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 2015년 6월] 결론은 학생자치 그리고 주인의식

[Editorial] 결론은 학생자치 그리고 주인의식


많은 일이 있어서 숨가쁘게 달려온 한 달입니다. 단과대와 총학생회의 갈등이 학교가 일방적으로 예산을 돌린 대장정 미허가 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왔고 단톡방 언어성폭력 사건은 개인의 일탈로 치부돼 다시 ‘그들만의’ 문제로 돌아갔습니다. 15학번 비이공계 학생들은 시간표에 배정된 컴퓨터 프로그래밍 수업에 대한 불만을 쏟아 냈습니다. <국민저널>은 총학생회의 3년 치 예결산안을 분석했고 총학생회의 역할과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겉으로 다른 일처럼 보이는 이 일련의 사건들은 결국 ‘학생 자치’가 그 본질입니다. 학생자치예산을 없앤 학교, 언어성폭력 사건을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는 의식에는 공감했지만 이뤄내지 못한 학생사회, 수업을 선택할 권리를 빼앗긴 학생들, 총학생회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간단하지만 어려운 주인의식에서 나옵니다.


수원대 학생들이 낸 등록금 반환 청구소송도 그 의식에서 나왔습니다. 학교에 내가 낸 등록금이 제대로 쓰이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학생들을 위해 등록금이 제대로 쓰게 해달라며 청구한 소송입니다. 비록 학교가 항소 의지를 밝히긴 했지만, 원고 일부가 승소했습니다.


국민대 학생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학생자치란 무엇인지, 좋은 학생회와 학교란 무엇인지’에 대한 구성원 사이에서의 끊임 없는 대화입니다. 모두가 참여한 치열한 토론 속에서 그 방향을 수정하고 향해 나갈 때 비로소 학생들은 학교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에디토리얼을 마지막으로 편집국장직을 물러납니다. 뒤돌아 보니 제대로 이뤄내지 못한 일들이 많아서 부끄럽고 아쉽습니다. 2학기부터는 최종태 운영국장이 <국민저널>을 이끌어 나갑니다. 항상 큰 버팀목이 되어준 최종태 운영국장은 누구보다도 매체를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 입니다. 마지막으로 <국민저널>의 기둥인 정진성, 김동욱, 신동진, 조재희, 곽혁재, 박정은, 손인혜, 이명동, 이수빈, 이희준, 임남혁, 주호준 기자와 독자 여러분께 끝없는 미안함과 감사함을 전합니다.


김혜미 편집국장 hyeme199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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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5년 4월] 소통에 대하여

[Editorial] 소통에 대하여

 

몇 주전, 벚꽃 구경 겸 운동을 하러 집 앞 불광천을 따라 걸었습니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부모님과 함께 소풍을 나온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사람이 몰리는 곳에는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항상 있기 마련이지요. 아이들은 역시나 ‘솜사탕을 사달라’, ‘장난감을 사달라’며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난감해진 부모들은 이런 저런 이유를 대더군요. 가만히 지켜보니 비교적 명확한 이유를 들은 아이들은 금방 포기를 했고, 다그치거나 무작정 안된다는 말을 들은 경우는 칭얼거림이 길어졌습니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그에 대한 ‘타당한 이유와 대화’가 있어야 한다는 정도의 교훈이었습니다.

 

총학생회 '소통'은 어떨까요? 이들이 소통의 ‘창구’로 열어놓은 것은 페이스북 페이지, 카카오톡 옐로우 아이디, 블로그, 국민인 닷컴 등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군데나 되지요.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떨까요?

 

매주 월요일마다 총학생회와 단과대 회장들이 만나는 중앙운영위원회 회의에서 한 단과대 회장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총학생회 중앙집행부, 총학생회장, 부총학생회장 사이에서 업무 연계나 소통이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최종적인 결정은 총학생회장이 한다지만, 중앙집행부와 총, 부총학생회장의 소통 부재 문제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전학대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구체적인 답변을 달라는 대의원들에게 총학생회는 ‘믿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 호소에 대의원들은 예·결산안 부결로 답했습니다.

 

불통은 불신을 부르고 불신은 갈등을 낳습니다. 단과대 회장들이 새내기 문화제에 불참한 상황에 관해 김정재 총학생회장은 “총학과 단과대 간에 ‘뭐 그런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갈등이 아니라는 의미겠지요. 이 일련의 일들에 대해서 총학생회는 아직도 갈등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총학생회를 무능하다고 하는 대신 무엇을 못하고 있는지 비교적 명확한 이유를 들어 설득하려고 합니다. 총학생회가 우리를 설득하지 못하고 믿어달라 '칭얼'거리니, 우리가 설명할 밖에요. 에이, 설마 학생들이 아이들이고 총학이 부모라고 비유하는 건 줄 아셨어요?

 

추신 : 이번 학기 8명의 신입 기자가 들어왔습니다. 곽혁재, 박정은, 손인혜, 이명동, 이수빈, 이희준, 임남혁, 주호준 기자입니다. 이미 이번 호에 본인들의 기사를 담았습니다. 취재와 기사 작성에 필요한 능력을 한 가지씩 가진 기자들입니다. 모두 환영합니다.

 

추신2: <국민저널>은 5월에 발표될 각 대학 구조조정 이슈를 계속 보도하겠다는 의미로 다음 달 기획기사인 구조조정 기사를 4월에 미리 담았습니다. 이전된 경상관이 얼마나 바뀌고 있는지 그 모습을 기사로 쓴 것 또한 이 이슈를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의미입니다.

 

김혜미 편집국장 hyeme199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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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5년 3월] 기사로 말하겠습니다.

[Editorial] 기사로 말하겠습니다.

 

“혜미씨, 편집국장 할 생각 없어요?” 이 말을 들은 건 지난 늦여름쯤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습니다. 그 자리를 감당하기엔 능력이 부족하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기자가 되겠다고 <국민저널>에 지원했을 때만 해도 전 아직 언론학 개론서는 펴보지도 못해 기초부터 배워야 했던 사람이니, 가당치 않은 자리라 생각했던 겁니다.


상식적으로 어느 조직이든 ‘수장’의 자리에 올라간다는 것은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능력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고, 조직의 이름으로 행해진 모든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기에 이 자리는 실수나 부족, 잘 몰랐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습니다. 내부에서 수많은 회의를 거친다고 해도 최종결정권자의 단 한 번의 그릇된 판단은 구성원들에게 큰 피해를 끼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결정으로 인한 결과는 불행히도 대부분 바꿀 수 없습니다.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는 옛 말처럼, 한 조직의 수장이 된다는 것은 끊임없이 무게를 견디고 버티는 일인 것입니다.


