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치르고 있을 학생들에게, 그리고 그들을 가족으로 둔 국민대 가족들에게.

국민저널 기사 2013.11.07 09:00

수능을 치르고 있을 학생들에게,

그리고 그들을 가족으로 둔 국민대 가족들에게.



오늘이 수능 날이지요. 대학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먹고 수능에 응시한 수험생분들은 아마 열심히 시험을 보고 계실 것이고, 수험생을 가족으로 둔 국민대학교 가족분들은 그들이 목표한 결과를 얻기를 기도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마음 같아선 모두의 건투를 빌고 싶습니다만, 모든 수험생이 목표한 바를 다 이루길 바란다는 건 그냥 거짓말이겠지요. 수능이란 1등급을 받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인원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승자와 패자가 말끔하게 갈리는 제로섬 게임이니까요. 열심히 시험을 본 모두가 승자라는 식의 입에 발린 말도 할 생각이 없습니다. 대신 불성실과 우연로 점철된 제 볼품없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드릴까 합니다.


저는 사실 대학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던 학생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저는 왕가위나 팀 버튼, 웨스 앤더슨 같은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던 학생이었으니까요. 제가 가고자 했던 영화 학교는 수능 성적 없이 내신과 실기만 보는 학교였고, 그 학교만을 바라보고 달려왔던 제 수능 성적은 그렇게까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건방진 고3 소년은 “영화에 대한 재능은 수능으로 잴 수 없어” 따위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이나 지껄이는 바보였으니까요.


가족의 성화로 ‘일단’ 일반 대학교에 입학한 후로도 영화 학교 시험을 계속 봤습니다만, 매번 최종 면접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1차에서 떨어졌으면 깨끗하게 포기라도 했겠지만, 매년 면접관들을 만나 저의 재능과 가능성을 어필하는 걸 반복하자니 도저히 쉽게 포기가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작년엔 내가 너무 면접에서 소극적으로 임했어. 올해는 내가 생각한 시나리오에 대해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설득을 시켜야지.’라고 다짐하며 4차례의 고배를 더 마신 뒤에야, 비로소 저는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꿈을 포기했을 무렵 제가 한 것이라고는 방구석에 처박혀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뿐이었습니다. 학교도 잘 안 가고 폐인처럼 살았으니 학점은 바닥을 향해 추락했고, 집에서는 “애가 공부는 안 하고 TV만 보고 자빠졌으니 커서 무엇이 될 것인가.”를 근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영화감독이 될 거니까 다른 건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군대도 미뤄가며 10여 년을 달려왔는데, 그 꿈이 갑자기 코 앞에서 송두리째 사라졌으니 무엇이 될 수 있을지 막막했거든요.


인생이란 재미있죠. 그렇게 TV만 보면서 방구석에서 뒹굴 거리다가, 문득 <무한도전>에서도 <상상 더하기>에서도 ‘못 웃기는 개그맨’이라는 구박을 듣던 정형돈의 처지가 제 처지 같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낙서하듯 정형돈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쓸 때만 하더라도, 그 글이 갑자기 네티즌들의 낙점을 받아 인터넷 커뮤니티 여기저기에 퍼 날라 질 것이라곤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일이 그렇게 되었고, 제 인생도 기묘한 방향으로 커브를 틀었습니다.


저는 ‘TV 평론가’라는 분에 넘치는 호칭을 달고 돈을 받으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 글을 좋게 보고 선뜻 글을 쓰고 돈을 버는 일자리를 제의해 주신 좋은 분들이 있었던 덕분이지요. 그렇게 이 일을 시작했고, 군대에 다녀온 다음에는 졸업도 하기 전에 특채로 기자가 되었으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전국 일간지에 제 이름을 단 칼럼을 쓰며 먹고 살고 있더군요. 말도 안 되는 농담 같지만, 살다 보면 이런 농담 같은 일들도 있나 봅니다.


너무 바쁘게 일만 하며 살아온 탓에, ‘일단’ 들어가 뒀던 국민대학교를 떠나지 못하고 적을 두고 산 것이 내년이면 벌써 10년째가 됩니다. 처음엔 간절히 원해서 들어온 학교가 아니었으니 자랑스러울 것도 없었던 학교지만, 좋은 선후배님들, 교수님들을 만나 정을 붙이고 애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국민대학교에 대한 제 사랑은 늦게 시작되었고, 그 사랑을 표현하는 제 나름의 방식으로 <국민저널>에서 일하는 것을 선택하게 된 것이지요.


이야기가 잠시 다른 쪽으로 샜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의 8할은 순전히 운이었습니다. 제 글을 퍼 날라 인터넷 방방곡곡에 퍼뜨려 준 네티즌들이 없었다면, 그 글을 읽고 제게 첫 칼럼 자리를 마련해 준 이들이 없었다면, 대학도 채 졸업하지 못한 것도 모자라 학점까지 엉망이었던 저를 선뜻 특채로 고용해 준 회사가 없었다면, 그 모든 이들의 선의가 없었다면 지금쯤 제가 뭘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을지 저 또한 확신할 수 없으니까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저처럼 운이 좋진 못할 겁니다. 그러니 제가 걸어온 길을 참고하시라는 것 따위의 주제넘은 소리는 할 수도 없고, 할 염치도 없습니다. 다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수학능력시험을 망쳤다고 해서, 수년간 자신이 꿈꿔왔던 인생의 목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해서, 목표했던 대학에 갈 수 없다고 해서 인생이 거기서 끝나는 건 아니라고 말이죠. 수능 성적만으로, 학력이나 학벌만으로 자신의 인생이 성공적이었는지 아닌지를 미리 재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살면서 어떤 기회가 어떤 얼굴로 우리를 찾아올지 모르니까요. 영화 감독의 꿈을 잃고 좌절하던 제게, 생각지도 못한 글쟁이로서의 삶이 문을 두드렸듯이 말입니다.


매년 수능이 끝나고 나면 결과를 비관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에 대한 소식이 뉴스 사회면을 뒤덮곤 합니다. 그런 광경을 올해만큼은 안 봤으면 좋겠습니다. 실패와 좌절과 불성실과 운빨로 점철된 제 볼 것 없는 생애에서 찾은 교훈이 딱 하나 있다면, 어느 구름 뒤에 해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수험생과 수험생을 가족으로 둔 국민대학교 가족 여러분 모두에게, 수능을 잘 본 이에게나 못 본 이에게나, 오늘 하루가 좌절이나 초조함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승한 편집국장


추신: 아울러 자신의 꿈을 위해 대학 진학을 거부하고 다른 선택을 한 모든 고3 학생들에게도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저는 사람의 지성은 학력이나 학벌이 아니라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을 통해 증명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용기와 당당함이 반드시 제값을 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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