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 2013년 5월] 광주와, 민주주의의 적들

[편집국장의 말]광주와, 민주주의의 적들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주간 특별 에디토리얼(Editorial)

 

합창으로 시작한 노래는 결국 제창이 되었다. 자리에 앉아 노래가 끝나길 기다린 이들과 자리에서 일어나 팔뚝을 흔들며 함께 부른 사람들로 나뉘긴 했지만, 5월의 광주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제창을 피할 방도는 없었다. 구 묘역에서도 신 묘역에서도, 한낮의 금남로에서도,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5월의 광주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인사를 대신했다. 사람들은 33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아픔으로, 동지를 만난 반가움으로, 역사를 망각의 저편으로 묻으려는 이들에 대한 분노로, 지금 이 순간에도 쌍용, 재능, 기아, 한진에서 저마다의 광주를 싸워내고 있는 이들의 투쟁에 대한 연대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광주를 둘러싼 법리적, 정치적 판단은 모두 지난 세기에 끝났다. 김영삼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정부의 정체성이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있음을 천명한 게 20년 전(1993년), 국회가 특별법 제정을 통해 광주항쟁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한 게 18년 전(1995년), 헌법재판소가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합헌으로 인정한 것이 17년 전(1996년), 대법원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죄목과 형량을 확정판결한 것이 16년 전(1997년)의 일이다. 행정, 입법, 사법. 현 집권 여당의 전신 민주자유당이 여당이던 시절, 국가 권력 3부가 차례로 판단을 끝냈다. 누가 볼세라 숨죽여 이야기해야 했던 말 못할 설움에서, 오늘날의 정부가 그 사상적 뿌리를 대고 있는 기반으로 공식적 지위가 격상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 끝에는… 역사엔 “최후의 승자도, 패자도 알 수 없다”고 누군가 말했다. 1996년 8월 26일 서울형사지법 417호 법정에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12.12 군사쿠데타와 관련한 1심 선고 공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 자리에서 재판부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22년 6개월형을 내렸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이들을 끝내 시련의 굴레에서 해방했다. 1997년 12월 21일 김대중 당시 15대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대화합을 명분으로 이들을 전격 사면한 것이다. (사진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정책방송원)

 

그러나 광주를 둘러싼 기억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는 중이다. 중고등학교 교과 과정에서 근현대사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안 그래도 축약 진행되던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교육은 언급 수준에서 끝나거나 때론 생략되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한편에서는 광주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왜곡하려는 이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순박한 무지렁이 시민들의 봉기”로 광주의 복잡한 정치적 함의를 축소하고 낭만적 층위로만 소비하는 이들, 여전히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옹립하기 위한 전라도민들의 지역 이기주의로 발발한 사태”라고 주장하는 이들, “공수부대는 선제공격하지 않았다. 광주는 폭도들이 들고일어난 폭동”이라 주장하는 이들, 심지어는 “광주는 북한 공작원들이 침투해 일으킨 소요사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지칭하는 ‘임’은 김일성”이라고 주장하는 이들까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제대로 전승되고 기념되지 않은 기억은 흐릿해지거나 왜곡된다. 이번 5월 국민대학교에도 광주로 내려가자는 수많은 포스터가 훼손을 당했다. 중앙학술동아리 ‘대학생사람연대’가 붙인 광주 역사 기행단 포스터는 1차 게시한 20여 장 중 한 장만을 남기고 모두 찢겨 나갔고, ‘우리본부’가 붙인 광주 순례단 포스터엔 누군가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라는 글귀를 적어 놓았다. 광주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혐오하는 이들, 광주를 기억하자는 정치적 의사표현마저 비아냥과 조롱을 덧씌우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이들의 준동. 광주를 고립시키고자 하는 이들 사이에서, 광주의 의로운 싸움은 여전히 외롭다.

 

왜 사람들은 기를 쓰고 광주를 지우려는 것일까? 단순히 정치적 보수층의 민주화 세력에 대한 혐오만으론 설명하기 어렵다. 자신이 반대하는 정치적 의견을 논쟁의 장으로 끌고 들어와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의견 자체를 지워버리고 막아버림으로써 ‘내 눈앞에서 치워’ 버리는 것, 정부와 국회, 대법원, 유네스코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보수의 이데올로그(ideologue) 조갑제 기자조차 인정한 바 있는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고 왜곡함으로써 최소한의 토론의 여지마저 지워버리는 것, 사실을 왜곡하고 반대 의견 개진 자체를 방해함으로써 상대의 정치적 고립과 절멸을 꾀하는 것. 본 편집국장은 이런 일련의 움직임에서 파시즘의 씨앗을 본다.

 

33년 전 광주를 짓누른 것 또한 이와 멀지 않았다. 경제 성장을 구실로 일부의 희생을 정당화하면서 정작 그 과실은 공정하게 분배하지 않는 체제에 대한 분노, 정치적 의사 표현을 막는 국가권력에 대한 시민의 감시, 민주적 질서를 무력으로 유린하는 신군부에 대한 항의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지만, 권력자들은 그에 대해 해명하거나 대화에 나서는 대신 상대 의견을 압살하는 쪽을 택했다. 상대를 ‘폭도’, ‘간첩’, ‘불순분자’ 등으로 호명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담보하고,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은 보도지침과 가택연금 등으로 막아버리고, 시민의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무력으로 진압했다. 다양한 의견의 공존 속에서 대화와 토론으로 합의점을 찾는다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는 실종되었고, 힘 있는 자의 의견만이 진실이 되는 폭정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2013년, 그들이 광주를 기억하는 방법 학생 단체 ‘우리본부’가 우리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광주 순례단을 모집하는 포스터를 정문 앞 버스 정류장에 게시한 가운데, 지난 14일 포스터에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었다. (서울=국민저널/이승한 기자)

 

그들의 목적은 자명하다. 그릇된 현실에 대해 옳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 새로운 세상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가만 내버려둔다면, 다른 이들 또한 하나 둘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잡은 자들은 총칼의 위협 앞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고자 했지만, 그 엄혹한 세월에도 진실은 죽지 않고 살아 수많은 젊음의 가슴에 불을 댕겼다. 광주를 짓밟은 자들, 지금 광주를 왜곡하고 있는 자들은 이들과 맞서 제 정당성을 확보하고 상대를 설득해 제 비전을 관철해 낼 자신이 없기에 진실을 찍어 누르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민주주의가 두려운 것이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적이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적이다.

 

지난 33년간,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 현실을 바꾸고자 했던 이들의 가슴 속에서 광주는 세상을 바꿔야 하는 당위이자 해소되지 않는 아픔이었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영감이었다. <국민저널>은 추모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광주민주화운동이 진행되었던 5월 18일부터 27일까지를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주간’으로 정하고, 홈페이지 로고와 검색 창을 모두 검은색으로 바꾼 ‘추모용’ 화면으로 전환해 운영한다. 이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의 의미이자, 지금 이 순간에도 기억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광주에 대한 연대와 지지의 의미이며, 부당한 탄압에 맞서 평등과 정의를 촉구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응원의 의미이기도 하다.

 

서른세 번째 맞는 5월 18일, 광주에서.

 

이승한 편집국장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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