통상 임기보다 짧은 기간 동안만 편집국장을 맡겠다고 자리에 오른 지 3개월, 국민대학교엔 많은 일들이 숨 쉴 틈 없이 터져 나왔습니다. 작년 12월 익명의 기고를 통해 <국민저널> 인터넷 판에 실렸던 단톡방 사건부터, 경상대 이전 반대 투쟁과 등록금 동결까지.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스스로를 자책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모든 보도에 최선을 다 했습니다만 충분했는지는 의문입니다. 다만 단톡방 사건도, 경상대 이전도, 등록금 협상도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톡방 내에서 언어 성희롱을 주도했던 최고참 선배는 그 방의 ‘수장’이었고, 경상대 이전을 구성원의 동의 없이 결정하려 했던 이도 학교의 ‘수장’이었으며, 등록금 협상에서 학교 측의 논리를 되풀이했던 것 역시 학생들의 ‘대표’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제 머리를 짓누르는 편집국장 직의 무게에 신음하며, 저는 그들이 자신들의 머리 위에 올린 왕관의 무게를 생각했는지 생각합니다. 제가 쓴 왕관이 상징하는 바는 <국민저널>이 지켜야 할, 그리고 지키고자 하는 ‘성역 없는 보도,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매체’라는 원칙을 어떤 일이 있어도 타협하지 말라는 점이겠지요. <국민저널>이 원칙을 잘 지키고 있는지는 저희 스스로와 독자 여러분들만이 알 수 있을 겁니다. 기사로 말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질책 부탁 드립니다.



김혜미 편집국장 hyeme199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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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4년 11월] 반가움 새로움

[Editorial] 반가운 새로움

 

<국민저널>의 기사 편집 원칙이라면 페이스북 상에서 논란이 됐던 '북악방송(BBS)' 기사에 대한 언급으로 갈음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기사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말을 해주신 분께, 한겨레신문 故 구본준 기자의 말을 옮기고자 합니다. “기자는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면 안 된다. 시원히 할 말 하는 것 같지만 결국 기자가 주관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일 뿐. 의견이 다른 이들에게 혐오를 부르기 쉽다. 기자가 독자에게 전해야 할 궁극은 역시 ‘정보’라고 믿는다. 선택은 독자에게.”

 

기사는 정보를 끝까지 파악해 싣는 최소한의 객관을 지켜야 한다고 믿습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정보에도 취사선택이 일어나게 됩니다. 모종의 관계에 의해 중립과 객관이라는 말은 쉽게 알리바이로 작용합니다. 어쩌면 모든 기사가 궁극적으로 중립이나 객관을 지킬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국민저널>은 국민대 구성원이라면 매체에 들어오거나 기고를 통해 누구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은 내부의 토론을 거쳐 기사로 싣는 것으로 그 이해관계를 최소화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한 ‘지금까지의’ <국민저널> 기사 편집 원칙입니다.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이라면 <국민저널>은 학내 방송국·신문사에서 해직돼 나온 기자들, 2012년 당시 학내 소식을 전하는 팟캐스트를 만들던 사람들이 모여 창간한 매체라는 걸 알겠지요. 하지만 햇수가 3년째 접어든 요즘은 오히려 창간에 대한 언급을 듣기 쉽지 않습니다. <국민저널>이 어떤 계기로 만들어졌는지 모르는 채, 소식을 전해주는 학생언론이라는 것 정도만 아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뜻입니다. 저는 왜인지 이것이 퍽 달갑습니다.

 

편집국장 임기가 끝나 제가 매체를 떠나게 되면 <국민저널>을 창간했던 구성원은 이제 아무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취업을 하거나 군대에 가거나, 다른 선택을 하게 됐지요. 그리고 새로운 구성원이 들어왔습니다. 매체의 이미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갑니다. 작년이 다르고 올해가 또 다르지요. 매체를 만드는 사람이 해마다 달라지니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내년도 <국민저널> 편집국은 김혜미 기자가 맡게 됐습니다. 김혜미 기자는 작년 가을에 들어와 매체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해주었습니다. 기사로도 만나보신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까이에서 지켜본 김혜미 기자는 스스로의 생각보다 잠재력이 훨씬 더 큰 기자입니다. 구성원에 따라 모습이나 생각이 다양하게 변해갈, 앞으로의 <국민저널>에도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유지영 편집국장 alreadyblu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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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4년 10월] 다르지만 우리

 

[Editorial] 다르지만 우리

 

국민저널을 창간하고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라면 역시 ‘국민저널은 다소 진보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는 것이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국민저널을 거쳐 간 식구들은 실로 다양한 정치적 성향과 견해를 갖고 있었습니다. 새누리당부터 민주당, 노동당, 녹색당까지 지지하는 정당도 생각도 각자 다릅니다. 지금은 군대에 가있는 조해성 기자가 휴가차 정릉에 오면 한바탕 토론이 벌어집니다. ‘군대는 가는 게 좋다’는 의견과 ‘군대는 없어지는 게 낫다’, ‘어쨌든 가기 싫다’는 주장을 가진 이들이 매주 한 테이블에 앉아 편집 회의를 합니다. 그리고 치열한 토론을 거쳐 기사에 이를 담아냅니다.


다소 늦은 10월호에는 <국민저널>의 지향을 담았습니다. 다르다고 해서 함께 어울릴 수 없는 건 아닐 겁니다. 이번 호에 실린 외국인 유학생, 학교 안의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아웃사이더(줄여서 ‘아싸’)’까지. 같은 캠퍼스에서 볼 수 있는 ‘조금 다른’ 이들을 취재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국민저널 구성원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외국인 유학생 기사는 9월부터 국민저널에서 함께 일하게 된 노현선 기자가, 그리고 ‘아싸’ 기사는 ‘아싸’임을 자청하는 신동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노현선 기자 역시 ‘외국인 유학생’의 신분으로 있었던 미국에서의 교환학생 경험이 이 기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대개 본인이 쓰고 싶은 기사, 하고 싶은 말을 할 때에 가장 알맞은 온도의 기사가 나옵니다. 알맞은 온도의 기사를 부디 즐겨주시기를.


아울러, 이번 호에는 이전부터 조금씩 다뤘던 ‘국민대학교 종합정보시스템’을 집중 조명한 정진성 기자의 기사와 대학평가 거부 운동을 칼럼으로 담은 김동욱 기자의 기사, 오랜만에 돌아온 국민대학교 교내 공연 연재 칼럼 ‘더 스테이지’가 함께 수록돼있습니다.


마지막으로 10월부터 국민저널에서 함께 일하게 된 김동욱, 김도연, 노현선, 최종태 기자(가나다 순)에게 환영을,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함께 하지 못하게 된 권용석, 하성미 기자에게는 격려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국민저널이 앞으로도 ‘할 말 많은’ 여러 구성원과 함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유지영 편집국장 alreadyblu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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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4년 9월] “열심히 노력했다”는 불공정함

[Editorial] “열심히 노력했다”는 불공정함 


매체의 주 업무가 비판이다 보니, 아무래도 비판을 받은 당사자 혹은 관계자에게 항의를 자주 받게 됩니다. 숱한 항의 중에서도 공통적이고 보편적으로는 “우리 열심히 노력했는데, 왜 몰라주나.”가 있는데요. 열심히 노력했다, 아마 그다음에 당사자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 비판을 자제해 달라.’일 것입니다. 아무래도 자주 오해하시는 듯합니다. <국민저널>은 열심의 유무가 아닌 잘하고 그렇지 못한 것을 바탕으로 기사를 써왔습니다. 설사 매체가 알지 못해 놓친 것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국민저널>은 그간 이에 대한 입장을 한 번도 바꾼 바 없으며 비판범위가 닿는 교내 단체와 개인에게 이를 동등하게 적용했습니다. 


