리 커플을 괴롭혔던 꼬마 녀석들이 갑자기 이해가지만 무심하게 정릉천을 걷고자 다짐한다.

 

 

 

 

글, 사진 / 최통장 julyte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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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통장의 정릉라이프] 만두전 - 자취생 요리

왜 우리는 학식과 배달음식으로만 주린 배를 채우는가? 정릉골로 약간만 발을 옮겨보자. 맛의 신세계가 펼쳐진다. 포털 검색창에 ‘정릉’을 치면, 왜 나오는 게 ‘건축학개론’ 뿐인가? 정릉골로 조금만 발품을 팔아보자. 사람 냄새나는 곳이 또 정릉이라. 자칭 타칭 정릉골 통장이라 불리는 자취 5년차 최통장이 <최통장의 정릉 라이프>라는 새로운 코너로 정릉에 숨어 있는 맛집부터 생활정보, 자취생활의 팁까지를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최통장 백

 

 

  자취생 요리 < 만두전 >  

 

 

 

 

 

 

 

'귀차니즘'은 자취생활을 규정짓는 만고진리의 철학이다. 하지만 살기 위한 생존본능은 귀차니즘을 초월하여 방안의 냉장고를 열게 한다. 항상 그렇듯 텅텅 빈 냉장고, 설마하고 연 냉동실에 2kg짜리 김치만두 봉지가 보인다. 찐만두, 군만두, 만둣국, 만두라면 … 주구장창 먹을 줄 알고 야심차게 대용량을 사서 6개월째 방치 중이다.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은 게 용하다. 김치만두를 잘 보살펴 준 냉장고의 성능에도 감사하다. 선택의 여지없이 만두를 먹어야 할 판이다. 조리 기구를 꺼내기 위해 수납장을 여는 순간, 김치전을 해먹겠다고 사놓고 뜯지도 않은 부침가루 봉지가 눈에 들어온다. 부침가루와 김치만두의 조화, 왠지 김치전이 될 거 같은 예감이 최통장의 머릿속을 관통한다. 이미 두 손에는 부침가루 반죽과 김치만두가 섞이고 있다. 그렇게 만두전은 시작됐다.

 

 

 

 ▲ 오랜 유물마냥 냉동 보존처리 된 만두를 뜨거운 물에 녹인다 

 

 

 

재료라고 해봐야 부침가루와 만두다. 부침가루는 500g짜리를 1850원에 구매해서 몇 개월째 먹고 있고, 만두는 앞서 이야기했지만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은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 글은 분명 요리를 소개하기 위해 써졌지만 ‘소금 몇 스푼, 물 몇 리터’ 따위의 디테일한 재료 분량 설명은 바라지마라. 최통장에게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먹는 음식일 뿐이다. 그냥 먹을 만큼 부침가루를 덜어내서 반죽하고, 만두도 반죽과 비슷한 양이면 된다. 약간의 친절함을 베푼다면, 대략 밥 한 공기 정도의 반죽에 만두 두 알이면 만두전 한 장이 나온다.

 

 

 

 부침가루와 물의 비율은 그냥 눈대중, 손대중이다

 

 

 

 

 반죽은 떠먹는 요거트 정도의 점성이면 된다

 

 

 

오랜 유물마냥 냉동 보존처리 돼있던 만두는 일단 삶아서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다. 하지만 ‘귀차니즘’의 신봉자 최통장은 만두를 삶기보다는 무선주전자로 끓인 물로 녹인다. 어차피 나중에 식용유 두르고 부치면 다 익는다. 일반적으로 전을 부칠 때는 부침가루와 물의 비율을 1:1로 맞추면 된다고 하는데, 음식이 무슨 수학인가? 그냥 눈대중과 손대중이다. 대충 떠먹는 요거트 정도의 점성이면 된다.

 

 

 

  삶아졌는지, 녹았는지 알 수 없는 만두를 반죽에 넣는다

 

 

 

 

  만두를 가위로 잘게 자른다. 

 반죽과 섞을 때 가위를 그대로 사용하면 설거지 거리를 줄일 수 있다

 

 

 

반죽이 완성될 쯤이면 만두는 녹았을 것이다. 만두를 건져 반죽에 넣고, 만두를 가위로 잘게 자른다. 만두소보다는 만두피를 집중 공략해야 한다. 만두를 자르면서 동시에 가위로 반죽과 만두를 섞는 고급 스킬 시연에 최통장의 손이 아려온다. 하지만 아픔을 참아야 한다. 가위를 떼고 다른 주방도구를 쓰면 설거지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 완성된 반죽의 모습은 흡사 김치전 같다

 

 

 

간은 필요 없다. 만두소의 MSG를 믿어보자. 이제 마지막 단계인 ‘부치기’다.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반죽을 부어 얇게 펴면 된다. 그리고 계란 프라이하듯 부친다. 계란 프라이도 못한다면 애써 만두전에 도전하지 마시라. 참고로 반죽에 계란을 넣으면 부드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지만 최통장에게 계란은 사치다. 맛은 몰라도 저렴한 가격과 간단한 조리법만큼은 ‘KBS 해피투게더-야간매점’에 등장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 계란 프라이처럼 부치면 된다. 계란 프라이를 못한다면 그냥 포기하시라. 

 

 

 

완성된 비주얼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배고픔 때문인지 식감은 진짜 김치전 못지않다. 사치를 부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계란을 넣었다면 이런 바삭함과 쫄깃함을 느끼지 못할 테다. 맛은 그냥 김치만두다. 무얼 바라겠는가? 들어간 재료라고는 김치만두뿐인데. 하지만 만두 맛을 전의 식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만하다. 변변치 못한 재료로 이 정도의 맛을 냈다는 사실에, 최통장은 인간의 생존본능의 위대함에 놀라움을 느끼며, 본능에 충실하게 뱃속을 채운다.

 

 

 

글, 사진 / 최통장 julyte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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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만든 서가] 살고 싶으면 친절한 게 좋단다 - 장마르크 로셰트 外 <설국열차>


스포일러 경고: 영화 <설국열차>와 원작 그래픽 노블 <설국열차>의 내용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결코 멈추지 않는 열차가 영원한 겨울의 광활한 백색 세상을 지구 이편에서 저편 끝까지 가로지른다. 바로 1001량의 설국열차다. 문명의 마지막 보루!

 

오직 죽음만을 기다리는 열차 안에서 과연 정의롭고 친절한 사람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여기서 살아남는다는 건 육체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그렇다는 걸 의미한다. 이 글은 앞선 질문으로 시작해 그럴 수 없다는 결론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는 식물인간이나 뇌사 상태에 빠진 사람이 죽음과 삶 사이에 남아있다고 간주한다. 육체는 지상에 붙어 있지만 정신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선, 그들은 이미 삶의 경계 밖에 있다.

