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 언어성폭력 사건] 3. 문제 해결의 역사는 어떻게 쓰여야 할까

국민저널 기사 2015.03.04 12:50


[단톡방 언어성폭력 사건] 3. 문제 해결의 역사는 어떻게 쓰여야 할까

 

작년 모 대학 모 학과 과실 컴퓨터에서 로그아웃하지 않은 카카오톡 채팅창 하나가 발견된다. 해당 채팅방에는 과학생회장을 비롯한 남학생들이 포함돼있었고, 동기 여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성희롱 및 신체접촉을 가한 정황이 포착됐다.

 

당시 단톡방 내에서 주된 성적 대상이 됐던 피해자 9명은 나머지 증거 자료를 수집했고 그 과정 중에서 문제의 단톡방에 있던 학생 몇몇이 술에 취한 여후배를 데려갈 목적으로 엠티(MT) 숙소 옆에 다른 펜션을 예약하려는 시도(했지만 재정적인 문제로 취소)했다는 것까지 알게 된다. 피해자 9명이 서명 운동을 진행해 과 학생 100여 명 중 98명이 서명했다. 이들은 서명 용지를 학과 교수에게 제출했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가해자의 사과와 가해자 중 학과회장과 부학회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그들은 결과적으로 직책에서 물러났다.

 

‘진짜’ 사건은 그 다음부터 시작된다. 학과 교수는 학교 강의실을 빌려 ‘사과의 자리’를 마련한다. 그 자리에는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과 학생 대부분이 참석했다. 사과를 먼저 요구한 것은 가해자 측이었다. 가해자 측은 피해자 측에 자신들의 카카오톡 대화내역을 마음대로 본 것에 대해 사과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교수들 역시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피해자 측은 준비해온 사과문을 읽었다.

 

피해자 A씨는 “당시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대부분의 과 학생들이 함께 울었다. 가해자 측도 사과했지만 사과문 없이 말 한 마디로 사과를 끝내는 태도가 진정성이 없다고 느꼈다.”고 진술했다. 어떤 학생이 가해자 측의 성의 없는 사과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학과 교수는 ‘어쨌든 사과를 한 것이니 더 이상 과 분위기를 선동하지 말고 끝내자’고 말했다. 교수는 또한 ‘화해가 끝났으니 가지고 있는 모든 자료를 지우라’고 말했고 피해자 측이 갖고 있던 대화 내역을 비롯한 증거 자료는 그 자리에서 모두 삭제됐다. 교수들은 증거 자료가 담긴 USB를 넘겨받았다.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가해자 일부는 그날 이후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을 통해 서명운동에 동참한 학생들을 고소하겠다는 식의 메시지를 전달해 위협했고, 서명을 했던 학생 98명을 뜻하는 ‘To.98인(人)’이라고 쓴 종이를 과자 고소미에 붙여 학과 과실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작년 수도권 소재의 모 대학에서 있었던 사건은 공론화되지 못했고 될 수도 없었다. 이는 사건이 발생한 다음의 대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증명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는 무방비하게 ‘2차 가해’(성폭력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이나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로 인해 피해자에게 또 다른 피해를 주는 것)에 노출됐다. 

 

피해자 A씨는 현재 휴학 중이다. <국민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관련 상담센터나 본부에 알리기 전에 믿었던 교수들에게 먼저 알렸지만 교수들이 외부에 알리지 못하게 했다”며 “친했던 과 선배, 동기들에 대한 배신감, 교수들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감, 사회적 약자로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회의감과 무력감에 심리적으로 지쳐 휴학했다. 진정한 사과를 받았다면 이렇게까지 고통 받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시간은 흘러도 해결되지 못한 사건은 남는다. 교내 상담실의 도움과 학교 본부의 정확한 대처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이번 국민대학교 단톡방 언어성폭력(성희롱) 사건에서 상담실 관계자는 징계위원회구성원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학교 본부가 이번 일을 성폭력·성희롱 관련 사건이 아니라 명예훼손으로 해석하거나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편, 징계위원회를 진행하는 과정 중에 가해자 측 3명이 졸업했다. 나머지 한 명에게는 ‘무기정학’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가해자 명단이 학교 본부로 넘어간 이후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 사회는 징계위원회 상황을 지켜보기만 할뿐이다. 관련 대책위원회나 학생생활상담센터 측은 이번 사건을 넘어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입장이다. 또 다른 사건이 막 시작하려는 참이다.

 

성폭력·성희롱 관련 사건으로

보지 않아
명예훼손으로 가야

법적으로 성립되기 때문?