이번에 드러난 총학생회 말레이시아 외유성 국제 교류 프로그램 논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시험을 망친 고등학생이 자신은 열심히 했다며 한 번만 봐달라고, 오디션을 치르던 후보가 탈락한 뒤에 열심히 했다며 붙여달라고 주장한다 생각해보죠. 지금까지 세상의 그 어떤 결과도 열심히 한 것만으로 좌우되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여러 사람을 책임져야할 위치에 있는 공인은 어떨까요. “열심히 노력했다”는 말로는 어떤 평가도 받을 수 없습니다. 노력 그 자체는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본인에게 내리는 열심히 노력했다는 평가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이기에 근본적으로 불공정합니다. 


돌아오는 9월 12일 <국민저널>도 2살이 됩니다. 그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고작 막 2년을 넘어선 매체에 쏟아지는 과분한 관심에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때로는 뿌듯함을 느낍니다. 작년처럼 조촐하게나마 지면으로라도 기념해야 도리겠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습니다. 다만 2년이 된 <국민저널> 또한 이 자리를 빌려 약속드립니다. 매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느냐와는 관계없이 매체가 잘못하고 있다면 따끔한 충고와 비판을, 좋은 보도에는 지금과 같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그간 활동비·취재비 한 푼 없이 <국민저널>을 함께 만들어온 식구들, 작은 매체에 선뜻 후원금을 내주신 수많은 분, 관심 있게 기사를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덕분에 <국민저널>이 2주년을 맞게 됐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보내주신 성원에 보답하고자 앞으로도 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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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4년 5월]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편집국장의 말]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4월호 지면이 발행되고 한 달 동안 실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국민저널>, 혹은 저 스스로도 이 거대한 사건사고 앞에서 어떤 말을 덧붙인들 충분치 않게 느껴졌습니다. 말은 더할수록 얄팍해져만 갔습니다. 말문을 닫고 침잠하고 있을 무렵, 인터뷰 요청을 받았습니다. 


<국민저널>은 관련자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게 본업인 매체지만, 종종 타인으로부터 매체에 대한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국민저널> 소개, 매체가 걸어왔던 길, 매체의 지향점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묵직한 질문을 받다보면, 저절로 어떤 다짐을 하게 됩니다. 두려움과 무력 혹은 분노가 이는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진도나 안산으로 향하지 못하는 매체인 <국민저널>은 어떤 사실과 생각을 독자들에게 전달해야 할까요. 


세월호 참사가 난 이후 <국민저널>은 세월호 사건에서의 한국 언론을 다룬 짧은 논평을 냈고, 의롭게 생을 살다 간 故 남윤철 동문의 분향소 안내 공지문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밖에 세월호와 관련된 별다른 속보나 기사 없이, 우리가 그간 취재해왔던 기사들을 온라인에 송고하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거대한 사건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며칠 뒤 학교는 때 아닌 홍역에 시달렸고, 갑자기 북악관 외벽 자재 일부가 땅으로 떨어져 산산조각나 사람이 다치는 등 크고 작은 일들이 잇달아 일어났습니다. 연달아 일어난 사건은 곧 기사가 되어 <국민저널> 페이스북 계정으로 보내졌고 독자들에게 전달됐습니다. 


<국민저널> 5월호는, 일련의 사건을 과연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마주해야 하는지 그 고민을 담았습니다. 교내 안전과 세월호, 그리고 대학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말입니다. 


세월호 이후 누군가는 대대적인 국가 개조를 이야기한다지만, 당장 나를 둘러싼 사회가 그 개조나 변화의 출발점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껏 그래왔듯이, <국민저널>은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누군가는 마땅히 해야 할 말을 치열하고 정확하게 전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기록하겠습니다. 두 번 다시는 같은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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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4년 4월] 자치언론네트워크

[편집국장의 말] 자치언론네트워크


<국민저널> 페이스북 계정과 친구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올해 <국민저널> 만우절 장난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아무나 할 수는 없는 ‘연애중’을 이벤트에 추가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매체도 연애하는 몹쓸 놈(?)의 세상’이라는 성토의 대상에 성신여자대학교 자치언론 <성신 퍼블리카>도 함께였다. 


<국민저널>과 <성신 퍼블리카>를 관심 있게 지켜봤다면, 이들이 ‘자치언론네트워크’라는 이름 아래 여러 기사를 냈고, 지금도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성신 퍼블리카>와 <국민저널>이 처음 만난 건 작년 늦여름이었다. 뒤늦게 고백하자면, 그날의 만남이 이어질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서로 매체를 운영하기도 빠듯한 처지에 만남을 ‘친목 도모’ 이상 지속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고, 재정으로든 인력으로든 ‘없는’ 사람들끼리 만나 뭘 더 해보겠다고, 싶었다.



당시 상상했던 도식은 다음과 같다: 없음+없음=없음*2



하지만 만났으니, ‘뭐라도’ 조금씩 해야 한다는 생각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 ‘뭐라도’는 느리게 진행됐다. 시작은 1) 성북구 2) 대학 자치언론 이라는 두 매체의 접점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자치언론네트워크’라는 연대체를 결성해 성북구의 이모저모를 소개하는 기사와 각 대학 자치 언론을 찾아가 각 매체의 시각에서 기사를 작성했다. 그렇게 훌쩍 반년이 흘렀다. 


변화의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한 기성 언론에 ‘자언넷’ 소개가 실린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비디오저널리스트협회’라는 곳에서 자치 언론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이윽고 두 달 사이에 ‘자언넷’의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올해 2월, 한국외국어대학교 외대언론 협동조합 <외대알리>가 자치언론네트워크에 합류했고, 이번 달부터 성균관대학교 자치언론 <고급 찌라시>가 함께하게 됐다. 반년 동안, 두 매체끼리 기사를 작성하던 것에 비하면 그 규모가 빠르게 커진 셈이다. 


이제야 성적표를 슬쩍 엄마 화장대 위에 올려놓고 도망치는 아이처럼, 그간 자치언론네트워크라는 연대체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보았다. 앞으로 자언넷은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환경 속에서 그간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일을 꾸미게 될 것이다. 


한편,‘자언넷’ 안에 속한 네 단체는 완벽히 같은 언론 매체를 지향하지는 않는다. 각자 다른 이상적인 자치언론과 저널리즘을 꿈꾼다 하지만 우리가 택한 느슨한 연대의 방식을 증명해가는 와중에도 ‘자치언론’ 연대의 시도는 달팽이처럼 느리고 조용히 그렇지만 쉼 없이 나아가길 바란다. 자언넷은 다시 한 번 전환점을 돌았다. 



유지영 편집국장 alreadyblu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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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4년 3월] 국민저널의 저널리즘

“이상적인 저널리즘이 어떤 것인지 배우고 싶더라고요! 국민저널은 사회에서 해볼 수 없는 이상적인 저널리즘으로 나아가야 할 것 같아서…"


‘국민저널에서 무엇을 배우고 싶으냐’는 질문에 대한 후배의 답변이 문득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간 자본이나 그럴듯한 위치, 취재비 한 푼 없이 구성원의 자발성만으로 굴러가던 매체가 1년 이상 버텨온 것을 보며 신기하기도 한 한편, ‘국민저널’은 무엇이건대 그들로 하여금 힘든 일을 능히 해내고 버틸 수 있게, 때로는 “재밌다”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갈수록 언론사에 돈을 주며 기사를 써달라고 청탁하는 조직적인 기업 마케팅이 늘어납니다. 기업뿐이겠습니까. 작년 12월 국정원이 일부 언론에 기사를 청탁한 사실이 검찰 조사 과정서 드러났습니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몰래 촬영하는 파파라치가 “자신들의 ‘언론’은 ‘팩트’를 중시한다”고 주장합니다. 속보 경쟁은 나날이 치열해져 어떤 정보가 진정 긴급히 필요한지를 사유하는 작업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실시간 벌어지는 사고 자체가 속보가 되고 맙니다.


