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봐서 아는데]최 병장, 8시간 동안의 호국 일기

[내가 해봐서 아는데]최 병장, 8시간 동안의 호국 일기

본격 기자 체험 자랑 칼럼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 첫 번째, 최용우 기자의 예비군 훈련 체험기

 

 

▲선배님들, 버스에 탑승하시지 말입니다 지난 2일 서울 모처에서 우리학교 학생 예비군들이 훈련장에 입소하기 위해 시내버스에 올라타고 있다. (서울=국민저널/최용우 기자)

 

5월만큼 북악에서 아름다운 달이 또 있으랴. 시험은 끝났고, 대기 중엔 봄 향기가 가득하며, 축제를 앞둔 설렘이 피부로 느껴진다. 온 캠퍼스는 초록으로 물들고, 옷장 앞에서 옷을 고를 때부터 마음가짐이 달라진 게 느껴진다. 하지만 역시 5월의 북악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행사라면, 누가 뭐라 해도 예비군 훈련이다.

 

학생예비군 훈련은 4월부터 하는데 왜 5월의 가장 큰 행사냐 묻지 마시라. 4월의 예비군과 5월의 예비군은 다르다. 4월은 아직 꽃샘추위가 옷 안으로 파고들고 극한의 일교차가 오감을 지배하는 계절. 같은 군복을 입어도 야상을 걸쳐야 하는 4월과 야상 없이도 집을 나설 수 있는 5월은 다르다. 야상을 걸치느냐 마느냐에 누적 피로도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아는 이들이라면 기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이다. 예비군은 5월이 제 맛, 5월엔 예비군인 것이다.

 

이 군복엔 슬픈 마력이 있고

이 버스엔 사람 말고 군인만 있어

 

남북관계가 경색일로를 걷고 있는 이 시기, 기자는 8시간짜리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옷장에서 오랜만에 군복을 꺼내 입고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병장 최 병장으로 거듭났다. 평소와 같은 시간의 잠을 잤음에도, 군복을 입자마자 알 수 없는 졸음이 쏟아진다. 만사가 귀찮아진다. 가까스로 집을 나와 지하철에 올라탔다. 결국 최 병장은 마치 「아이언 맨」의 슈트처럼 마력을 지닌 군복에 굴복한 채, 당고개역을 향하는 내내 지하철에서 잠을 자 버렸다.

 

도착했는지 군화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눈을 떠보니, 군복을 입은 시커먼 예비군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훈련 전에 지쳐버린 육신을 간신히 이끌고 훈련 교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싣는다. 만차가 된 버스 안을 둘러보니 승객 모두가 군복을 입고 있다. 놀라운 광경이다. 휴가·외박을 나오는 군인으로 가득 차 있는 버스에 탄 어느 할머니가 남긴 명언, “이 버스에는 사람은 없고, 군인만 있네”가 뇌리를 스친다.

 

두 정거장 뒤 예비군 교장 앞, 버스가 섰고 기사님만 홀로 남겨둔 채 예비군 모두가 하차한다. 현역 조교들과 교관(동대장*)들이 정문에서 예비군들을 반긴다. 교관이 군화, 고무링, 벨트 등 복장 점검을 한 후 2열 종대 줄을 세운다. 10여 분의 행군 끝에 연병장에서 개인 장구류를 지급받는다. 철모, 탄띠, M-16 소총 한 정. 최 병장은 휴대폰을 반납하고 8시간 동안 잠시 세상과의 연을 끊는다. 연병장 한 모퉁이에서 모든 예비군이 장구류를 지급받고 집합할 때까지 30여 분을 기다린다. 역시 대기 시간은 현역 때든, 예비군 때든 똑같이 지루하다.

 

*동대장 : 지역 최소 단위인 ‘동’에 거주하는 향토예비군을 책임지는 지휘관. 장교 또는 퇴역 군인(대위 이상) 중에 선발된다.

 

내가 못 쏜 게 아니야

내 옆에 있던 놈이 스나이퍼라서 그래

 

설렁설렁 입소식을 끝내고 첫 훈련인 사격에 나선다. 그나마 예비군 훈련 중 가장 훈련다운 사격. 올해부터 조기 퇴소제가 생겨, 훈련 과정을 평가하여 우수자는 먼저 퇴소시킨다는 교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다들 좀처럼 믿지 않는 분위기다. 사격장으로 이동한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역시 대기다. 나라를 지키려면 체력 관리는 필수, 최 병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예비군들은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잠을 청한다. 역시 예비군은 기승전잠이다.

 

드디어 최 병장의 순서가 왔다. 이미 사로에 준비가 된 총을 잡고 표적에 6발을 쐈다. 산발되어 있지만 표적지에 6발이 다 들어가 있다. ‘아직 최 병장 살아있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교관이 와 표적 검사를 하기 시작한다. 정말로 평가를 하는 거다. 교관이 최 병장의 눈을 보며 웃는다. “아시죠?” 얄짤 없는 불합격. 다음은 옆 전우, “잘 쐈네. 합격!”이라는 교관의 평가가 이어진다. 그러자 그 전우의 대답, “네, 스나이퍼입니다.” 아니, 왕년에 스나이퍼 아니었던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내가 현역 때는 말이지….