 

지금은 당연한 듯 누리고 있는 자유가 일순간에 사라지게 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아비규환이 찾아온다. 영화 <설국열차>의 말미, 커티스는 열차 가장 앞 엔진칸의 문턱까지 향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행했고 목격했던 아비규환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뿐이다. 커티스가 지나왔다던 아비규환의 흔적은 커티스의 회고로밖에는 확인할 길이 없다. 관객들은 오로지 커티스의 말을 듣고 그 폭동을 상상할 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완벽하게 모든 걸 털어놓을 만큼 정리된 커티스의 기억은 현재가 아닌, 반성할만한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혼자 사유하고 정리하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회는 적어도 굴러가는 열차 꼬리칸 내에서는 사치다. 원작 그래픽 노블 <설국열차>의 도입부, 꼬리칸 안에서 일흔 살 생일을 맞이한 노인은 잠시만 혼자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사람들은 노인의 부탁을 들어줬고, 혼자 남게 된 노인은 그제야 열차 천장에 목을 매단다. 살아있다는 게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시공간 속에서는 남겨질 역사도 기대할 삶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지금의 인류 같은 인격이 유지될 수 있다는 건 너무 큰 기대일지 모른다.

 

그래픽 노블 <설국열차>는 이 지점을 중심에 두고 서술한다. 인격을 갖출 환경이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은 각자 열차 속에서 생활하기 가장 적합한 인류를 만들어 나간다. 섹스에 탐닉하고 종교만으로 살아가거나, 자기 앞에 놓인 생을 처리하느라 분주하다. 원작 <설국열차> 1부의 주인공 프롤로프는 꼬리칸에서 맨 앞칸까지 1001량의 열차를 거치게 된다. 고난을 겪으며 끝에서 끝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그는 영화의 주인공 커티스의 전신으로 추정되지만, 프롤로프는 커티스처럼 정의롭지도 친절하지도 않다.

 

프롤로프를 구해 주려던 앞칸 여자 아들린은, 곤경에 처한 자신을 구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프롤로프의 행동 앞에서 분노에 찬 눈물을 흘린다. 그녀가 있던 앞칸에서처럼 위기에 처한 여자를 구해줄 일말의 남성적 책임감이라는 게 존재하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프롤로프는 앞칸까지 향하며 인간보단 동물에 더 가깝게 행동한다. 꼬리칸을 보지 못하고 자란 아들린은 프롤로프를 이해할 수 없다. 생존을 위한 치열함으로 가득 찼던 꼬리칸에서는, 어쩌면 지금의 인류가 지닌 친절 같은 건 무의미해진 게 아닐까.

 

앞칸에 도착한 프롤로프는 기계실을 지키는 노인을 발견한다. 가벼운 농담과 압도적인 권위를 보이던 영화 속 윌포드는 원작에 없다. 대신 열차 뒷칸과 의사소통이 단절돼 홀로 남아 기계에게 말을 걸기에 이른 노인만이 있을 뿐이다. 노인은 자신의 사후에도 열차가 달릴 수 있게 프롤로프에게 기계를 맡긴다. 다시 꼬리칸으로 돌아갈 이유도, 별다른 선택도 없었던 프롤로프는 이를 받아들인다.

 

아트 슈피겔만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경험한 자신의 아버지를 토대로 그린 그래픽 노블 <>에서, 아버지는 아트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살고 싶으면 친절한 게 좋단다!” 지옥에서 살아남은 아버지는 분명 대단한 존재지만, 아트는 아버지가 가스실에서 죽어나간 다른 유대인보다는 운이 좋았다고 기록한다. 마치 생존을 점지하는 여러 상황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친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사람들의 친절이나 정의는 이 시대를 살아남기 위한 진화의 산물이다. 고도의 문명과 규율로 지탱되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친절과 정의는 생존을 담보하는 도구가 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것이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사회에서, 친절과 정의는 그 힘을 잃는다. 영화 <설국열차>의 커티스는 열차의 꼬리칸에서 생존하기에 지나치게 친절하고 정의롭다.

 

 

 





설국열차
Le Transperneige
(1984-2000)

장마르크 로셰트 
Jean-Marc Rochette
쟈끄 로브 Jacques Lob
벵자맹 르그랑 Benjamin LeG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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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문화연구(2009)
808.90944 로54ㅅ 


 

 

/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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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통장의 정릉라이프] 두부큐 - 손두부 전문점

왜 우리는 학식과 배달음식으로만 주린 배를 채우는가? 정릉골로 약간만 발을 옮겨보자. 맛의 신세계가 펼쳐진다. 포털 검색창에 ‘정릉’을 치면, 왜 나오는 게 ‘건축학개론’ 뿐인가? 정릉골로 조금만 발품을 팔아보자. 사람 냄새나는 곳이 또 정릉이라. 자칭 타칭 정릉골 통장이라 불리는 자취 5년차 최통장이 <최통장의 정릉 라이프>라는 새로운 코너로 정릉에 숨어 있는 맛집부터 생활정보, 자취생활의 팁까지를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최통장 백

 

 

   손두부 전문점 < 두부  >  

 

 

 

 

 

 

무엇을, 아니면 어디를 첫 번째 순서로 선택할지 최통장은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정릉골 3년차라는 자부심은 더욱 최통장의 선택을 고통스럽게 했다. 그래도 일단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 먹거리를 선택했지만 ‘그럼 어디?’라는 고민이 새로 찾아왔다. 며칠간의 고심에 최통장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렇게 하얘진 머릿속에, 하얀 두부가 가득 차올랐다. ‘그래!, 두부큐!

 

 

▲ 넓지 않은 공간에 10개 남짓의 식탁이 자리 잡고 있다

 

 

‘두부큐’로 가는 길은 학교 후문으로 나서야 순조롭다. 청덕초등학교 방향으로 굴다리(터널)를 지나, 정릉골에서 유명한 맛집인 빨간 간판의 중식당콰이러가 등장해도 잠시만 참길 바란다. 오늘은두부큐. ‘콰이러입구를 끼고 우회전해서 좁은 길을 1분만 내려가면, 평범한 가정집 입구에 나무 데크로 처리한두부큐라는 간판이 보인다. 전혀 식당 같지 않은 외관에 주춤대지 말고 아무렇지 않게 문을 지나 돌계단을 올라 집안에 들어가면 된다. 좌식 식당이기에 신발을 벗기 불편하거나 발 냄새로 고생 중이라면 참고해두자.

 

 

▲ 나무조각으로 만든 메뉴판에 눈길이 간다

 

 

가정집이라 그런지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10개 남짓한 식탁이 자리 잡고 있다. 벽 한 켠에 걸린 나무 조각에 손 글씨로 써서 만든 메뉴판에 눈이 간다. 직접 만드는 손두부 전문점인 만큼 대표메뉴인 하얀순두부찌개를 우선 먹어보자. 혹시라도 시원한 맛을 찾는다면 메뉴판에는 없지만 김치순두부찌개도 있으니 그 쪽도 좋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에 정갈한 반찬이 식탁을 먼저 채운다. 때때로 반찬의 종류가 바뀌긴 하지만, 학교 주변에서 보기 드문 직접 담근 김치와 으깬 감자로 만든 샐러드가 별미다. 특히 감자샐러드는 주린 배로 가면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깨끗하게 비우게 된다.