다시 원론적인 문제로 돌아갑니다. 언론 혹은 올바른 저널리즘이란 대체 무엇인지. 후배의 말은 아마도 국민저널이 자본, 권력으로부터 독립돼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이익관계에 치우치지 않아 ‘불편 부당’이라는 기본적인 저널리즘을 추구할 수 있다는 말로 생각 됩니다. 언론과 기업의 속성을 동시에 짊어진 기성 언론사에서는 이미 어려워진 일일지도 모릅니다. 국민저널의 저널리즘은 어떤 이상을 품고 가야 할까요.


이상을 더듬거리기만 하다가, 이승한 편집국장에 이어 무거운 자리를 툭 물려받게 됐습니다. 저희는 저희가 생각하는 ‘국민저널의 저널리즘’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해답은 편집국장의 것도 한 사람의 ‘스타’ 취재 기자의 것도 아닌, 국민저널 내 구성원, 국민대 내 학생사회와 함께 내보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가변적일 테고, 한 사람 혹은 단체의 이해관계와 수시로 상충하며 흘러갈 것입니다. 


조금 더 가볍고 더 깊숙이 들어가겠습니다. 기사 하나하나를 놓고 어떤 방향이 옳은지를 함께 이야기하고, 사안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깊숙이 들어서는 기사나 사진 하나하나가 그 ‘이상’으로부터 조금 더 가까워질 길이라 믿으며. 너무 무겁지 않게 1년간 많은 것들을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그 중심에 국민저널이 믿고 있는 ‘이상적인 저널리즘’이 있도록 말입니다. 



유지영 편집국장 alreadyblu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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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3년 12월] 이교위가 사필귀정(以校爲家 事必歸正)

[Editorial] 이교위가 사필귀정(以校爲家 事必歸正)



안녕들 하십니까. <국민저널> 편집국장 이승한입니다. 이 직함으로 독자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사령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편집국장으로서의 제 임기는 오늘 24시 부로 종료됩니다. 저의 뒤를 이어 <국민저널>의 선장이 될 이는 유지영 교열부장으로, 이미 지난 몇 개월간 공석이었던 취재부장을 겸임하며 매체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온 바 있습니다. 유지영 신임 편집국장이 이끄는 2014년의 <국민저널>에도 많은 성원을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2013년의 <국민저널>, 어떻게 보셨습니까. 올해 저희는 우연이 만든 서가로 한 달에 한 권 성곡도서관 보유 장서를 소개하고, ‘매치 오브 더 위크로 북악리그 선수들의 활약을 소개하며, ‘최통장의 정릉 라이프’, ‘내가 해봐서 아는데등의 기사로 여러분들과 공감할 수 있는 기사를 선보이려 노력했습니다. 때론 적은 인원으로 반드시 공론의 장에 부쳐져야 할 이슈들에 집중하느라 궂은 소식들만 많이 전했다는 아쉬움도 작지 않습니다만, 그것 또한 군소언론의 숙명이라 생각하며 씁쓸한 심정으로 아쉬움을 묻었습니다.

 

저희의 목표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습니다. 그 누구도 정보를 독점한 채 쉬쉬하며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고, 그 누구도 정보로부터 소외되지 않으며, 그 누구도 발언권을 묵살당한 채 그냥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 저마다의 의견을 가진 학내 구성원들이 학교의 대소사에 대해 모두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고, 성숙한 토론을 통해서 민주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소통의 장을 여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매끄럽지 않은 순간도 있었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했던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각자의 이해관계를 가진 이들이 충돌하는 순간마다 취재현장을 뛰며 그 광경을 기록해야 하는 기자들의 고뇌는 깊어져만 갔고, 그들이 취재해 온 기사로 최종 판단을 내려야 하는 편집국장의 자리는 늘 가시방석이었습니다. 고백건대 이 자리를 맡은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만, 과연 목표했던 것을 얼마나 이루고 자리에서 내려오는지는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2014년의 국민대학교 학생사회는 올해보다 더 큰 도전에 직면할 것입니다. 성곡도서관의 증축과 디자인 도서관의 이동으로 인한 유휴공간을 어떻게 학생자치공간으로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 유료 셔틀버스 증편에서 노선은 어떻게 결정할 것이며 학생복지와 안정적인 운영예산 사이에서 적절한 가격은 어떻게 정해야 하는가의 문제, 점점 늘어만 가는 정원 수에 비해 여전히 부족한 기숙사 문제,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취업과 효율성만을 강조하며 대학을 취업사관학교로 만들려는 시대의 흐름에 맞서 순수학문의 영역을 어떻게 지키느냐의 문제가 숨 쉴 틈 없이 국민대학교 학생사회에 몰아칠 것입니다.

 

<국민저널> 2014년에도 그 모든 현장에 있는 힘껏 달려가, 최전선에서 소식을 전할 것입니다. 국민대학교 학우 여러분께 감히 부탁드립니다. <국민저널>이 전하는 소식으로 치열하게 토론해주십시오. 나의 주장을 소리 내 말하되, 상대의 말에도 귀 기울여 주십시오. 각자의 주장이 공정하고 치열하게 격돌해 그 과정에서 변증법적인 해법을 찾는 과정의 일부가 되어주십시오. 소식을 전하는 것은 저희의 몫이지만, 학생사회를 변화시키고 그를 통해 자정능력과 감시의 능력을 키우며, 결과적으로 학교의 건강함을 지켜내는 것은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국민저널>에 들어와 처음으로 적었던 에디토리얼에서, 저는 저희의 무모한 도전이 훗날 위대한 바보들로 기록되기를 바라며 길을 나선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 무렵 저의 친구는 지금 그렇게 너의 시간과 노력을 희생해봐야, 역사는 너를 기록하기는커녕 기억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충고했습니다. 저마다 제 살기 바쁜 세상에서, 군소 대학매체의 기자들이 써내려가는 기사들이 자기만족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글쎄요. 그 친구가 맞았는지 제가 맞았는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희망할 따름입니다. 저희의 몸부림이 조금이나마 학생사회 내부에서 서로 소통해야 한다는 의지를 키웠기를, 그 겨자씨만 한 변화가 훗날 더 큰 의미 있는 변화로 성장할 수 있기를 말입니다.