 

준장님 나를 재우시고

여성분 나를 깨우시니

 

다음 교육은 예비군 훈련의 취침시간인 정신교육 시간. 역시 내용은 언제나 일관성이 있어 좋다. 안보교육 PPT는 한 사람이 만드는지 내용도, 구성도 예전과 똑같다. 강연의 주인공은 현역 시절이었다면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던 존재인 예비역 준장. 하지만 전역한 예비군에게 준장이 대수랴. 전역과 동시에 동네 옆집 아저씨로 내 마음 속 보직 변경을 하는 게 장교요, 간부다.

 

강연이 시작된 후 강당의 가장 뒷자리에 위치한 최 병장은 불과 몇 분 만에 기적을 경험한다. 최 병장 앞자리 예비군들이 익은 벼처럼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 것이다. 흡사 모세의 지팡이 끝에서 홍해가 갈라지듯, 차례로 숙여진 고개 너머로 어느새 예비역 준장과 맨 뒷자리 예비역 병장이 눈빛 교환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날카로운 눈빛의 조교들이 깨우러 다니지만 소용없다.

 

그러나 기적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음 강연에 나타난 한 존재가, 조교들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고자 전우들의 숙여진 고개를 일으키는 기적을 행하신 것이다. 그 존재는 여자. 북한의 실태를 알리는 내용의 동영상이 강단 스크린에 뜨고, 뒤이어 8명의 새터민 여성이 토크쇼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짙은 수컷 향기가 진동하던 예비군 교장에 뜻밖의 화사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숙여져 있던 고개들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뭐야?” “여자야?” “여자 왔어?” 최 병장이 5년간 받은 예비군 안보교육 중 집중력은 최고조에 이른다. 뼛속까지 안보 정신이 충만해진다.

 

전투의 패배는 용서할 수 있어도

보급의 실패는 용서할 수 없어

 

강연 말미 교관이 꺼낸 점심 이야기에 예비군들의 집중력은 폭발한다. 자, 이번 시간이 끝나면 점심시간인데, 국민대학교는 총장님의 배려로 점심 값을 학교에서 일괄지급 했습니다. 총장님께 박수 한번 주시죠. 강당이 떠나갈 듯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온다. 이번 기적은 예비군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신 총장님께서 행하셨다. “자, 식사하러 가십시오.”라는 교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예비군들의 구보가 시작된다. 비록 군을 떠난 지 수년 됐으나, 식사에 대한 집념은 현역 못지않다. 식당으로 가던 한 전우는 넘어져 손바닥이 다 까졌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훈련 중 손실된 근육에 단백질을 제공할 고기산적과 동그랑땡, 주린 배에 포만감을 줄 양배추 샐러드, 한국인의 동반자 김치, 입맛 없는 이에게는 축복과 같은 김, 훈련으로 쌓인 피로를 한꺼번에 풀어줄 비타민이 듬뿍 담긴 과일음료, 그리고 쌀밥과 미역국. 맛이 있느냐고? 뭘 묻는가. ‘짬밥’은 일단 배를 채우고자 먹는 것이지,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배부르다”는 말이 목적 지향적 식사를 요약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배가 불렀을까? 전우들의 발길은 PX(충성클럽)로 향한다. 예비군의 베스트셀러, 아이스크림을 위해서다. 길게 늘어선 줄. 하지만 PX병의 한마디에 온 예비군이 술렁인다. “선배님들 죄송합니다. 오늘 아이스크림이 보급이 안 됐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이런 기본적인 보급조차 실패하다니,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어찌 안보를 논하고 국방을 논한단 말인가. 전투에서의 패배는 용서가 돼도, 보급의 실패는 용서할 수 없거늘.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가서 100개 사먹어야지’라는 마음을 되뇌며, 과자를 몽땅 사서 분대회식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내가 꼭 집에 일찍 가고 싶어서

‘약진 앞으로’를 외친 건 아니야

 

“선배님들,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조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느긋느긋 움직이는 예비군들을 조교들이 계속 재촉하지만 ‘배도 불렀겠다,’ 더 느긋해 보인다. 꾸역꾸역 모인 예비군들 앞에 나타난 동대장 아저씨가 오후 일정을 브리핑한다. “바로 시가지전투 훈련이 있습니다. 일명 서바이벌 게임이라고 하죠. 이 훈련이 오늘 조기 퇴소자를 선발하는 하이라이트가 될 겁니다. 선발자는 16시에 퇴소합니다. 열심히 훈련에 임해주세요.” 아직까진 “일찍 퇴소해서 뭐해.”라는 웅성거림이 대다수다.

