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月]속속 드러나는 학과 구조 ‘졸속’ 개편…절차는 겉치레였나

국민저널 기사/FOCUS 2013.05.31 22:09

※최종 수정 : 2013.6.1 10:43:39

[5月]속속 드러나는 학과 구조 ‘졸속’ 개편

…절차는 겉치레였나

 

의견 수렴 과정 한 달만에
‘일사천리’ 이사회 의결
학교본부, 평의원회에 “심의 빨리” 압력 넣기도
평의원회 심의 기간 ‘7일’ 그쳐

 

지난 16일 오후, 명원민속관에서 재적 이사 9명과 감사 1명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2013학년도 재단(학교법인) 이사회 2차 회의가 열렸다. 이사 전원 찬성으로 ‘2014학년도 대학, 학과 신설 및 학생 모집정원 조정 안(이하 학과 구조 개편안)’이 의결됐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내년부터 자동차융합대학이 신설돼 그 아래 자동차IT융합학과가 생겨난다. 또 이를 측면 지원하기 위해 조형대학에 수송기디자인학과를 설치한다. 이 밖에도 건축학부는 건축대학으로 승격되고, 교양과정부는 교양대학으로 개편된다. 변화에 따른 정원 충원을 뒷받침하고자 기존 학과 정원을 80명 줄였다.

 

학과 구조 개편 과정은 그야말로 ‘불투명’ 일색이었다. 4월 17일 학칙 개정안이 우리학교 홈페이지에 공고되면서 그제야 학생들에게 처음으로 학과 구조 개편안의 실체가 알려졌다. 그로부터 닷새가 지난 4월 22일 평의원회 1차 회의가 소집됐다.

 

이날 자리에 모인 평의원 10명은 학과 구조 개편안을 심의했다. 이들은 “당장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정원 조정의 기준과 필요성 ▲단과대학 및 학과 신설의 필요성 ▲신설되는 단과대학 및 학과에 들어가는 교직원 채용, 공간 마련 등에 소요되는 예산 ▲신설 학과와 유사 학과의 성격이 중복되는 문제 등에 대한 설명 자료를 요청하며 2차 회의를 기약했다.

 

평의원회 신중한 접근 요청했으나

이사회 재검토 기간은 불과 ‘15일’

 

4월 29일 열린 2차 회의에서 평의원들은 “지속적인 논의와 면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며 신중한 접근을 당부하는 의견서를 이사회에 제출했다. 반대 의견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대해 전광출 평의원회 부의장(동문)은 “수백 페이지에 상당하는 제본 자료를 보내왔는데, 분량만 많고 실질적인 내용은 없었다”며 “교육과정, 교수진, 미래 취업전망, 외부 지원 여부 등에 대한 근거가 빈약했다”고 말해, 부실한 자료가 한몫했음을 시사했다.

 

평의원회가 “지속해서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는 것은 그만큼 추진 과정이 급하게 진행됐다는 방증이다. 안건 심의를 일주일 만에 마무리하고 다음 날(4월 30일) 이사회 1차 회의를 소집했다. 여기서도 “더 많은 구성원이 찬성할 수 있는 구조조정안을 마련하자”는 의견이 나와 다음 회의로 결정을 유보했지만, 이사진이 재검토한 기간은 보름에 불과했다.

 

일각에선 학교 본부가 평의원회 회의 일정을 이사회 일정에 맞추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광출 부의장은 “학교 본부 측 간사가 ‘이사회에서 논의를 빨리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말을 전했다”면서 “가능하면 심의를 빨리 해주는 것이 좋으니까 평의원회 2차 회의를 일주일 뒤에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폭로했다.

 

 

▲지난 16일 열린 2013학년도 재단 이사회 2차 회의록. 이날 학과 구조 개편안과 그에 따른 학생 모집정원 조정안을 담은 학칙 개정안이 이사회에서 재적 이사진 전원 찬성으로 의결됐다. 이 자리에서 기획처장 이재경(기업경영)교수는 "대학평의원회 개별 면담"을 가졌다고 언급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학교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기획처장 “평의원 개별 면담” 답변 거짓말 의혹

평의원 상당수 “따로 만난 적 없다”

평의원회 2차 회의록은 비공개

이유는 “예․결산 사항이 아니라서”

 

심지어 학교 본부 측이 이사들에게 답한 내용 가운데 일부 대목이 거짓말로 드러났다. 학과 구조 개편안이 통과된 이사회 2차 회의록에 따르면 이재경 기획처장은 구성원 간의 의견 합의를 묻는 정대철 이사(민주당 상임고문)의 질문에 ‘대학평의원회 의원 개별 면담’을 구성원 의견 수렴 과정 중 하나로 진행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본지 취재 결과 류재우 평의원회 의장(교수), 전광출 평의원회 부의장 등 상당수 평의원이 최근 학과 구조 개편 과정에서 기획처 관계자를 따로 만난 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설령 만났을지라도 학과 구조 개편에 관한 이야기는 오가지 않았다. 부총학생회장 박효훈 평의원(학생)은 “평의원회 회의 기간에 기획처장이 ‘차 한 잔하고 가라’길래 나와 최경묵 총학생회장 둘이 함께 (처장을) 만나러 갔다”며 “심오한 화제보다는 ‘나 어제 술 마셨는데 배가 아프다’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회의록이 전부 공개되지 않은 점도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의견서를 제출키로 한 평의원회 2차 회의록은 홈페이지에서 빠져 있다. 이를 두고 기획처는 “예·결산 관련 사항이 기재된 회의록은 공개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이외의 일반 회의록은 비공개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평의원회 규정에는 회의록 공개 기준을 명시한 조항이 없다. 자의적인 기준을 들이미니, 학생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교수 사회서도 반발 거셌다