 

아쉬움을 남긴채 편집국장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지금, 다시 창학의 아버지 해공 신익희 선생을 생각합니다. 선생께서는 평소 일은 결국에는 올바른 데로 돌아가는 것이다. 최후의 승리는 정의에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새 희망을 전망하며 힘을 쌓으라는 해공 선생의 말씀은 우리의 교훈 '이교위가 사필귀정(以校爲家 事必歸正)'이 되었습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어두운 밤이 지나면 해가 떠오르듯, 일은 결국에는 올바른 데로 돌아갑니다. 편집국장이 아니라 그 어떤 자리에서라도<국민저널>과 함께 올바른 데를 향해 걸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국민저널> 2대 편집국장 이승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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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3년 11월] 당신이 아니라면 그 어느 누가

[Editorial] 당신이 아니라면 그 어느 누가

 

 

 

우리학교에 등록한 국민대학교 학생들은 1만 6천여 명입니다. 전원이 투표에 참여하면 제법 어마어마한 숫자가 나오지요. 그러나 지난 몇 년 간 총학생회 선거 투표율은 기껏해야 50% 대를 오가는 정도에 그쳐 왔습니다. 많이 낮은 수치는 아닌 것 같다고요? 예, 총선이나 지방선거 수준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낮은 수치까지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 봅시다. 지난 몇 년 간 투표율은 크게 솟구치지도, 크게 떨어지지도 않은 채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유권자들에게 미래의 비전을 펼쳐 보여 선택을 받아야 하는 치열한 싸움인 총학생회 선거는, 지난 몇 년 간 ‘누구든 3000여 표만 먼저 먹으면 이기는 싸움’이 되어 버렸습니다. 최소 3개 이상의 선본이 격돌해 치르는 선거전에서는, 3000여 표 정도만 먼저 확보하면 승리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상황이 이러니 선거는 지리멸렬해 집니다. 기껏 치열한 선거전을 치르고 당선이 되어도 ‘조직 선거’를 의심 받아 출발부터 정통성을 폄하 당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선거에서 지고 나고도 자신의 부족함을 돌이켜 보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없어서 졌다’는 패인을 마법의 주문처럼 중얼거리는 이들도 생기곤 합니다. 선거철마다 학교를 위한 어떤 비전을 선보일 것인가를 토론하는 게 아니라, 각 단과대 머릿수가 몇인지부터 셈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집니다.


그간의 선거가 조직 선거였느냐 아니냐를 놓고 흉흉한 가설이나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학교의 정원 수는 꾸준히 증가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런 지리멸렬한 이야기가 나오고, 미래에 대한 비전이 아니라 단과대 머릿수를 먼저 이야기하고, 기껏 뽑아놓은 총학이 제대로 출발하기도 전에 뒤에서 수근 대는 이 일을 얼마나 더 계속 해야 하느냐는 말입니다. 1만 6천여 명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국민대학교라는 공동체는, 그러기에는 너무도 소중합니다.


함께 꿈꿔봅시다. 이번 선거에 임하는 유권자들이 모두 진지하게 국민대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각 선본의 공약과 방향을 진지하게 검토해보고, 곁에 있는 학우들과 함께 누가 과연 적임자인지 치열하게 토론하고, 투표가 진행이 되는 19일, 20일 양일 만큼은 아무리 바쁘더라도 시간을 쪼개어 투표소 앞에 줄을 서서 자신의 소중한 권리를 행사하는 꿈을. 그러기 위해서는 투표율을 높여야 합니다. 예측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들과, 스스로 전략가라 자처하는 이들의 3000표 싸움을 보기 좋게 부숴야 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누가 이기든, 우리는 그보다는 더 많은 표를 얻은 총학생회를 가질 자격이 있습니다.


투표가 시작되는 화요일부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날은 춥고 날은 더 어두워지겠지만, 그렇다고 복도에서 줄을 서서 한 표를 행사하는 기회를 포기하지 말아주십시오. 한 표라고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아니면 그 어느 누가, 북악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단 말입니까.

 

 

이승한 편집국장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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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3년 10월] "얘는 왜 뛰어다니는 거임?"

[Editorial] "얘는 왜 뛰어다니는 거임?" (2013년 10월호)


 

 

우리학교 대표 인터넷 커뮤니티인 ‘국민인닷컴’에서 글을 읽다가 저도 모르게 피식 하고 말았습니다. 북악리그 경기를 보던 누군가가 쓴 글에서 <국민저널> 이야기를 봤기 때문입니다. “심판 뛰는 것 보다 국민저널에서 북악리그 취재 한다고 나온 애가 더 많이 뛰는 것 같던데... 얘는 왜 뛰어 다니는 거임?” 마치 길을 걷다가 예상하지 못한 골목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마주 친 것 처럼,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여 한참을 웃었습니다.

 

 

▲ 얘는 왜 뛰어다니는 거임?? 지난 7일 '국민인닷컴'에 올라온 사랑방 공개일기 캡쳐. (출처 = 국민인닷컴 사랑방)

 

 

그리고는 저도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우리 기자는 도대체 왜 뛰어 다니는지. 물어봤더니 기자의 답이 제법 재미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보기만 해선 누가 어시스트를 하고 누가 어떤 슛으로 골을 넣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TV 중계가 있는 프로리그나 A매치도 아니니, 관중석에서 보는 것만으론 생생한 글을 쓰는 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죠.

 

조해성 기자를 ‘Match Of The Week’ 취재현장에 보내기 시작한 건 올해 4월부터 였습니다. <국민저널>에 들어와 처음 맡게 된 현장, 기사 체가 손에 붙지 않아 고생도 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젠 ‘심판보다 더 많이 뛰고’, 선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북악리그를 열과 성을 다 해 진심으로 사랑 하는 기자가 되었습니다. 축구에 대한 사랑과, 취재 대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몇 개월 동안 차곡차곡 쌓인 결과입니다.

 

어쩌면 저 ‘심판보다 더 많이 뛰는’ 자세는 <국민저널>의 구성원 모두가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의 다른 표현일지 모른다고 감히 말 해봅니다. 우리가 누구보다 더 많이 발로 뛰고, 목이 터져라 질문을 던지고, 밤을 지새며 노트북 앞에서 기사와 씨름하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닙니다. 취재 대상을 더 깊게 이해 하고, 그래서 더 심층적인 기사를 쓰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간신히 창간 1년을 넘긴 매체입니다. 아마 앞으로 뛰어야 할 취재 현장이 지금까지 뛰었던 현장보다 더 넓으리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신발끈을 고쳐 묶겠습니다. 언제나 그렇게 ‘더 많이’ 뛰는 <국민저널>이 되기 위해서.

 

추신 1. 함께 뛰고 싶다는 이들이 2학기에도 <국민저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권용석, 김혜미, 정인훈 수습기자의 기사도 <국민저널> 홈페이지에서 공개됩니다. 용기 있는 도전에 나선 이 세 명의 신입기자들에게,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 드립니다.

 

추신 2. 학보 <국민대신문>이 최근 900호를 발행했습니다. 김지원 편집장 이하 모든 소속 기자 여러분께 박수를 보냅니다. 뜻하신 것처럼 앞으로 더 날카롭고 비판적인 매체로 거듭나시기를 기원하며, <국민저널> 또한 늘 위협적이고 쉴 줄을 모르는 경쟁자로 옆에서 함께 달릴 것을 약속 드립니다.