 

 

▲ 정갈한 반찬 중 으깬 감자 샐러드(가장 우측)는 별미다.

 

 

반찬으로 입맛이 돌 때쯤 뚝배기에 담긴 순두부찌개가 나온다. 흔히 생각하는 빨갛고 계란이 풀어진 얼큰한 순두부찌개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하얀 국물에 몽글몽글한 순두부가 가득 차 있는두부큐의 순두부찌개는 촉촉한 계란찜을 떠오르게 한다. 흑미로 지어낸 밥의 검은 윤기 덕에 하얀 순두부찌개는 더 이색적이다.

 

 

▲ 흡사 계란찜을 닮은 하얀 순두부찌개가 이채롭다.

 

 

첫 수저에 편안함이 느껴진다. 부드러운 순두부가 입안에 퍼지면, 삼삼하며 자극적이지 않은 맛에 입안도 속도 편안해진다. 저렴한 가격에 추가로 주문한 꽁치구이 한 마리(1,000)는 식사에 간과 쫄깃함을 더해 식사의 식감을 더 다채롭게 한다. 흑미밥 한 공기와 뚝배기 한 그릇, 그리고 꽁치구이. 깨끗하게 비우면 뱃속에 기분 나쁘지 않은 든든함이 가득하다. 기름진 배달음식과 단조로운 학식에 지친 위에 휴식을 준 듯하다.

 

 

▲ 저렴한 가격의 꽁치구이는 부담없이 즐겨도 좋다.   

 

 

왜 학생들은 이런 집을 잘 모르고 있을까. 이경옥 사장님은이미 교수님이나 교직원 분들은 많이 찾아온다, ‘학생들도 찾기는 하지만, 손님이 너무 많이 오시면 바빠서 손님들 한 분 한 분께 신경을 못쓸까봐 저녁이면 간판에 불을 꺼놓기도 한다고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사장님은예약을 하면 편하실 거라고 귀띔을 주기도 했다.

 

나서는 길, 예전에 찾았을 때 정원에 있던 강아지 두 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어느새 최통장의 뒤로 다가온 사장님은두 달 전에 하늘나라로 갔다, ‘14년을 키웠더니, 요즘 텅 빈 강아지 집을 보면 당분간은 강아지를 키우고 싶지 않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오래 두고 아끼던 곁을 계속 추억하는 정이 마치 순하고 진한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고향 같은 정릉골의 편안함도 닮아 보였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사장님은 문 앞까지 나와 최통장을 배웅하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 사진/최통장 julyte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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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소 : 서울 성북구 정릉3716-111

▷ 전화 : 02-941-0158

▶ 영업시간 : 평일 11:00 ~ 21:00 (일요일 휴업)

▷ 주요메뉴 : 하얀순두부찌개(6,000), 만두(6,000),

두부전골(-20,000/ -25,000/ -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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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3동 | 두부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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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만든 서가]약할 권리 - 야스다 고이치 <거리로 나온 넷우익>

[우연이 만든 서가]약할 권리 - 야스다  고이치 <거리로 나온 넷우익>

 

 

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일베’

재일한인 생계지원이 과도하다는 ‘재특회’

 

87 6·29 선언 이후, 한국에서 민주주의라는 가치는 누구도 의문으로 삼을 수 없는 가치가 되었다. 87년 이후 태어나 민주화의 수혜만을 입고 자란 세대라면 더더욱 그랬다. 매년 순국한 지사들을 기리는 방식으로 민주주의는 반드시 존중되어야 했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느냐는 식의 말을 공공연히 하는 것은 금기였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는 이 금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일베 사용자들은 민주화운동을 조롱하고, 호남 출신 사람들을 홍어라 비하한다. 5월이 다가오자 이들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고, 이것이 언론에 노출되며 비로소 유의미한 비판의 대상으로 부각됐다.

 

물론 그전까지 일베를 조명해보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민주주의뿐 아니라 여성, 노인, 어린이 등의 사회적 약자들을 얕잡아 부르는 집단 내 은어를 만들어 공격했다. 왜 그랬냐는 물음에 그들은 재미로 그랬다는 다소 일관된 답변으로 대답한다. 단어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져서 이미 그 단어가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인지하기 어려워진 뒤였다.

 

그들은 사회가 정한 도덕률을 깨고 금기에 맞서는 행위를 일종의유희로 소비하며 그 감정을 공유했다. ‘이래도 되는 걸까라는 금기를 넘는 불안은 무리 내 은어와 농담의 반복 재생산을 통해 극복됐다. 금기를 넘는 것의 의미는 휘발되고, 집단적 유희로서의 공격만이 남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베는 자신을 스스로 벌레나 병신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비웃고 떠드는 공간일 뿐이라는 인식이 더 강했다. 5월 광주라는 한국 근현대사의 역린을 건드린 후에야, 일베는 공공연한 사회의 적이 되었고 고소와 고발이 난무하는 조리돌림의 장이 되고 말았다.

 

 

소동이 끝나자 야스쿠니의 가로수에서 흘러나오는 매미 소리만이 주위에 가득했다.

 

 “, 덥다.”

 

 “수고하셨어요.”

 

그토록 폭주하던 참가자들은 그렇게 서로를 치하하며 삼삼오오 흩어졌다. 각각의 표정에서는 극좌 세력을 놓친 아쉬움이나 자신들의 행동을 통제한 국가권력에 대한 분노는 추호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상기된 얼굴에는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이 떠올라 있었다.

 

 

일본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가 올해 5월에 펴낸 책 <거리로 나온 넷우익>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을 쫓은 몇 년간을 기록한 탐사 르포이다. 극우주의 단체 재특회는 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 코리안(자이니치 혹은 재일동포)들이 과도한 특권을 받고 있다며 이를 규탄하고 그들을 그특권으로부터 배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저자인 야스다 고이치는 그들의 주장이 전부 허구에 가깝다고 말한다. 재특회는 재일 코리안들이 과도한 생활 보호 지원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재일 코리안 대부분은 어렵게 생활하고 있어 생활 보호 지원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부닥쳐있다. 설사 그들의 주장에 맞는 부분이 있더라도 대개 과장된 것에 불과하다.

 

명확한 적이 보이지 않는 사회
사회적 덕목에 숨 막히는 개인

 

물론 그 사실이 재특회에게 그리 중요하진 않을 것이다. 그들이 원했던 건 억누를 길 없는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적당한 대상이었다. 어느 소수자든 그들의 대상이 될 수 있었고 그것이 재일 코리안이라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 모든 것들을 그저 덜떨어진 사람들의 유희인양 여기고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던 것은, 사람들이 일베나 재특회를그저 정신적 결함이 있는 소수 집단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따로 부락을 만들어 거주하는 사회 외적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사회가 요구하는 의무와 덕목에 지나치게 억눌려있을 가능성이 크다.