학교, 반발 무마책으로

단과대별 ‘자구안’ 반영해

학과 구조 개편안에 끼워 넣어

 

학교 본부는 학과 구조 개편안 추진 과정 내내 교수 사회를 중요한 대화 파트너로 삼았다. 노조위원장 윤정국 평의원(직원)은 일련의 추진 과정을 묻는 말에 “학생이나 직원 차원에서는 (학과 구조 개편이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하지만 학교는 교수진들과 긴밀히 협의했기 때문에 그들이 내용을 잘 알 것”이라며 근거를 뒷받침해줬다.

 

학교 본부는 애초 학과 신설보다는 정원 감축을 염두에 뒀다. 비상쇄신발전위**와 교수회 복수의 관계자들은 “지난해 말 2014학년도 신입생 모집 계획을 수립하면서 80~100명 내외로 정원을 조정하는 안건이 논의됐다”고 전했다. 내년도 대학입학 전형계획에 따르면 기업경영학부에 배정된 정원 75명을 줄여 정원외 전형으로 돌리는 등 전년(2천997명)보다 77명의 정원이 줄었다. 교육부가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평가에서 가산점을 부여하는 잣대로 정원감축률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학과 구조 개편은 올해 초 들어 본격 추진되기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자동차 산업에 깊은 관심을 표한 유지수 총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됐다. 교수 사회에 학과 구조 개편이 주요 의제로 떠오른 것은 지난 3월 하순이다. 당시 교무위 회의에 참석한 단과대학장 대다수가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서 일대 논란이 촉발됐다. 기존 학과에서 정원을 빼내서 신규 모집 정원에 채우기로 한 것이다. 학교 본부 처지에선 학과를 신설하면 정원을 늘려야 하나, 대학 평가 지표상 수치들이 개선된데다 앞서 정원 감축을 결정한 상황을 고려하면, 내부 조정(기존 학과 정원을 신설 학과 정원으로 옮기는 것)을 거치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이 깔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윗돌 빼서 아랫돌에 괴는’ 방식의 내부 정원 조정은 기존 학과에 부담을 지우고 희생을 강요한다는 비판을 제공했다.

 

 

 

 

신설 학과가 기존 학과와 성격이 중복된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불거졌다. 자동차IT융합학과는 전자공학부, 컴퓨터공학부와 교육 과정이 겹치고 수송기디자인학과는 공업디자인학과와 교육 과정이 겹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신입생 지원자 수가 줄거나, 최악에는 본부 지원이 줄어들 것이라는 위기감이 내포돼 있었다.

 

그래서 교수 사회 일각에서는 “연계 전공을 시행하는 등 기존 학과의 자원을 활용하면 되지 않느냐”며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학교 본부는 “자동차 산업은 전자 장치와 정보통신(IT) 기술 활용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데 자동차공학만 공부하면 전자․IT 학문에 무지해 기술 개발에 어려움을 겪지 않겠나. 연계된 학문을 혼합해 배우는 ‘통합형 인재’로 길러야 한다”고 맞섰다.

 

이들의 반발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자 학교 본부는 타협책을 모색했다. 그 일환으로 각 단과대학에 소위 ‘자구안’ 마련을 요청해, 소속 학과 또는 학부에서 원하는 사항을 들어줬다. 익명을 요구한 A교수는 본지 인터뷰에서 “건축학부가 건축대학으로 격상되고, 영어영문학과가 영어영문학부로 개편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느냐”며 “왠만한 ‘자구안’은 다 받아서 해줬다”고 설명했다. 전공이 분리되거나, 학과 명칭이 바뀐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앞서 지난 4월 기획처는 전공 분리 신설을 두고 “학과나 학부 차원에서 이러한 방향으로 개편해 운영하겠다는 요구가 학교 본부에 반영된 것”이라 말했다.

 

신설 학과 설계 작업은 ‘진행 중’

졸속 추진 망령 되살아날까 우려

 

우여곡절 끝에 안건은 4월 교무위를 통과했고, 이제는 총장의 공포만을 남겨두고 있다. 학교 본부는 현재 위원회를 구성해 신설 학과의 교육 과정을 설계 중이다. 산학 협력의 밑그림을 구체화하는 태스크포스(TF)도 꾸릴 예정이다.

 

그러나 내년 신입생 입학까지 8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사전에 치밀한 검토 없이 탄생한 KIS(Kookmin International School)가 출범 1년 만에 경영대학에 편입된 선례의 잔상이 남아서일까. 대다수 관계자가 입을 모아 말한 단어는 ‘졸속’이었다. ‘졸속 추진’의 망령이 북악골을 배회하고 있다.

 

*대학평의원회 : 재단 이사회 의결에 앞서 교육 관련 중요 사항을 심의하고 자문하는 기구로, 교직원, 학생, 동문 등 학내 구성원 대표자가 두루 참여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비상쇄신발전위원회 : 학교 본부(총장·기획처장), 교수(4인), 동문(2인), 직원노조(위원장), 재단(1인)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기구로, 취업률과 전임교원 확보율 등 교육부의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평가지표 향상 계획의 거시적 방향을 설정한다.

 

박동우 기자 pdwpd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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