 

 

이승한 편집국장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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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3년 9월] 다시, 출발점에 돌아 와 서서

[편집국장의 말] 다시, 출발점에 돌아 와 서서

 

2013년 9월호 에디토리얼(Editorial)

 

 

 

밖에서 일을 하다가 만난 사람들은 종종 묻습니다. 할 일이 없는 사람도 아닌데, 왜 후배들이 하는 일까지 돕는다고 제 시간을 허비하냐고 말입니다. 그냥 웃으면서 "팔자가 사나운 모양이네요."라고 답하곤 하지만, 사실 이유가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딱 작년 이맘때였습니다. 국민대학교가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에 선정된 것은, 2004년에 학교에 입학한 이래, 그렇게 분노한 학생들이 많이 본 건 그것이 처음이었습니다. 대책을 요구하던 학생들이 본부관을 점거했고, 그 틈바구니 속을 카메라와 수첩을 꼭 쥔 학생들이 바쁘게 해집고 다녔습니다.

 

저 친구들 뭐지? 궁금해 하던 제게 누군가 귀띔해 주더군요. 학교가 껄끄러워 하는 주제의 기사들을 쓰다가 해직 혹은 권고 사직 당한 기자들이 나와서 만든 학생자치언론기자들이라고요. 순간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한참 새내기였을 때 조금 더 앞장서서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더라면, 지금의 후배들은 한결 다른 환경의 국민대학교에 다닐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시작한 <국민저널>이 벌써 창간 1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결코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우리에게는 일도 많고 탈도 많았던 험난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동안 국민대는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을 탈출했고, 쑥스럽지만 <국민저널>은 대학교 학생자치언론계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창간과 운영의 노하우를 물어보는 다른 학교 학생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그만큼 대학언론의 자유가 메마른 시기인가 하는 위기감도 돌고, 우리를 보고 길을 나서는 이들도 있단 생각에 책임감도 더 강해집니다.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탈출이 1년 간 <국민저널>이 걸어온 작은 원의 끝이라면, 타 학교 자치신문 창간에 대한 저희의 기대와 지지는 앞으로 우리가 그려갈 큰 원의 시작일 겁니다. 언제나처럼, 바보 같이 우직하게 걷겠습니다. 1년을 지나 다시 출발점에서 인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추신: 지난 1년간 헌신적인 자세로 <국민저널>의 토대를 닦은 박동우 취재부장이, 갑작스런 건강문제로 인해 9월 1일부로 사직했습니다. 보내는 마음 아쉽지만, 그의 노력과 헌신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인사로 그를 보냅니다. 아울러 앞서 개인사정으로 사직한 구본철, 박영민 기자에게도 앞으로 가는 길 행운을 빕니다.

 

 

 

이승한 편집국장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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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3년 5월] 문제는 민주주의다

[편집국장의 말]문제는 민주주의다

2013년 5월호 에디토리얼(Editorial)

 

 

 

 

“그런데, 학교가 경쟁력을 갖추는 건 좋은 일 아닌가요?” 학교가 이사회를 열어 학과 구조 개편안을 통과시킨 것을 속보로 낸 후, <국민저널>의 독자 중 한 분이 사석에서 제게 조심스레 주신 질문입니다. 아마 다 못하신 말씀을 계속하셨다면 이런 말을 해주셨겠죠. “그런데 <국민저널>은 이걸 왜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저희 편집국 내부에서도 이 문제를 두고 다소 의견이 갈렸습니다. 강세를 보이고 있는 학과의 전문성을 더해 학교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반대할 일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고요. 취업 잘되는 학과나 돈이 되는 학문을 위해 다른 기초 학문의 모집 정원을 줄이는 것이 과연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옳은 선택이었나 하는 의견도 있었지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우리는 아직 이런 변화에 대해서 제대로 된 논의를 충분히 가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열 명 남짓한 <국민저널> 조직 안에서도 이렇게 의견이 갈리고 다양한 입장의 견해들이 나오는데, 하물며 1만 5천여 학우들은 얼마나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을까요.

 

문제는 민주주의로 돌아옵니다. 대학생은 일방적인 훈육의 대상이나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대학 사회를 구성하는 한 주체입니다. 학교가 어떠한 전망을 향해 전진하고자 한다면, 그 전망은 지금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 또한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과정이 생략된 결정에 대해 근심합니다.

 

<국민저널>이 연중 기획으로 학생 자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학교 내부의 변화에 대해 논의라도 해볼 기회를 가지려면, 학생 사회 스스로 자치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는지, 그럴 역량은 있는지를 먼저 점검해 봐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목표를 결정하면 밑의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따르는 소통 방식은 경영의 언어겠지요. 하지만 대학 사회의 언어는 그와는 달라야 할 겁니다. 우리의 언어는 민주주의이기를 바라며 이번 호를 만들었습니다. 읽으시며 함께 고민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승한 편집국장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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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3년 5월] 광주와, 민주주의의 적들

[편집국장의 말]광주와, 민주주의의 적들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주간 특별 에디토리얼(Editorial)

 

합창으로 시작한 노래는 결국 제창이 되었다. 자리에 앉아 노래가 끝나길 기다린 이들과 자리에서 일어나 팔뚝을 흔들며 함께 부른 사람들로 나뉘긴 했지만, 5월의 광주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제창을 피할 방도는 없었다. 구 묘역에서도 신 묘역에서도, 한낮의 금남로에서도,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5월의 광주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인사를 대신했다. 사람들은 33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아픔으로, 동지를 만난 반가움으로, 역사를 망각의 저편으로 묻으려는 이들에 대한 분노로, 지금 이 순간에도 쌍용, 재능, 기아, 한진에서 저마다의 광주를 싸워내고 있는 이들의 투쟁에 대한 연대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광주를 둘러싼 법리적, 정치적 판단은 모두 지난 세기에 끝났다. 김영삼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정부의 정체성이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있음을 천명한 게 20년 전(1993년), 국회가 특별법 제정을 통해 광주항쟁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한 게 18년 전(1995년), 헌법재판소가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합헌으로 인정한 것이 17년 전(1996년), 대법원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죄목과 형량을 확정판결한 것이 16년 전(1997년)의 일이다. 행정, 입법, 사법. 현 집권 여당의 전신 민주자유당이 여당이던 시절, 국가 권력 3부가 차례로 판단을 끝냈다. 누가 볼세라 숨죽여 이야기해야 했던 말 못할 설움에서, 오늘날의 정부가 그 사상적 뿌리를 대고 있는 기반으로 공식적 지위가 격상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 끝에는… 역사엔 “최후의 승자도, 패자도 알 수 없다”고 누군가 말했다. 1996년 8월 26일 서울형사지법 417호 법정에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12.12 군사쿠데타와 관련한 1심 선고 공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 자리에서 재판부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22년 6개월형을 내렸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이들을 끝내 시련의 굴레에서 해방했다. 1997년 12월 21일 김대중 당시 15대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대화합을 명분으로 이들을 전격 사면한 것이다. (사진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정책방송원)

 

그러나 광주를 둘러싼 기억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는 중이다. 중고등학교 교과 과정에서 근현대사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안 그래도 축약 진행되던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교육은 언급 수준에서 끝나거나 때론 생략되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한편에서는 광주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왜곡하려는 이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순박한 무지렁이 시민들의 봉기”로 광주의 복잡한 정치적 함의를 축소하고 낭만적 층위로만 소비하는 이들, 여전히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옹립하기 위한 전라도민들의 지역 이기주의로 발발한 사태”라고 주장하는 이들, “공수부대는 선제공격하지 않았다. 광주는 폭도들이 들고일어난 폭동”이라 주장하는 이들, 심지어는 “광주는 북한 공작원들이 침투해 일으킨 소요사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지칭하는 ‘임’은 김일성”이라고 주장하는 이들까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제대로 전승되고 기념되지 않은 기억은 흐릿해지거나 왜곡된다. 이번 5월 국민대학교에도 광주로 내려가자는 수많은 포스터가 훼손을 당했다. 중앙학술동아리 ‘대학생사람연대’가 붙인 광주 역사 기행단 포스터는 1차 게시한 20여 장 중 한 장만을 남기고 모두 찢겨 나갔고, ‘우리본부’가 붙인 광주 순례단 포스터엔 누군가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라는 글귀를 적어 놓았다. 광주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혐오하는 이들, 광주를 기억하자는 정치적 의사표현마저 비아냥과 조롱을 덧씌우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이들의 준동. 광주를 고립시키고자 하는 이들 사이에서, 광주의 의로운 싸움은 여전히 외롭다.