 

경제적 능력, 모두가 존경하는 사람이 되는 것, 화목한 가정을 일구는 것 등의 사회가 요구하는 덕목을 충족하지 못했을 가능성. ‘내가 진짜 원하는 게 이거다’. 별수 없는 욕망이지만 그렇다고 이를 말해서는 안 됐다. 사회가 요구하는 덕목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은무능과 동의어이고,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자신을 고백한다는 것은 사회적 자살행위와 다름없다.

 

싸울 대상이 명확한 싸움은 쉽다. 과거의 적은 눈에 보이고 명쾌했으며 다 같이 힘을 내서 물리친다는 가상의 카타르시스를 충족시켜 주었다. ‘힘 모아 일하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 거야. 독재자를 몰아내면 사회적 모순을 극복할 수 있을 거야. 금 모으기 운동으로 국고를 채워 나라가 진 빚을 갚으면 무리한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국외 자본을 이길 수 있을 거야.’

 

그러나 다각화된 사회는 과거와 달리 그들에게 확실하고 명확한 적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더구나 개인의 경제적 무능과 자기실현의 좌절은 거대한 적을 찾아 싸움으로 초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제 그들은 홀로 적을 찾아내어 자신의 존립 근거를 확보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제대로 된 욕망의 근거와 마주할 용기가 없거나 근거를 발견하지 못한 이들은 이내 자신이 마주한 실제 욕망을 왜곡시키고 헌신할 대상을 발견한다. 일본에서는 그것이재특회였던 것이다. 그들은 재일 코리안이라는 적을 만들어냈다.

 

나의 욕망에 괴로워하지 않는 대신

‘약자’를 공격해 괴로운 오늘을 잊다

 

그런 점에서 재특회의 시위는 기존까지의 반동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들에게 재일 코리안 시위는 유희나 배설일 뿐, 자신의 이익과 직접 맞닿아 있는 게 아니기에 욕망의 최종목적지가 될 수 없다. 비단 공격의 대상이 재일 코리안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재특회에 관심을 보인 다수 사람들은 오히려 이 시위가 재특회 회원 개인의 욕망과는 관련 없다는 사실 때문에 주목한다. 충족될 수 없는 자신의 욕망 앞에서 괴로워할 필요 없이, 속 편하게 타인을 공격하는 것으로 나의 오늘을 잊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실제로는 그 때문에 재특회는 명확한 방향을 잃어버린다.

 

일베가 진짜 원하는 건 기존 세대의 금기를 깨부숴버리는 일이다. 그 금기가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폭력과 증오가 원을 그리며 끝없이 돌고 있다. 당면한 욕망을 직시하고, 그것을 자기 힘으로 도저히 이뤄낼 수 없다고, 자신은 보잘것없다고 말하는 대신 그들은 키보드를 두드린다. 우리는 속 편하게 지는 법, 혹은 약한 자신을 인정하는 법을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다.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아낼 권리. 차라리 욕망에 솔직하라는 말들. 어느 쪽도 결코 쉽지 않다.

 

 


거리로 나온 넷우익

ネットと愛国 :
在特会の「闇」を追いかけて

야스다 고이치 安田浩一

 

(클릭하시면 상세 도서정보로 연결됩니다.) 


후마니타스(2013)
청구기호 미정(정리중)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정리/이승한 에디터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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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만든 서가]갑(甲)질의 추억 - 나쓰메 소세키 <나의 개인주의>




“어째서 제가 근거도 없이 그걸 좇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선배도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럼 바꿀 수도 있잖아요.”

그는 안경 너머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막사회테두리에 진입한 그는어른의 목소리와 말투로 내게 말했다. 넌 너무 철이 없다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른다고. 그건원래부터 그런 거라고. 그는 말을 멈추고 웃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사회에 나가면 지금처럼 윗사람한테 눈 똑바로 뜨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거야. 알아듣니?”

나는 말로도 사람을 때릴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실로 오랜만에, 이념 싸움 없이도 모두가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일들이 연달아 터졌다. P사 임원 기내식 라면 사건, P제과업체 회장 폭행 사건, N유업 폭언으로 이어지는 3대 갑()질은갑을(甲乙) 사회논의에 종지부를 찍었다.

 

객관적인 악한을 설정해 하나로 뭉쳐 단죄하며 누리는 자기충족적 쾌감 때문인지.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헌법의 기본 정신에 따라서인지. 키보드 앞, 냉장고 속 우유 앞에서의 정의구현이 각계각층에서 실현되고 있다. ‘저희는 N유업 우유를 팔지 않습니다.’라는 신속한 입장표명이 온 동네 마트들을 뒤덮는 한편, 표준계약서의이라는 표기마저 없어진다고 한다. 이리도 아찔한 속도로 정의가 구현되는 나라에서 그동안 갑을 관계는 대체 어떻게 유지되어 온 걸까.

 

누가 봐도 분명한 악을 설정하고 돌을 던지는 건 쉽다. 그것이 자신의 정의나 선을 드러낼 수 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들어 척결 대상으로 거듭난 갑질은 매혹적인 절대악이다. 우리 중 대부분은 살면서 한번쯤은 갑의 갑질 앞에 서러웠던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니, 절대불변의 악인 갑에 대한 을의 투쟁은 만인의 동의를 구하기 수월하다.

 

그러나 갑과 을은 생각처럼 그리 명쾌하게 나뉘지 않는다. 갑과 을을 설정하고 나면 그 속에서 갑과 을은 다시 무한소수로 쪼개져 상대를 달리해 갑질할 대상을 찾아낸다. 직장에서 한바탕 당한 을이 가정에 들어서자마자 군림하는 갑이 되는 상황은 얼마나 흔한가. N유업 폭언 사건만 봐도 갑은 힘들이지 않고 을 혹은 병()에게 자신의 업무를 가중시킨다. 이 무간지옥은 을이 병을, 병이 다시 정()을 착취하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갑과 을은 늘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다.

 

따라서기내에선 진상을 피우지 말자’, ‘그 제과업체가 망했다더라’, ‘정의를 위해 마시던 우유를 버리자는 말들은 오로지 해프닝으로 소모될 뿐, 어떤 방식으로도 충족될 수 없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갑질을 향한 소모적인 싸움을 계속해야 할까.