 

2001년 5월부터 시행 중인 국민대학교 학칙에 따르면, 학내에서 성폭력 및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대책위원회를 열고 위원을 구성하는데 상담실 관계자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이는 성폭력·성희롱 방지 및 피해 구제에 관한 규정에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상담소 측 관계자가 징계위원회에 포함되지 않았다. 학교가 이번 사건을 언어성폭력 혹은 성 관련 문제로 대처할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국민대학교 학생처 김경찬 과장은 “변호사를 선임했고 법적으로 자문을 구했는데, 이번 사건은 성 관련 문제로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교내 학생생활상담센터 산하 성폭력성희롱 상담소를 징계위원회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명예훼손으로 처리가 될 것이고 (그렇게) 판단했다. 졸업한 학생들에 대한 법적 절차 역시 학교 측에서 같이 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교내학생생활상담센터 부설 성폭력성희롱 상담실 문희경 대책위원간사 역시 “성폭력 혹은 명예훼손으로 가야할지는 조심스럽게 대처해야 한다. 보통 피해자를 중심에 둔 시선으로 접근하는 편이다. 우리 학교에서 성폭력 관련 사건이 3번 열렸는데 모두 성폭력성희롱 상담실에서 맡아 처리를 했고 징계위원회도 같이 열었다.”고 했다.

 

하지만 명예훼손은 지금까지 제기됐던 문제와는 달리 개인적인 선에서 처리된다. 한국여성의전화 이화영 성폭력상담소장은 “변호사 선임만이 학교의 역할이 아니다. 징계위원회는 법적 검토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여러 학생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고 그것이 일상적인 형태라 문제가 되는 거다. 최소한의 역할만 하면서 사건의 본질을 흐리거나 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회사 내에서도 징계가 끝날 때까지 사표 수리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학교 측은 가해자 측을 그대로 졸업시키지 않았나.”라며 학교 측의 대응을 비판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정하경주 활동가 역시 “졸업생이라고 해서 학교 측에서 법적 절차 외에 다른 대응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학교의 입장이나 해석에 따라 공동체의 방향 역시 달라진다. 명예훼손으로 볼 문제는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징계위원회 대상자

3명 졸업·2명 귀국하지 않아
남은 1명에 대해서는

‘무기정학’으로 절차 진행 중

 

징계위원회에서 거론된 학생은 총 6명으로 그 중 3명은 학교를 졸업했다. 국민대학교 홍보팀 관계자는 “남은 2명이 해외에 있어 소명 기회를 줄 수 없는 상태다. 3월 중에 귀국하라고 요구했다. 나머지 한 명은 무기정학으로 처리될 것 같다. 하지만 교무위원회 상정과 총장 승인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확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제47대 총학생회 ‘소통’의 김정재 총학생회장은 “학칙 상 졸업을 시키지 않을 수가 없고 졸업하려는 것을 막았을 때 어쩔 수 없이 학교 측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하더라.”라며 학교 본부의 입장을 전했다. 김 총학생회장은 앞으로의 대응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이다.

 

황의수 학과 비대위원장은 “졸업자 문제에 있어서 학교의 대처가 부족했다. 처벌이 어려울 것이라고 미리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실망과 상실감이 있고 피해자 측 역시 분개하고 있다. 학교 본부에 단톡방에 포함된 학생 명단을 넘기고 처벌까지 일임한 상황에서 학생들이 비대위가 뭘 하고 있냐고 생각하지 않겠나.”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학교에 소속된 재학생 3명은 확실한 징계를 받아야겠지만 졸업자들이 받아야할 처벌까지 덧씌워져 희생양으로 과잉처벌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 학교 본부의 사건 해결을 촉구하는 자보가 국민대학교 북악관 게시판에 붙어있다.

학생회는 윤리강령 제정으로

가닥을 잡아
상담센터에서는 성교육에

적극적인 참여 권고

 

지난달 16일 중운위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입장서를 내고 ‘전 학생 사회가 공동으로 대처해야 한다’며 ‘중앙운영위원회 산하에 대책위원회를 구성’하는 것 이외에도 7가지 대응책을 제시한 바 있다. 김 총학생회장은 “사태 파악은 계속 하고 있다.”면서도 “법적인 문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대책위원회에서는 예방책을 내고 윤리강령을 제정하는 등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한 매뉴얼을 작업할 것이다.”고 밝혔다.

 

황의수 비대위원장 역시 “윤리강령을 만들어 학과 행사 전에 이를 학습할 것을 결의했다. 개인적인 인식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학과 차원에서는 가해자에 대해 학회나 소모임 등에서 제명을 하고 학과가 있는 과방 근처에 출입금지 및 접근제한을 시킬 것이다. 학과 행사 등에서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원천 봉쇄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한편, 학생처 김경찬 과장은 가해자에 대한 재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데 동의했다. “거부 권한을 주지 않고 가해자에게 재교육을 시킬 예정이다. 당연히 상담센터는 포함된다. 교육할 수 있는 주체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성폭력성희롱 상담실 문희경 대책위원간사 또한 성폭력 문제를 담당하는 담당자로서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성폭력 관련 예방교육을 참석해줄 것을 주문했다. 그는 “지난해만 교육을 20차례 넘게 진행했다. 그런데 참여율이 저조했다. 학생생활상담센터에 오면 각종 상담을 해줄 전문 상담원이 5명이 있다. 상담 중에는 성폭력·성희롱 관련 상담도 있다. 신고인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 선에서 존중해주며 사건을 공식적·비공식적으로 처리해준다. 적극적으로 이용해줬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학생생활상담센터 산하 성폭력성희롱 상담실 전화 02-910-4231)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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