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봐서 아는데] 국민대장정, 걸으리 살으리 마무으리!

[내가 해봐서 아는데] 국민대장정, 걸으리 살으리 마무으리!


해안가에서 장난으로 차를 태워달라는 학생들에게 어떤 할머니가 하신 대답이 기억에 남는다.

“아이고 학생들 차 태워 줄 테니, 그 젊음 나한테 좀 주소.”



ⓒ 리필 페이스북



내가 국민대장정을 신청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17박 18일을 7박 8일로 잘못 본 탓에 이 정도면 ‘충분히 걸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일주일만 버티면 되니까. 둘째, 430km를 완주하면 두둑한 현금을 주겠다는 부모님의 회유. 셋째,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한.다. 많은 것들을 결정해야 할 시기에 정해진 것도 없고 준비도 되지 않은 내 미래가 걱정스러웠다. 평소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내게 대장정은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멍청했다. 인간의 발이 걷는 기능 외에 뛰거나 달리는 기능이 있을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국민대장정을 가기 전 북악 스카이웨이 예비 행군에서 나는 오르막길과 높은 고도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내 힘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앞뒤 대원들이 나를 질질 끌고 가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사실 대장정 내내 이랬다.) 예비 행군 때부터 나는 ‘관심 대원’에 등극됐다. 걸어야 하는데 왜 걷지를 못하고, 일렬로 맞춰야 하는데 왜 줄을 맞추지 못하는지. 2팀 팀장과 기획단원은 계속 내 이름을 불렀다. 열성팬이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 이름을 계속 외치는 수준이었다. 


너무 힘들어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예비 행군 때 숨이 쉬어지지 않아 집에 갔다던 한 대원 이야기가 생각났다. 하지만 숨이 거칠 뿐 멀쩡했다.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었다. 


제주도 공항에서 보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했다. 모든 것이 잘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으나 그 기분도 정확히 10분까지였다. 공항 근처라 신호등이 많고, 또 우리가 늦게 출발했기에 계속 달리고 또 달렸다. 차라리 예비 행군 때 기절을 했어야 했다. 집에 가기 위한 명분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집에 가려고 이야기를 할 때마다 팀장이 기분 나빠 보여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거나 친구들의 만류 때문이었다. 내 친구 Y는 차만 보면 뛰어들고 싶다고 했다. 지옥의 연속이었다. 







눈을 뜨는 것이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덜 마른 머리와 퉁퉁 부운 얼굴로 침낭을 접고 텐트를 걷으면서 드는 생각은 '오늘만 살아남자'였다. 언제 집에 갈지 몰랐으니 내일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열심히 걷자’, ‘오늘도 파이팅’ 따위의 긍정적이고 귀여운 응원은 사치였다. 매일의 생존여부가 불투명했다. 아침이 되면 집에 가겠다고 이야기 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일정표에서 오늘의 거리를 확인하고 30km를 넘으면 “죽겠구나", 20km대면 “기절하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개인 정비를 마치고 기획단이 준비운동을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흡사 임종 직전의 소리들이었다. 그 뒤 대장의 선창과 대원들의 후창으로 "청춘의 열정으로 한계에 도전하라! 1팀 가자, 2팀 가자, 3팀 가자, 4팀 가자, 국민대학교 국민대장정!"을 외치면 그것이 지옥 문앞이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보폭이 좁은 여자 대원들은 남자 대원이 한 걸음 걸을 때 두 걸음으로 쫓아가고, 큰 걸음으로 걸을 때는 달려야 했다. 남자 낙오자가 한 명이라도 나오면 자신도 낙오하겠다던 남자 대원들이 한 트럭이었다. 2팀이 선두일 경우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나머지 팀들은 전력질주를 하기 때문에 S가 외치는 "정신 차려라!"는 말을 들으며 정신을 붙잡아야 했다. 



ⓒ 네이버 웹툰 '놓지마 정신줄' 


걷는데 가장 힘들었던 건 통증이었다. 발바닥은 마찰 때문에 불이 났고 다리는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오르막길이나 횡단보도나 교차로가 나오면 앞에서부터 비명이 들려왔다. 그러면 롤러코스터에 오를 때와 같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전력질주를 해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욕이 절로 나왔고 제주도의 모든 교차로와 신호등을 폭파해버리고 싶었다. '관심대원'이었기 때문에 내가 뛰기 시작하면 자동적으로 두 사람이 붙었다. 가뜩이나 뛰는 것도 느리면서 다 뛰고 나면 휘청대며 대열을 이탈했다. 