 

“원래 의무를 수반하지 않은 권력이라는 형태가 세상에 있을 리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높은 단상 위에서 여러분을 내려다보며 1시간이나 2시간 동안 내가 말하는 것을 정숙하게 듣기를 요구할 권리를 보유한 이상 내 쪽에서도 여러분을 정숙하게 할 만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4,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학습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나의 개인주의>라는 주제의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높은 위치에 오른 사람들이 자칫 남용할 수 있는 권력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상에 올라 자기 멋대로 떠들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을 때 이를 남용하지 말고,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나의 개인주의>에서 발췌한 문장은 권력을 지닌 자인이 어때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1914년의 강연에서는 단상 위에 서 있는 소세키가 갑이고 그의 강연을 듣는 학생들이 을이다. 권력자 갑에게 부여된 모든 권력은 언제나 피권력자 을에 대한 의무를 수반한다. 무한한 의무를 진 갑이 동등한 견지에서 을의 의향을 살피는 형태의 소통은 인간을 유토피아적 평등으로 이끈다.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펼쳐지는 갑질의 무간지옥은 갑에게 의무를 지우지 않는다. 이 무간지옥은더러우면 출세하면 된다는 성공 신화를 동력으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이 짓을 모두 때려치우고 갑을 따끔하게 단죄하고픈 을의 무한한 욕망, 언젠간 자신도 갑의 위치로 올라서고 싶은 욕망으로 이룩된 신화 말이다.

 

을은 의무 없는 권력을 가진 갑을 탐하고, 의무를 방기한 권력은 그를 아무렇게나 행동할 수 있도록 이끈다. 을은 눈을 감고 병이나 정에게 자신의 권력을 행사한다. 이 질서는 너무도 편안해서 짐짓원래부터 그런 것이었다는 말들과나도 저렇게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을들의 은밀한 욕망 속에 은폐된다. 소세키는 말한다. “의무를 수반하지 않은 권력이라는 형태가 세상에 있을 리 없다고.

 

지금은 당연한 듯 분개하고 이야기되는 평등의 역사는 매우 짧다. 불평등은 인간 역사를 이룬 가장 오래 지속되던 상식 중 하나였다. 한때원래부터 그런세상의 원리였던 불평등은철없는이들이 꿈꾼 유토피아적 평등에 대한 갈망과,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이들의 오랜 세월의 투쟁 끝에 청산해야 할사회악으로 강등됐다. 세상에 원래부터 그런 건 사실 아무것도 없다.

 


 





 

나의 개인주의 私の個人主義

나쓰메 소세키 夏目漱石

 

(청구기호를 클릭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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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2004) 813.45 하351ㄴ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편집/이승한 에디터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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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봐서 아는데]최 병장, 8시간 동안의 호국 일기

[내가 해봐서 아는데]최 병장, 8시간 동안의 호국 일기

본격 기자 체험 자랑 칼럼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 첫 번째, 최용우 기자의 예비군 훈련 체험기

 

 

▲선배님들, 버스에 탑승하시지 말입니다 지난 2일 서울 모처에서 우리학교 학생 예비군들이 훈련장에 입소하기 위해 시내버스에 올라타고 있다. (서울=국민저널/최용우 기자)

 

5월만큼 북악에서 아름다운 달이 또 있으랴. 시험은 끝났고, 대기 중엔 봄 향기가 가득하며, 축제를 앞둔 설렘이 피부로 느껴진다. 온 캠퍼스는 초록으로 물들고, 옷장 앞에서 옷을 고를 때부터 마음가짐이 달라진 게 느껴진다. 하지만 역시 5월의 북악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행사라면, 누가 뭐라 해도 예비군 훈련이다.

 

학생예비군 훈련은 4월부터 하는데 왜 5월의 가장 큰 행사냐 묻지 마시라. 4월의 예비군과 5월의 예비군은 다르다. 4월은 아직 꽃샘추위가 옷 안으로 파고들고 극한의 일교차가 오감을 지배하는 계절. 같은 군복을 입어도 야상을 걸쳐야 하는 4월과 야상 없이도 집을 나설 수 있는 5월은 다르다. 야상을 걸치느냐 마느냐에 누적 피로도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아는 이들이라면 기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이다. 예비군은 5월이 제 맛, 5월엔 예비군인 것이다.

 

이 군복엔 슬픈 마력이 있고

이 버스엔 사람 말고 군인만 있어

 

남북관계가 경색일로를 걷고 있는 이 시기, 기자는 8시간짜리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옷장에서 오랜만에 군복을 꺼내 입고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병장 최 병장으로 거듭났다. 평소와 같은 시간의 잠을 잤음에도, 군복을 입자마자 알 수 없는 졸음이 쏟아진다. 만사가 귀찮아진다. 가까스로 집을 나와 지하철에 올라탔다. 결국 최 병장은 마치 「아이언 맨」의 슈트처럼 마력을 지닌 군복에 굴복한 채, 당고개역을 향하는 내내 지하철에서 잠을 자 버렸다.

 

도착했는지 군화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눈을 떠보니, 군복을 입은 시커먼 예비군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훈련 전에 지쳐버린 육신을 간신히 이끌고 훈련 교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싣는다. 만차가 된 버스 안을 둘러보니 승객 모두가 군복을 입고 있다. 놀라운 광경이다. 휴가·외박을 나오는 군인으로 가득 차 있는 버스에 탄 어느 할머니가 남긴 명언, “이 버스에는 사람은 없고, 군인만 있네”가 뇌리를 스친다.

 

두 정거장 뒤 예비군 교장 앞, 버스가 섰고 기사님만 홀로 남겨둔 채 예비군 모두가 하차한다. 현역 조교들과 교관(동대장*)들이 정문에서 예비군들을 반긴다. 교관이 군화, 고무링, 벨트 등 복장 점검을 한 후 2열 종대 줄을 세운다. 10여 분의 행군 끝에 연병장에서 개인 장구류를 지급받는다. 철모, 탄띠, M-16 소총 한 정. 최 병장은 휴대폰을 반납하고 8시간 동안 잠시 세상과의 연을 끊는다. 연병장 한 모퉁이에서 모든 예비군이 장구류를 지급받고 집합할 때까지 30여 분을 기다린다. 역시 대기 시간은 현역 때든, 예비군 때든 똑같이 지루하다.

 

*동대장 : 지역 최소 단위인 ‘동’에 거주하는 향토예비군을 책임지는 지휘관. 장교 또는 퇴역 군인(대위 이상) 중에 선발된다.

 

내가 못 쏜 게 아니야

내 옆에 있던 놈이 스나이퍼라서 그래

 

설렁설렁 입소식을 끝내고 첫 훈련인 사격에 나선다. 그나마 예비군 훈련 중 가장 훈련다운 사격. 올해부터 조기 퇴소제가 생겨, 훈련 과정을 평가하여 우수자는 먼저 퇴소시킨다는 교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다들 좀처럼 믿지 않는 분위기다. 사격장으로 이동한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역시 대기다. 나라를 지키려면 체력 관리는 필수, 최 병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예비군들은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잠을 청한다. 역시 예비군은 기승전잠이다.