 

왜 사람들은 기를 쓰고 광주를 지우려는 것일까? 단순히 정치적 보수층의 민주화 세력에 대한 혐오만으론 설명하기 어렵다. 자신이 반대하는 정치적 의견을 논쟁의 장으로 끌고 들어와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의견 자체를 지워버리고 막아버림으로써 ‘내 눈앞에서 치워’ 버리는 것, 정부와 국회, 대법원, 유네스코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보수의 이데올로그(ideologue) 조갑제 기자조차 인정한 바 있는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고 왜곡함으로써 최소한의 토론의 여지마저 지워버리는 것, 사실을 왜곡하고 반대 의견 개진 자체를 방해함으로써 상대의 정치적 고립과 절멸을 꾀하는 것. 본 편집국장은 이런 일련의 움직임에서 파시즘의 씨앗을 본다.

 

33년 전 광주를 짓누른 것 또한 이와 멀지 않았다. 경제 성장을 구실로 일부의 희생을 정당화하면서 정작 그 과실은 공정하게 분배하지 않는 체제에 대한 분노, 정치적 의사 표현을 막는 국가권력에 대한 시민의 감시, 민주적 질서를 무력으로 유린하는 신군부에 대한 항의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지만, 권력자들은 그에 대해 해명하거나 대화에 나서는 대신 상대 의견을 압살하는 쪽을 택했다. 상대를 ‘폭도’, ‘간첩’, ‘불순분자’ 등으로 호명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담보하고,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은 보도지침과 가택연금 등으로 막아버리고, 시민의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무력으로 진압했다. 다양한 의견의 공존 속에서 대화와 토론으로 합의점을 찾는다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는 실종되었고, 힘 있는 자의 의견만이 진실이 되는 폭정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2013년, 그들이 광주를 기억하는 방법 학생 단체 ‘우리본부’가 우리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광주 순례단을 모집하는 포스터를 정문 앞 버스 정류장에 게시한 가운데, 지난 14일 포스터에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었다. (서울=국민저널/이승한 기자)

 

그들의 목적은 자명하다. 그릇된 현실에 대해 옳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 새로운 세상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가만 내버려둔다면, 다른 이들 또한 하나 둘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잡은 자들은 총칼의 위협 앞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고자 했지만, 그 엄혹한 세월에도 진실은 죽지 않고 살아 수많은 젊음의 가슴에 불을 댕겼다. 광주를 짓밟은 자들, 지금 광주를 왜곡하고 있는 자들은 이들과 맞서 제 정당성을 확보하고 상대를 설득해 제 비전을 관철해 낼 자신이 없기에 진실을 찍어 누르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민주주의가 두려운 것이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적이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적이다.

 

지난 33년간,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 현실을 바꾸고자 했던 이들의 가슴 속에서 광주는 세상을 바꿔야 하는 당위이자 해소되지 않는 아픔이었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영감이었다. <국민저널>은 추모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광주민주화운동이 진행되었던 5월 18일부터 27일까지를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주간’으로 정하고, 홈페이지 로고와 검색 창을 모두 검은색으로 바꾼 ‘추모용’ 화면으로 전환해 운영한다. 이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의 의미이자, 지금 이 순간에도 기억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광주에 대한 연대와 지지의 의미이며, 부당한 탄압에 맞서 평등과 정의를 촉구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응원의 의미이기도 하다.

 

서른세 번째 맞는 5월 18일, 광주에서.

 

이승한 편집국장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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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3년 4월] 우리는 느리게 걷자

[편집국장의 말]우리는 느리게 걷자

2013년 4월호 에디토리얼(Editorial)

 

“어떻게 ‘<연합뉴스>급’으로 속보를 내시죠? <국민저널>의 무기는 역시 속보인 것 같아요.” 최근 들어 주위에서 가장 많이해 주시는 말입니다. SNS 계정을 통해 개성공단 소식, 장・차관급 인사 임명 소식 등 각종 속보를 기성 언론과 비슷한 속도로 보도한 덕분이죠. 비결은 알려드릴 수 없지만, 농담으로나마 ‘<연합뉴스>급’이라는 말을 들으니 으쓱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무기가 ‘속보’라는 것엔 선뜻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남들보다 먼저 누구보다 빠르게” 기사를 내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인터넷으로 실시간 속보를 확인하는 게 익숙하고, 터치나 클릭 한번으로 관련 기사들을 훑어보는 게 당연해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뉴스를 천천히 곱씹어 생각해 보기도 전에 다른 뉴스가 시야를 가리는 이 속도에 익숙해진 나머지, 뉴스를 잊는 것도 덩달아 빨라진 건 아닐까요?

 

올 2월과 3월, 북악을 뜨겁게 달궜던 등록금 인하에 대한 학생들의 열망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요.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화를 요구하던 총학생회 연석회의의 당돌한 패기를 기억하는 분들은 얼마나 계신지요. 혹시 4월의 북악을 찬란하게 수놓았던 꽃들의 향연과 중간고사를 거치며 기억 저 너머로 숨어버린 건 아닌가요.

 

<국민저널>은 설령 사건을 제일 처음 보도하는 매체는 못 될지라도, 잊는 건 가장 더디 잊는 매체가 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께 드린 약속, 북악의 충실한 목격자가 되어 기록하고 기억하겠노라는 다짐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현란한 속도의 시대에 참 시대착오적이게도, 우리의 가장 큰 무기는 ‘느림’입니다.

 

추신. <국민저널>에 다섯 명의 수습기자가 들어왔습니다. 고된 길 함께 걷겠노라 손 내민 귀한 동료들, 구본철, 김선영, 박영민, 안다미, 조해성 기자에게 많은 응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언제나 느리고 끈질기게 걷는 우리가 되겠습니다.

 

이승한 편집국장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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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3년 3월] 승리의 역설

[편집국장의 말]승리의 역설
2013년 3월호 에디토리얼(Editorial)

 

조판작업을 하면서 <국민저널> 구성원들은 혀를 내둘렀습니다. 원래는 기사의 경중을 잘 배분해 쉽게 읽히는 지면을 꾸리는 게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등록금 이슈를 바라보는 학생사회 구성원들간의 각기 다른 입장을 취재하다보니, 이번에도 글만 빽빽한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송구합니다.