 

시가지전투 훈련장에 들어선다. 시가지처럼 만들어 놓은 모형 훈련장이 눈에 뛴다. 동대장 아저씨가 “원래 공격조, 방어조로 나누어서 훈련을 해야 하는 데 안전문제로 공격조만 편성하여 훈련합니다.”라고 공지를 한다. 서바이벌 전용 총 한 정, 페인트탄 다섯 발을 지급받고 보호 장구를 착용한 후 훈련에 임한다. 그런데 이것 봐라. 먼저 훈련하는 분대들이 내지르는 ‘약진 앞으로’ 구호가 갈수록 커진다. 아, 조기 퇴소. 밀려오는 식곤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시크하게 굴던 예비역들의 귀가본능을 일깨운 것이다.

 

최 병장이 속한 분대 순서가 왔다. 최 병장은 자신도 모르게 ‘약진 앞으로’를 미친 듯이 내지른다. 그리고 엄청난 기동력으로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통제관이 전방에 있는 표적지를 향해 격발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전방에는 인민군 복장을 한 표적이 보인다. 오전에 있었던 안보교육 덕분인지 최 병장의 안보 의식은 이미 충만했다. 최 병장은 백발필중의 정신으로 눈앞에 있는 인민군 표적에 페인트탄 다섯 발을 원점 타격 하였다. 페인트 탄이 터지면서 인민군 표적을 물들게 한 주황빛에 최 병장은 왠지 모르게 끓어오르는 귀가본능, 아니, 애국심을 느낀다.

 

국방부 시계는 자비심이 없지 말입니다

예비역이라고 봐 드리지 않지 말입니다

 

시계바늘이 16시를 향해가고 있다. 시가지전투 훈련을 마친 전우들은 잠을 청하고 있다. 어디서든 잘 수 있는 예비군의 참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자, 조기 퇴소자를 발표하겠습니다. 호명되는 예비군은 바로 퇴소하겠습니다.”라는 동대장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진짜 하는 거야?” “아, 총 좀 잘 쏠 걸.” “1시간 일찍 가서 뭐하려고….”등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OO번 예비군, 퇴소.”, “OO번, OO번 예비군 퇴소.” 동대장 아저씨의 발표에 모두가 들썩인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함성. “5분대는 우수 분대로 분대 전원 퇴소합니다.” 현역 못지않은 5분대의 함성이 교장을 가득 메웠다. 조기 퇴소자들은 얼굴에 미소를 가득 안고, 남은 예비군들을 놀리며 정문 밖으로 나간다. 이게 뭐라고 발표 순간 은근히 기대가 되었던 건 뭐고, 조기 퇴소자가 부러운 이 심정은 또 뭔가. 사람마음 참 간사하다.

 

“남은 예비군들은 수류탄 투척 훈련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훈련장에 도착하니, 조교들이 준비되어 있던 모의 수류탄을 한 발씩 지급해 준다. 수류탄 파지법(손에 쥐는 방법) 설명을 듣고, 10여 미터 앞에 설치된 인민군 표적이 있는 박스 안에 수류탄을 던져 넣는다. 하지만 이미 전의를 상실한 예비군들이 투척한 수류탄이 들어갈 리 있나. 바로 앞에만 안 떨어지면 다행이다. 실제 전투 상황이었다면 분대 전원이 폭사해도 이상할 게 없는 거리에 모의 수류탄들이 툭툭 떨어진다. 조기 퇴소 탈락으로 멘붕에 빠진 최 병장 또한 취재가 어려울 정도로 전의를 잃은 지 오래. 적당한 거리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지만, 시간이 참 안 간다. 예비군도 군이라고, 국방부 시계는 참 느리게도 간다.

 

어느덧 17시, 1년 치 국방의 의무가 끝나가고 있다. “오늘 하루 수고하셨습니다. 연병장으로 이동하여 장구류 반납하고 퇴소하겠습니다.” 동대장 아저씨의 말에도 이제 힘이 없다. 아저씨도 참 수고가 많습니다. 연병장에 도착하니 8시간 동안 나라를 지킨 역전의 용사들이 가득 차 있다. 장구류를 반납하고 휴대폰을 돌려받는다. 옆에 있던 과 후배에게 “휴대폰 켰는데 메시지 하나도 안 와있으면 정말 비참할 것”이라 말하며 휴대폰을 켰다. 다행히 카톡(카카오톡 메시지)이 와있다. 뭔지 모를 뿌듯함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카톡 비밀번호를 풀고, 채팅창을 들여다봤다. “이런, 젠장 단톡방(단체카톡방) 메시지밖에 없다니….” 순간 내 자신이 비참해 진다.

 

훈련비로 지급받은 1만원을 들고 과 선·후배들과 끝나고 뭘 먹을지 대화를 나누며, 교장을 빠져나가는 데 머리위로 물방울이 떨어진다. 비다. “이런 젠장, 다 끝나니까 비라니, 다 끝나니까 비라니!” 훈련 할 때 좀 퍼부어 줬으면 모두가 비를 피해 잠을 청하며 체력보충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꼭 훈련을 피해 내리는 걸 보니 비조차도 5월의 꽃이 예비군 훈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5월의 꽃은 예비군 훈련이다. 꼭 기자가 8시간 구르다 와서 하는 말이 아니지 말입니다!

 

글·취재·훈련 참여/ 최용우 기자 julyten@daum.net

정리/ 이승한 에디터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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