 

드디어 최 병장의 순서가 왔다. 이미 사로에 준비가 된 총을 잡고 표적에 6발을 쐈다. 산발되어 있지만 표적지에 6발이 다 들어가 있다. ‘아직 최 병장 살아있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교관이 와 표적 검사를 하기 시작한다. 정말로 평가를 하는 거다. 교관이 최 병장의 눈을 보며 웃는다. “아시죠?” 얄짤 없는 불합격. 다음은 옆 전우, “잘 쐈네. 합격!”이라는 교관의 평가가 이어진다. 그러자 그 전우의 대답, “네, 스나이퍼입니다.” 아니, 왕년에 스나이퍼 아니었던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내가 현역 때는 말이지….

 

준장님 나를 재우시고

여성분 나를 깨우시니

 

다음 교육은 예비군 훈련의 취침시간인 정신교육 시간. 역시 내용은 언제나 일관성이 있어 좋다. 안보교육 PPT는 한 사람이 만드는지 내용도, 구성도 예전과 똑같다. 강연의 주인공은 현역 시절이었다면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던 존재인 예비역 준장. 하지만 전역한 예비군에게 준장이 대수랴. 전역과 동시에 동네 옆집 아저씨로 내 마음 속 보직 변경을 하는 게 장교요, 간부다.

 

강연이 시작된 후 강당의 가장 뒷자리에 위치한 최 병장은 불과 몇 분 만에 기적을 경험한다. 최 병장 앞자리 예비군들이 익은 벼처럼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 것이다. 흡사 모세의 지팡이 끝에서 홍해가 갈라지듯, 차례로 숙여진 고개 너머로 어느새 예비역 준장과 맨 뒷자리 예비역 병장이 눈빛 교환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날카로운 눈빛의 조교들이 깨우러 다니지만 소용없다.

 

그러나 기적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음 강연에 나타난 한 존재가, 조교들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고자 전우들의 숙여진 고개를 일으키는 기적을 행하신 것이다. 그 존재는 여자. 북한의 실태를 알리는 내용의 동영상이 강단 스크린에 뜨고, 뒤이어 8명의 새터민 여성이 토크쇼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짙은 수컷 향기가 진동하던 예비군 교장에 뜻밖의 화사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숙여져 있던 고개들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뭐야?” “여자야?” “여자 왔어?” 최 병장이 5년간 받은 예비군 안보교육 중 집중력은 최고조에 이른다. 뼛속까지 안보 정신이 충만해진다.

 

전투의 패배는 용서할 수 있어도

보급의 실패는 용서할 수 없어

 

강연 말미 교관이 꺼낸 점심 이야기에 예비군들의 집중력은 폭발한다. 자, 이번 시간이 끝나면 점심시간인데, 국민대학교는 총장님의 배려로 점심 값을 학교에서 일괄지급 했습니다. 총장님께 박수 한번 주시죠. 강당이 떠나갈 듯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온다. 이번 기적은 예비군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신 총장님께서 행하셨다. “자, 식사하러 가십시오.”라는 교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예비군들의 구보가 시작된다. 비록 군을 떠난 지 수년 됐으나, 식사에 대한 집념은 현역 못지않다. 식당으로 가던 한 전우는 넘어져 손바닥이 다 까졌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훈련 중 손실된 근육에 단백질을 제공할 고기산적과 동그랑땡, 주린 배에 포만감을 줄 양배추 샐러드, 한국인의 동반자 김치, 입맛 없는 이에게는 축복과 같은 김, 훈련으로 쌓인 피로를 한꺼번에 풀어줄 비타민이 듬뿍 담긴 과일음료, 그리고 쌀밥과 미역국. 맛이 있느냐고? 뭘 묻는가. ‘짬밥’은 일단 배를 채우고자 먹는 것이지,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배부르다”는 말이 목적 지향적 식사를 요약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배가 불렀을까? 전우들의 발길은 PX(충성클럽)로 향한다. 예비군의 베스트셀러, 아이스크림을 위해서다. 길게 늘어선 줄. 하지만 PX병의 한마디에 온 예비군이 술렁인다. “선배님들 죄송합니다. 오늘 아이스크림이 보급이 안 됐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이런 기본적인 보급조차 실패하다니,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어찌 안보를 논하고 국방을 논한단 말인가. 전투에서의 패배는 용서가 돼도, 보급의 실패는 용서할 수 없거늘.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가서 100개 사먹어야지’라는 마음을 되뇌며, 과자를 몽땅 사서 분대회식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내가 꼭 집에 일찍 가고 싶어서

‘약진 앞으로’를 외친 건 아니야

 

“선배님들,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조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느긋느긋 움직이는 예비군들을 조교들이 계속 재촉하지만 ‘배도 불렀겠다,’ 더 느긋해 보인다. 꾸역꾸역 모인 예비군들 앞에 나타난 동대장 아저씨가 오후 일정을 브리핑한다. “바로 시가지전투 훈련이 있습니다. 일명 서바이벌 게임이라고 하죠. 이 훈련이 오늘 조기 퇴소자를 선발하는 하이라이트가 될 겁니다. 선발자는 16시에 퇴소합니다. 열심히 훈련에 임해주세요.” 아직까진 “일찍 퇴소해서 뭐해.”라는 웅성거림이 대다수다.

 

시가지전투 훈련장에 들어선다. 시가지처럼 만들어 놓은 모형 훈련장이 눈에 뛴다. 동대장 아저씨가 “원래 공격조, 방어조로 나누어서 훈련을 해야 하는 데 안전문제로 공격조만 편성하여 훈련합니다.”라고 공지를 한다. 서바이벌 전용 총 한 정, 페인트탄 다섯 발을 지급받고 보호 장구를 착용한 후 훈련에 임한다. 그런데 이것 봐라. 먼저 훈련하는 분대들이 내지르는 ‘약진 앞으로’ 구호가 갈수록 커진다. 아, 조기 퇴소. 밀려오는 식곤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시크하게 굴던 예비역들의 귀가본능을 일깨운 것이다.

 

최 병장이 속한 분대 순서가 왔다. 최 병장은 자신도 모르게 ‘약진 앞으로’를 미친 듯이 내지른다. 그리고 엄청난 기동력으로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통제관이 전방에 있는 표적지를 향해 격발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전방에는 인민군 복장을 한 표적이 보인다. 오전에 있었던 안보교육 덕분인지 최 병장의 안보 의식은 이미 충만했다. 최 병장은 백발필중의 정신으로 눈앞에 있는 인민군 표적에 페인트탄 다섯 발을 원점 타격 하였다. 페인트 탄이 터지면서 인민군 표적을 물들게 한 주황빛에 최 병장은 왠지 모르게 끓어오르는 귀가본능, 아니, 애국심을 느낀다.