결국 걷다가 정신을 붙잡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렸다. 차에 타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느껴지건만, 그 뒤로는 죄책감이 따라온다. “차 타자”는 말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차에 탔고, 밖에서는 구호가 들리고, 대원들은 땡볕에서 걷고 있고, 우리 팀 팀장은 가방을 하나 더 짊어지고 걸어간다. 호명해 나눠줄 만큼 약 먹는 사람이 많았고, 병원에 가야할 사람이 한 줄이었다. 죄책감과 미안함 때문에 더 많이 울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하다. 행군 하는 동안에는 집에 가겠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숙영지(숙박 장소)에 도착하면 그런 마음이 눈녹듯 사라진다. 소소한 즐거움과 팀원들의 위로 덕분이었다. 해안도로에서 바다를 보며 따라 걷고(사실 대부분의 행군 동안 경치 감상은 사치였다. 나중에 사진을 보고 경치를 알 정도였으니까), 휴식처임을 알리는 텐트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던 순간들 덕분에 버텼다. 매일 찬물로 샤워하다가 한 번 따뜻한 물로 여유있게 씻고 나오는 날, 하늘에 별들이 아주 예뻐서인지 빨리 누울 수밖에 없던 날들, 한라산에서 폭풍우를 만나 텐트가 날아갈까 떨었던 날, 콜라나 사이다 한 모금에 목숨을 걸며 의리 게임을 하는 것도 모두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기획단이 외치는 “출발 오 분 전!”은 끔찍했지만, 팀원 S가 외치는 “2팀, 오늘 행군도 마무으리!”는 또 그렇게 좋았다. 본인이 걷는 것도 힘들 텐데, 맨 뒤에서 팀원들 힘내라고 H가 목이 터지라 외치는 응원구호도 좋았다.대장정 팀원들에게 구름이 잔뜩 낀 날이 좋은 날이었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은 나쁜 날이었다. 나쁜 날씨가 이어지던 날, 울면서 걷는 나에게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버티자”고 위로해주는 말 덕분에 집에 갈 수 없었다. 와서 ‘괜찮냐’고 ‘걸을 수 있느냐’고 챙겨주던 팀장과 우리 팀 기획단원 덕분에, 걸을 수 있었다. 



ⓒ 리필 페이스북 



대장정 마지막 날 우리 팀은 모두 약쟁이가 돼있었다. 약 기운으로 걷고 뛰고 달리는 상황이 이어졌다. 하지만 진통제를 너무 많이 먹어 약이 더는 듣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아예 뛰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따로 낙오팀을 만들어 뒤에서 걸었다. 나는 마지막 4일차부터 제주공항으로 향하는 마지막 날까지도 낙오팀에 있었다. 대열에 합류해 뛰지 못하고 걸어서 향하는 게 억울했지만,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제주 공항에 도착하자 실감이 났다. 완주했구나. 모자를 날리고 대원증을 던지고 가방을 내팽개쳤다. 우리 모두 하나같이 울었다. 


물론, 대장정은 끝났지만 그 여파는 현재진행형이다. J는 깁스를 풀고 최근 압박붕대를 갈았고, 체육대학도 아닌 Y는 운동선수가 자주 걸린다는 스트레스성 골절에 걸려 1주일간 입원을 해야 할 상황에 처해있다. 나 또한 근육에 이상이 생겨 약을 먹고 몇 주간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다. 우리에게는 최소 4주째 대장정이 추가로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 팀원 Y가 병실 인증샷을 보내왔다. 



우리와는 다르게 대장정이 사랑으로 찾아온 사람들도 있다. 이상형 월드컵에서 L은 D를 1순위로 뽑았다고 한다. 대장정이 끝난 뒤에도 서로를 챙겨주다가 친해진 그들은 “나도 너 좋아하고 너도 나 좋아하니 사귀자”는 L의 박력 있는 말로 그 인연을 지속했다. 물론 나에게 그 인연은 찾아오지 않았다. 다만 나만은 아니라는 것에 안도를 느낄 뿐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당연히 나와 같은 범주일 것이다. 성공 확률이 그리 높지 않으니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소중한 기회인 대장정에 이런 불순한 의도로 참여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해안가에서 장난으로 차를 태워달라는 학생들에게 한 할머니가 하신 대답이 기억에 남는다. “아이고 학생들 차 태워줄 테니, 그 젊음 나한테 좀 주소.” 할머니의 말씀처럼, 이번 10회 구호처럼, 대장정은 젊음으로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다. 그 ‘특권’을 누리고 싶은 사람은 다음 대장정에 망설이지 말고 도전해보자. 



                                                   김혜미 기자 hyeme199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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