 

등록금 고지서 발송 동의와, 입학식 기습 시위를 두고 말들은 치열하게 충돌했습니다. 총학생회, 부실대 대책위원회, 등심위 TFT 위원의 견해를 한 자리에 모아 정리하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중 등록금 추가 인하를 원하지 않는 이 하나도 없고, 학생들의 폭넓은 연대와 의견 수렴이 필요하단 걸 모르는 이도 없는데, 이들은 왜 같은 걸 바라면서도 함께 하지 못하는 걸까.

 

기성 언론에서 자주 쓰는 말 중 ‘정치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야가 극한 대립 중일 때 주로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서로가 양보해 갈등을 멈추고 결론을 낼 것을 촉구할 때, 우린 흔히 ‘정치력을 발휘하라’고들 하지요. 살다보면 어떤 판에선 가끔 조금씩 지는 게 역설적으로 더 큰 승리를 담보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력’을 발휘해, 먼저 손을 내미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먼저 손을 내미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비타협적이고 독선적인 단체’라는 이미지를 벗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대의를 위해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 포용한 리더’란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지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세상 그 어떤 정치적 승리가 쉽게만 쟁취되었겠습니까? 


이승한 편집국장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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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2013년 3월] 편집국장의 말-위대한 바보들

[편집국장의 말]위대한 바보들

 

편집국장 이승한

 

 

케이블 TV 뉴스 제작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미국 드라마 <뉴스룸> 1시즌 마지막의 제목은 ‘The Greater Fool’입니다. 좋은 뉴스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언론으로부터 ‘엄청난 바보’(The Greater Fool)라는 말을 듣고 낙심한 주인공에게, 동료는 ‘미국은 위대한 바보들(The Greater fools)에 의해 건국되었고 전진해 왔다’고 위로합니다. 돌파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의 벽을 자신만큼은 넘어설 수 있다 믿는 바보들 말입니다. 물론 대부분 돌파가 불가능한 벽이고, 돌진했던 이들 중 대부분은 좌절합니다. 누군가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바보들이 제 몸을 부딪혀가며 벽에 낸 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균열에 힘입어, 현실의 벽은 무너집니다. 어쩌면 역사는 그렇게 전진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작년 9월 <국민저널>이 창간되고, 그 창간 멤버들이 어디에도 기댈 곳 없이 서로에게만 의지한 채 간신히 한 호 한 호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왜 이렇게 엄청난 바보짓을 하느냐고. 아마 다른 학우들도 그 점이 궁금했나 봅니다. 지난 한 학기 내내 격려와 응원의 목소리만큼이나, 의구심에 찬 질문 또한 빗발쳤습니다. 학내 정치 구도에서 특정 정파를 밀어주기 위해 창간된 신문이 아니냐, 학교의 명예에 흠집을 내고 권위를 위협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느냐, 특정 외부 세력으로부터 재정을 지원받고 그 이해관계를 위해 복무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등등.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변호하기엔 지나치게 점잖은 창간멤버들을 대신해 해명하자면 이렇습니다. <국민저널>은 특정 정파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지 않습니다. <국민저널> 안에는 새누리당부터 민주통합당, 녹색당과 진보신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당과 정파를 지지하는 구성원들이 공존합니다. 그들은 서로의 정견에 대해 제대로 된 토론을 하기 위해선 거짓 없는 진실을 기반으로 해야 하고 누군가는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는 대원칙 하나로 함께 일합니다.

 

 

<국민저널>은 국민대학교의 명예를 소중히 여깁니다. <국민저널>은 국민대학교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운 해방 후 최초의 민족사학임을, 수많은 인재들을 길러내며 대한민국이 일궈온 기적의 역사와 함께 해 왔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지난 12월 대선을 앞두고 국민대학교의 스키 강좌가 20대 학생들의 투표를 방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대선 당일까지 진행되도록 일정이 잡혔다는 루머가 돌았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인터넷 상에서 사실관계를 해명하고 학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뛰었던 매체 또한 <국민저널>입니다. 이처럼 <국민저널>은 모든 진실과 정보가 그 어떠한 외압이나 통제, 왜곡 없이 공개되고 논의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국민저널>은 어떠한 특정 외부세력의 이해관계에도 복무하지 않습니다. <국민저널>은 처음부터 그 어느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에도 구속되지 않는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매체고, 그렇기에 조건 없는 후원이나 정당한 광고 집행이 아닌 어떠한 재정적 지원도 받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국민저널>이 두려워하는 것, 동시에 든든한 ‘빽’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오로지 독자 여러분뿐입니다.

 

 

2013년 2월 20일부로, 문수훈 초대 편집위원장의 뒤를 이어 편집국장에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창간멤버도 아니고 학내 활동이 활발한 사람도 아닌 제가 이 자리에 앉게 된 것을 무겁고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창간 멤버들이 지키고자 했고 독자 여러분들이 저희를 응원해 주셨던 이유인 ‘치우침이 없는 진실을 보도한다’는 가치를 지켜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 드립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 여러분도 그 가치를 중요히 여기고 계시다면, 감히 <국민저널>에 관심과 애정을 주실 것을 부탁 드립니다. 지금처럼 읽어주시고, 충고해주시고, 더 하실 말씀이 있다면 기고해주십시오. 나아가 <국민저널>의 일원이 되고 싶으시다거나, 후원을 해주시고 싶으시다면 더더욱 환영입니다.

 

 

저의 취임 말고도 <국민저널>에 생긴 변화는 또 있습니다. 지난 학기 격주간지로 운영되었던 <국민저널>은 이제 월간지로 운영됩니다. 물론 시의성이 필요한 중요한 소식들은 여전히 <국민저널> 홈페이지(www.kookminjournal.com)과 <국민저널>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인터넷 판 기사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그 동안의 <국민저널>이 그런 다양한 소식들을 모두 전하는 ‘신문’이었다면, 지금부터의 <국민저널>은 그 중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이슈를 정해 보다 더 깊게 파고드는 ‘저널’로 다시 시작합니다. 이런 변화는 학내에 건강한 정보유통의 창구를 넓히고 더 심화된 논의를 가능케 하기 위한 저희의 작은 노력의 일환입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국민대학교를 세운 임시정부의 요인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들을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는 그들을 비웃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뜻은 가상하나 독립은 그렇게 쉽게 오는 것이 아니라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재를 털어 머나먼 이국에 땅을 마련했고, 학교를 지었고, 수많은 청년들을 교육했으며, 군대를 양성했습니다. 절대로 무너질 것 같지 않던 견고한 일본 제국주의 압제의 벽을 향해서 말입니다. 어쩌면 그들도 위대한 바보들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국민저널>이 있습니다. 저희는 분명 바보일지 모릅니다. 그 누구도 <국민저널>을 만들라 시킨 바 없으나 굳이 창간을 했으며, 누구도 제 쌈짓돈을 헐어 운영자금을 대라 한 적 없었으나 그렇게 해 왔습니다. 저희가 ‘엄청난 바보’로 기록될지, 아니면 운 좋게도 ‘위대한 바보’로 기록될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감히 말씀 드립니다. 이 바보들과 함께 걸어 주십시오. 저희는 계속 전진하겠습니다. 국민대학교와 대한민국을 세운, 창학과 건국의 아버지들이 그랬던 것처럼.

 

 

2013학년도를 여는 새벽에.

 

 

<국민저널> 편집국장 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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