 

국방부 시계는 자비심이 없지 말입니다

예비역이라고 봐 드리지 않지 말입니다

 

시계바늘이 16시를 향해가고 있다. 시가지전투 훈련을 마친 전우들은 잠을 청하고 있다. 어디서든 잘 수 있는 예비군의 참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자, 조기 퇴소자를 발표하겠습니다. 호명되는 예비군은 바로 퇴소하겠습니다.”라는 동대장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진짜 하는 거야?” “아, 총 좀 잘 쏠 걸.” “1시간 일찍 가서 뭐하려고….”등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OO번 예비군, 퇴소.”, “OO번, OO번 예비군 퇴소.” 동대장 아저씨의 발표에 모두가 들썩인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함성. “5분대는 우수 분대로 분대 전원 퇴소합니다.” 현역 못지않은 5분대의 함성이 교장을 가득 메웠다. 조기 퇴소자들은 얼굴에 미소를 가득 안고, 남은 예비군들을 놀리며 정문 밖으로 나간다. 이게 뭐라고 발표 순간 은근히 기대가 되었던 건 뭐고, 조기 퇴소자가 부러운 이 심정은 또 뭔가. 사람마음 참 간사하다.

 

“남은 예비군들은 수류탄 투척 훈련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훈련장에 도착하니, 조교들이 준비되어 있던 모의 수류탄을 한 발씩 지급해 준다. 수류탄 파지법(손에 쥐는 방법) 설명을 듣고, 10여 미터 앞에 설치된 인민군 표적이 있는 박스 안에 수류탄을 던져 넣는다. 하지만 이미 전의를 상실한 예비군들이 투척한 수류탄이 들어갈 리 있나. 바로 앞에만 안 떨어지면 다행이다. 실제 전투 상황이었다면 분대 전원이 폭사해도 이상할 게 없는 거리에 모의 수류탄들이 툭툭 떨어진다. 조기 퇴소 탈락으로 멘붕에 빠진 최 병장 또한 취재가 어려울 정도로 전의를 잃은 지 오래. 적당한 거리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지만, 시간이 참 안 간다. 예비군도 군이라고, 국방부 시계는 참 느리게도 간다.

 

어느덧 17시, 1년 치 국방의 의무가 끝나가고 있다. “오늘 하루 수고하셨습니다. 연병장으로 이동하여 장구류 반납하고 퇴소하겠습니다.” 동대장 아저씨의 말에도 이제 힘이 없다. 아저씨도 참 수고가 많습니다. 연병장에 도착하니 8시간 동안 나라를 지킨 역전의 용사들이 가득 차 있다. 장구류를 반납하고 휴대폰을 돌려받는다. 옆에 있던 과 후배에게 “휴대폰 켰는데 메시지 하나도 안 와있으면 정말 비참할 것”이라 말하며 휴대폰을 켰다. 다행히 카톡(카카오톡 메시지)이 와있다. 뭔지 모를 뿌듯함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카톡 비밀번호를 풀고, 채팅창을 들여다봤다. “이런, 젠장 단톡방(단체카톡방) 메시지밖에 없다니….” 순간 내 자신이 비참해 진다.

 

훈련비로 지급받은 1만원을 들고 과 선·후배들과 끝나고 뭘 먹을지 대화를 나누며, 교장을 빠져나가는 데 머리위로 물방울이 떨어진다. 비다. “이런 젠장, 다 끝나니까 비라니, 다 끝나니까 비라니!” 훈련 할 때 좀 퍼부어 줬으면 모두가 비를 피해 잠을 청하며 체력보충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꼭 훈련을 피해 내리는 걸 보니 비조차도 5월의 꽃이 예비군 훈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5월의 꽃은 예비군 훈련이다. 꼭 기자가 8시간 구르다 와서 하는 말이 아니지 말입니다!

 

글·취재·훈련 참여/ 최용우 기자 julyten@daum.net

정리/ 이승한 에디터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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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만든 서가]요조는 굶주려본 적이 없다 -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부끄럼 많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인간의 죽음이라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우주가 여기저기서 죽어가는 데 뭇사람들은 그 우주를 곧잘 소비해내더군요. 뉴스로 지하철 안에서 커피숍에서 정말이지 잘도 떠들어댔습니다. 등록금을 내지 못해 건물에서 떨어진 대학생 혹은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벌다가 고용주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자살한 학생까지.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들을 소비하고 죽였습니다. 제가 그들의 몫을 빼앗았고 그들의 죽음을 수수방관했습니다.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많은 것을 요구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외려 아주 단순한 것입니다. 죽은 자들이 저를 보며 손가락질하고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습니다
. 생계와 관련된 일들에는 도무지 관심이라는 게 없었으니까요. 그 은수저를 등 뒤로 감추고 살고 싶었습니다. 대학에 와서 문학을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잔인한 현실조차 문학이라는 틀을 한 번 거치고 나면 으레 아름답게 여겨지기 마련입니다. 보고 읽고 쓰고 동정했습니다만 그것도 그뿐, 문학 속의 현실이 제 삶은 아니었으므로. 저는 은수저를 움켜쥘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저를 떨어트릴 순간부터 시작될 불행 ―온정을 베풀 수 있는 인간적인 삶을 져버릴 것이다. 이 나락의 연쇄―을 잠을 설치도록 두려워한 탓이겠지요. 물고 있던 은수저가 떨어지면 나도, 그리고 내 삶도 같이 떨어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루는 집회에 나갔습니다
. 높은 대학 등록금 액수에 항의하는 그런 집회였습니다만 그곳에서조차 저는 관찰자 신세였습니다. 새벽 2시 서울 종로 한복판에는 취객들, 경찰들, 그리고 기자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많이들 모여 있더군요.

멍하니 경찰의 23차 경고를 관망하고 있던 저에게 기자들 무리 중 누군가가 어느 신문 아무개라며 다가왔습니다. 대학생이시죠? 등록금은 얼마나 내고 계신가요? 대학생으로서 이런 방식의 시위를 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반값 등록금이라는 게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기자의 질문에 많은 시간을 들여 답을 해주었습니다. 기자는 수첩 빼곡히 제 대답을 적더군요. 하지만 그날의 불행은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있었습니다. 등록금은 어떤 방법으로 버시나요? 순간의 정적이 흘렀습니다. 거리 저 끝에서는 많은 수의 경찰들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전액 대주시기 때문에 저는 사실 반값 등록금이 필요 없습니다. 반값 등록금 시위의 정당성을 떠들어 댄 이후였습니다. 거기서 저는 그렇게 공포하고 말았습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기자의 얼굴에는 약간의 조소가 흘렀습니다. , 그렇군요. 그녀는 마지막 답변을 적지 않고 수첩을 덮더니, 마침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습니다.

, 그렇군요. 저에게는 드러누운 학생 무리에 낄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바닥에 엎드려 소리치고 울던 학생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이 상대해야 할 대상은 경찰이 아닌 바로 저 같은 사람들입니다!

 

 

저는 끝끝내 아주 망가지지는 못할 겁니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아주 망가져 버릴 수 없다는 두려움에 근거하니까요.

