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만든 서가]멘토 권하는 사회-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당신을 이렇게 위로하려고 애쓰는 이 사람이 당신에게 가끔 위안이 되는 소박하고 조용한 말이나 하면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의 인생 역시 많은 어려움과 슬픔을 지니고 있으며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뒤처져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 사람이 그러한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여기 당신을 위한 최고의 자기계발서가 있다. 저자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인이고, 몇 세대에 걸쳐 회자되고 있을 뿐 아니라, 당신에게 진심 어린 위로와 적당한 조언을 해줄 줄도 안다. 물론 햇병아리 멘티들에게 친필로 정성스런 편지를 쓰는 것 정도는 기본이다. 어느 스타강사 왈, 저자의 지혜가 300페이지 안에 농축된 책이 자기계발서라고 하니 이 책은 더할 나위 없다. 100페이지면 완독이 가능한 이 책은 당신의 소중한 시간까지 절약해 준다. 이보다 더 근사한 자기 계발서가 또 어디 있으랴. 멘토가 이쯤 했는데도 그 지혜를 받아먹을 수 없다면, 애석하게도 그건 모두 게으른 멘티인 당신 탓이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시인 지망생이었던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가모순 혹은 장미꽃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게 받은 편지 10편을 묶어 출간되었다. 물론 사적인 편지가 이렇게 수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팔리는 건 릴케의 의도가 아니었겠지만. 카푸스는 책의 서문을 통해 문학청년들이 릴케의 조언을 귀담아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왜 아니겠는가? 릴케 역시 어려운 인생을 살아왔고, 시인으로 성공했다. 그에게는 조언할 수 있는 자격이 충분히 주어진다. 이제 그의 인생을 흡수해 100페이지의 지혜로 녹여내는 일만 남았다.

작년 한해 한국인의 정신건강 및 보건복지에 힘쓴 청춘 멘토들의 조언과 힐링은 정확히 이런 과정을 거친다. 한국인이 열망하는 객관적 성공 - 대개 매우 힘든 과정이었노라고 회자되는 - 을 거친 멘토들은, 취업을 목전에 둔 20대를 향해 자기 이야기를 들려줬다.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꿈을 가졌고, 이를 얼마나 열망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끝내 어떻게 획득할 수 있었는지. 20, 혹은 청춘으로 호명되는 잠정적인 청년 멘티들이 과연 멘토들과 같은 삶을 살고 싶어하는가는 그리 고려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열망하는 삶이야말로 바람직한 삶이기 때문이란다.

그들의 멘토링이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구조적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멘토들은 온갖 어려움을 딛고 성공했으며, 다른 이들을 도와주고자 기꺼이 손을 내미는 진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진심만으로 청춘의 현실을 막아낼 수 없었다. 진심도 일단은 잘 팔려야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진심을 이야기할 기회를 살 수 있었다. 다수의 멘티를 거느린 대부분의 멘토들은 멘티 한 명 한 명에게 감정이입하기에는 진심을 파느라 너무 바빴고, 그들이 만났던 청춘 또한 불행히도 모든 청춘을 대변할 수 없었다.

하지만 릴케의 편지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자기계발과는 조금 다르게 읽힌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릴케가 카푸스에게 보낸 편지로만 이루어져 있지만, 카푸스가 릴케에게 자신의 습작 시들을 보내지 않았다면 존재할 수 없었다. 릴케는 카푸스의 편지들을 읽으며 불특정 다수의 멘티가 아닌 카푸스라는 개인을 보았고, 그의 시에 손수 답변을 달아주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충고하고 당신을 도울 수 없습니다.’

 

위로의 방식은

대개 자기 발에 꼭 맞는 대상과의

교류를 통해 이루어진다.

 

릴케는 카푸스의 삶에 자신의 발을 담그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청년기의 자기 자신을 다루듯 카푸스의 편지에 답했던 것이다. 릴케의 독려, 혹은 카푸스를 향한 질문도 사실은 과거 릴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릴케가 열 편의 편지에서 언급한 고독은 카푸스보다 자신의 생이 더 뒤처져있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조언자의 배려다. 위로의 방식은 대개 자기 발에 꼭 맞는 대상과의 교류를 통해 이루어진다. 릴케는 자신이 먼저 걸어간 길을 카푸스가 좀 더 나은 모습으로 걸어주길 바랐다.

물론 그의 편지가 카푸스를 구할 수는 없었다. 카푸스는 릴케와의 서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자신이 원하지 않던 길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그는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글을 써야만 하는지 물어야 한다는 릴케의 조언에 성실히 답했다. 그는 통속 소설가로 이름을 알리고 평생 글을 쓰는 생을 택한다.

이 책을 집어들 당신에게 릴케는 성실히 답해줄 것이다. 어쩌면 가장 훌륭한 자기계발서일지도 모른다. 단 당신이 시인이라는 직업을 열망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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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렌즈
 (2005)

836.912 823
 

고려대학교출판부 (2006)

836.912 823

 

기파랑 (2012)

836.912 823

  

/유지영 기자 alreadyblues@gmail.com

편집/이승한 에디터 tintin@iamtint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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