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신]우리는 '세월호 현역'입니다. '세월호 추모' 흑백 로고를 내리며

우리는 '세월호 현역'입니다
'세월호 추모' 흑백 로고를 내리며


목포신항에 다다랐다. 학교서 단체로 버스를 타고 가니 약 다섯 시간 걸렸다. 철창 너머 세월호는 옆으로 뉘어져 있었다. 뱃머리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바다 같은 진한 파란색의 배 아래는 군데군데 녹이 슬었다. 세월호가 바로 앞에 있지만 가까이 갈 수 없었다. 거치된 세월호를 가로막는 철창은 높았다. 철창이 있으니 세월호가 멀게만 느껴졌다.


그곳에 온 사람들은 그 주변을 배회했다. 배회하다 철창에 노란색 리본을 달았다. 꽃도 놓았다. 현수막도 걸었다. 바람에 리본이 나부꼈다. 사람들은 철창 사이로 세월호를 바라보았다. 좀 더 잘 보이는 곳이 없는지 사람들은 움직였다. 그럼에도 세월호는 거기에 그대로 있었다. 그들은 뜨거운 햇빛에 지쳤는지 그늘 아래서 몸을 식혔다. 봉사하러 온 사람들은 이들에게 자장면과 음료수를 나눠줬다. 노래를 불렀고 세월호 리본을 기꺼이 나눴다. 말없이 서로를 다독였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월호를 추모했다.


철창 너머의 세월호를 응시하던 이정하 씨(학과·16)가 말을 꺼냈다.
"세월호가 너무 초라한 것 같아요."


"뒤에 더 큰 배가 있으니 상대적인 거 아닐까요?"
"세월호에 녹이 많이 보이 길래 든 생각이에요."
"3년 동안 바다 속에 있으니 그럴 만도 하네요."


그는 자신을 '세월호 현역'이라고 소개했다. 참사 당시 그도 2학년이었고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갔다고 했다. 부채감과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원 권 지폐 한 장을 보여주며 참사에 희생된 오영석 군의 부모에게 받은 돈이라고 말했다. 설날 연휴에 봉사에 나선 그가 우연찮게 그들과 대화하게 됐고, 세뱃돈의 의미로 받은 것이다. 그는 감히 쓰지 못하고 그 만원을 볼 때마다 희생된 이를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참사가 다시 벌어지지 않게 행동하겠다는 유가족과의 약속을 되새긴다고 말했다.


우리는 각자의 기억을 가지고 이 장소에 모였다. 그 기억을 글로 담아내는 건 큰 실례라고 생각했다. 말로써 각자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그것을 다시금 글로 풀어쓰는 게 과연 맞는 것일까. 때로는 각자의 사정으로 둬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말없이 사진만 찍었다.


오늘 본지는 로고를 흑백에서 원래의 색인 빨간색으로 바꿨다. 흑백 로고는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겠다는 의미였다. 시간이 오래되어 흑백의 의미를 기억하는 자가 적어졌다. 작년 이맘때쯤, 편집국 회의에서 흑백 로고가 지닌 추모의 의미가 옅어졌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세월호가 바다 위로 떠오르면 로고를 원래 색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당시 정부가 세월호를 인양할 것이란 뉴스가 있는 터였다. 그렇게 다시 1년이 지나 지금, 세월호는 바닷물 위로 올라왔다. 목포신항에 거치됐다. 로고도 원래 색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우리는 세월호를 잊지 않는다. 미수습자는 아직 세월호 안에 있고 진상 규명은 더디기만 하다. 세월호 특조위의 노력에도 참사의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아직까지 봄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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