 

 

저는 끝끝내 아주 망가지지는 못할 겁니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아주 망가져 버릴 수 없다는 두려움에 근거하니까요. 인간실격의 요조는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수기가 끝날 때까지 그는 단 한 번도 배고파 본 적이 없습니다. 밥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에 근거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요조는 이 일을 미신으로 치부하고 싶어 합니다. 가족들은 마치 괴물 같다며 가족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건만 그들이 보내준 돈이 아니면 생존할 수 없는 모순에 대해, 요조는 어쩌면 의연하고 싶었던 겁니다. 요조는 가난에 대한 희미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고 진술하나 그럼에도 경멸심이 없다고 결백하게 말했습니다.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가난은 요조에게 자신을 경멸할 기회를 준 적이 없었으니까요.

아버님이 이제 안 계신다. 내 마음에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던 그 그립고도 무서운 존재가 이젠 안 계시다. 제 고뇌의 항아리가 텅 빈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제 고뇌의 항아리가 공연히 무거웠던 것은 아버지 탓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조차 들었습니다.” 수기 내내 아버지는 절대적 존재이자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며 죽고 나서도 아버지로 상징되는 자본이 요조의 머리 위를 배회합니다. ‘돈 떨어지는 날이 인연 끊어지는 날이란 말이야.

요조의 창조주이자 그와 가장 가까운 분신인 다자이 오사무가 행했던 5번의 걸친 자살 시도의 원인 역시 그의 친가와 자유로울 수 없을 겁니다. 다자이가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접하며 느낀 어찌할 수 없는 죄책감이 하나의 근원일 테지만 병약한 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자살하는 수밖에요.


 

 



 


인간실격
人間失格

다자이 오사무 太宰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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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문화사(1995) 813.35 태72

문예(2003) 813.36 태7281

을유문화사(2004) 813.35 태72

을유문화사(2009) 813.36 태72ㅅ2

민음사(2010) 808.8 세1438

시공사(2010) 813.35 태72

 

 

 

글/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편집/이승한 에디터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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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만든 서가]멘토 권하는 사회-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당신을 이렇게 위로하려고 애쓰는 이 사람이 당신에게 가끔 위안이 되는 소박하고 조용한 말이나 하면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의 인생 역시 많은 어려움과 슬픔을 지니고 있으며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뒤처져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 사람이 그러한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여기 당신을 위한 최고의 자기계발서가 있다. 저자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인이고, 몇 세대에 걸쳐 회자되고 있을 뿐 아니라, 당신에게 진심 어린 위로와 적당한 조언을 해줄 줄도 안다. 물론 햇병아리 멘티들에게 친필로 정성스런 편지를 쓰는 것 정도는 기본이다. 어느 스타강사 왈, 저자의 지혜가 300페이지 안에 농축된 책이 자기계발서라고 하니 이 책은 더할 나위 없다. 100페이지면 완독이 가능한 이 책은 당신의 소중한 시간까지 절약해 준다. 이보다 더 근사한 자기 계발서가 또 어디 있으랴. 멘토가 이쯤 했는데도 그 지혜를 받아먹을 수 없다면, 애석하게도 그건 모두 게으른 멘티인 당신 탓이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시인 지망생이었던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가모순 혹은 장미꽃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게 받은 편지 10편을 묶어 출간되었다. 물론 사적인 편지가 이렇게 수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팔리는 건 릴케의 의도가 아니었겠지만. 카푸스는 책의 서문을 통해 문학청년들이 릴케의 조언을 귀담아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왜 아니겠는가? 릴케 역시 어려운 인생을 살아왔고, 시인으로 성공했다. 그에게는 조언할 수 있는 자격이 충분히 주어진다. 이제 그의 인생을 흡수해 100페이지의 지혜로 녹여내는 일만 남았다.

작년 한해 한국인의 정신건강 및 보건복지에 힘쓴 청춘 멘토들의 조언과 힐링은 정확히 이런 과정을 거친다. 한국인이 열망하는 객관적 성공 - 대개 매우 힘든 과정이었노라고 회자되는 - 을 거친 멘토들은, 취업을 목전에 둔 20대를 향해 자기 이야기를 들려줬다.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꿈을 가졌고, 이를 얼마나 열망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끝내 어떻게 획득할 수 있었는지. 20, 혹은 청춘으로 호명되는 잠정적인 청년 멘티들이 과연 멘토들과 같은 삶을 살고 싶어하는가는 그리 고려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열망하는 삶이야말로 바람직한 삶이기 때문이란다.

그들의 멘토링이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구조적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멘토들은 온갖 어려움을 딛고 성공했으며, 다른 이들을 도와주고자 기꺼이 손을 내미는 진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진심만으로 청춘의 현실을 막아낼 수 없었다. 진심도 일단은 잘 팔려야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진심을 이야기할 기회를 살 수 있었다. 다수의 멘티를 거느린 대부분의 멘토들은 멘티 한 명 한 명에게 감정이입하기에는 진심을 파느라 너무 바빴고, 그들이 만났던 청춘 또한 불행히도 모든 청춘을 대변할 수 없었다.

하지만 릴케의 편지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자기계발과는 조금 다르게 읽힌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릴케가 카푸스에게 보낸 편지로만 이루어져 있지만, 카푸스가 릴케에게 자신의 습작 시들을 보내지 않았다면 존재할 수 없었다. 릴케는 카푸스의 편지들을 읽으며 불특정 다수의 멘티가 아닌 카푸스라는 개인을 보았고, 그의 시에 손수 답변을 달아주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충고하고 당신을 도울 수 없습니다.’

 

위로의 방식은

대개 자기 발에 꼭 맞는 대상과의

교류를 통해 이루어진다.

 

릴케는 카푸스의 삶에 자신의 발을 담그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청년기의 자기 자신을 다루듯 카푸스의 편지에 답했던 것이다. 릴케의 독려, 혹은 카푸스를 향한 질문도 사실은 과거 릴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릴케가 열 편의 편지에서 언급한 고독은 카푸스보다 자신의 생이 더 뒤처져있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조언자의 배려다. 위로의 방식은 대개 자기 발에 꼭 맞는 대상과의 교류를 통해 이루어진다. 릴케는 자신이 먼저 걸어간 길을 카푸스가 좀 더 나은 모습으로 걸어주길 바랐다.

물론 그의 편지가 카푸스를 구할 수는 없었다. 카푸스는 릴케와의 서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자신이 원하지 않던 길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그는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글을 써야만 하는지 물어야 한다는 릴케의 조언에 성실히 답했다. 그는 통속 소설가로 이름을 알리고 평생 글을 쓰는 생을 택한다.

이 책을 집어들 당신에게 릴케는 성실히 답해줄 것이다. 어쩌면 가장 훌륭한 자기계발서일지도 모른다. 단 당신이 시인이라는 직업을 열망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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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렌즈
 (2005)

836.912 823
 

고려대학교출판부 (2006)

836.912 823

 

기파랑 (2012)

836.912 823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편집/이승한 에디터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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