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만든 서가]요조는 굶주려본 적이 없다 -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부끄럼 많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인간의 죽음이라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우주가 여기저기서 죽어가는 데 뭇사람들은 그 우주를 곧잘 소비해내더군요. 뉴스로 지하철 안에서 커피숍에서 정말이지 잘도 떠들어댔습니다. 등록금을 내지 못해 건물에서 떨어진 대학생 혹은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벌다가 고용주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자살한 학생까지.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들을 소비하고 죽였습니다. 제가 그들의 몫을 빼앗았고 그들의 죽음을 수수방관했습니다.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많은 것을 요구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외려 아주 단순한 것입니다. 죽은 자들이 저를 보며 손가락질하고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습니다
. 생계와 관련된 일들에는 도무지 관심이라는 게 없었으니까요. 그 은수저를 등 뒤로 감추고 살고 싶었습니다. 대학에 와서 문학을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잔인한 현실조차 문학이라는 틀을 한 번 거치고 나면 으레 아름답게 여겨지기 마련입니다. 보고 읽고 쓰고 동정했습니다만 그것도 그뿐, 문학 속의 현실이 제 삶은 아니었으므로. 저는 은수저를 움켜쥘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저를 떨어트릴 순간부터 시작될 불행 ―온정을 베풀 수 있는 인간적인 삶을 져버릴 것이다. 이 나락의 연쇄―을 잠을 설치도록 두려워한 탓이겠지요. 물고 있던 은수저가 떨어지면 나도, 그리고 내 삶도 같이 떨어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루는 집회에 나갔습니다
. 높은 대학 등록금 액수에 항의하는 그런 집회였습니다만 그곳에서조차 저는 관찰자 신세였습니다. 새벽 2시 서울 종로 한복판에는 취객들, 경찰들, 그리고 기자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많이들 모여 있더군요.

멍하니 경찰의 23차 경고를 관망하고 있던 저에게 기자들 무리 중 누군가가 어느 신문 아무개라며 다가왔습니다. 대학생이시죠? 등록금은 얼마나 내고 계신가요? 대학생으로서 이런 방식의 시위를 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반값 등록금이라는 게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기자의 질문에 많은 시간을 들여 답을 해주었습니다. 기자는 수첩 빼곡히 제 대답을 적더군요. 하지만 그날의 불행은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있었습니다. 등록금은 어떤 방법으로 버시나요? 순간의 정적이 흘렀습니다. 거리 저 끝에서는 많은 수의 경찰들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전액 대주시기 때문에 저는 사실 반값 등록금이 필요 없습니다. 반값 등록금 시위의 정당성을 떠들어 댄 이후였습니다. 거기서 저는 그렇게 공포하고 말았습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기자의 얼굴에는 약간의 조소가 흘렀습니다. , 그렇군요. 그녀는 마지막 답변을 적지 않고 수첩을 덮더니, 마침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습니다.

, 그렇군요. 저에게는 드러누운 학생 무리에 낄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바닥에 엎드려 소리치고 울던 학생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이 상대해야 할 대상은 경찰이 아닌 바로 저 같은 사람들입니다!

 

 

저는 끝끝내 아주 망가지지는 못할 겁니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아주 망가져 버릴 수 없다는 두려움에 근거하니까요.

 

 

저는 끝끝내 아주 망가지지는 못할 겁니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아주 망가져 버릴 수 없다는 두려움에 근거하니까요. 인간실격의 요조는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수기가 끝날 때까지 그는 단 한 번도 배고파 본 적이 없습니다. 밥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에 근거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요조는 이 일을 미신으로 치부하고 싶어 합니다. 가족들은 마치 괴물 같다며 가족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건만 그들이 보내준 돈이 아니면 생존할 수 없는 모순에 대해, 요조는 어쩌면 의연하고 싶었던 겁니다. 요조는 가난에 대한 희미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고 진술하나 그럼에도 경멸심이 없다고 결백하게 말했습니다.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가난은 요조에게 자신을 경멸할 기회를 준 적이 없었으니까요.

아버님이 이제 안 계신다. 내 마음에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던 그 그립고도 무서운 존재가 이젠 안 계시다. 제 고뇌의 항아리가 텅 빈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제 고뇌의 항아리가 공연히 무거웠던 것은 아버지 탓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조차 들었습니다.” 수기 내내 아버지는 절대적 존재이자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며 죽고 나서도 아버지로 상징되는 자본이 요조의 머리 위를 배회합니다. ‘돈 떨어지는 날이 인연 끊어지는 날이란 말이야.

요조의 창조주이자 그와 가장 가까운 분신인 다자이 오사무가 행했던 5번의 걸친 자살 시도의 원인 역시 그의 친가와 자유로울 수 없을 겁니다. 다자이가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접하며 느낀 어찌할 수 없는 죄책감이 하나의 근원일 테지만 병약한 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자살하는 수밖에요.


 

 



 


인간실격
人間失格

다자이 오사무 太宰治

 

(청구기호를 클릭하시면
상세 도서정보로 연결됩니다.)
 

 


을유문화사(1995) 813.35 태72

문예(2003) 813.36 태7281

을유문화사(2004) 813.35 태72

을유문화사(2009) 813.36 태72ㅅ2

민음사(2010) 808.8 세1438

시공사(2010) 813.35 태72

 

 

 

글/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편집/이승한 에디터 tintin@iamtintin.net

 

<저작권자(c)국민저널.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